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근동에 전해오는 전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마을은 구전 되 오는 설화가 많지만 그중에서 처서까지 남은 더위를 식혀주는 실화 한 토막을 기술코져 한다. 이제4일만 지나면 더위절기는 말끔히 다지나가는 처서절후인데 다행히 이제까지 날씨가 우순풍조하여 오곡백과가 풍성히 영글어가고 있으니 천행이다. 윷놀이에서 상대편 말이 자기편 말을 뛰어 넘을 때 상대편 말을 트집 잡아 "양동 처자[미혼아가씨]가?"하는 말을 들은즉이 있을 것이다. 얼핏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데, 양동마을의 지형적 특성을 빗댄 재미있는 표현이다. 전편에 기술 했드시 양동은 설창산을 주봉으로 세 줄기 구릉을 형성하여 높은 곳에 집을 지어야 좋다는 풍수설에 따라 언덕배기에 집을 짓다보니 밑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에 처자? 들의 엉덩이가 보일듯말 듯한데서 나온 절묘한 비유이다. 경주.포항 인근에 사는 사람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을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영남 유맥의 창시자 김광필.정여창.조광조.이황등과 조선 5현의 한사람으로 문묘배향에 모셔진 위대한 성리학자임엔 틀림없다. 이렇게 선생은 보통인들이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인물이며 그가 이룩한 학문적 성과와 향기는 넓고 깊기만 하다. 회재선생의 산실이 서백당인데 하루에 참을 인자를 백번씩 써라는 교훈이다. 이 마을에는 월성손씨. 여강이씨의 위세는 산천초목을 떨게 했는데, 이와중에도 골수 양반을 욕보인 사례를 서술할려 한다. 어느 음동설한 양동마을의 양반노인이 개울물을 만났는데, 건너기 위해서 버선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야 하는데 , 양반 체면이 말이 아니라 좌우를 두리번 방도를 찾고 있을때 자기보다 지체가 낮아 보이는 젊은이가 개울을 건너기 위해 오고 있기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양반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건내 주었으면 하는 암시를 던지니, 물가에 다다른 젊은이는 버선을 벗고 바지를 걷어 부치고 개울로 들어가려다 갓 쓴 양반의 사정을 눈치 채고 들이댔다. 등에 엎힌 양반은 고맙기도 하고해서"나는 양동에 사는 이가로되 말을 놓내"하고 말문을 여니 업혀서 물을 건너는 주제에 양반 상민 따지는 통에 화가 난 젊은이"나도 놓겠내"하고 물위에 놓아버렸다. 한순간 경박한 양반의 실수로 개울한복판에서 양반의 체통이 박살나는 순간이 였다. 물론 양동 여강 이씨들의 위세는 이 언적같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라는 자부심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현제 서백당은 500년전 손씨 19대조 손소가 지었는데, 흥미있는 전설 이 있다. 즉 셋 혈식군자가 태어난다는 것인데 혈식군자란 날 음식을 먹는 군자란 뜻으로 서원 행사에는 날음식을 올리니 곧 서원에 배향될 큰 인물을 말한다. 그로부터 6년 후 동강서원에 배향된 손중돈이 나오고, 28년 후 옥산서원에 배향된 이 언적이 서백당에서 태어났다. 현재까지 두 혈식 군자가 태어났는데 한분은 손씨 문중에서 한분은 외손 이씨에서 났다. 여강 이씨문중에 출가한 딸이 친정에 와서 난 아이이다. 그러니 한분을 뺐겼으니 아쉬움으로 남을터인즉 그 후 출가한 딸이 해산하려오면 허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손씨 문중에서 한 사람을 고대하고 있는데 과연 이 예언이 맞아들어 갈것인가?21세기 첨단 산업사회에서 아무리 큰 인물인들 누가 서원에 배향 할것인가? 아이를 놓는 산실[서백당]이 따로 있지만[나의 고향은 산부인과]라는 어린이들의 풍자가 말하듯 시설좋고 안전한 산부인과 마다하고 혈식군자 사로잡혀 해산 하려올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한명남은 혈식군자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 해법은 여기에 비유하면 답이 나온다. [큰바위 얼굴]에 나오는 주인공 어니스트가 조상이 전해준 예언데로 자신을 절차탁마.와신상담,절치부심하여 수신하면 결국 큰바위 얼굴이 되다 싶이 후손들이 훌륭한 가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학문을 연마하고 후손을 가르친다면 세번째 혈식군자는 바로 나자신이라는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이 바로 명쾌한 해법이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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