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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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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스크랩 조갑제의 현대사 강좌.."이제는 一流국가로의 길을 준비해야 할 때"
5 0 화이팅 ! 추천 0 조회 74 08.03.26 21: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http://www.chogabje.com/


 

"이제는 一流국가로의 길을 준비해야 할 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 제52회 '17대 대통령 선거 전망' 녹취록 全文
조갑제닷컴   
  오늘 주제가 좋아서 그런지 많이 오셨습니다. 웃으시는 것 보니까 굉장히 기분 좋은 웃음이신데, 해병대 한 사람을 죽이고, 수류탄 하나, 유탄 6발, 실탄 75발, 그리고 소총을 탈취한 테러범을 (테러범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겠는데) 잡아야 됩니다. 조금 불안하시죠?
 
  옛날에 ‘자칼의 날들’이란 소설이 있었습니다. 기자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인데, 드골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서 청부 살인업자를 한 사람 고용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 드골이 참석하니까 청부업자가 여행을 하면서 총을 구해서 마지막 순간에 쐈는데, 드골 대통령이 프랑스식대로 키스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 쏘았기 때문에 불발하게 되죠. 아주 재밌는 소설입니다. 문세광(文世光)이 이 ‘자칼의 날들’이란 소설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꿈꿨다고 해서 유명해진 소설입니다.
 
  지금 범인이 잠적을 했는데, 어디서 튀어나올지 상당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어제 이명박(李明博) 후보 쪽은 야외 유세를 중단한 것 같은데, 잘 한 것 같아요. 이렇게 되니까 역시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대체후보로서 있다는 것이 조금 안심되는 것 아닙니까? 이회창씨가 후보 출마를 선언한 게 11월7일이니까 벌써 한 달하고 하루입니다. 출마선언하기 전에 제가 ‘보수분열적인 면이 있지만 보수경쟁에 의해서 보수 확대로 갈 것이고 스페어 후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투표를 11일 남겨놓고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역시 그 구도로 가고 있죠.
 
