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한 겹1]
ㅡ망중한忙中閑ㅡ
무게에 한계를 느낀 구름이 아침 하늘을 덮었다.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열차를 타기 위해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주말 역앞 광장은 대조적인 모습이다.
열차를 타기 위해 바삐 서두르는 사람들, 광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노동자, 계단 바닥에 누워 늦잠에 든 노숙인들.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종교 찬양 음악 소리, 낯선 이국인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들.
천태만상을 한눈에 보는 아침 소식이다.
역에서 마주 보이는 고층 건물들, 한동안 못보아 낮설다. 오랜만에 타는 열차여서 마음이 설렌다. 개찰구와 승차장이 몇번 홈인지 어리둥절했다.
옛 시절의 서울역, 지금은 '문화역서울284' 간판이 걸렸다. 입구는 가림막이로 가려져 있다.
바로 옆에 크게 지어진 새 역사驛舍와 롯데 아울렛과 상가들이 즐비하다. 격세지감이다.
ㅡ열차 여행ㅡ
친구 영오가 영덕 후포리厚浦里에 별장을 짓고 있다. 아직도 직장에 다니는 내원이가 같이 다녀왔으면 해서 긍식이와 함께 KTX를 타게 되었다.
대합실엔 열차 시간을 기다리는 승객들로 붐빈다. 냉방이 덜되어 후덥지근하다.
KTXㅡ산천459(서울ㅡ포항.10시45분출발)3호차 특실에 3명이 몸을 실었다. 속도, 승차감이 예전에 타던 급행 열차와 사뭇 다르다. 햇빛이 없어 시야가 좋다.
하늘이 조금씩 열리는 지역도 있다. 차창으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와 주택들, 숲속의 정원이다.
동대구를 지날즈음부터 빗방울이 비친다.
고속으로 달린 열차는 오후 1시 지나서 종착지인 포항역에 내렸다.
마중 나온 영오와 역전 부근 '할매 곰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ㅡ해변길ㅡ
후포리厚浦里를 향해 나섰다. 장사長沙에서 강구항으로 가는 해변길은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시야가 많이 흐리다, 좀체로 못보던 현상이다.
창포말등대 위로 스치는 운무가 점점 심해 조형물이 없는 듯하다. 커피잔에 한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펼쳐지는 안개 바다가 멋스럽다.
축산항!
산과 바다를 온통 하얗게 덮어 찻길을 구분 못한다. 죽도산유원지 둘레길, 기암괴석이 얼기설기 이어진 바닷길의 세찬 비바람, 우산으로 막기는 무리다. 호우 주의보와 태풍(쁘라삐룬) 소식이 있어 발길을 돌렸다.
'블루로드'가 '화이트로드'로 바뀐 영해 해변길, 짙은 물안개가 피어 올라 갈매기 소리만 간혹 들릴 뿐, 바다의 모습은 안보인다.
고래불 야영장 소나무숲 캠핑장에 도착할 즈음 안개가 사라졌다.
고래불 봉송정奉松亭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십리 소나무숲길의 끝이 가믈가믈하다. 해풍에 잘 견딘 소나무가 대견스럽다.
ㅡ관동1경ㅡ
칠보산 휴게소, 예전에 다니면서 동네 할머니들의 손맛인 뷔폐를 자주 먹었다. 아직도 솜씨를 보여주는지, 그 할머니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시간이 촉박해 그냥 지나쳤다.
구산마을옆 관동1경 월송정越松亭, 월나라에서 왔다는 소나무들. 하늘을 메운 천년 솔숲의 바람소리, 웅웅, 윙윙하며 고향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다.
솔밭 옆에 있는 하얀 벽에 검은 기와 '노바찻집'을 박물관인 듯 착각했다.
미니어처 독도 조형물을 구산1리 해변 길목에서 보았다. 갈매기는 한가롭게 바람을 가로 지른다. 독도에 온 느낌이다.
봉산1리로 들어섰다. 울진공항 옆길에 우거진 옹골진 소나무들, 색깔이 탐난다. 기성망양 해수욕장 소나무들도 유난히 검푸르다. 기골이 장대하다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망양정望洋亭옛터, 오르기 쉽게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눈 아래로 펼쳐진 바다를 보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의미같다. 저녁을 먹기 위해 망양휴게소에서 다시 후포리로 차를 돌렸다.
ㅡ선주집에서 만찬ㅡ
고깃배를 직접 운영하는 선주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예약이 되어 있다.
동네 복판에 있는 '윤성호 선주집'이다. 미로처럼 생긴 골목에서 집을 못찾아 영오가 잠시 당황했다.
모녀는 마루에 밥상을 차려 놓고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다.
SBS에서 방영하는 '백년 손님' 남서방 처가집 동네다. 집집마다 담벼락에 그림을 정성스레 그려놓았다. 남서방 장모님은 자신의 캐릭터와 사진을 찍으라고 실물 크기로 대문 앞에 그려 놓았다. 옆에 앉아서 한컷 남겼다.
밤바다 파도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릴 뿐.낮에 드리운 안개가 덜 걷힌 초저녁. 보름달을 못보고 돌아서는 아쉬움. '등기산 스카이워크 공원' 산 정상에서 뱃길을 안내하는 등댓불, 밤안개 속에 묻혀서도 게으름을 피지 않는다.
야경!
밤풍경으로 행복한 눈요기가 되었다. 칠흑같은 방파제 밤길을 한참 걸었다.
후포리 마을 뒷산 정상에 자리잡은 영오의 명당 별장!
임시 숙소인 컨테이너, 이불을 덮고 누웠다.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 풀벌레소리, 상큼한 공기를 가르고 창문으로 밀고 들어온다. 멋진 장단이다.
2018.06.30.
첫댓글 정기자님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망양정 월송정 불영사 석류굴 후포항 날만 잘 받았으면
좋으련만 빗속의남자들 우정 대단하십니다
우와~
후포리의 별장이 그림처럼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