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꽃잎은 천천히 허공을 여네. 말귀는 열어 두고, 찻잔 속에 향을 머금네. 대숲 바람이 눕는 사이, 부드럽게 모음이 구르네. 말은 오므라드네, 아니, 벌어지네. 그래, 그래, 조여 지는 말의 체위. 달빛은 바람의 샅을 핥고 있네.
구름은 또, 허공의 귓등 새로 말이 흐르네.
색의 자음들이 올라타네. 홍紅, 홍紅, 홍紅, 베갯머리에선 색 쓰는 소리가 깊네. 노랑 말귀를 알아듣는 노란 단풍. 산이 풀리고 노을이 닫히고, 사이사이 말귀가 트이네. 겨울 눈 내리고 봄꽃 피고, 돌아보니, 문득, 말들이 사라지고 없네.
◇김동원=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태양 셰프’당선. ‘문장 21’에 평론 당선. 시집 ‘빠스각 빠스스각’ 문학 나눔 도서 선정(2023).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텃밭 시인학교’ 대표. 대구문학상,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2018).
<해설> 매화가 몸을 벌리는 것을, 피는 그것을 시인은 그냥 두지 않는다. 허공을 여는 말귀로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찻잔에서 대숲으로 장소를 옮기기도 하면서 말귀는 구르고, 오므라들고, 조이고, 샅까지 핥기도 하는 저 놀라운 상상력은 결국 시인의 세밀한 관찰력에서 온 것이다. 세상의 숱한 말귀 중에 어쩌면 매화꽃처럼 피어나는 말귀가 있다면 그런 말귀는 계산되지 않은 말귀일 것이고, 가식 없는 본능의 말귀이며 결국은 자연 혹은 사계를 건너가는, 깨달은 신선의 도포 자락 같은, 그리하여 찌꺼기 말들이 다 사라지고 없는, 연연할 그 무엇도 없는, 시인이 꿈꾸는 것은 그런 경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