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불에 굽는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이다
삼겹살을 먹게 된 계기가 돼지를 일본에 수출하며 일본은 먹지 않는 삼겹살을 우리가 먹게 된 슬픈사연을 전하며 일본에게 탓을 돌린다
시장을 모르는 소리다
생산된 제품에 잉여가 있다고 해서
그게 시장을 만들어 내지 않는 건 상식이다.
적어도 유기물을 입에 넣어줘야 돈이 되는 식품산업 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다
가축의 간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닭의 간이, 매해 수억 마리 분의 잉여로 남지만, 한국에서는 소비되지 않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세계 모든 양돈축산의 나라들이 자국민은 먹지 않는 삼겹살의 소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처치곤란의 삼겹살의 구세주가 한국이라는 사실도
삼겹살 시장발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료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반일종족주의에 물든 한국에서는 어디에도 제대도 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내 경험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1970년대 말
당시엔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외식문화는 없었다. 대부분 고기는 갈비 등 양념육을 팔거나 ‘로스구이 주물럭’ 이라는 이름으로 숯불이나 팬에 굽는 형식이었고. 돼지고기는 계곡물가 캠핑에서, 누가 응가하고 덮어놓은, 넓적한 돌판을 달궈 맛있게 궈먹던 시절이었다
그즈음 동네구멍가게를 대체해 연쇄점이라는 이름으로 체인형 슈퍼들이 생겨났다
그곳에서는 대부분 공산품만 취급했는데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며 경제발전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었다
그때 풀은 것이, 냉동고를 갖춘 슈퍼는 정육점에서만 취급하던 육류를 냉동포장육에 한해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정육점에도 냉동고기는 없었다.
아니 굳이 고기를 냉동시킬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런데 아무도 먹지 않아 항상 남아도는 돼지 뱃살은 일단 냉동시켜 장기간 팔 수 있었기에 도시곳곳에 퍼진 연쇄점 슈퍼를 통해 유효기간 없이 팔 수 있었다.
그런데 전국적인 냉동판매 시설은 어떻게 확보되었을까
당시 쮸쭈바라는 히트상품을 팔던 아이스크림 회사 삼강산업이 경영권분쟁으로 흑자부도가 났는데, 그 회사를 1977년에 인수한 롯데삼강은 자본력과 일본의 기술을 받아 현존하는 싸고 기능좋은 쇼케이스형 냉동고 를 전국에 무상으로 널리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쇄점 주인들은 융통성을 발휘해 그 아이스크림 냉장고 한편에 냉동삼겹살을 슬그머니 놓아 돈 한 푼 안 들이고 냉동 매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냉동삼겹살은 기름도 많고 느끼해 싼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지 않았다. 당시 가정에서는 얼리지 않은 삼겹살을 정육점에서 사서 매운 양념을 해 팬에 굽는 정도라서 굳이 냉동삼겹을 소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삼겹살이 소비되던 곳은, 탄광 공장 현장 등에서 드럼통이나 돌판에 올려 막구운 노가다 음식이었다.
지금도 먼지 먹고 땀흘리고 고생하면 목에 때 뺀다고 삼겹에 소주마시는 문화는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공단엔 정육점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 연쇄점에서 산 냉동삼겹살은 그렇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게 1980년 즈음의 일이다.
그럼 요즘 먹자골목에 두집 걸러 하나있는 삼겹살집은?!?
1984년 망원동에서 하숙하며 홍대다니던 내게 기숙사에 기거하며 이대 다니던 누나가 성대 앞으로 나를 불렀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이대음대 다니던 누나는 소비트렌드에 민감했고, 여대 앞 분식집이 아닌 보통대학의 학교 앞 식당을 동경했다
혜화동 로타리와 성대 사이에 있던 상점가에 있던 한 한식집이었는데 거의 밥집메뉴에 특이하게 삼겹살이 메뉴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돼지갈비집이나 족발집은 있어도 삼겹살을 파는 집은 처음 봤다
고등학교 때 수퍼에서 냉동고기 사다가 고체연료에 코펠에 구워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식당에서 먹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찬과 밥과 소주와 먹으니 맛있게 먹었다
성대 앞에 삼겹살을 팔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학생데모가 한참인 시절 운동권학생들은 노동운동을 위한 위장취업으로 공단을 들락거렸다.
꼭 노동운동이 아니어도 공장을 오간 휴학생이나 복학전후의 학생들은, 힘든 건설일당보다 청계천 성수동 구로동에 소재한 금속공장에 많이 다녔다.
거기서 툭하면 먹던 싸구려 음식이 삼겹살 드럼통 구이였는데 그게 많이 퍼지며 공단근처엔 삼겹살을 메뉴에 넣는 밥집이 하나둘씩 생겨나다가, 결국 위장취업 운동권 학생이 많은 성대 앞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누나가 알던 성균관대의 운동권 <형>은 누나에게 그런 식문화를 전수한 것이다
일본에 돼지가 대량 수출되던 것은 1988년 이후이다.
제품은 소비자의 소비문화가 만들어낸 수요가 있지 않으면 억지로 밀어내 시장을 만들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돼지를 키우는 세계각국이 삼겹살을 소비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버리다시피하여 싸게 수입되는 돼지비계가 이렇게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온 것은 등심 안심만 사가던 일본 탓이 아니라 위장취업 하던 운동권이 원조라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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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택 글>
https://www.facebook.com/100020661250756/posts/649201832445186/
첫댓글 이분은 그당시 대학교 다녔지요?
70년도 중반에 직장생활 하면서
대구 태평로 뒷골목에서 직장동료와
쇠주 한잔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돈이 멊어 싼것 찾아서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구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