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여배우 주디 갈런드가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로 출연했을 때 신었던 루비 '반짝이'(sequined) 슬리퍼는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소품일 것이다. 지금도 도로시가 빨간색 슬리퍼를 신고서 "집처럼 좋은 곳은 없어"라고 외치는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의 슬리퍼를 훔친 일당 중 한 명이었으며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던 미네소타 남성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고 캔자스 시티의 ABC 계열 KMBC TV가 다음날 전했다. 앞서 검찰은 이 주의 크리스탈에 살던 제리 할 살리터먼(77)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법원에 전달했고, 이에 판사는 공소를 치하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는 폐 질환과 다른 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진 상황에 지난 1월 유죄를 인정하려 했으나 입원하는 바람에 심리가 무기한 연기됐다.
문제의 절도 사건은 2005년 갈런드의 고향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주디 갈런드 뮤지엄에서 일어났다. 13년 가까이 슬리퍼 한 켤레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가 연방수사국(FBI)이 2018년에 회수했다. 살리터먼이 몇 년을 살았던 집의 뒷마당에 묻어 놓은 것을 찾아냈다. 헤리티지 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영화 소품 경매를 통해 3250만 달러(약 472억원)에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구매자의 손에 넘어갔다. 갈런드가 이 영화에 신고 나왔던 구두는 여러 켤레였는데 지금은 이것 외에 세 켤레만 남아 있다.
그랜드 래피즈에 사는 테리 존 마틴(78)이 망치로 뮤지엄 문과 진열장의 유리를 깨부수고 훔쳤다. 그의 변호인에 따르면, 일당과 연결된 나이 든 동료가 진짜 보석들이 박혀 있는 것이라 100만 달러는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자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슬리퍼에 박힌 루비가 가짜란 것을 알고서 살리터먼에게 숨기라고 당부하고 그 뒤 연락도 주고 받지 않았다.
마틴은 2023년 유죄를 인정했는데 그 역시 건강 악화를 이유로 지난해 1월에 구금 일수를 이미 채웠다는 이유로 석방됐고, 보호관찰 1년에다 2만 3000 달러를 주디 갈런드 뮤지엄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연방 검사 매튜 그린리는 17일 법원에 한 쪽 짜리 입장문을 전달해 살리터먼의 사망을 통보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패트릭 쉴츠 지방법원 판사는 그의 뜻을 수용해 공소 취하 결정을 내렸다. 변호인 존 브링크도 의뢰인의 죽음을 확인했지만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노스 다코타주 파고 검찰청 대변인은 추가 정보를 달라는 전화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법원 문서들에 따르면, 살리터먼은 1월 초 "걷는 능력도 상실하고 패혈증"으로 입원했는데 패혈증은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감염병이다. 그는 사흘 뒤 병원 병실처럼 보이는 곳에서 동영상으로 법정과 연결해 인정 신문을 받았다. 브링크 변호사는 지난달 말 법원에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했는데 의뢰인이 악화돼 호스피스 시설에서도 퇴원했다고 알렸다. 의료진은 첨부한 소견서를 통해 산소 보충이 요구되는 만성 호흡기 질환과 파킨슨병 진단도 내렸다.
살리터먼은 정확히 일 년 전 법원에 처음 출두했을 때도 휠체어에 앉아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그는 중요 미술품 절도에다 증언을 오염시키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슬리퍼 절도 사건에 대해 알게 된 한 여성에게 입을 다물지 않으면 섹스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