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주의 신앙과 값싼 은혜"라는 명언을 남겼던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 그는 현대 신학자 중 가장 뛰어난 한 사람이었다. 히틀러의 나찌를 격렬히 저항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요 학자였던 디트리히 본 훼퍼,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死神 신학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etei deus non daretur)"
그리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Vor Gott ohne Gott)"라는 말이, 많은 보수적 교회와 신학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그가 마치 사신신학자인 것처럼 잘못 평가되었다.
대개 오해란 말을 잘못 들어서 생기는데, 특히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 문장 하나만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생길 수 있다.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etei deus non daretur)",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Vor Gott ohne Gott)"라고 했던 그의 말의 본의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철저히 교회중심적이었고 계시신학적이었으며, 교회 사회학적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본 훼퍼는 "편의주의 신앙과 값싼 은혜"를 경고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편의주의 신앙을 추구할 것이며 값싼 은혜를 취할 것이다.
그의 말은 지금 예언처럼 실현되고 있다.
지금 우리 신앙인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대부분 편의주의와 싸구려 은혜에 빠져 있지 않은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은 싸구려 은혜를!
회개 없는 축복을!
변화 없는 지식적 믿음을!
제자로서의 삶이 빠진 신앙을!
오늘날에도 번영주의과 신비주의의 하나님은 본 훼퍼의 지적처럼 싸구려 하나님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다.
본 훼퍼는 이런 하나님을 "틈을 채우는 자"라고 불렀다.
그는 그 당시 싸구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 몹시 탄식했다.
자신들의 불편한 삶을 개선하고,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틈을 채우는 자"이지 결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옥중에서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은 여기서 틈을 채우는 자가 아니다.
우리 가능성의 한계가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서 신은 인식되어야 한다. 죽음에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죄 속에서가 아니라 행위 속에서 비로소 신은 인식되어야만 한다.'
나아가 본 훼퍼는 이러한 "틈을 채우는 자"로서의 신을 거부한 것이다.
종교의 신, 곧 "틈을 채우는 자"로서의 신은,
우리의 한계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피난처와 도피처로서 다가오는 신이다.
그러나 성숙한 세계의 신은 우리를 고난과 죽음 가운데 내버려 두신다.
마치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삶의 극한 상황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쓰디쓴 상황 속에 내버려두신 것처럼...
본 훼퍼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틈을 채우는 자"로서 신을 받아들이는 자가 아니라, 고난과 죽음의 한계상황 속에서 내버려두시는 신을 믿는 자들은, 자신이 한계상황을 겪을 때, 마치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etei deus non daretur)", 그리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Vor Gott ohne Gott)"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이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etei deus non daretur)", 그리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Vor Gott ohne Gott)"라고 말한 배경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신신학을 주장한 말이 결코 아니다.
그의 말은 옳다. 현대 기독인들은 번영주의와 세속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에 몰입해있다.
바로 본 훼퍼가 지적한 "틈을 채우는 자"를 믿고 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 한계상황이 발생해도, 그 삶이 바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본 훼퍼의 말처럼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etei deus non daretur)", 그리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Vor Gott ohne Gott)" 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틈을 채우는 자"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다는 선언인 것이다.
(합3:16-19 /표준 새번역)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한 백성이 재난 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무화과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첫댓글 본 회퍼 신학에 대한 변론입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고 본회퍼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감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