  지지율을 보면 BBK사건 수사 발표 이후에도 큰 구조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2~3% 오르고, 정동영(鄭東泳) 후보가 조금 오르고, 다음으로 이회창(李會昌)씨가 정체 또는 약간 떨어져서 40, 18, 17%의 구도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文國現) 후보와의 단일화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원래 단일화를 하면 극적인 효과를 봐야 되는데 전망이 없으니까 그렇게 되었죠. 또 보수 세력 일부에서는 보수 후보들도 단일화를 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일화라는 것은 12월19일에도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사실은 지금 여론구조 같으면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어요. 40대 18이라는 이 대차(大差)는 앞으로 열흘 사이에 절대로 안 바뀝니다. 지금 구조로 그냥 가고, 2,3등을 누가 하느냐의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선거 전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이런 시점에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선거를 경험하고, 또 선거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선거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이거든요. 그 다음 투표장에 가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바로 정권에 참여한다는 것이니까 모든 국민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고 역사를 만드는, 정권을 만들어내는 데 참여한다는 정말 감동적인 체험을 여러분들이 하고 계십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바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과정이 법 안에서 평화롭게, 질서 있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총기 탈취 사건이 잘 수습이 되어야 될 텐데 하는 걱정 하나를 내어놓고 있습니다. 또 좌파정권의 난동이라든지 음모라든지 하는 게 별로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나중에 노무현(盧武鉉) 정권이 곱게 퇴진하면 이런 말을 하려고 해요. 노무현 정권이 끝에 와서 남 욕하고 막말하는 점이 있었는데, 김대중(金大中) 정권보다는 하나 나은 게 있어요. 뒤통수를 잘 치지 않았어요. 남 뒷조사해서 뒤통수치는 것은 의외로 김대중 정권보다는 덜했죠. 그런 점에서 조금 좋았던 점이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이번 선거관리에 대해 노무현 정권이 크게, 깊숙이 개입을 해서 누구를 적극적으로 민다는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동영(鄭東泳) 후보를 노무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대중씨는 정동영씨를 미는 것이 확실하나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고 현재까지는 크게 효과가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원래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발전 과정을 보면, 부끄럽게도 동양에서 만들어낸 제도가 아닙니다. 서양에서 만들어낸 제도입니다. 서양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목이 달아나기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것이 민주주의라는, 우리 인류가 발전시킨 가장 위대한 제도입니다. 그 발전 과정을 보면, 영국식 모범적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은 법치(法治)가 먼저 생기고 다음에 선거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법치를 통해서 선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고, 그리하여 원하는 정권을 뽑는다는 선거의 자유가 생겼지요. 우리나라는 선거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법치를 실천하는, 즉 순서가 거꾸로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만 하면 자동적으로 민주주의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드디어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었는데 그 뒤에 등장한 정권, 특히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의 민주투사들이 집권한 시절에 와서는 법치의 위기가 생겼습니다. 이 세 사람들이 다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우습게 알고 헌법을 파괴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법치의 위기가 생겼어요. 대통령이 법 위에 있고,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뜻을 따라서 법을 집행하는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떨어졌습니다. 이번 BBK 의혹 수사 발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60%나 되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 위원회가 선거 관리는 잘 하는 것 같은데 검찰과 우리나라 법에 대한 신뢰가 아직도 약하다, 우리의 민주주의의 과제가 뭐냐’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치를 정착시키는 것,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밑에 사람 없다, 대통령도 법에 의해서 퇴진도 당하고 파면도 당하는 꼴을 한 번 봐야 된다’는 것이죠. 민주주의를 완성한 국가 치고 왕의 목을 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영국도 1600년대에 크롬웰이란 사람이 등장해서 의회가 정권을 잡은 다음에는 찰스2세라는 왕을 단두대에서 목을 쳤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도 루이 16세와 왕비를 단두대에서 목을 쳤죠. 왜 이렇게 하느냐? 법을 어기는 사람은 왕이고 누구고 국민들의 힘으로 목을 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통해서 절대 권력이라든지 헌법을 무시하는 자는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우리는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는 방식으로 경험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민주주의 연습인 것은 분명해요. 그러나 한국의 법치가 제대로 서려면 2004년 3월12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결의했을 때 헌법재판소가 촛불 시위를 하든 말든, 여론이 어쨌든 간에 법의 원칙에 따라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어야 합니다. 그랬으면 법치가 서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하기는 쉬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파면시킨 다음에 선거를 다시 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냐 우파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냐를 추측해보면, 반드시 보수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비록 탄핵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 뒤 2005~2007년 동안 국민들이 보수화(保守化) 쪽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노무현 대통령의 정체를 느끼면서, 몰랐던 사람들까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무능하고 행패를 부리는 좌파는 끝장을 내야겠다’는 국민 각성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그때 헌법재판소에서 법대로 해서 대통령 탄핵을 했더라면 아마 국민들의 자각에 의한 각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세상 일이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큰 사건은 검찰이 BBK 의혹에 대해서 발표를 한 것이죠. 발표 내용은 다 아실 것이고, 발표에 대해서 수긍하지 못하는 여론이 50~60%가 아직도 있다는 것은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만큼 검찰 권력이 강한 나라가 없습니다. 한국의 검찰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검찰 공화국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이죠. 한국의 검찰은 기소독점주의(起訴獨占主義)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재판에 거느냐는 것은 검찰 이외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법원도 할 수 있고, 검찰도 할 수 있죠.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수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수사를 해서 검찰에 갖다 바치면 검사가 다시 그것을 확인해서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니까, 경찰은 검찰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합니다. 과거에는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이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즉 정보부가 검찰을 견제했습니다. 그래서 이 균형이 맞았는데, 이상하게 소위 문민정부(文民政府) 이후에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너졌어요. 그러다 보니 언론, 정당이 검찰을 견제해야 하는데 정치인은 워낙 약점이 많기 때문에 검찰을 제대로 견제하기가 힘듭니다.
 
  유일하게 지금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이 있다면 언론과 사회단체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 총장은 임기직이지만,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임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인사권을 쥔 대통령과 관련된, 또는 대통령 정도의 막강한 권력과 관계되는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한 것이 한 번도 없어요. 예컨대 2003년 대북(對北) 송금사건에서는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가져다 준 金大中에 대해서 특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술 조서 한 장 받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약한 사람들은 다 감옥에 보냈죠. 대통령이 싫어하면 검찰에서 강정구(姜禎求)를 구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정구란 사람을 구속 안했으면 좋겠다는 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입장이니까, 우리 검찰이 강정구 교수 하나를 구속 못했습니다. 구속하려던 검찰 총장은 잘려버렸습니다.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도 검찰이 이회창 쪽만 괴롭혀서 차떼기당을 만들고, 노무현이 받은 수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믿고 노무현이 ‘내가 받은 선거자금이 이회창씨의 10분의 1만 되면 대통령 그만 둔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중에 한 말이에요, 그 말은 뭐냐? 절대 10분의 1이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수사를 발표한 것을 보면, 10분의 20은 되었어요. 그러나 물러나지는 않았죠. 이 부분이 다시 조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권력형 사건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사람들 머리에 다 있는 상태에서 이번 BBK 관련 수사가 나온 것이죠.
 
  이것은 또 수사발표나 과정을 보면 검찰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확실시 되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 굉장히 유리한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유리한 발표를 하다보니까 반작용이 생겼죠. 이명박에 대한 과잉 서비스를 하니까 그 부담이 이명박씨에게 남아버린 겁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완전하게 하려하면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만 보는 사람들은 검찰발표를 100% 믿어야 마땅한데, 우리 국민들의 60%가 믿지 않는다는 여론 조사가 나오는 겁니다.
 
