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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걸 시기한다. 그래서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이웃이 잘 되는 걸 배 아파하고 동료나 동기생이 먼저 출세하면 실망부터 한다. 당연히 자기가 먼저 출세를 하고 잘나가야 하는데 그러한 기득권을 빼앗긴 것을 한없이 가슴 아파한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어느 직장인이 그동안 절약했던 예금을 털어 주식 펀드에 1억 원을 투자했다. 지인의 말을 듣고 틀림없이 대박 난다는 말에 속아 전 재산을 다 투자했는데 그만 주식이 떨어져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주식 이야기를 하며 속상하다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넋두리는 더욱 길게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직장인한테서, 친구들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술 한 잔 사겠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들의 생각에는 아마도 주식이 잘 풀려 한 턱 내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술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그 직장인에게 황당한 이야길 들었다. 한 턱 내기로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기 직장인 동료가 3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는데 자그마치 3분 1로 주가가 곤두박질쳐 2억 원을 손해 보았다는 것이다. 자기는 1억 밖에 손해를 입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는 2억을 손해 봤다며 그래서 기분 좋아 한 턱 내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술을 얻어먹으면서도 마음이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곧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사람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심리란 결 증명하는 셈이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기원전 3백 년 전에 그리스에서 있었다. 집도 없이 통나무 속에서 걸인처럼 생각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이야기다. 그는 가진 것 없음을 즐기는 무욕 주의자였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거만하게도 대왕에게 부탁을 했다.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주시요." 알렉산더 대왕도 디오게네스의 부탁에ㄷ는 왕의 체면도 없이 가리고 있던 햇빛을 비켜주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디오게네스의 모습을 지금도 상상해 볼 만하다. 이런 디오게네스가 저녁 어둠이 찾아오자 언제나처럼 자신의 아들과 함께 통나무 속에서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랫마을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더니 어느 부잣집의 고래 등 같은 집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집이 불타는 모습을 행복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디오기네스가 자신의 아들을 향해 한 마디 내뱉었다. "불이 나서 부잣집이 잿더미가 되고 있구나. 그런데 아들아 우리는 불이 나도 태워 없어질 재산이 없으니 얼마나 행복하니?"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이쯤 되면 천하의 철학자라도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 속인의 기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속 다르고 겉 다른 이중인격자의 괴변을 사람들은 개똥철학이라 부른다.
가난한 자는 부자들이 법을 위반하여 쇠고랑을 차는 모습에 신나고 기업가들은 경쟁사가 망해서 부도나면 쾌재를 부르고 스포츠 선수들은 상대 선수가 기록을 내지 못할 때 좋아한다. 아무리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이고 남을 밟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현실이지만 마치 이 세상 사람들은 남들이 망하고 절망하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처럼 겉으로는 불행한 자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남들의 그 불행을 자신의 행복과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측은하고 가엾기까지 하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고 사람들의 어긋난 심리를 비유해서 살아가는 오죽했으면 이런 속담도 유행하고 있다. '구경 중에 남의 집 불난 구경이 재밌고, 남이 싸우는 장면을 보는 것이 재미중에 상 재미다.' 남들은 지금 비탄과 절망에 빠져 한숨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상황인데 그걸 재미로 바라보는 심리는 어느 별나라의 악질 외계인의 심보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으로 삼으려 할까? 남의 불행과 비극을 재미와 흥밋거리로 삼는 심리의 특성은 대인배의 우주적 심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인배들이 가지는 좁쌀 같은 그릇들의 마음가짐이다. 소인배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남이 잘 되는 걸 보지 못한다. 남이 잘 되는 걸 배 아파하는 마음보다 남을 본받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인품을 제대로 갖춘 모습이 아닐까?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행복감이란 다름 아닌 자기만족감일 것이다. 남들의 눈에 비치는 행복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판단 기준으로 만족을 느낄 때까지 그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사람들은 불철주야 열심히 살아간다. 행복이란 우습게도 남들이 보는 기준과 자신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물론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가 더 많다. 일반적인 시선의 견해로 대기업의 CEO나 돈이 많은 부자, 높은 관직에 있는 공무원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 인기가 높은 연예인 이름난 작가, 로또복권에 일등 당첨된 사람 등등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 사람들은 많이 행복할 것 같고 자신의 처지는 참 지지리 궁상 같은 느낌이 들어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할수록 불행하게 느껴진다. 남들은 모두 잘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의 처지는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남의 자식들은 학교에서 상위권을 달리는데 자기 자식들은 하위 성직 아래서 맴돌고 다른 형제는 30평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대 자신은 아직도 24평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다른 친구는 제네시스 고급 자가용을 몰고 있는데 자신은 낡은 아반떼의 중고차를 몰고 다니고... 