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서포터가 쓰신 글에 제 이름이 거론 되어서 저도 한국 최초의 서포터가 어디인지 붉은악마를 만든
그랑블루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끄적여 볼까 합니다.
안양에 살고있던 제가 1995년 수원팀이 창단한다는 애기를 듣고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하였었는데 그 당시 서포터라는
말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였죠.. 국내에서 서포터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게 된건 1996년에 수원 그랑블루 였는데 1995년
그 당시 축구판에는 국대팀 경기때에는 김흥국의 아리랑 응원단이 위력을 발하던 시절이었지요..
제개 1995년 수원팀이 생긴다고 하여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할시 한국 축구판에 유럽식 남미식 선진 축구응원 문화를 펼쳐보이기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축구동엔 너무 많아서 참으로 행복했던 곳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하이텔 축구동에 가입할당시 축구동엔 여러 팬클럽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팀 팬클럽은 하나도
없었죠 그 당시 유명 선수인 황선홍의 황새팬클럽 윤정환의 제리팬클럽 이런 식으로 선수 팬클럽은 넘쳐났지만 팀 팬클럽이 하나도 없다가 1995년 하이텔 축구동 송년회때 당시 수원 구단 리호승대리가 참석하여 1996년 리그에 참석할 수원의 발전적인 클럽 운영 방안을 브리핑하면서 이에 감동을 받아 하이텔 축구동 회원분들중에 그 당시 좀 유명하신 분들이 지금 수원서포터의 시초인 하이텔 윙즈 팬클럽을 개설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윙즈팬클럽 회장은 한태일님 이었고 부회장이 지금 수원구단의 이은호님인걸로 되네요..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1995년 하이텔 축구동 회원들은 그 당시 유공,포항,엘지,일화 등등 모든 팀들을 함께 좋아하고 함께 응원하던 시절이였죠... 그 당시는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특정팀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 연고지팀이 일화 유공 엘지 3팀이 있던 그 시절 동대문에는 하루에 두게임이 벌어지곤 했는데 하이텔 축구동 회원들은 첫경기 유공을 응원하다가 두번째 경기엔 포항팀을 응원하는게 당연하던 시절이였죠 지금으로선 상상할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열앋한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여러팀을 응원하던게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였죠..
그러나 그 당시 하이텔 축구동에 무척이나 호감을 가지고 계시던 유공 이계원 단장님과 하이텔 축구동과는 많은 교류가 있었기에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유공을 많이 성원하였고 축구동에 달필로 유명하시던 신동일 선생님 지금 축구협회에 송기룡 형님등 많은 축구 애호가들이 그 당시 유공의 니폼니쉬 축구 스타일에 홀딱 매료되어 축구동과 유공은 참으로 잘 맞는 부분이 있었죠 그러나 그 당시 아쉬웠던 것은 유공이 하이텔 축구동과 참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아쉽게도 유공팀 팬클럽이 없었죠..
유공팬클럽을 대체하던게 그 당시 유공 소속의 윤정환 제리 팬클럽이였고 양원석님이 회장이였죠...그당시 유공팀 응원은 제리 팬클럽이 앞장을 섰었지만 아쉽게도 팀팬클럽으로 넘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다 1995년 12월 27일인가 한태일님 고용국님 이은호님이 주축이 되어 최초로 수원블루윙즈의 팬클럽 "윙즈"팬클럽이 하이텔 축구동에 팬클럽 게시판에 개설이 되었죠.. 그러나 윙즈팬클럽도 초창기 회장인 한태일님이 대학진학 공부를 위해 윙즈팬클럽이 생기자 말자 1년여 활동을 못하게 되었고 이은호님은 군입대하게 되고 그래서 윙즈 자체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없게 되어 시즌 전까지 붕떠 있는 상태 였다가 시즌이 시작되면서 제가 직접 총대메고 윙즈팬클럽의 운영을 맡게 되면서 6년간 그랑블루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 윙즈팬클럽이 하이텔 축구동호회와 함께 경기장 썹팅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처음 7명에서 시작하다가 수원의 축구바람과 함께 점점 윙즈팬클럽이 늘어나게 되었죠..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윙즈 팬클럽에다 수원지역 중고등학생 모임이 함께 하면서 수원팬클럽 인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차후에 제가 좋아하는 영화 "그랑블루"의 이름을 수원팬클럽 연합 명칭과 잘 어울리는거 같아 "그랑블루"라 정하게 되고 연예인 집단 같은 팬클럽 명칭을 던져버리고 팬클럽을 대체할 명칭을 뭐라 할지 고민하다 유럽축구에 밝은 동생들의 도움으로 그 당시 한국축구판에 무척 생소한 서포터스 클럽이란 명칭을 국내에서 처음 사용하여 그랑블루 서포터스 클럽이라고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용하던 서포터라는 명칭이 널리퍼지고 기자들도 응원단이란 명칭에서 서포터스클럽이란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죠...
