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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불교에서 보는 ‘현상계’는 ‘① 오감 ②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은하계, 은하계 너머 무슨 우주, 무슨 우주를 다 따져 보아도, 그것들은 결국 오감 또는 의식에 의해 파악되는 세계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바라보는 현상계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우주 전체’ 또는 ‘현상계’를 말하면 그것은 ‘오감’과 ‘의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일체의 현상계는 ‘마음의 현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일체는 오직 마음 이 만든 것이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객관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치 ‘마음이라는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을 통해서 세상을 실감나게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가 인지하는 일체의 현상계는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는 뜻이죠. (27, 28쪽)
그래서 불교를 제대로 본다면, “윤회를 떠나라!” “윤회에서 벗어나지 말라!”라는 치우친 견해가 아닌, “윤회를 초월해 존재하는 참 마음을 깨닫되, 윤회계 내에서 생각·감정·오감을 바르게 활용하여 중생을 구제하라!”라는 견해를 지니게 됩니다. 윤회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그렇다고 윤회계의 살림살이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 그냥 집착하지 말고 자유자재로 머물면서 항상 중생구제에 힘쓰라는 것이죠. (46, 47쪽)
오감에, 감정에,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지 마시고 오직 “몰라!”라고 선언하세요. 그것들에 집착한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현상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일어나든 사라지든 관심을 가지지 마시고,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리는 자리’, 생각 이전의 맑은 거울 같은 자리, 이 자리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그 자리의 실체를 분명히 확인하세요. 이 자리가 바로 불멸하는 ‘참 마음’이고, 이 마음자리에 새겨진 ‘6바라밀의 본성’이 바로 ‘참 진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59, 60쪽)
경經(『능엄경』)에 이르기를 “진리(理)는 단박에 깨달아 알 수 있으니 깨닫자마자 진리를 가리는 장애가 사라지나, 그릇된 습관(事)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으니 단계에 따라 차례대로 제거된다.”라고 하였다. (135쪽)
이것이 ‘돈오頓悟’입니다. 우리가 시간·공간, 생각·감정·오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즉시 깨닫게 되거든요. “아! 나는 나일 뿐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절대적 자아’가 되는 것입니다. 도달하는 것도 단박이지만, 도달하자마자 ‘제한적 자아’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단박에 박살나서 다시는 고개를 내밀지 못하게 됩니다. (176쪽)
https://www.youtube.com/watch?v=r8tXZiUySKg
① 참나는 본래 욕심이 없으니 남에게 널리 베풀 수 있어야 하며(보시바라밀) ② 참나는 본래 청정하니 늘 유혹을 이겨 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계율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지계바라 밀) ③ 참나는 본래 조화로우니 남의 입장이나 진리를 깨끗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인욕바라밀) ④ 참나는 본래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니 늘 정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하고(정진바라밀) ⑤ 참나는 본래 고요하니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선정바라밀) ⑥ 참나는 본래 자명하여 의심이 없으니 매사에 옳고 그름이 자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반야바라밀). (189, 190쪽)
우리가 모든 이원성과 계급을 초월한 절대계의 영역인 ‘참나’를 깨닫는 것은 단박에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세생생 쌓아온 업장을 소멸하여 ‘참나의 지혜· 자비’를 완벽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과법칙’에 근거한 ‘올바른 닦음’이 필요합니다. (271쪽)
일체의 악惡을 행하지 말며, 일체의 선善을 받들어 행하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정화해라. 오직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법구경法句經』) (278쪽)
‘부처’라는 것이 별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망령된 생각’을 하지 않고, ‘비양심적인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고 비양심적인 언행을 하고 싶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참나 자리’를 잊지 않으면서 그러한 생각이나 언행을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294쪽)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참나 자리를 투철히 안 사람은, ① ‘선정’을 닦아 마음을 고요히 하는 중에 ‘참나의 자명함’이 드러나 사물의 실상을 투철히 꿰뚫어 아는 지혜가 늘고 ② ‘지혜’를 닦는 중에 사물의 실상을 자명하게 이해하게 되면 ‘참나의 고요함’이 드러나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선정·지혜를 고르게 챙김’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참나 자리는 본래 고요하고 본래 또랑또랑하니, 참나 자리만 투철히 알면 ‘정혜쌍수定慧雙修’(선정·지혜를 함께 닦음)가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1주 보살의 경지입니다. (355쪽)
① 마음이 대상을 대하되 항상 고요하여 일체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선정’입니다. ② 그리고 마음과 대상경계가 본래 ‘참나의 나툼’일 뿐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있으면 ‘지혜’죠. 돈오를 통해 참나를 깨친 이는 이 2가지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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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의 핵심
; 돈오와 점수를 통해 견성과 성불에 이르는 비결!
보조 스님은 『수심결』에서 ‘부처에 이르는 길’을 ① 돈오 ② 점수로 요약합니다. ‘돈오’란 ‘참나의 각성’(見性)을 말하는 것이니, 영원불멸하며 항상 고요하고 광명한 절대계(理)를 곧장 깨닫는 길을 말하며, ‘점수’란 세세생생 묵은 자신의 모든 업장을 정화하여 지혜와 자비를 배양하자는 것을 말하니, 돈오를 통해 체득한 절대계의 영원불멸한 진리를 현상계(事)에 그대로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절대계를 깨달았다고 해서 현상계가 그냥 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계의 정화는 6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의 끝없는 배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돈오’(참나의 각성)와 ‘점수’(업장의 정화·지혜와 자비의 배양)의 길만이 우리를 부처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습니다. 돈오가 없는 점수나 점수가 없는 돈오는 모두 반쪽짜리 공부로서, 우리를 부처의 경지까지 인도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참나를 되찾기 위해 밖에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참나는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불성(참나)을 찾아서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이기적 에고가 원하는 삶이 아닌, 불성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부처가 되는 최고의 첩경입니다. 보조 스님의 『수심결』에서 그 길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성이 있고, 그 불성을 완성하는 길이 여기 펼쳐져 있는데, 어떻게 그 길을 걷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 중의 인간이신 부처님은 자신은 물론 일체 중생을 자신처럼 아끼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한 사람 부처의 탄생은 그 자신은 물론 그 사람이 속한 나라·겨레, 나아가 전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위대한 수행자들이 수없이 배출되어, 우리 겨레의 영원한 이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이 이 땅에 실현되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여러 부처님들께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