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지지(立錐之地)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라는 뜻으로, 조금의 여유도 없음을 말한다.
立 : 설 립(立/0)
錐 : 송곳 추(金/8)
之 : 갈 지(丿/3)
地 : 따 지(土/3)
(유의어)
치추지지(置錐之地)
탄환지지(彈丸之地)
출전 : 사기(史記) 卷126 골계열전(滑稽列傳), 유후세가(留侯世家)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집이나 땅이나 많이 가질수록 좋다고 여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이 있다.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우리 설화에도 있다. 최고의 땅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쟁이에게 보이는 땅 전부를 가지라고 한다.
단 조건이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뚱 살 뚱 안간힘을 다해 뛰었지만 돌아와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선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혔다. 돌아갈 때 필요한 땅은 한 평에 불과하다. 아니 화장이 대중화된 요즘은 그 땅도 필요하지 않다.
송곳의 날카로운 끝을 세울(立錐) 땅도 없다는 말은 물론 과장이지만 매우 좁아 조금의 여유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하기도 한다. 치추지지(置錐之地), 탄환지지(彈丸之地)라고도 한다.
司馬遷(사마천)은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인물들을 ‘史記(사기)’의 滑稽(골계)열전에 모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때에 풍자에 능했던 배우 優孟(우맹)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성어가 나온다.
우맹의 재주와 인품을 알고 당시의 청렴했던 재상 孫叔敖(손숙오)는 그를 따뜻이 대해 주었다. 얼마 뒤 손숙오가 죽게 되자 아들들에게 어려울 때 우맹을 찾으라고 했다.
남긴 재산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지자 아들들은 우맹을 찾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맹은 손숙오의 생전 모습을 하고 장왕을 찾았다. 죽은 손숙오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여겼던 장왕은 재주 좋은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다음날 우맹이 말했다. ‘초나라의 재상을 지내고서도 그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땅이 없어, 땔나무를 져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其子無立錐之地 貧困負薪以自飲食)’면서 재상직을 거절했다.
장왕이 크게 깨닫고 손숙오의 아들들에게 400호를 하사했다. 비유가 적합해서인지 많은 고전에서 이 말이 인용됐다.
그래도 실생활에선 욕심이 넘쳐난다. 수십억 원하는 집을 여러 채 갖고서 더 사들이려 하고, 졸부로 만들어준 땅도 기회만 되면 늘리려 한다.
온갖 규제도 무위로 만드니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그 많은 재산을 갖고 떠나는 재주는 갖고 있지 못할 터인데 괜히 걱정이다.
⏹ 입추지지(立錐之地)
이 성어는 초(楚)나라의 풍자(諷刺; 사회, 인물의 결점 등을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일)를 잘하는 우맹(優孟)이라는 사람이 왕에게 진언하는 말에서 유래한다.
우맹(優孟)은 본래 초(楚)나라 음악가(樂人)로 키가 여덟 자이고 구변이 좋아 언제나 웃으며 이야기 하는 가운데 풍자(諷刺)하여 간언했다.
優孟, 故楚之樂人也, 長八尺, 多辯, 常以談笑諷諫.
당시 초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는 우맹이 어진 사람임을 알고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손숙오가 병으로 죽으려 할 때, 그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너는 틀림없이 가난해 질 것이다. 그렇게 되거든 너는 우맹을 찾아가서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여라.”
그로부터 몇 년 뒤 손숙오의 아들은 정말 나무를 등에 지고 다닐 정도로 곤궁해졌다. 그래서 그는 우맹을 만나게 되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가시기 전에 저에게 가난해지거든 당신(우맹)을 찾아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맹이 말했다. “그대는 멀리 가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우맹은 그날로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행동과 말투를 흉내 냈다. 일 년 남짓 그렇게 하니 손숙오와 비슷해져 초나라 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 조차 손숙오와 우맹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초장왕(楚莊王)이 주연(酒宴)을 베풀었을 때 우맹이 앞으로 나아가 잔을 올리니 징왕은 깜짝 놀랐다. 장왕은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것으로 여겨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우맹이 말했다.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하고 나서 사흘 뒤에 재상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장왕이 이것을 허락하자 사흘 뒤 우맹이 다시 찾아왔다. 왕이 물었다. “그대의 아내는 뭐라고 하오?”