어쨋든 1996년 수원의 신바람 축구와 수원서포터클럽와 하이텔 축구동의 영향으로 프로축구판에 새로운 응원문화가 이 땅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오늘은 수원 응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포항도 응원하고 성남도 응원하는 그런 팬심이 결코 축구판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 생각해서 결국은 오직 수원 서포터만이 수원을 응원하는 것으로 정하고 오직 수원팬 하나만을 하지 못할 사람들은 수원 서포터클럽에서 탈퇴하는걸로 못을 박아 버렸지요.. 그 당시에 수원 서포터클럽이후로 1996년 부산 서포터가 두번째로 생겼었는데 그 당시 이런 저런 반발도 많았지만 이때 부터 한팀만을 응원하는 서포터 클럽이 자리 잡게 되었죠.. 그리고 그 이후로 세번째 서포터 클럽인 안양팀이 생겼는데 워낙 안양 이 친구들은 독립적인 서포터로 시작해서 응원가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그래서 저희와도 응원가가 겹치지 않고 참으로 경갱적으로 즐겁게 대립하던 초창기 시절이였죠.. 1996년 이때도 목동 경기장을 사용하던 부천팀은 서포터 클럽이 없었죠...
1996년 수원을 시작으로 부산 안양 이렇게 본격적인 서포터클럽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프로축구판도 신명나는 응원바람이 불어오게 되었죠.. 그 당시 수원 서포터클럽이 성공적인 정착을 하는걸 지켜보면서 저와 함께 수원 서포터클럽을 이끌었던 신인철과 함께 수원 서포터크럽을 발전시킨 노하우를 가지고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들어보자고 서로가 다시 새로운 꿈을 펼치 되었죠...
그래서 하이텔 축구동 운영진과 그리고 원로들과 함께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드는데 함께 힘을 합치게 되었죠... 그래서 그 당시 축구협회에 계셨던 지금 강원팀 단장인 김원동 형님의 도움속에 축구협과 하이텔 축구동과 함께 국가대표 서포터클럽을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그 당시 제가 국가대표 서포터 클럽을 만들자고 제안 하였기에 그리고 수원서포터클럽에서 저와 인철이가 밑 바닥부터 헤쳐나간 노하우가 있기에 국대 서포터쿨럽 조직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고. 일단 제가 지은 "그레이트한국서포터스클럽"이란 조금 유치한 ^^ 명칭으로 국대서포터 활동을 시작하다가 차후 제가 하이텔 축구동 게시판에 국대서포터 이름을 공모했는데 그 당시 이름을 못정하고 질질 끌다가 전남 서포터클럽을 만든 박숭범님이 제안한 붉은악마란 명칭이 박종환 감독시절 세계청소년 축구 4강 신화로 그 당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던 그 기분 좋은 기억이 되살아 나서 붉은악마란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죠..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에서 붉은악마 서포터 클럽을 이끌어 나갈 리더를 못뽑아 고민하다 하이텔 축구동 운영진과 원로님들과 사당 포장마차 타운에서 술 한잔 하면서 수원에서 저와 고생도 많이 했지만 탁월한 리더십도 있는 인철이가 붉은악마 회장에 적임자 이라 생각하고 인천이를 추천하여 그날 부터 인철이가 붉은악마 리더가 되어 제 예상되로 붉은악마를 멋지게 이끌어 나가게 되죠..