등등 모두 남들은 잘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행하다. 반대로 자신의 처지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다른 시선이 있다는 사실은 또 모르고 살아간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잣집 부모가 건강하게 뛰어노는 가난한 집의 자녀들을 보면서 부러위하고 몸이 약한 고급 공무원의 높은 신분이 낮은 신분의 건강한 모습을 부러워하며 가진 것은 없어도 가정은 늘 행복하고 낡은 차를 몰고 다녀도 남에게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남에게 싫은 소리해서 빈축 사 본 적이 없고 친구들이나 남들과 원수져 본적 없는 그렇게 평범하고 화목하고 건강한 자신의 처지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이웃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겉으로 드러난 남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그들과 비교하며 불행하다고 느낀다. 결국 행복과 불행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아무리 호화로운 삶을 살아도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이요.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만족하면 행복이다. 남들의 시선으로 행복함이 행복이 아니며 자기 기준의 만족감에 의해서 행복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들은 많은 재물과 재산을 모아야 반드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잘 써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많은 재물과 재산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좋은 마음 긍정적인 신념이 행복의 기준일 것이다. 재물과 재산이 넉넉한 부자보다 좋은 마음과 좋은 신념을 가진 마음의 부자가 휠씬 낫다. 가장 세상이 즐겁고 마음이 넉넉한 부자는 누구일까? 남이 잘 되는 걸 시샘하는 눈이 아니고 이웃과 남이 잘 되는 걸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잘나가는 이웃에게 축복을 아끼지 않는 그 넓은 마음이 가장 넉넉한 부자이다. 남이 잘 되는 걸 진정으로 기뻐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부모 마음인 것이다. 세상의 어느 부모도 자식이 잘 되는 걸 싫어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모 자신은 농사지으며 힘들게 살아가는데 자식은 출세해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할 것이다.
또 훌륭한 스승도 역시 사랑하는 제자가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목표를 성취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진정한 친구가 있어 다른 친구의 성공을 기뻐하고 자기 일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역시 행복할 것이다. 이런 부모의 마음으로, 스승의 마음으로, 진정한 친구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위인은 언제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일이 되고 남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 아파하고 남의 행복을 자신의 일처럼 즐거워한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 아니요, 남의 행복이 자신의 불행이 아니라,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요, 남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이라는 대인의 마음을 품을 때 진정 인류의 스승으로, 인류의 지도자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자신은 지금 어떤 마음인가? 남의 성공이 즐거우면 대인배일 것이요. 남의 성공이 배 아프면 소인배일 것이다. 옛날의 정이 많던 시절을 회상하면 동네의 어느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이 동네 전체의 비극이었고, 동네 어느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사가 동네 전체의 경사였었다. 우리 민족들은 전통적으로 정이 많기로 유명하고 콩 한쪽도 이웃과 나눠먹는다는 속담이 생길 만큼 서로가 서로를 잘 챙기며 살아왔다. 현대 문명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닥치면서 사람들은 서로 정을 나누던 대신 등 돌리고 살아가며 치열한 생존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주의 사상은 팽배해지고 한 동네 이웃집에 살아도 서로를 잘 모를 만큼 이웃사촌이란 얘기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은 정이 마른 세상이다. 서로 가까운 사이라도 직장의 동료니 친구니 심지어는 피를 나눈 형제간끼리라도 서로 잘 되는 것을 응원하기보다는 남 잘 되는 것이 시샘 나고 분통터지고 겉으로는 축하의 악수를 청하면서 속으로는 배 아파한다. 이 세상은 어느 때보다 정이 그리운 세상이다. 사람은 어느 때 가장 깊은 정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서로 지향하는 바의 이념과 사상이 동일할 때 가능하다.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끼리는 아까운 것이 없다. 이러한 사이를 흔히 전생에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음이 통하고 정이 통하는 사이가 있다면 그러한 사이를 피를 나눈 혈연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서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이 세상은 피를 나눈 형제도 남보다 못하게 살아간다. 각자 제 갈 길이 다르고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고 그래서 명절이나 제삿날에 모처럼 형제들이 모일 때도 정치 이야기로 편을 가르고 스포츠 이야기로 편을 가르다 결국은 옥신각신 말다툼이 일어나고 삐치고 골내고 토라지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혈연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천연이다. 천연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들로 전생의 인연일 수 있고 이상과 꿈을 함께 하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동반자들일 수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는 영원히 함께하는 운명이며 마지막까지 맞잡은 손 놓지 않고 이상을 함께하는 사이라는 점에서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장담한다. 남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형제보다 가깝게 지낸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동료의식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형제도 몰라보는 무정한 세상이라고 탓할 일이 아니라 세상 흘러가는 분위기가 그렇다. 정이 마르다 보니 외로운 세상이다. 너나 없이 고독한 세상이다. 이 고독한 세상에 마음을 나누고 갈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삶은 불행하지 않고 행복할 것이다.
