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이라는 홍콩영화를 기억하는가. 그 옛날 처녀귀신 왕조현이 그 청초한 눈망울과 앵두 같은 입술, 흩날리는 머리카락 및 옷자락으로 극중 장국영을 비롯하여 전국의 뭇 남정네들 마음까지 흔들었던 전설의 영화. [음란서생]을 두고 웬 [천녀유혼]인가 하겠지만, 사회와 가문에서의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난잡한 문학, 금기에 빠져드는 선비 윤서(한석규)와 ‘안 되는 줄 알면서’ 귀신과 사랑에 빠지는 금기를 범한 장국영은 분명 만나는 점이 있다.
어리숙한 총각들 홀려 ‘먹는’ 것이 업일 만큼 빼어난 미모에다, 사랑하는 님에게는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까지 갖춘 왕조현 귀신을 볼 때마다 느낀 점은, 사실 귀신이라는 것만 빼면, 집도 절도 없고 유생이라곤 해도 신통한 구석이라곤 없는-그저 귀신한테 냉큼 반해 순정을 바치는 무모함 뿐인- 장국영에겐 인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이자 ‘대박’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가부장으로서나 지식인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오히려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출세와 입신양명을 이루지 못한 채 실패한 지식인들. 꿈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그들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존재인 귀신이나 여우 등 권능의 여성들에게서 구원 받는 이런 플롯은 15, 6세기 무렵 점차 상업 중심의 경쟁사회로 이전해가던 청나라 때에 열패감을 느끼던 남성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재미난 부분은 이 [천녀유혼]이라는 영화의 원작인 중국 청나라 이야기 모음집 [요재지이]를 쓴 요재 포송령 역시, 실제로 나름의 글 재주는 있다고 자부했건만 과거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는 바람에 청운의 꿈을 거두고 고향 집에서 귀신 이야기나 모아 책으로 엮어가며 소일하던, ‘한량’이었다는 점.(오늘날로 치면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포송령 자신은 끝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대는 잘 타고나야…)
한편, 영화 [반칙왕]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 역시, 청 대의 포송령처럼 우리사회 속에서 무력한 남자의 꿈꾸기를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그의 또다른 작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경우도 입신양명의 의미가 퇴색된 시대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붙들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극중 배용준을 이 ‘무력한’ 층에 묶어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음란서생]을 통해 뒤늦게 데뷔한 감독은 세상 권력을 향한 무한 경쟁에서 도태된 남자가 일탈 속에서 느끼는 쾌감을 노련한 연기와 위트 있는 대사, 아름다운 화면으로 버무리며 가능성을 보여준다.
꿈과 열정을 위해 사회 관습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무력한 남자. 물론 사헌부 장령이라는 위치에 올랐지만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쟁 속에 목숨을 던지기에는 완력도 담력도 부족한 윤서(한석규) 역시, 그 옛날 등용에 실패하고 스스로를 가여워 하다 귀신과의 로맨스물에 눈뜬 ‘한량’ 포송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연히 접한 ‘빨간 책’의 세계에도 분명 최고를 향하는 향상심은 살아있고, 그 경쟁에 적합한 재능까지 갖추었으니, 그가 시종일관 자신을 억압하던 세계를 떠나 자신이 발견하고 구축한 신세계의 진맛에 빠져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한량’들의 좌충우돌을 중점적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후반부 들어 엉뚱하게 새로운 치명적 사랑의 작대기를 제시하는 등 관객들에게 자칫 당황스러울 수 있는 순간도 그럭저럭 수용할 만하다. 특히, 로리타와 팜므파탈을 오가던 정빈(김민정)의 캐릭터가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하나로 봉합하는 와중에 어처구니 없이 스크린에서 증발하고 난 이후, 한량들의 새로운 동아리가 형성되는 에필로그를 보여주는 종반은 이 영화가 본래 갖고 있던 비전을 짐작케 한다.
[요재지이]가 마치 윤서의 ‘흑곡비사’처럼 현실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섹스와 물질에 대한 환상으로 위무해주었듯, [음란서생] 역시 그럴듯한 세계관이나 진지한 사회의식, 꽉 짜여진 기승전결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보다는 시대에 맞는 감각과 순간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종류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