그리고 저 밑에 글에 저때문에 수원이 붉은악마를 안도와 주었다 하는데.. 저는 붉은악마에서 인철이가 리더이기에 제가 뒤로 빠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빠지게 된거고 그래도 수원 운영진들은 계속 붉은악마 운영진으로 인철이를 도우며 계속 활동하게 되었으니 이상한 루머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물론 인철이와 저는 서포터문제로 이래 저래 대립하고 그런적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수원이 인철이를 그리고 붉은악마를 도와주지 못하게 하고 그런적은 없었습니다. 1996년 초창기 붉은악마가 현장에서 피토하며 주축으로 썹팅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원 서포터와 안양 서포터 그리고 하이텔 축구동에서 부산 부천 포항 천안을 사랑했던 축구회원분들 입니다. 그당시엔 헤르메스 서포터란 조직은 생겨나지도 않았고 1997년에 프랑스 월드컵예선에서 붉은악마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면서 포항,천안 서포터 클럽이 생겨날때 그 당시에 김종오님이 헤르메스란 서포터클럽을 만들게 되었죠... 물론 이때에 부천 헤르메스 분들이 붉은악마에 중추적으로 활동한건 다 아는 애기이고요... 그러나 그랑이 붉은악마의 역사의 시작이라는건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것도 절대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수원 서포터를 처음 활동하면서 그 이후 생겨나는 모든 서포터 클럽을 다 보았습니다.
헤르메스가 붉은악마를 탄생시겼다. 그랑이 그 공을 가로챘다는 의견에 참으로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제발 신동일 선생님 김시문 형님 그리고 양원석이에게 가서 유공과 부천 서포터클럽의 탄생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세요.. 그분들이 바로 지금 유공시절의 산증인들이니까요..
에효.. 너무 긴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제발 역사는 날조되지 않고 정확히 기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수원의 좋은 라이벌이자 앙숙이였던 부천, 안양 빨리 K리그에서 예전 처럼 치열하게 다시 싸우고 싶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햇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다시 한번 그대들과 피 튀게 눈물나게 붙어 보고 싶네요..
모두들 K리그에서 만나요!
그랑블루 게시판에 알싸 준회원이라 대신 올려 달라고 부탁 하셨습니다
아무리 credit님의 주장에 대한 오해를 푸는거라고 생각할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동대문님은 서울의 연고이전을 유공시절이 있었다라고 하기위해서 그 당시 분명 개인도 연고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남을 설득시킬려고 하는거 밖에 안보이내요. 가름하는 척도는 다 무시하시면서 80년대를 넘어서 70,60,50년대에도 프로축구의 연고의식이 있었다라고 말씀하실거 같네요.
삐잡영어님// 없던 글도 위조해서 내가 유공 코끼리 팬클럽이 있기 때문에 1996년 이전 연고의식이 있었다고 맨날 주장한다고 하지를 않나? 님 맘대로 생각하세요. 독심술 쩌네요. ㅋㅋㅋ
아~윈도 95였나요??제가 윈도 96이라고 무척이나 잘못말씀드렸네요? ㅎㅎ 95겠네요 그리고 시 일반관중이라고 연고의식이 없다라는 편견 그런거 없어요 저조차도 연고의식없었어요 전 경기지역 태생이 아니거든요
글을 한 4줄이상 썼는데 왜지워지냐...미치겄네 ..
도대체 동대문의 추억님이 없던글도 뭘 위조를 했다는건지는 모르겠내요. 그럼 여태까지 서울의 연고이전에 대한 말을할때 유공에대한 예기를 안하셨습니까?
연고의식이 별건가요..단지 내가 사는 연고의 팀을 응원하고 매주 보러다니고 하는거죠 단순히 말하면
지금 이 글과 댓글의 중심은 인터넷 통신에서 시작된 동호회지만, 그 당시에도 분명 수천명 이상의 서울 사는 일반 축구팬이 있었고(평관이 몇천되더군요)
수도공동화 과정에서 그들은 분명 피해를 봤죠 팀이없어졌으니
똑같은 나쁜 연고이전이니 서울사람들도 피해자야 징징 이러려는게 아니고
지금 붉악의 시작을 얘기하는데 왜 올드 동대문엘지팬분 잡아서 그 당시 연고의식을 폄하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현재와 같은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서포터 시스템이 없을 뿐
그리고 감정을 드러낼 인터넷 공간에의 접근성이 부족했을뿐..
