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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장들을 볼모로 잡은 세계금융위기
지금 “소비가 미덕”이라고 빚내어 흥청망청이던 미국과 유럽은 마치 아일랜드의 뿔사슴(irish elk) 같은 꼴이다. 아일랜드 뿔사슴(irish elk)은 수컷의 뿔이 유난히 컸다고 한다. 종족의 유난스런 특성 때문에 큰 뿔은 종족 안에서 큰 성적 매력이었다. 뿔이 큰 수사슴이 암컷에게 더 강한 성적 매력을 풍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수컷들은 더 큰 뿔을 원하게 되고, 점점 뿔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이 암컷을 더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에서는 유리했지만, 계속되는 진화는 어느덧 수컷들 스스로 뿔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이 뿔사슴은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되어 멸종해 버렸다고 한다.
기업이 성장을 위해 빚을 내어 투자하고 제조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빚을 갚는 것이 레버리지 효과인데 미국과 유럽은 투자라는 단계는 생략하고 빚을 내어 바로 써버린 것이다. 경쟁적으로 소비하고 과시하고 하다가 결국 아일랜드 쁠사슴처럼 스스로의 빚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판이다.
이런 판에 유럽의 슈퍼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말 한마디로 세계 증시의 시가총액 수십조를 올려 놓았다. 유로화를 어떤 경우에도 지켜 내겠다는 한마디가 폭등 장세를 몰고 왔다. 말로 뭐든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세계는 금융위기 중이고 금융전쟁 중이다.
전쟁이 끝날 쯤에는 항상 볼모가 있다. 지금 “세계 금융시장의 볼모”는 세계 각국의 금융의 수장들이다. 이들의 “입”이 전쟁을 결판 낸다. 미국의 버냉키 의장, 유럽의 드라기 총재, 중국의 조우샤오츄안 인민은행장 한 마디면 바로 세계증시가 울고 웃는다. 그러나 “빚의 덫”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중앙은행의 총재들은 사실은 “금융위기의 볼모”들이다.
유럽의 드라기 총재, 미국 연준의 버냉키의장 모두 유동성의 덫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금융정책의 효과가 없는 데도 끝없는 유동성 살포를 요구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돈의 가격인데 금리가 제로라는 것은 수요 공급의 기본적인 원칙이 깨졌다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가 분명한데 시장 메커니즘을 수리할 생각은 않고 공급만 무한대로 늘리는 것이다.
중국 GDP의 대용치는 전력사용량?
중국의 2분기 GDP가 3년이래 최저치인 7.6%로 나오자 중국경제에 대한 비관이 쏟아지고 있다. 서방언론들과 서방의 중국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력 사용량을 보면 중국정부가 GDP숫자도 속였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심각한 버블붕괴상태이고 부동산도 가격하락의 추세에 들어가 큰일이 났다고도 한다. 서방언론은 마지막 남은 큰 별도 떨어졌다고 난리다.
중국의 6월 전력사용량은 4.3% 증가한 4,136억 kWh를 기록하였다. 증가율은 3월에 비해 소폭 상승하였으나, 5월에 비해서는 하락하였다. 2012년 1-6월 누적 전력사용량은 5.5%를 기록하였다. GDP 7.8%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중국이 GDP를 속였다고 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중국 경기침체로 전력사용량 역시 둔화되었다. 그런데 고려할 것은 중국의 경기 상승기와 하락기의 전력사용량의 탄력성을 생각해야 한다. 호경기에는 GDP보다 전력사용량의 증가율이 높고 불경기에는 낮다.
