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9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에스골 골짜기에 널브러져 있는 마른 뼈들을 대하여 선지자로 하여금 대언하라고 하였습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고 한 마디 하였을 뿐인데 ‘없음’과 같은 마른 뼈들에 생기가 들어가 힘줄이 붙고 살이 덮여 이스라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오늘날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또한 나입니다.
티끌이요 먼지이며 없음이던 나를 주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생명을 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내 안에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아담의 본성으로 살았던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옛 사람으로 살던 사망의 증상인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는 이제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압니다.
이러한 방탕의 쓰나미는 내게서 단절 되게 하시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지신 고난의 십자가이자 영광의 십자가 뒤로 숨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6:1-12
제목 :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
* 나의 묵상
당시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영원에 속한 진리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믿은 지 오래되어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말씀의 기초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히 5:12).
따라서 그들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나 먹어야 할 자이다.
젖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이다.
의의 말씀이란 초보적인 말씀과 구별되는데 젖을 먹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자는 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의의 말씀이 무엇인가?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의의 말씀은 히브리서 기자가 신앙의 지표로 제시하는 아버지 집이요, 휘장 안의 지성소이며,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는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단한 음식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의 몫이다.
그들은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이루는데 만물 안에 속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곧 영원에 대한 소망이다.
(롬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서 떠날 것이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기초에서 떠나야 한다.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교훈에 관한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오늘 본문 4-6절은 난해구절에 속한다.
이 말씀은 완전한 데에 이르지 못한 신앙 곧 성숙하지 못한 신앙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한 때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았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9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의 특징 중 하나는 경고와 격려를 교차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경고를 하고 바로 이어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행하신 방식이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오늘 본문 9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이같이 말하였다’고 한 것은 곧 4-6절에서 언급한 가혹한 말이며 이는 타락한 자들이 다시 회개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히브리서가 열거하는 영적인 경험들을 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불순종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큰 능력과 은사를 경험했어도 날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배도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죄’는 무엇인가?
성경은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죄의 목록을 지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락이란 어떤 중한 죄의 목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떠나는 배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부인하고 그와 맞서 투쟁하며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다(6절).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이 그 신앙의 신선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유대교인들의 유혹에 빠져 넘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히브리서 기자의 이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을 미혹하는 유대교인들의 주장은 구원 받는 것이 예수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할례도 받아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떨어진 자들이 ‘그것이 정말 그런가?’ 하면서 신앙의 걸음을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이들은 여전히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를 하기도 하며 세례나 안수를 받기도 했으며 또 더 나아가서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신앙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처럼 여러 가지 신앙의 단계를 맛보았음에도 완전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기자는 아주 강력한 경고를 통하여 그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자 한 것이다.
배도자가 받는 궁극적인 결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가 극적으로 구원을 받든지 아니면 심판에 처하든지 말이다.
그래서 기자는 9절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이다.
(막 10:27)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땅에서는 모든 시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죄가 상존한다.
죄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할 것 없이 넘어지게 만든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은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넘어지며 자기가 넘어진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죄에 넘어지면 죄책감과 정죄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넘어져 있다가 주님을 힘입어 회개를 통하여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이처럼 믿는 자라 할지라도 노출된 죄로 인하여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또한 죄의 가장 심각한 패악은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에덴에서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아담을 분리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역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런 죄가 끊임없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요 약하디 약한 자이기에 내 힘으로는 이런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는 자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주의 말씀과 성령으로 인함이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오늘도 이길 힘을 주시는 주님께 나 자신을 내어 드린다.
죄로 달려가려는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된다.
그리하여 오롯이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것만이 내가 사는 길임을 알고 오늘도 그 영광의 자리, 아버지의 품, 휘장 안의 지성소로 달려간다.
그 자리만큼 완전한 곳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굉장히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열심을 내서 사역을 하고 그 사역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힐 때 나는 정말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의 생명이 없이도 그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열심과 노력의 결과로 이런 열매 또한 주렁주렁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열매로 보일 뿐, 정작 주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집이요 썩어 냄새나는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의로 지은 집이요 열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처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열매를 구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디 가더라도, 좀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주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요 반석 위에 지은 집에 거하여 늘 주님과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주님의 기쁨이요 또한 주님이 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요.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놀라우신 은혜 앞에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두 눈에 눈물이 고이나이다.
진흙탕 속에 빠져 있던 내 영을 다시 살리사 주의 품에 안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배도자요 내가 타락한 자였음을 고백하나이다.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주의 자녀 삼아주심은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사오니 오늘도 내가 온전히 아버지의 품에 거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내 영혼이 주님의 은총 속에 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