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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 트라브존 스포르(터키) |
진실의 조각을 맞춰가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이 또렷하다. 2004년 7월23일 아시안컵 본선 2차전 UAE전이 마지막이었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이. 꼭 1년이 지났다. 경기를 세어보니 15경기다. 2006월드컵 최종예선, 난 필드가 아닌 TV 앞에 앉아있었다. 함께 경기장을 누비던 동료들이 힘겨워하고 고비 맞을 때면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주먹 움켜쥐었지만 그들은 날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난 그들과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마치 유리 벽안에 갇혀 있듯.
본프레레 감독님이 부임 이후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지난해 7월10일 바레인과의 친선경기를 포함해 2경기가 감독님과의 만남 전부다. 많은 걸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아직은 보여드릴 게 더 많은데. 시간은 작은 바람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추측을 접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2003년 을용타 사건이 발단됐다는 말에서부터 감독에게 드러내놓고 항명을 하지 않은 이상 대표팀에서 한 순간 제외될 수 있는가라는 짐작까지. 플레이스타일이 감독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전해 들었다.
진실, 이렇게까지 표현할 것 없지만 기억의 조각을 맞춰봐야 할 것 같다. 추측이 또다른 추측을 낳아 결국은 뒤엉켜 풀지 못할 실타래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부임한 본프레레 감독님이 첫 소집훈련을 가진 것은 2004아시안컵을 대비한 6월말이었다. 당시 난 K리그에서 뛰고 있었는데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부상을 입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도 첫 대면하는 감독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뛰었다.
7월10일 바레인전. 감독님의 데뷔전에 선발 출전했다. (최)진철이형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나름 만족할 만 했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아 흡족한 경기 내용은 아니었다. 본프레레 감독님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전반이 끝나고 교체돼 나왔다. 믿음을 드리지 못한 때문인지 그리곤 2경기 동안 나서지 못했다.
불쑥 찾아온 이별
다시 찾아온 출전 기회. 7월23일 아시안컵 본선 두 번째 경기 UAE전. 선발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그래 기회다. 이번엔 뭔가 해내야 한다. 지나쳤을까. 경기 도중 부상 부위에 무리가 가며 통증이 극심해져 갔다. 참기 힘들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의료진에게 몸 상태를 설명하고 후반전엔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본프레레 감독님은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지적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 바레인전에 이어 2경기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자빠졌으니 감독님의 역정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당시는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고통스러웠다.
직접 상태를 설명 드리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탓에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도 정말이지, 그것이 끝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생각지 못했다.
절망의 끝에서 끈을 잡다
솔직히 한 동안은 대표팀 경기를 피했다.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 내 꿈을 이리 헝클어 놓았을까.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라고 자책해 보았지만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쓰러질 수 있었던 순간, 나를 잡아준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 전부였다.
세 살 연상의,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한 아내와 네 살과 두 살이 된 태석이 승준이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절망에 빠져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두 녀석 태어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남편, 원망은커녕 온갖 뒤치다꺼리 마다 않고 해주는 아내. 지금은 터키의 대표적 먹거리인 양고기 음식에 길들여져 덜하지만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없었더라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타향살이는 꿈도 꾸지 못했을 터다. 평생 갚아도 그 사랑 보답할 수 있을는지. 얼마 전 둘째 승준이에게 누룽지를 먹이다 채해 혼이 났는데 그래도 정말이지 이 두 녀석이 없었으면 어떻게 여태껏 왔을까 싶다. 사랑합니다. 표현 다 하지 못할 만큼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
복잡할수록 원칙에 충실하라는 말은 축구판이라고 다를 게 없다. 원칙에 충실하는 것, 결국 실력으로 말해야 할 뿐이다. 꿈이 있다. 2006년 월드컵에 나서는 것과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오르는 것이다. 축구선수에게 월드컵은 언제나 최고의 무대이며 동경의 그곳이다. 내년 독일에서 2002년 그랬던 것처럼 내 축구 인생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다. 기회를 잡기 위해선 갑절의 노력을 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보여주어야 한다.
그 무대가 2005-06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일 것이다. 트라브존 스포르는 지난 시즌 2위를 차지하며 예선 2라운드 출전권을 따냈다. 8월 중순 종료하는 예선라운드를 넘어서면 32강 본선에 오를 수 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축구의 땅 유럽에서도 최고봉으로 불리는 클럽대항전이다. 이곳에서 기량을 인정받는다면 본프레레 감독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그마한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선택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것이다. 선수는 오로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생애 첫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했던 지난해 여름 예선 3라운드에서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에프에 골득실차로 패해 본선행에 오르지 못한 기억을 지우고 싶다. 사실 당시엔 아시안컵 대표 차출 관계로 예선 3라운드 2차전 한 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이번엔 다르다. 온전히 챔피언스리그만을 위해 뛸 수 있다.
분명 오는 챔피언스리그는 내 축구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대표팀 복귀와 유럽 무대에 이을용이라는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선수로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무언가 보여줄 것이다. 9월13일 본선 32강 그룹스테이지가 시작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와 아인트호벤의 (이)영표와 함께 난 그곳에 서 있을 것이고 또 전진할 것이다. 해서 이을용의 심장이 뜨겁게 뛰며 조국을 향하고 있음을 소리 없이 하지만 강하게 웅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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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있다..
멋있다..사진만
본프레레랑 히딩크 시각차이가 너무 뚜렷함
난 사진 왜케 웃기지ㅋㅋ;
본프레레가 나약하다며 화를 냈다;;
좀진지하게 봐주시지 ㅠ
멋있는데..............ㅜㅜ
사진은 부활의 엄포스사진을 따라한듯한..ㅋ 근데 정말로 삼류레레가 이을용선수한번 불러야되는거아닌가여??한국의 좋은선수를 넘 무시하는듯한..삼류레레이해안감..
-ㅅ- 근데 챔스 떨어졋으니..'''
와 글 정말 잘쓰신다. . . 본프레레 볼수록 정떨어지네 ㅅㅂ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