1990년부터 2011년까지 전력사용량과 GDP 사이의 탄성을 계산해 보면 경기 하락기의 탄력성은 0.68이고, 경기 상승국면의 탄력성은 1.17이다. 예컨대, 경기 하락 국면에서 GDP가 10% 성장할 경우 전력사용량은 6.8%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탄성치를 현 상황에 적용할 경우 1-6월 누적 전력사용량은 5.3%(7.8%*0.68)가 적정 수준이다. 즉, 중국의 전력사용량은 시장의 우려와 같이 극도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적정 수준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3/4분기는 정치, 경제의 휴식기간
그래서 세계는 중국의 경기부양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화끈한 경기부양 소식이 없다. 중국에서는 정책이 시장보다 중요하고, 정책은 정부의 주요 회의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중국이 언제 경기부양을 할 것인가, 또는 경제정책의 전환이 있을 지는 중국의 정치, 경제와 관련된 회의일정을 봐야 한다. 계획경제의 특성이 짙은 중국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매년 정해진 날짜에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중국에서는 주요 재정정책과 경제정책, 각 부서에 관련된 중요사안을 논의, 결정하는 회의가 매주 혹은 매달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모든 회의는 개최 주기가 다르고 중요성도 다르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국무원 상무회의는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비서장이 참여하는 사실상 정부 최고 정책의결기구로서 일상적인 정책들을 결정하며, 국무원 전체회의는 여러 부서에 관련된 중요사안을 논의한다.
양회의는 매년 3월 열리며 국민들의 의견과 요구를 토대로 한 해 전체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매년 10월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1년간 주요정책 및 발전 방향을 결정한다.
중앙경제공작회의(12월), 전국재정공작회의(12월), 금융공작회의(1월)와 중앙은행공작회의(1월)는 중국의 경제정책, 재정정책, 통화정책 및 금융관련 세부정책을 수립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중국의 3/4분기는 전형적인 정치경제의 휴식기이다. [표1]을 보면 7,8,9월에는 특별한 정책결정회의가 없다. 경기가 하강한다고 해도 정부의 연초 목표치 구간을 하회하는 불상사가 없다면 급작스런 정책변화는 없다.
중국의 GDP가 정부 목표치 7.5%에 근접한 7.6%에 근접했지만 중국 정부가 별다른 경기대책을 내 놓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의 경기하강에 중국의 경기부양책을 시장에서는 많이 기대하지만 중국의 독특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감안하면 9월까지는 큰 변화가 있기 어렵다.
또한 중국은 금년 10월, 5년 단위의 가장 큰 행사인 공산당 18차 당대회가 열리고 여기서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다. 주석은 상하이방의 지지를 업은 태자당 출신 시진핑으로 결정되었지만 나머지는 아직 미정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는 진황다오의 베이다허의 휴양지 해변에서는 지금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18차 당대회에서 선임될 제5세대 지도자를 정하는 정치권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민심을 염두에 두기도 해야 하지만 자신의 계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물을 9명의 당 상무위원 중에 몇 명을 올리느냐가 계파의 생명 줄이기 때문이다. 후진타오의 직계인 베이징시장이 이번에 인력으로 어쩔 수 없었던, 천재지변인 60년만의 북경의 물난리 때문에 한방에 날아갔다. 미묘한 시기에는 “살아있는 권력”의 수하도 한방에 쳐버리는 것이 중국의 정치이다. 그래서 지금 중국에서는 정치가 경제보다 선 순위다. 연초 정부 목표치 성장률 안에 들어가 있는 중국의 경제문제는 중국지도자들 입장에서는 후 순위다.
중국경제에서 보이는 몇 가지 긍정적 신호
중국의 경기부양을 시장은 학수고대 하지만 이래저래 3분기는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그간 노력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 중국경제의 자생력에 기대를 해 보는 것도 좋다. 중국경제는 경기 최저점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미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도 미국처럼 부동산가격이 아킬레스건이다. 미국은 올리고 싶어도 안 올라가고 중국은 내리고 싶어도 안 내려가서 정부가 강제로 손을 댄 것이 차이다. 중국은 역대 최고로 강한 부동산규제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이래의 지준율 인하와 금리인하의 영향이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6월 주택거래량은 금년 들어 최고치이고 가격도 상승세를 보였다. 또한 6월부터 중국의 통화량증가세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금리나 지준율 같은 가격정책보다 대출이나 통화증가와 같은 양적인 정책이 더 잘 먹히는 나라다.
중국의 중소기업의 경기를 나타내는 HSBC PMI지수도 아직 50 아래이긴 하지만 최근 7개월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젠 중국의 내구소비재의 대표로 자리잡은 자동차판매도 성장세로 돌아섰다.