우맹이 말했다 “저의 아내는 ‘ 삼가 가 재상을 하지 마십시오. 초나라 재상(宰相)이란 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손숙오와 같은 분은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충성을 다 하고 청렴하게 초나라를 다스려 초나라 왕을 제후들의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손숙오가 죽자 그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만한 땅도 없고(其子無立錐之地) 가난하여 땔나무를 져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손숙오처럼 될 바에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초장왕은 우맹에게 사과하고,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들여 침구(寢丘; 지금의 하남성 임천현) 땅에 4백호의 봉읍을 주어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이 뒤로 10대까지 계속되었다. 이는 진실을 말해야 할 때를 안 것이다.
楚相孫叔敖知其賢人也,善待之。病且死,屬其子曰:「我死,汝必貧困。若往見優孟,言我孫叔敖之子也。」居數年,其子窮困負薪,逢優孟,與言曰:「我,孫叔敖子也。父且死時,屬我貧困往見優孟。」優孟曰:「若無遠有所之。」即為孫叔敖衣冠,抵掌談語。歲餘,像孫叔敖,楚王及左右不能別也。莊王置酒,優孟前為壽。莊王大驚,以為孫叔敖複生也,欲以為相。優孟曰:「請歸與婦計之,三日而為相。」莊王許之。三日後,優孟複來。王曰:「婦言謂何?」孟曰:「婦言慎無為,楚相不足為也。如孫叔敖之為楚相,盡忠為廉以治楚,楚王得以霸。今死,其子無立錐之地,貧困負薪以自飲食。必如孫叔敖,不如自殺。」因歌曰:「山居耕田苦,難以得食。起而為吏,身貪鄙者餘財,不顧恥辱。身死家室富,又恐受賕枉法,為奸觸大罪,身死而家滅。貪吏安可為也!念為廉吏,奉法守職,竟死不敢為非。廉吏安可為也!楚相孫叔敖持廉至死,方今妻子窮困負薪而食,不足為也!」於是莊王謝優孟,乃召孫叔敖子,封之寢丘四百戶,以奉其祀。後十世不絕。此知可以言時矣。
⏹ 입추지지(立錐之地)
이 성어는 한고조(漢高祖; 유방)을 도와 항우(項羽)을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데 지대한 공훈을 세워 유명해진 장량(張良; 張子房)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오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한나라 3년. 항우가 급히 영양(滎陽)에서 한왕(劉邦)을 포위하자, 한왕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역이기(酈食其)와 함께 계책을 내어 초나라(항우)의 권세를 약화시키려고 했다.
역이기가 말했다. “지금 진(秦)나라가 덕을 잃고 의를 저버리고 제후들을 침입하여 정벌하고 6국(六國; 楚, 齊, 趙, 燕, 韓, 魏)의 후대를 끊어버려 그들에게 송곳 세울 땅조차 없게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6국의 후손들을 다시 자리(王)에 오르게 하여 그들 모두에게 군왕(君王)의 관인(官印)을 받게 하면, 그 나라의 군신과 백성이 반드시 폐하의 은덕을 우러러볼 것이고, 군왕의 덕망과 의로움을 흠모해 마지않을 것이며, (유방)신하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今秦失德棄義, 侵伐諸侯社稷, 滅六國之後, 使無立錐之地. 陛下誠能復立六國後世, 畢已受印, 此其君臣百姓必皆戴陛下之德, 莫不鄉風慕義, 願為臣妾.
한편 장자(莊子) 잡편(雜篇)의 도척(盜跖)편에는 ‘立錐之地’가 치추지지(置錐之地)라고 나오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도척(盜跖)은 9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행패를 다 부리는 못된 도적인데, 그는 현자(賢子)이며 공자(孔子)의 친구인 유하계(柳下季)의 동생이었다.
공자가 유하계에게 동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자, 유하계는 그가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자 공자가 말리는 유하계를 뿌리치고 도척을 만나러 갔다.
