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수업 - 로봇청소기는 번뇌를 치워주지 않는다! 금강경의 역발상과 0.01%의 출가지능
"세계는 나의 표상(表象)이다." -쇼펜하우어
청년들에게 강연을 할 때 종종 '출가지능' 테스트를 합니다. 아주 간단한 하나의 진실을 설명한 뒤 수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 방식입니다. 이런 내용이죠.
"여러분이 보는 이 컵은 컵이 아니라 여러분의 보이는 마음 속 컵입니다. 이해되시나요?"
100명 정도가 모이면 그 중 2-3명 정도가 이해가 된다고 손을 듭니다. 그럼 가끔 짓굳게 이해한 것을 설명해보라고 시키기도 하지만 보통은 인정해줍니다.
"재능 있는데 출가할래요?"
붓다가 깨달은 진리는 역발상입니다. 중생들의 전도몽상을 뒤짚으려면 자연히 역발상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에 역발상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수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낯섬을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바로 출가지능의 골자입니다.
역발상의 롤러코스터
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 言說章句 生實信不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과 글귀를 얻어 듣고서 진실한 믿음을 내겠습니까?"
<금강경> 정신희유분은 수보리 존자의 우려 섞인 질문이 등장합니다. 직전의 가르침인 인식된 모든 경험이 허망하다는 진실을 과연 중생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는 매우 타당합니다. 인식의 허망함에 대한 여리실견분의 내용은 2가지 역발상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역발상은 출가지능과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마음 즉, 상분이라는 진실은 범부에게 역발상입니다. 세상의 실체를 바라보고 있다고 굴뚝 같이 믿고 있는 이들에게 그저 마음을 보고 있다는 진실은 충격 그 자체죠.
두번째 역발상은 경험의 대상인 상분의 진실 여부입니다. '그래 좋다! 모든 대상이 상분인 것은 인정한다! 그럼 그 상분은 진실이겠지?'라는 범부들의 기대를 다시 뒤흔드는 진실이 있습니다. 중생의 인식된 상분은 허상일 뿐입니다. 이는 전도몽상을 두 번 뒤짚는 롤러코스터와 같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이해하기도 수용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진실입니다.
붓다의 고뇌와 단호한 일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질문을 단칼에 잘랐습니다. '중생을 의심하지 말라'는 간곡함을 담아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도 사실 알고 계십니다. 대다수의 중생들이 이 역발상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논리적으로는 앞의 내용이 근거가 되고, 부처님은 이에 더해 깨달음 직후 중생을 의심했던 경험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흔히 범천의 권청이라고 알려진 사건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깨달음 이후 부처님은 보리수에 앉아서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의 흐름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내가 깨달은 이 연기의 진리를 중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한 사유가 이어졌고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여,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며 지혜로운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중략)... 내가 만약 이 법을 설한다 한들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할테니 그것은 오직 내게 피로와 곤혹스러움만 될 뿐이다.'
이런 판단으로 부처님께서 실제 사바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하십니다. 이를 간절히 막아선 것이 바로 대범천왕입니다. 범천의 권청을 부처님께서 무려 3번이나 거절하신 뒤에야 비로소 결심을 바꾸셨다는 것을 본다면, 당시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관점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기에 수보리 존자가 더 이상 의심을 키우지 못하도록 단호한 대답으로 잘라주신 것 아닐까요?
출가하면 번뇌가 끊어질까? 깨달음 이후의 수동 빨랫방망이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여래가 멸도한 뒤 후오백세에도 계율을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글귀에 능히 믿는 마음을 내어 이것으로써 진실을 삼을 것이다."
<금강경> 속 역발상의 역발상은 사실 부처님의 깨침지능 테스트 아닐까요? 다만 2번의 역발상이라는 난이도를 고려할 때 1%가 아닌 0.01%의 사람만이 청정한 믿음을 능히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난이도의 정신淨信이라면 능히 깨침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으니 깨침에 대한 재능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출가하면 곧바로 번뇌가 끊어지겠지?'
출가할 때 품었던 착각입니다. 그럴리가요! 번뇌는 똑같습니다.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죠. 번뇌를 증폭시키는 세상의 흐름에서 번뇌를 닦아내는 출세간의 흐름을 탔으니까요.
"연못의 얼음이 본래 물인 줄 알았어도, 그 얼음이 완전히 녹으려면 계속 따뜻한 햇빛이 필요하다." -수심결
이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깨침이 생긴다고 곧바로 번뇌가 모두 끊어지거나 외부적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 마음이지만 여전히 번뇌투성이고, 몸과 마음은 여전히 사바세계에 있으니 역경과 고통이 종종 찾아옵니다. 깨달음 이후에도 빨랫감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열심히 방망이질을 해야 합니다.
"신령스러운 광명이 홀로 빛나 육근과 육진을 멀리 벗어났도다. 본래 성품은 항상 걸림이 없으니 허망한 인연만 떠나면 곧 여래니라." -신찬선사
마음의 본래 성품인 불성이 번뇌의 먼지 투성이입니다. 청정한 믿음 그리고 돈오란 번뇌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불성 여래장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오를 했다고 해도 점수의 청소는 여전히 수행자의 몫입니다. 번뇌를 대신 청소해주는 로봇은 아직 없으니까요. 번뇌를 단박에 끊어주는 마법도 아직 없으니까요. 팔 달린 로봇청소기가 청소하는 시대지이만 무탐무진무치의 수행은 수동으로 닦아야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금강경식 점수(漸修)의 비결? 사띠를 꽂아 불성을 드러내는 '지계수복'
부처님은 이미 돈오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지계수복자라는 표현이죠. 지계의 의미는 명료합니다. 하지만 수복은 2가지 뜻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수복의 첫번째 의미는 보시바라밀입니다. 그럼 부처님 당시 재가불자들의 수행을 표현하는 시계생천의 수행이 곧 지계수복이 되는 것입니다.
수복의 두번째 의미는 지복을 닦는 것으로써 바로 선정수행을 의미합니다. 제가 가장 선호하는 선정의 정의는 무탐무진의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탐욕과 분노가 활동하지 못하는 동시에 사띠가 있는 마음상태가 바로 선정입니다. 이는 불성을 드러내기 위해 무탐무진무치의 번뇌 청소를 해야 하는 수행자 입장에서 딱 맞는 수복의 해석입니다. 이미 선정을 닦아 번뇌가 옅어졌다면 힐끗 힐끗 보이고 경험되는 불성의 마음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단박에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안 그런가요?
만약 <금강경>을 아무리 읽어도 청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아직 깨침의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실망할 시간 없습니다. 지계수복을 준비하세요! 쭐라빤따까 스님처럼 바보처럼 묵묵히 지계수복의 빗자루를 쥐고 번뇌의 먼지를 쓸고 닦는다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단박의 깨침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좋아서 팔짝 뛰는 그 순간이.
첫댓글 청정한 믿음으로 좋아서 팔짝 뛰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무탐무진무치의 지계수복으로 번뇌를 청소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_()_
전도몽상의 롤러코스터를 탔어도 앉은 자리는 늘 같은 자리였음을 압니다. 이제, 청정한 믿음으로 진리의 안전열차에 탑승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_()_
불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지계수복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항상 조금씩 나를 깨우고 다듬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