4년 주기 경기사이클과 글로벌 유동성의 유혹
증시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실물경기를 보면 영악한(?) 증시의 주가조정은 당연하다. 4년 주기의 경기 사이클로 보면 2008년 경기바닥 이후 2012년이 새로운 경기 저점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전세계 정부가 모두 “Global QE”모드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절벽으로 떨어졌던 아픈 기억이 작은 낙하에도 공포감을 더 크게 한다. 지금 전세계가 선거철이고 금리인하, 돈 풀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전세계가 동시에 올인하면 세계경제가 다시 절벽으로 재 낙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요즘 한국증시는 공포분위기다. 거래대금 최저, 장부가치보다 낮은 주가, PBR은 0.98이란다. 그리고 매일 천억원 이상을 버는 한국 대표주에 공매도 잔고가 사상최대인 3.5조원이 걸려 있다. IPO도 2000년 이후 최저치란다. 여의도 금융가에는 점포 축소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당황스럽지만 돌이켜 보면, 4년 주기의 사이클 바닥에서 여의도 금융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초 저금리로 들어가는 데 장기채권으로 돈이 몰린다고 한다. 깊은 불황 다음은 긴 불황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자산선호는 투자시장에서는 저주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경기의 바닥신호다. 현금만 1000억불이 넘는 애플이, 실적이 시장 예측치에 못 미쳤다고 주가가 속락해 쇼크를 주었다. 시장의 심리가 그 만큼 불안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느린 것이 불안의 원천이다. 그러나 1930년대 대불황 때 경기대책 같은 미국의 경기대책은 케인즈가 살아 돌아와도 안 된다. 산업이 2차에서 3차로 전환했고 더 이상 시멘트와 철근으로 만들 SOC와 GDP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위기의 덫”에 걸린 미국과 유럽이 서로 부도의 핑퐁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와 중남미 등 개도국의 금융위기와 미국과 유럽위기는 다르게 봐야 한다. 한국은행이 부도 날 수 없듯이 기축통화를 양분한 미국과 유럽은 지금 같은 국제통화체제에서는 절대 부도날 수가 없다. 국가간의 정치적인 문제만 없으면 돈 찍어서 해결하면 끝이다. 부채도 통화인 것(debt monetization)이다. 정부가 빚을 안고 대신 돈을 찍어 주는 것이다. 물론 그 화폐전쟁의 피해자는 기축통화를 갖지 못한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아시아국가다.
세계경제의 아킬레스 건은 부동산과 고용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부동산에서 봄기운이 돌고 있다. 고용은 시간이 걸리지만 부동산이 살아 나면 일단 돈이 돌고 SOC와 중간재회사 금융기관들이 살아난다. 그간의 금리인하, 지준율 인하, 돈 풀기 정책이 약발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경제는 구조적인 저성장이겠지만 미국과 유럽의 보이지 않는 금융의 위력을 감안하면 시장을 너무 비관할 것도 아니다. 유동성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 주요국의 화폐유통속도는 최저다. 금융시스템의 고장과 안전자산선호로 그리고 투자 확대를 꺼리는 기업의 투자행태 때문이다. 돈을 더 풀지 않더라도 경기가 살아 나는 조짐만 보여 돈이 돌기 시작하면 QEn, LTROn 같은 돈 풀기 정책보다 더 강할 수 있다.
미 연준의 FOMC 미팅과 ECB의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독일 재무장관 그리고 ECB총재가 연쇄회동을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다시 통화공급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의 유혹”이 다시 시작될 것 같다. 유동성 사이클의 유효기간은 대략 3개월-5개월이다. 그 사이에도 돈은 잠들지 않는다. 경기바닥에서 끝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시장의 트렌드는 미국을 보아야 하지만 투자대상의 선정은 중국의 실물경제를 봐야 하는 것이 한국 증시의 운명이다.
“장부가 이하의 주가”에서는 추가하락의 가능성이 낮다. 한국경제는 중국 경기에 맞춰서 봐야 한다. 중국의 경기바닥에서 나온 신호들이 나쁘지 않다. 중국의 정치일정을 보면서 금년 10월 이후 늦어도 내년 중국의 신 정부 정식출범이 예정된 3월을 대비한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이 필요해 보인다. 경기가 바닥을 길 때 시장은 먼저 회복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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