삐잡영어님// 일제시대에 시도대항 축구라는게 있었습니다. 경성축구단, 평양축구단해서 경평축구도 하고 당시에도 연고의식이 있었죠. 아마 지금보다 훨씬 연고의식이 더 쎘을건데 당시는 서포터스도 없는데 이건 그럼 어떻게 설명하실겁니까? 연고의식을 뭐 엄청 대단한게 생각하시네요.
제가 뭘 연고의식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건지. 경성축구단, 평양축구단해서 경평축구 당시가 얼마나 연고가 쌨느지 모릅니다.지금 이런 대화에서 사실을 알수가 없는 아마 지금보다 더 쌜껍니다 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
70년대 고교야구도 지역연고의식 발판으로 성장했고 80년대에 프로야구도 지역연고의식을 발판으로 성장했는데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은 다른 종목은 지역연고제로 성장해 가는게 지역연고제와 연고의식 가지고 응원해야 하는것을 그걸 전혀 이해못하고 1996년도에 이르러서야 알아서 연고의식이 생겨난 팬들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믿으라는겁니까? ㅋㅋㅋ
붉은 악마 초댛ㅗ? 이었던 인철이형이 신인철 맞죠 ?? 집은 꽤 사셨던걸루 그당시전 군입대 전이라 ...말슴은 못드리겠지만 갔다오니 조직화 되어있더군요 여튼..민재형님 절 아실진 모르겠지만 반갑네요 ㅎ
글보면 우리나라에서 서포터라는말을 처음 만들어냈단 애기로들리네요
... 어떻게 글을 읽으면 그렇게 들리는거죠? 글에서도 국내축구에서는 이라고 나와있는대 말이죠.
글보면 기자들이 그뒤로 서포터라는개념을 썻다라는식으로 말하는거보고 말하거네요
우리나라 사회전반에 서포터라는 개념이 없었다는거죠=_= 팬클럽이 적당치 못한거같아서 외국에서 서포터라는 개념을 가지고왔다. 이를 보고 기자들도 팬클럽대신 서포터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게 어딜봐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는건가요=_=??
이분 난독증인듯 싶네요 안쓰러워요 ㅋㅋㅋㅋㅋ
어떻게 읽어야 그렇게 읽을수있는지 눈이 해리포터인가? 마법사인갑네
희미한 기억이나마 붉은악마 초대/3대 화장이 신인철 <<<이분이었던걸로 기억하고 그분과 입대전까진 개인적인 추억??도있지만 지금은 뭐하시는지 정말로 궁금하네요 군대이후에 참 많이 변했더군요 복잡해요 아직도
오래전부터 (10년전부터)축구를 사랑했으니 니넨 닥쳐라 이게 절대로 아닙니다 이상한 방향으로 즉 , 아전인수로 가실려는 몇몇분이 보이시길래 이새벽에 별것도 없는저도 F5누르면서 흫분하네요 분명한것은 지금 크리그팬들분들에게 시작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줬으면 해요 전 나일롱이니 할말 ㅇ벗지만 게시판에 여러분들이 역사는 쥐뿔 적어도 사실을 말씀하시니 잘 읽어보시고 각자팀에 애정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크리그 역사 장난아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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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에서야 생긴말 팬고이전이라는 거죠 팬고이전이 뭡니까 우숩지만 당시엔 "대의"가 있었어요...제기억으로 월드컵 배신하고말고가 없었는데 ..정말 제기억으론..회식자리에서 누구하나 왜 유공버리느냐 이런말 했으면 느끼기나 했겠죠 아무말 없다가 갑자기 원래 땅주인 나여 이러면 어쩌라구요
당연히 유공도 서울 연고기간이 1991년에서 1995년 사이에 있기 때문에 유공 좋아하던 서울팬도 있었고 일화 좋아하던 서울팬도 있고 LG 좋아하던 서울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5년에 생긴 유공 코끼리 팬클럽 얘기를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님은 지금 제가 당시 연고의식을 있던것 증명하기 위해 유공 코끼리 팬클럽 얘기 했다고 아까전에 댓글에 그렇게 썼잖아요.
