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흐름을 파악하라
························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이라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사망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소현세자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아버지 인조와 함께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8년 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비운의 왕세자이다. 이 소현세자가 청나라 볼모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지 2달 만에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그의 시신은 보통사람이 사망했을 때와 다른 특징을 보였다. 소현세자의 시신은 급사에 의한 죽음으로 보였지만 그의 공식 사망원인은 학질로 인하여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의 의술을 인정받았던 조선의 어의들이 흔한 질병이었던 학질을 치료하지 못했던 것일까? 약물중독의 의혹이 점점 커지는 소현세자의 죽음이었다. 궁궐 내에서, 그것도 임금 다음으로 귀한 존재였던 세자를 독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당시, 소현세자가 독살 당해 죽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궁궐 내에서 분분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인조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았고, 담당 어의에게 그 어떤 책임도 추궁하지 않았다. 진상을 캐고 있던 세자빈 강씨는 죽음을 당하고, 그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조선시대, 한 야사집(野史集)에서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두고 서양 신문물을 상당히 받아들인 청나라의 태도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이 야사에는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을 거라는 심증이 담겨있다. 또한 그런 심증과 그의 죽음이 청나라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소현세자는 볼모로 잡혀 있었던 중국 심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화주의 모화사상 숭명반청을 고수하는 인조와 집권 사대부, 그리고 심양에서 새로운 현실에 눈을 뜨고 돌아온 소현세자. 보수와 개혁의 갈래에서 그들은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소현세자는 성리학 중심의 조선사회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색다른 꿈을 가지고 귀국한다. 그리고 조선 사회는 그를 사악한 것에 빠진 반역자로 몰아세운다.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의명분도 중요하나 실용적인 학문과 과학기술의 도입을 시도했던 소현세자. 그가 새롭게 바꾸려 했던 노력은 박탈되었고 의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소현세자와 같이 청나라에 억류되어 있다가 같이 귀환한 백강 이경여 선생은 소현세자가 돌아간 후 인조가 추진한 소현세자빈 강씨을 사사하려는 시도에 생명을 건 반대를 하다가 진도로의 귀양살이를 거쳐 북쪽 끝 삼수에 3년간 위리안치 되었다. 그러나 효종이 등극하고 선생은 풀려나 영의정에 올라 북벌 계획과 민생의 안정을 추진하게 된다. 허나 머지않아 그를 두렵게 생각한 청나라가 압력을 넣어 다시 영의정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를 돌이켜보면 매우 애석한 일이었지만, 백강 이경여 선생의 앞날을 내다보는 탁견과 크고 유연한 사고를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선조이신 세종대왕을 닮은 점이 있다고 하겠다. 피는 속일 수 없으니 이후 백강 이경여 선생의 손자이신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의 아들 일암 이기지 선생이 사신으로 청나라에 가서 거기 나와 있던 서양의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천주교 서적들과 천문 역산 지리 등 서구의 앞선 문물들을 이 땅에 들여온 것이 모두 같은 맥락의 열린 사고, 앞을 내 다보는 탁견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머지않아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의 아들 일암 이기지 선생이 신임사화에 희생됨으로 사실상 우리나라에 실학사조의 도입이 백년정도 늦어지고 말았다. 사사롭고 불의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올곧은 인물들을 모함하여 제거한 것이 나라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여기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과학, 문명, 정보통신등의 발달로 세계가 점점 더 좁아져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열린 사고로 먼저 세계의 흐름을 읽고 이에 대처하며 선도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공산·전체주의 사상이 뒤늦게 꽃을 피워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독일 대만 등 세계주요국들이 선거에서 전산시스템의 이용이 부정선거의 소지가 커서 이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대표부터 나서서 전산조작의 위험이 매우 심각한 사전투표를 독려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차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부정선거는 망국의 뿌리이다.
이런 타락한 지도자와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없다. 만시지탄이나 이제는 정신문화를 반드시 개혁을 해야 한다. 자유·정의·진리의 자유민주주의 건국정신, 정직·성실·검소의 청교도 정신, 박애·충효인경(忠孝仁敬)·과학의 세종대왕 정신을 바탕으로 전 국민의 정신문화를 새롭고 강력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
국민정신이 타락하면 그 나라는 머지않아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이에 백강 이경여 선생은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임금에게 상차(上箚) 하기를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 천명(天命)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이소서.” 하였다.
2024. 7.19.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