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당신에게
풀벌레와 새소리가 시원하게 들려 오는 진안의 하늘은 높고 아득합니다.
등줄기의 땀방울을 식혀주는 바람도 상쾌합니다.
계곡의 물소리처럼 맑은 당신을 생각합니다.
농지원부에 등록된 초보자 농민으로 부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올 3월부터 농사를 시작하면서 농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농촌은 국민의 희망의 뿌리인데 고령화되고 침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진주에서 있었던 농촌사목 담당신부 전국모임에 함께 했습니다.
시골에서 3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아우 신부와 진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우 신부의 1 톤 덤프트럭과 제 소형자동차를 바꾸어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9월 중순부터 3세대가 살아야 할 집을 지어야 하는데
자금이 넉넉치 않아 경비를 줄이기 위한 자구책입니다.
아우 신부와 생태마을 농장을 둘러보고 비닐하우스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자급자족을 꿈꾸는 생태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진안군 땅으로 나 있는 등산로와 임도를 걸었습니다.
숲과 계곡, 어머니 뱃속 아이처럼 자리한 마을 터의 아늑한 풍광에 감탄한 아우 신부,
좋은 터를 잡았다며 저보다 더 기뻐합니다.
아우 신부는 농촌을 향한 사랑처럼 부귀공소 마당에 1톤 덤프트럭을 남겨두고
소형자동차를 몰고 멀리 의정부로 출발합니다.
1톤 트럭을 몰고 농장으로 갑니다.
숲의 그림자가 내려앉은 고추밭에서 붉은 고추를 땄습니다.
사료포대로 4개를 딴 고추를 시운전차 덤프트럭에 실었습니다.
저희 농장을 방문한 대부님과 대모님, 안식년 동안 함께 생활한
아버님과 어머님과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소박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까지 임시생활공간인 부귀공소로 이동했습니다.
성당 뒷편 제의방에 작은 이불가방과 옷가방 하나가 덩그렇게 앉아 있는
방을 둘러보고 주방의 냉장고도 열어 보십니다.
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당을 빠져나갑니다.
초등학교 옆 들판에 혼자 서 있는 성당,
공소에 홀로 남겨두고 가는 아버지 어머니의 눈빛이 짠합니다.
풀벌레 소리와 간간히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방 가운데 생태마을 지도가 덩그렇게 놓여있습니다.
이런 저런 계획들 사이로 혼자라는 생각이 파고 듭니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홀로 미사를 드립니다.
자연과 인간을 위해 오롯히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성당 제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체가 없는 빈 감실처럼 텅빈 영혼에 영롱한 별빛이 반짝입니다.
공소에서의 첫날 밤이었습니다.
13일 주일 오후 4시에 공소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0일 주일에 팔복성당 빈첸시오회의 자장면 봉사단을 초청해서
부귀공소 어르신들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자장면과 탕수육, 여러 떡과 과일과 튀김 전어무침에
진안 막걸리로 소박하고 풍성한 음식을 준비할 것입니다.
부귀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오신 어르신들 덕분에
제가 부귀에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미사 때 자장면과 여러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첫 미사 때 잔치를 하는 것이 어르신들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두 번째 미사 때 어르신들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주시라고 미리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미리 짜웅을 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가장 거룩한 사람입니다.
농사는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소중합니다.
쌀과 배추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없으면 밥상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밀 농사를 짓는 농부가 없으면 미사의 밀떡도 만들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거룩한 농부이신 어르신들에게
조그마한 위안과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농부의 길은 두렵고 떨리는 길입니다.
올해 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하루 종일 포도나무를 심고 허리가
너무도 아파서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끙끙 앓았습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도 마음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그 행복은 저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의 행복이었습니다.
9월 20일 오후 4시 미사와 잔치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시는 길은
호남 고속도로 익산과 대진고속도로 장수를 연결하는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오시면 소양IC에서 진안방향으로
대진고속도로로 오시면 진안IC에서 전주방향으로 오시면
부귀 이정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귀성당은 부귀면 소재지 초등학교 앞에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9월 20일 오후 4시에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최종수 사랑수 올림
연락처: 010-4614-4245
먼저 창립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팔복초대신부라고 저를 성당에 초대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는 제가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가 되려면 하느님 말씀 안에서 힘을 얻을 때에만 가능한
공동체입니다. 신부님께서 오병이어 나눔의 잔치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종종
말씀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4년 동안 씨만 뿌리고 갔는데 신부님
께서 잘 가꾸어 꽃을 피우고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팔복성당에 부임한 것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었습니다.