거절하는 도척을 겨우 만난 공자는 여러 가지로 도척을 설득했으나, 오히려 도척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없을 때는 그 사람을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들었다. 너는 이제 내게 큰 성(城)과 많은 백성으로써 말했지마는, 그것은 이익으로써 나를 꾀려 하는 것으로서, 나를 범인(凡人)으로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어찌 그것들(성(城)과 많은 백성)이 오래 가겠는가? 성이 아무리 커도 천하보다 큰 것은 없다. 그런데 요(堯), 순(舜)임금은 천하를 다스렸지만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고, 탕(湯=은나라 세운 임금)과 무(武=주나라 세운 임금)는 임금이 되었어도 그 뒤는 끊어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그 이익이 너무 큰 것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且吾聞之, 好面譽人者, 亦好背而毀之. 今丘告我以大城衆民, 是欲規我以利而恆民畜我也, 安可久長也! 城之大者, 莫大乎天下矣. 堯舜有天下, 子孫无置錐之地; 湯武立為天子, 而後世絕滅; 非以其利大故邪?
숙종실록 25년(1699) 4월 3일의 기록에도 ‘立錐之地’이 나온다.
숙종 25년 기묘(1699,강희38) 4월 3일(임인)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국가의 급무는 권농(勸農)보다 더한 것이 없다. 봄철을 당할 적마다 신칙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기근(飢饉)과 여역(癘疫)으로 사망(死亡)하는 사람이 잇달았으므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잔약한 백성들이 농지(農地)에 힘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의 절목(節目)에 다시 첨삭(添削)을 가하여 제도(諸道)에 신칙함이 옳다.”하였다.
지경연(知經筵) 이유(李濡)가 아뢰기를, “고(故) 참판(參判) 이단석(李端錫)은 청백(淸白)하기로 이름났는데, 죽고 나서는 송곳 하나 세울 땅도 없어서 그의 아내가 언서(諺書)로 단자(單子)를 올려 급박함을 구제할 수 있는 도움을 주기를 빌었으니, 그 정상이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에서 그가 청백하였다는 것을 더욱 증험할 수가 있으니, 진휼청(賑恤廳)으로 하여금 금년을 기한으로 매달 쌀 1곡(斛)씩을 지급하게 하는 것이 청렴을 권장하는 법전에 부합될 것 같습니다.”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壬寅/御晝講。 上曰: “爲國急務, 莫過於勸農。 每當春節, 非不申飭, 而飢饉、癘疫, 死亡相繼,孑遺殘氓, 有難用力於畎畝。 曾前節目, 更加添刪, 申飭諸道可也。” 知經筵李濡言: “故參判李端錫, 以淸白見稱, 死無立錐之地, 其妻至以諺書呈單, 乞得救急之資。 其情可慼, 而其淸白尤可驗。 令賑廳, 限今年月給米一斛, 恐合勵廉之典。” 上可之。
▶️ 立(설 립/입, 자리 위)은 ❶상형문자로 사람이 대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본 뜬 글자이다. 나중에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다', '세우다'의 뜻으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 '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立자의 갑골문을 보면 大(큰 대)자 아래로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立자는 '서다'나 '똑바로 서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땅을 딛고 당당히 서 있다는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감이나 사물의 위치가 바로 세워져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다만 상용한자에서 立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대부분이 노예와 관련된 글자인 辛(매울 신)자가 생략된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立(립, 위)은 ①서다, 멈추어 서다 ②똑바로 서다 ③확고(確固)히 서다 ④이루어지다 ⑤정해지다 ⑥전해지다 ⑦임(臨)하다 ⑧즉위하다 ⑨존재하다 ⑩출사(出仕)하다 ⑪나타나다 ⑫세우다 ⑬곧, 즉시 ⑭낟알(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 ⑮닢(납작한 물건을 세는 단위) ⑯리터(ℓ)의 약호(略號) ⑰바로 그리고 ⓐ자리(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펼 전(展), 세울 건(建), 필 발(發), 세울 수(竪), 일어날 기(起),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입장(立場), 법률 또는 법규를 제정함을 입법(立法), 어떤 사물이나 견해나 조건을 등에 근거를 두어 그 입장에 섬을 입각(立脚), 서서 타거나 구경하는 자리를 입석(立席),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식물이 생육하는 일정한 장소의 환경을 입지(立地), 나라를 세움을 입국(立國), 안건을 정하는 것 또는 그 안건을 입안(立案), 증인으로 서거나 세움을 입증(立證), 뜻을 세움을 입지(立志), 현장에 나가 지켜봄을 