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226 오후에 무등산

[범고개]

이른 아침을 먹은 탓에 겨우 11시가 넘어가는데 배가 고프다.

증심사종점에 가 점심을 먹고 산에 오르자고 배낭을 챙겨 나선다.

쌓인 눈을 밟으며 정류장으로 가는데 저수지 쪽이다.

열평집밥에 들어가 김치찌개에 소주를 주문한다.

소주 한병 다 마시기는 어려워 절반은 매낭 옆의 병에 보탠다.

1번을 타고 가는데 졸음이 쏟아진다.

남광주 정류장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성공해 환승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1시가 되어간다.

무등산 돌표지석은 하얀 눈을 이고 녹아내리는 눈에 젖어 있다.

대지식당 얖 큰 목련나무는 큰 기둥엔 눈이 보이고 기대했던 꼬투리는 다 녹았다.

게으른 놈이 멋진 모습을 보려하니 그도 도둑심보다.

많은 이들이 아이젠을 손에 들고 내려오고 있다.

증심교 앞 의자로 들어가 아이젠을 차고 다운점퍼를 벗고 스틱을 편다.

남향인 무등에서 바람 덜 받아 눈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토끼등 동화사터일 것이다.

이 길을 가본지가 꽤 되었다.

토끼등 오르는 길은 항상 가파르다.

며칠 산길을 제대로 걷지 못한 탓인지 신발이 무겁다.

그래도 아이젠을 해 미끄럽지 않다.

소나무는 등짝줄기에 눈을 이고 윗쪽 푸른 잎들은 눈에 덮여 힘들어 한다.

대나무도 기울어져 있다.

잎을 떨구지 않고 절개를? 지키느라 고생이다.

모든 잎을 내려놓고 온몸으로 눈을 맞으며 견뎌내고 있는 참나무며 느티나무들이 더 멋지다.

토끼등 쉼터엔 한남자가 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저쪽에 두 여자가 큰 소리로 의기양양하다.

눈 덮힌 숲속에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상이 좁은 것처럼 용감하다.

난 쉬지 않고 바로 동화사터로 오른다.

한시간이 넘어 힘이 떨어진다. 다리가 무겁다.

겨우 줄을 넘어 눈 덮힌 너덜 쪽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의 발자국 사이에서 배낭을 벗고 술을 입대고 마신다.

몇이 내려오고 한 사나이가 올라간다.

오기가 나 나도 따라 올라간다

동화사터 아래는 눈 터널이다.

예전 국립공원 되기 전에 눈 쏟아진 날 만난 백설의 궁전은 아니지만

눈 내린지 며칠 후인데도 눈덩이가 나무에 수북하다.

아래로 흘러내린 눈이 서로를 붙잡고 매달려 있다.

눈이 하늘을 덮은 동화사터를 지나 정상쪽 덩치가 보이는 나의 조망처에 선다.

멁은 햇살에 많이 녹았다. 서석대가 걱정이다.

중봉가는 길에서도 자주 걸음을 멈추고 눈을 본다.

중봉의 바람은 견딜만하다.

두 남자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바람 약한 복원지 길을 지나 목교에 가니 젊은이들의 함성이 퍼진다.

런닝 차림에 삽을 들고 뛰어 내려오는 병사도 잇고, 트럭이 모래를 씻고

화장실 부근에 멈춘다.

새로 생긴 안전쉼터엔 라면 김을 뿜어 올리며 먹는 이도 보인다.

서석대 오르는 돌계단은 제 모양이 보이지 않고 거의 경사다.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 힘을내어냉 오른다.

여기도 하얀 은세계다.

사진을 찍고 전망대에 이르니 영상촬영팀이 해설을 넣고 잇어 조금 기다려 준다.

서석대 왼쪽 큰 바위는 눈인지 눈꽃인지 하얗다.

사진을 몇번 찍고 돌아나와 서석대로 오른다. 

눈터널을 지나 정상에 이르니 바닥에 기타가 놓여있고

두 남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연주 녹화한 것을 보내주겠다고 하고 있다.

난 연주를 보지 못했다.

셀카를 찍고 남은 소주 마실곳을 찾는다.

입석대에서 올라오는 곳에 한 사나이가 라면을 먹고 있는데

다른 곳은 눈에 덮여 온통 둥글다.

헤치고 자릴 잡을 자신이 없어 바로 내려간다.

입석대전망대도 지나치고 바로 장불재로 가니 한사나이가 김밥을 꺼내고 있다.

비켜 앉아 소주를 마시다 그에게 한잔 따뤄주니 연양갱 하날 준다.

항상 눈이 많았던 장불재 아래 나무들은 눈이 없다.

용추삼거리 부근에서 너덜의 눈을 보고 부지런히 내려온다.

아이젠을 찬 발목이 힘들다.

사람없는 중머리재를 지나 당산나무로 내려오는데 소나무 기둥에 앉은 눈이 좋아

몇번 멈춘다.

새인봉 뒤로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당산나무를 보고 오방수련원도 본다.

양림동 오방 기념관 가 본지도 오래 되었다.

증심사 비탈길 옆의 비들은 지붕이 온통 하얗게 두껍다.

이름을 남긴 사람마다 하얀 눈 속에 평등하다?

정류장에 오니 사람이 없다. 한 젊은 여성이 술에 취한건지 아픈 건지

찻집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에 화를 낸다.

군고구마를 사러간다고 그 여자가 '할어버지 지켜???' 뭐라 말하고 길 건너로 간다.

장사들도 다 떠났는데 잡으려다가 그만 둔다.

학동삼거리에서 환승하여 마재우체국에 내랴 바보에게 전화하니 다 왔다고 한다.

주차를 마친 그와 처음 간 오리탕집에서 소주 두병을 마시고 남은 건 싸 온다.

[도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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