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다 보면 아무리 오래 된 연인이나 안사람
일지라도 안싸우고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잇을까 싶다..
저 같은경우엔 47년 전이니까 내나이 26살때 대구에 다니러
갓다가 여동생 때문에 얼떨결에 한 여자를 만나서 지금껏
47년간을 살아 오고 있지만 그동안 우여곡절도 참 많았지요
결혼초 그러니까 결혼식도 안치르고 그냥 동거를 시작
했는데 그당시 나는 삼촌 회사에서도 쫏겨난 신세이다가
집이라고 해봐야 가장 변두리인 안방학동에 월세방에서
살았는데 20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거의 20분을 걸어가야
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머님과 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는
조그만 월세방 하나 뿐이엿다.
어떤 여자가 그런 환경에서 베겨날 여자가 있겟느냐 만은
우리집사람은 그 환경에서 그래도 2달을 함께 살았다.
가장 힘든것은 둘다 한참 왕성할때라 어머니 남동생 눈치를
봐 가며 거사를 치르는것이 정말 고역이엿다...
그래도 날이 더울때라 가끔은 돗자리를 가지고 인적이 없었던
도봉산 중턱에서 가서나 일을 치루었으니 큰딸이 그당시에
만들어 졋으니 도봉산 중턱이 원래 고향인 셈이다.ㅎㅎ
그래서 인지 태어날때 부터 달리는것을 좋아 하더니 초등학교
5학년 부터 학교 대표로 핸드볼 선수와 육상부에서 달리기
대표로 뽑혀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도 하엿다..
그리고 공부도 잘하여 6학년 졸업때는 전교 1등을 차지햇고
또 전교 부회장으로 뽑혀서 활동을 했으니 .참으로 기특하고
자랑 스러웠다.
그런데 집사람은 열악한 환경에 견디다 못해서 몸에 가졋던
애기를 지우고 싶다고 햇다..
나는 불같이 화를 내엇고 너 먹여 살릴테니 애기만은 지우지
말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리고는 나는 가족들 부양을 하기 위해 수출용 박스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을 하여 못빼고 박고 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애기가
태어 날거란 희망에 열심히 일을 햇었다
그러던중 집사람이 대구에 사는 오라버니가 많이 아파서 다녀
오겟다고 하니 안보내줄수도 없어서 약간의 돈을 주고 다녀
오라고 했다...
그런데 한 열흘만 간호 해주고 온다던 여자가 한달 두달이 지나
석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오지를 않아 나는 대구쪽 밤하늘의
달을 보며 보고 싶은 그녀와 애기를생각하며 눈물이 뚝뚝 흘럿다,,
아고 이러다가 다 올릴려면 이밤이 다 새어도 못다 할것 같아서
다음번에 2편을 올려 드리겟습니다...
.
.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 노래 )
https://youtu.be/viotEnNfWI8
첫댓글 와!~~ 젊으셨을 때 사진이군요
미남이세요..~ㅎ
생활통지표와 상장이 말해주네요..
흐믓하셨겠어요~^^
니보고 미남 이라니 무슨 미남 입니껴?
내사진 보면 기절 하실건데요 ㅎㅎ
이따가 최근 사진 한번 올려 볼까요?
미남이십니다 자녀들도이쁘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아빠따라열성 노력 많이 하나봐요 잘하셨습니다
성실하신 보람으로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몸도아프시면서도
삶방까지 오셔서 귀한 댓글까지 남겨
주셧군요 우쨋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쾌유를 빌겟습니다,
둘다 노력파 랍니다 큰애 강희는 대학을
마치고 전문직에 있으며 둘째도 현대차
중견간부로 특채되어 잘 다니고 있답니다
아마도 착하고 거짓이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가능한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즐거운 삶이 되세요
삶을 뒤돌아 보면서 늘 이런 자긍심으로 사실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셔요
열정 열정 늘건강 하시길요
수리산용 파이팅~!!!참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잘 살아오셨 구랴
친구님의 거룩한 삶의 궤적에 격려와 찬사의 박수를 보내 드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