삐잡영님// 님이 쓰신 글 여기 한번 보세요. 논쟁의 핀트가 어긋나지만 항상 동대문님과 서울-- 정확한 닉네임이 기억이 안나네요 두분이 주장하시는게 유공의 시절 유공팬클럽이 있었기에 우리도 연고이전을 당했다입니다. 그래서 두분의 입장과 다른쪽에서 말하는 팩트를 인정 안하실거 같구요. 이건 서로 만나서 말하는게 제일인거 같군요. 어차피 그당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닌까요. 그리고 credit 님은 누가봐도 객관성이 떨어집니다. 무슨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폭행을 당한다나.. 다른분들은 소속과 이름까지 다 밝히면서 예전의 사실을 말해주려 하는대 말이죠..그런분을 의심이 간다하면 할말없습니다.
유공의 시절 유공팬클럽이 있었기에 우리도 연고이전을 당했다입니다 이 문장때매 그러시는거죠. 항상 유공에 대한 주장을 하시기에 팬클럽인줄 착각했나봅니다. 이건 사과드립니다. 이걸로 사람이 위조를 했다던가 말씀하시는건 좀 어이가없네요. 독심술 ㅋㅋㅋ 할때부터 더이상 말안할려했는대 사실관계는 확실해야 하기에 그건 사과드립니다.
하이텔 축동에서 유공을 조직적으로 응원했던 것과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유공 코끼리 팬클럽은 같은 단체입니다.
삐잡영어님// 그리고 제가 무슨 항상 유공에 대한 주장을 합니까? 제 글에 제가 무슨 유공 주장한게 뭐가 있는데요. 지금 그랑 출신분이랑 헤르메스 출신분이랑 오해해서 저도 그때 하이텔 축구동 출신이고 그때 상황을 알기에 유공 코끼리 팬클럽 언급한건데 제가 무슨 유공을 항상 입에 달고 살았나요? 제 글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고이전에 대한 말을할떄 유공에 대한 주장을 안하셨습니까? 정말 진심으로 묻겠습니다. 1995~1996 년 있던일에 대해 말씀하신것들을 연고이전에대한 논라이 있을때 볼수있었는대 말이죠.
1990년에서 1995년 사이에 서울 연고 시절이 있던 LG, 일화, 유공 있던 시절을 언급했겠죠. 그런데 제가 님이 말한것처럼 연고이전 논란 나올때 님이 자주 쓰시는 말처럼 항상 1995년에 있던 유공 코끼리 팬클럽 얘기 한적이 있냐고요? 한번 글 찾아와 보세요.
크리그님// 그래서 제가 한태일님이랑 CREDIT님이랑 서로 관점이 달라서 그런거 같으니 오해 풀라고 댓글 달았습니다.
그래서 동대문님이 유공 코끼리 팬클럽인걸로 알고 쓴건 사과드린다고 했는대 뭘또 언급을 하시는지
님이 또 댓글 달았잖아요. 연고이전에 대한 말을할떄 유공에 대한 주장을 안하셨습니까? 정말 진심으로 묻겠습니다. 1995~1996 년 있던일에 대해 말씀하신것들을 연고이전에대한 논라이 있을때 볼수있었는대 말이죠.
제가 알싸에서 동대문 시절 언급하고 그럴때 유공만 언급한게 아니고 LG, 일화도 같이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1995-1996년 사이를 언급한 것도 아니고 1991년에서 1995년 12월까지 LG, 일화, 유공이 공동으로 서울연고지를 했던 시기를 언급했던 것이고...근데 무슨 유공을 가지고 제가 연고의식이 있었단고 얘기했다고 자꾸 그러시는거에요?
무슨 말씀하시는거에요 제가 유공팬클럽이라고 생각하고 말한건 이미 사과를 드렸고/그 다음에 유공에 대한 주장을 하셨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동대문님은 제 질문에서 왜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유공 연고인식을 끄집어내시는건가요.
그리고 lg 일화 언급한것도 알고있지만 지금은 유공에 대한 말을 하고있어서 말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드리는건대 아까 아니라고 말씀하신 이후로 유공의 지지자라고 생각안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lg 일화를 말안하셔도 됩니다.
진심으로 물으신다면서요? 연고이전에 대한 말을할떄 유공에 대한 주장을 안하셨습니까?
답변드렸습니다.
유공, LG, 일화가 같이 있던 시절 말하면서 유공 얘기한거라고....
이만 자러 갑니다....