팔복성당은 저에게 많은 은총을 선물했습니다. 감사드릴 게 너무도 많지만
가장 감사드리는 것은 제가 팔복성당에 와서 제 사제의 소명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제성소는 내가 선택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내가 사제의 길을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하셔서 사제의 길을
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때 성서말씀을 한 구절씩 선택합니다.
제가 선택한 서품 좌우명은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입니다. 사제성소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셨지만
사제서품 좌우명은 내가 선택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제서품 때 선택하는 성서말씀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해서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저에게 만큼은 가난은 하느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팔복동에 오지 않았다면 가난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동네인 팔복동에서 사목하면서 여러 번 울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내가 해줄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느낄 때, 우리 신자들과 함께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며 일생을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4년 전 저희 성당이 물에 잠겼을
때의 일입니다.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성당에 물을 퍼냈습니다.
한 형제님이 고백소에서 물을 통에 담는데 아무리 퍼 담아도 물이 차지 않아 통을
들어보니 물이 줄줄줄 새는 것이었습니다. 콩나물 시루였던 것입니다.
10시 미사를 11시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물이 찰랑거리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왜 그렇게 서럽던지요. 수중미사를 눈물로 봉헌한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성서말씀을 하느님께서 ‘이렇게 살라’는 사명으로 주셨다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농민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난한 현장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면 부유한 이들도 함께 할 수 있지만, 부유한 이들을 선택하면 가난한
이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가난의 삶을
사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팔복동을 떠난 뒤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혼자 방에 있을 때, 책을 읽다가도 문득 팔복동 생각이 날 때가 있었습니다. 책을 덥고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오병이어 식당을 만들기 위해 새벽에 비닐하우스 폴
대를 뽑으러 갔던 일, 성탄예술제, 선교대상, 중고생들과의 하계수련회, 유치부와 초등부 아
이들의 재롱잔치, 물놀이 가서 포도 껍질을 이빨에 붙이고 ‘영구 없다’하며 사진을 찍던 순간
들, 요셉회 아버님들과 야유회 가서 등을 밀어드린 순간들, 요세피나 할머니들과 스타킹을
머리에 쓰고 배꼽을 잡고 웃었던 순간들, 빈첸시오 회원들과 야유회 가서 재미있었던 순간들
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혼자라는 사실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창가에 멍하니 서 있으면 눈가에 이슬이 맺힐 때도 있었습니다. 참기 어려울 때는 혼자 뒷산
으로 산책을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하지 않고 본당사목을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
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사람처럼 허전하고 쓸쓸했습니다.
저에게 신앙이 없는 탓이겠지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 그리움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같기 때문입니다. 차츰 함께
사는 아버님과 어머님과 텃밭을 가꾸고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산책을 하면서 그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무농약 음식과 효소를 먹자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저는 3월부터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 6시에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진안 성수에서 부귀 농장으로 갑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냇가에 새벽햇살이 내리는 광경은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습니다.
어떤 날은 달빛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전주에서 자원봉사를 온 신자 20명과 포도나무와 블루베리를 심습니다.
함께 일하는 그 풍경이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하나라도 더 심고 가려고 손과 발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잠시 허리를 펴고 그 광경을 보노라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이곳이 천국이군요. 여럿이 함께 일하는 모습, 또 다른 오병이어 기적을 보여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팔복성당 빈첸시오 형제자매들이 폐품을 수집해서 만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밭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신자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미사를 드립니다.
허리가 너무도 아파서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미사 전에 묵주기도 5단을 바칩니다.
노부부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끙끙 앓습니다.
그렇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도 마음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농사가 가장 힘든 육체노동이구나, 농민들이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있구나.’
머리로만 알았던 진리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밭 3,000여 평을 신자들과 함께 매입해서 포도 600평, 블루베리 1400주, 고추와 콩,
조와 들깨를 심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사목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내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농촌사목을 잘 할 수 있을까.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 하는 생태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집을 지어야 하는데, 집짓기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걱정이 들면 두렵고 초초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것,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까 하느님께서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절망하기에는 제가 젊습니다.
더욱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첫사랑 팔복신자들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행복해야 여기 계신 아버님 어머님, 형제자매님들이 행복하십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복음이 주는, 십자가를 통한 행복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팔복성당 신부님과 신자들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행복이 저의 행복이고 저의 행복이 여러분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팔복동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또한 저를 위해 멀리서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선택하지 않는 길, 힘들고 어려운 길일 수 있는 농사와 농촌사목을 위해 제 삶의 모든 것을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고단하지만 행복하게 길을 갈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힘을 얻어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제 삶의 전부이신 하느님께서 팔복성당 신자들과 신부님, 저의 희망을 위해 함께 해 주시는
벗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