당신은 사회의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가? 당신이 소속된 그 집단 속에는 당신이 추구하는 공동의 무언가의 사상과 이념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공동의 이념과 사상을 목표로 그 집단은 결성되었고 그래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그 집단 속의 동료들이 형제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만나면 반갑고 떨어지기 싫은 사이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마음을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존재다. 그 좋은 인연들은 서로의 불행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며 행복 총량의 법칙 속에서 운명을 나누어 갈 것이다. 사람은 어느 때 가장 행복할까? 남의 행복이 진정으로 반가운 사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동료가 부자 되면 자신이 부자 된 기분처럼 좋고 동료의 가정에 경사가 생기면 자기 집에 경사처럼 좋고 동료가 출세하면 자신이 출세한 기분처럼 좋으며 동료가 건강해지면 자신이 건강해진 기분처럼 좋은 사이들 이러한 사이들이 진정 마음을 함께하고 운명을 함께 하는 혈연보다 진한 행복한 운명의 만남들일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행복한 운명의 만남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없다면 그 운명을 찾아내서 홀로 고독한 삶을 면하고 마지막 그날까지 맞잡은 손 놓지 말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의지하며 살아보라 당신의 행복지수는 백 배 천 배 상승될 것이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 소인배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마음을 나누고 운명을 함께 하는 누군가와 천연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보라. 사람들은 한 집단의 소속감을 가질 때 든든해진다. 소속의 명예가 자신의 명예가 되고 소속의 영광이 자신의 영광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소속의 명예와 승리와 영광을 위해 자존심을 걸고 봉사하고 응원하고 협력하게 된다. 그러한 집단들은 흔히 정치집단이 있고, 종교집단이 있고 지역집단, 이념집단, 문화집단, 학문의 집단 등 다양하다. 어느 집단이라도 아 그 집단의 이념 속에 자신의 마음을 녹이며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목표를 향해 일약 매진하는 건 외로운 인생을 면하고 의미 있는 삶을 연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집단 소속감을 집단의식이라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집단의식에 열광함은 그 집단의식 속에 집단 지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집딘지성은 무엇인가? 개개인의 능력은 한계가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모아져 집단지성을 이루고 집단지성의 힘을 이용해서 그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들은 혼자 획득할 수 없는 명예와 자부심의 ㄱ길을 걷게 된다. 그 집단에는 모두 일등만 존재하지 않고 꼴등도 존재하며, 영재만 존재하지 않고 바보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집단 속의 일등과 꼴찌, 영재와 바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집단이 훌륭하면 그 집단 전체를 훌륭하게 평가하고 집단이 퇴폐적이면 그 집단 전체를 퇴폐적으로 평가한다. 퇴폐적 집단으로 낙인찍히면 그 집단 조직원 전체가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고, 좋은 명성을 얻은 집단은 그 집단 소속인 전체가 좋은 명예를 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유명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누구나 그 유명 대학의 명예를 달고 세상의 인정을 받고 사이비 집단에 소속된 조직원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세상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소속 집단의 명예와 영광이 조직원 개인의 명예와 영광이며, 그 집단의 수치와 오명은 조직원 공동의 불행이 된다. 사람은 어떤 공동체 의식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공동체 의식을 가질 것이요, 어떤 사람은 직장의 공동체 의식을 가질 것이며, 어떤 사람은 단체나 사회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가질 것이다. 더욱 진화된 의식을 소유한 자는 국가, 민족 사회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 의식을 가질 것이다. 큰 그릇의 소유자일수록 큰 집단의 공동체의식을 생각하고 작은 그릇의 소유자일수록 작은 집단의 공동체의식만 생각한다. 아마도 우주적 사고방식과 대인배의 사상을 지니고 인류의 구원과 미래를 위해 큰 뜻을 품은 지도자는 항상 지구인류 전체의 미래와 더 나아가 우주의 혁명을 위해서까지 높은 공동체의식을 가질 것이다. 높은 공동체의식의 소유자일수록 다른 사람의 불행과 아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항상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듯, 인류의 불행을 막기 위해 삶과 정열을 불태우며 온몸으로 던져 희생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큰 그릇으로 살기 위해 세상을 찾아왔다. 작은 그릇으로 살기 위해 세상을 찾아온 영혼은 없을 것이며, 작은 그릇이 되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큰 그릇으로 살기 위한 마음의 조건이 무엇인가? 세상을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인류를 모두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작은 생명체의 목숨 하나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쓰러진 자를 일으켜주고 절망하는 자를 위로하며, 힘들고 어려울 때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는, 그래서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요, 이웃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 다가오는 어버이의 마음 하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감이 대인의 길일 것이다.
마음의 향기香氣를 찾아서 2권 중
도선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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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