그냥 이도저도 아니면 그랑블루,헤르메스가 아닌 하이텔 축구동아리가 한국서포터이 시초로 정리하는편이.. 근데 유공서포터가 서포터즈의 효시라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그인원중 절반이상은 유공이라는팀만을 응원하는사람들이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소수VS다수로 나누자면 다수의의견에 손을..) 다수가 다른생각을 갖고있었다면 달리생각해볼 문제네요.
소녀시대 팬클럽인데...아이유도 좋아하고 카라도 좋아하고...하면 이게 정작 제대로된 팬클럽일까요...그냥 걸그룹을 사랑하는 모임 아닌지...
그냥 비슷한 경우 같네요...
흠.. 걸그룹팬클럽에서 처음에 원더걸스 응원하다가 소시도 응원하고 카라도 응원하고 이러다가 대다수가 아이유 팬클럽 만들어서 나가면 이걸과연 원더걸스 팬클럽으로 봐야할지..
저 위에서는 또 명칭가지고 아웅다웅하시던데... 명칭은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팀 응원단'이었지만 실상은 유공만 응원하던게 아니었다. 때문에 헤르메스가 붉은악마의 전신이라 보기에도 무리가 있고, 그랑블루가 팬고이전을 했다고 말하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라는 선으로 정리되는거 아닌가요=_=??
그랑게시판에 있던거...
전통과 역사가 짧은 수원팬들이 억지부리는 걸로 밖에 안보임.
역사가 짧으니 서포터즌가 뭔가라도 자기들이 제일 오래됐다고 주장하려고 하는거.
그리고 위엣글이랑 댓글 다 찬찬히 읽어보면 동대문의 추억>빠잡영어.
뭐가 억지를 부리는 건가요;;
님도 억집니다. 서포터역사는 그어느팀에도 크게 안진다고 봅니다만..
하하 기가차네요 엄연한 사실을 몇몇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니 정말 답답들 하시겠습니다
이건 뭔소리여 ㅋㅋㅋㅋㅋㅋ
냅둬요 ㅋㅋㅋㅋ 억지라고밖에 이해못하는데 무슨말이 통합니까 ㅋㅋㅋㅋ
많이 찬찬히 읽어보셈 저게 억지인지 ㅋㅋ
96년때 헤르메스라는 이름만 안쓰였을뿐 유공서포터는 있었습니다.
제가 활동을 했으니까 알겠죠.
아직도 96년에 수원원정간것도 기억납니다.
사진을 보시면 부천sk구단에서 찍은사진이 보이시죠.
그런데 사진속 사람들은 유공티셔츠를 입고있습니다. 96시즌이라는걸 누가봐도 알것입니다.
97시즌에 부천sk로 바뀌었으니까요.
그때당시 축구가좋아서 개인적으로 관람하시던 서울분들은 그냥뭐 아무것도 아닌걸로 치부하는구만;;
헛소리 갑이네요
저는 저때의 상황을 잘 모르니 읽고만 있지만 웬만하면 그 당시에 활동하던 축구장에 자주가던 분들 주축으로 토론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이 글이나 이 주제의 다른글에서 보면 단순히 어디서 들은 말과 추측으로 그때의 사정은 잘 모르면서 단지 수원에 관한 안좋은 감정과 연고이전문제로 자꾸 흐리는 분들이 계시네요.
또 무례하지만 크레딧님과 동대문의 추억님 나이가 궁금하네요. 나이 따지자는 게 아니라
크레딧님도 음하하님 글에서 밝히셨지만 당시 자신은 매우 어렸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매우 어리셨다면 상황에 관해 정보를 얻기에도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에도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 실례지만 당시 나이가 궁금하네요.
초등학생이 그 시절 듣고 보고 한 게 자라고 난 후에도 자신에게는 객관적인 사실로 박혀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그게 사실이 아닐수도 있기에 그럽니다. 초등학생이라 한 건 사과드립니다. 그냥 비유하자면요.
저는 주서들은 얘기로 한게 아니고 제가 단 댓글에 근거가 되는 출처를 달았습니다. 지금 여기 그랑회장님 글 보면 제일 문제가 되는게 1995년에 유공 코끼리 팬클럽이 아예 없었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냥 하이텔 축구동이 유공과 친했고 제리 팬클럽이 유공을 응원하는 상황이었고 이러다 1995년 12월 하이텔윙즈가 생겼다 저는 이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것입니다.
댓글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참 새로 알게되는 사실들이네요.. 축구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많은 노력하셨던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