입회(立會), 어떤 원인으로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막히거나 끊어지거나 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고립(孤立), 남의 힘을 입지 않고 홀로 섬을 독립(獨立), 시설이나 법인 등 공적인 기관을 만듦을 설립(設立), 마주 대하여 섬을 대립(對立), 확실히 정하거나 굳게 세움을 확립(確立),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함을 자립(自立), 생존하여 자립함을 존립(存立), 나라에서 세움을 국립(國立), 일어나서 섬을 기립(起立), 받들어서 임금의 자리 따위에 모시어 세움을 옹립(擁立), 절이나 탑 동상 따위를 세우거나 이룩함을 건립(建立),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립(埋立),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서서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의 뜻으로 잠깐 동안을 일컫는 말을 입담간(立談間),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 또는 후세에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광되게 해 드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입신양명(立身揚名),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일컫는 말을 입춘대길(立春大吉),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이 드날림을 일컫는 말을 입신출세(立身出世), 그 자리에서 참수하여 무리의 본보기로 경계함을 일컫는 말을 입참이순(立斬以徇),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오래 서 있어도 의용을 갖추어 자세를 흐트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입불실용(立不失容),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되는 땅을 이르는 말이나 매우 좁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입추지지(立錐之地) 등에 쓰인다.
▶️ 錐(송곳 추)는 형성문자로 锥(추)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시 모양으로 가늘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로 이루어졌다. 쇠를 가시 모양으로 가늘게 한 것의 뜻이다. 그래서 錐(추)는 ①송곳 ②바늘 ③침(針: 바늘) ④작은 화살 ⑤뾰족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밑바닥과 평행하는 평면으로 원추를 베었을 때의 그 벤 자리와 밑바닥과의 사이에 남는 입체의 부분을 추대(錐臺), 송곳의 끝을 추망(錐芒), 송곳의 자루를 추영(錐穎), 한 정점을 지나되 그 점을 포함하지 않는 평면위의 한 폐곡선의 각 점을 지나는 직선군에 의하여 생기는 면 뿔면을 추면(錐面), 하나의 추면과 하나의 평면으로 둘러싸인 입체를 추체(錐體), 도자기의 몸에 송곳 끝으로 파서 새긴 것처럼 된 무늬를 추화(錐花), 추화의 무늬를 놓아 만든 도자기를 추기(錐器), 남포 따위를 터뜨리기 위하여 뚫어 놓은 구멍을 추공(錐孔), 쇠붙이로 만든 화살촉을 추시(錐矢),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의 추낭(錐囊), 끝 부분이 모가 진 송곳을 우추(隅錐), 땅 속 깊은 곳의 구조를 알아보거나 지하자원의 채취나 토목공사 등을 하기 위하여 땅속에 구멍을 깊이 뚫는 작업을 시추(試錐), 모뿔을 각추(角錐), 한 광원으로부터 어떤 면 위로 모여 가는 빛의 속선을 광추(光錐), 칼과 송곳 또는 작은 이익을 도추(刀錐), 털붓을 모추(毛錐), 활같이 굽은 나무에 시위를 매고 그 시위에 송곳 자루를 건 다음 당기고 밀고 하여 구멍을 뚫는 송곳을 무추(舞錐), 끝이 네모진 송곳을 방추(方錐), 송곳을 세움 또는 송곳을 세울 정도의 좁은 공간을 입추(立錐), 뾰족한 칼의 끝이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사물이나 얼마 안 되는 이익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추도지말(錐刀之末),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추처낭중(錐處囊中),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대롱으로 엿보고 송곳이 가리키는 곳을 살핀다는 뜻으로 작은 소견이나 자기 견해를 겸손하게 말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관규추지(管窺錐指),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되는 땅을 이르는 말 또는 매우 좁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입추지지(立錐之地), 송곳으로 땅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조그마한 지식으로 큰 도리를 깨달으려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용추지지(用錐指地)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천방지방(天方地方),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