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어른들의 놀림에 진짜인가 싶어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이 말이,
생긴 것은 경북 순흥면 소수서원(紹修書院) 옆에 있는 청다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순흥은 영남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해 오면서 그 명성을 떨쳤다 북에는 송
악이 있고 남에는 순흥이 있다고 할 정도로 큰 도시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명성을,
떨치던 순흥이 멸망의 길을 걸은 것은 세조 때 이곳으로 유배 온 금성대군이 순흥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고을은 피로 물들고 역모(逆謀)의 땅
으로 지목되면서 수백 년 동안 폐 고을이 되고 말았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묘 (四廟) 를 세운 후 퇴계 이황이 임금께 사액(賜額)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사립대학은 여기에서 시
작된 셈이다.
이처럼,
최초의 사액서원 (賜額書院) 이 생기자 전국의 선비들이 공부와 수양을 위해 이곳
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양반고을 순흥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소수서원 (紹修書院) 에,
공부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은 젊은 양반자제들인데,이들이 그 지
역의 처녀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바로 임신인데,산부인과(産婦人科)가 없
었던 옛날이라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유교사회였던 조선조
사회(朝鮮朝社會)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당사자 집안에서는 비밀리에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착안해 낸 것이 바로 갓 태어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한 밤중에 소수서원紹修書院
옆에 있는 청다리 밑에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그 당시 선비
라면 최고의 신분이고 똑똑한 양반(兩班) 자제들이기 때문에 그 핏줄을 데려가 기
르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국으로 입양 (入養) 된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런 소문
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지금도 그 말이 남아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상당수의 아이
가 입양(入養) 되었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계수(竹溪水)는 청다리 아래로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
다.소수서원 (紹修書院) 북쪽 죽계수 (竹溪水) 위에 제월교(霽月橋)라는 해묵은
돌비석(-碑石)의 속명이 바로 청다리다 는 말씀~~~푸하하하
~단 결~~!!
첫댓글 나도어릴적 그소리를 듣곤 했답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늘 허접스런 졸필에 항구여일(恒久如一)로
분에 넘치는 댓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이 넘쳐나는 날이 되시기를요
순흥 청다리가 현대식으로 놓여 있고
좌측 이끼 낀 돌비석(-碑石)에 제월교(霽月橋)
라는 글이 새겨져 있지요 다 어릴 적에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단 말 많이 들었습니다.
양반(兩班)들이 기생(妓生)들과의 사랑으로
생긴 아이도 청다리와 무관치 않습니다.
~단결~!!
그래요 우리모두 유년시절에 그런소릴 한두번은
들은 기억이 납니다그런 뜻이 있는 말이었군요.
우리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애들
놀려대는 말로 너는 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사실처럼 말하여 애들 울리던
때가 있었지요.
다리밑이라면 거지들이 살아 거지들이
버린 아이를 주워왔다고 답답해했는데
그런 내막의 이야기가 있어 대단히 재미가 있습니다
그때는 애들이 너무 순진하여 막 울었지요.
마초님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래요 유년시절에 한두번씩 들은 기억이 나지요
그것도 추억이라고 아스라히 떠 오르는 군여
흔적주식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너 다리밑에서 주워왔다.
놀리는 어른 들의 그런 말 듣고 울어버린 애들이 많았지요.
소수서원 청다리가
시초라니 처음 듣기에 재미있습니다.^^
멋쟁이 별꽃님 예쁜 마중으로 오늘도 오셔서
뜻이 듬뿍 담긴 짧은 내공의 멘트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말을 파이팅 하시고요
마지막 문구 단결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초님은 토끼갑장 같은데
토끼방에도 자주 들려주시고
좋은 글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아항 궁금하셨군요 말씀드리리다 다름이 아니라
저의 졸작을 끝까지 필독함에 있어 여기 선후배(先後輩)
제위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禮) 를 갖추어 인사(人事)를
드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ㅎ
그리고 저의 생년월일에 대한 답변입니다
경인년(庚寅年) 1950년 5월 16일 이고요 범띠 분명합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오래전에 장시간 통화한 기억이 있지요 생각이
나시려나 거서리 친구하고 기우 님하고 저하고
기억이 나실는지요
그럼 건 필하시고요
"다리밑"은 '사람다리' 아닌감유 ?? 푸하하하
선배님의 해학(諧謔)적인 댓글 항상 재미가 솔솔 하여 읽다
보면 빠져들고 맙니다. 모든 음식에
조미료 역할을 하시는 선배님
고맙습니다
늘 강 건하시고요
~단 결~!
아! 그렇게 해서 유래된 말이란걸 형님을 통해서 알게되네요
저도 많이 들었던 ㅎㅎ
아니지라 오래존부터 알고있었는 눈치인데 ~~ 푸하하하
고마우이 건 강하시고
저는 영천 뚝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 막내인 제게 놀리곤 하셨지요 부모님께서 ~~
유래가 소수서원 청다리 였디니 ~
알고 갑니다
그래요 영천장에 가면 그런 소리가
허다하게 들리지요 ㅎㅎ
때에 따라서는 귀담아 들을 필요도
있었는데 말이죠 ㅎㅎ
관심 주심에 고맙습니다
어머, 이런 사연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울 막내동생은 친엄마 찾는다고
동네 큰다리에 가서 배회 하다 늦게 집에 와서
어디갔었냐는 식구들 걱정 말에 대답하여
모두 파안대소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쁜 걸음으로 오셨군요
반갑게도요 ㅎㅎ
사연(事緣)은 처음 알았지만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누구나 많이
들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치요 ㅎㅎ
방문에 감사(感謝)드리며 주말을
고고 렛츠고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