  요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정보수집 통로가 많아요. 신문도 있고, 방송도 있고 더구나 인터넷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본인들이 찾아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인터넷이 BBK 사건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새로운 사실을 알리고 하니까 시간이 갈수록 수사 발표를 믿지 않는 여론이 많아지고 있죠.
 
  검찰의 수사발표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논리를 살펴보면, 믿는 사람은 우선 ‘검찰 발표가 공정하게 이뤄졌다, 거기에 적힌 대로 김경준씨와 그 일가는 문제점이 많다. 따라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고, 반대쪽은 주로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장춘(李長春)씨가 받은 명함이 이명박(李明博)씨가 만든 게 아니라면 이장춘씨가 조작을 한 것이든지, 그게 사실이 BBK라는 회사에 아무런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도 하나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명박씨가 대표이사 및 회장을 사칭한 것이 된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BBK는 내가 만들었다’고 李明博씨와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쓴 사람이 현재 월간중앙,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일요신문의 네 기자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박영선(朴映宣)이란 의원이 MBC 기자 시절에 이명박씨를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해서 ‘BBK는 내가 운영한다,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했답니다. 여섯 명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의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에 검찰 수사발표와 왜 이렇게 다르냐는 혼란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이명박씨가 ‘내가 지금 신종금융업을 하는데, BBK를 만들어서 이렇게 잘 하고 있다’라고 기사가 쓰여 있어요. 명함은 정확하게 대표이사 및 회장으로 되어있죠.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았죠. 기자를 불러서 조사하지도 않았고, 이장춘씨를 불러서 조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점 때문에 BBK 의혹에 대해서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BBK 사건 수사발표가 거의 80%는 이명박(李明博)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이 적혀있으나, 한두 개 정도 검찰이 묘한 표현을 썼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도곡동 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거죠. ‘도곡동에 이명박씨의 처남 김재정, 그리고 형 이상은씨 두 사람 명의의 땅이 있었다. 이것을 1992년에 포항제철이 263억 원에 샀다. 이것은 이명박씨가 김만제(朴映宣) 포철 회장한테 부탁을 해서 실무자가 요구하는 것 보다 훨씬 비싸게, 많게는 100억 정도 비싸게 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돈의 매각 대금에 이명박씨의 소유지분이 있는 것이다’ 하는 주장을 경선과정에서 박근혜(朴槿惠)씨 쪽에서 제기를 했죠.
 
  그래서 고소․고발 사태가 일어나서 검찰이 여기에 대해 수사를 했습니다. 8월13일에 수사 발표를 했는데, 그 요지는 ‘김재정씨의 땅은 본인 소유가 맞다. 그러나 이상은씨의 땅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판 돈을 추적해보니, 그 돈을 이상은씨가 쓰고 있지 않고 다른 이 모 씨가 쓰고 있더라. 그래서 이것은 이상은씨의 소유가 아니라 제3의 인물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이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씨 쪽에서 이명박씨 땅이 맞으니까 사퇴해야 된다고 난리친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게 투표 직전에 일어났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실은 이명박씨 지지율이 조금 떨어져서 질 뻔했죠.
 
  그 뒤에 수사가 더 진행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이것까지 발표할 줄 알았는데 발표하지 않았죠. ‘다스’라는 회사를 조사해보니 이상은씨의 도곡동 땅 매각 자금에서 17억이란 자금이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사해도 이명박 후보와의 관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다스’라는 회사는 이명박 후보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씨의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특검을 한다든지 하면 아마 이 부분을 주로 치고 나올 것 같습니다.
 
  관련자, 예컨대 ‘이상은이란 사람은 입원해있기 때문에 수사하지 못했다’고 하죠. 또 실제 소유주라고 생각되는 李모씨란 사람은 누군지 밝히지 않는데, 전체 뉘앙스로 봐서는 이명박 후보 친족의 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지난 여름에 소환을 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사를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었다’ 이렇게 묘하게 검찰이 여운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일단 선거 전에는 BBK 의혹이 더 이상 수사로서는 진전되지 않고 여기서 멈췄어요. 잠시 동결된 셈입니다.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얼려서 냉장고에 집어넣은 거죠. 다음에 냉장고 문을 열면 썩든지 얼음이 풀려서 녹든지 해서 다른 사건으로 재발할 가능성 있습니다. 이 사건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에요. 다음 총선 때, 대통령 당선된 이후에 다른 형태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누구더라’ 하는 폭로가 나와서 다른 쪽으로 연결된 가능성이 남아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이명박 후보가 치명상을 받지 않았어요.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신문에서 김경준씨 가족을 ‘가족사기단’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설 제목에도 그렇게 나오죠. 김경준씨와 그 누나가 지금 현재로는 사기 사건으로 확정판결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꾼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조금 그렇고, 그런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단계죠. 법률적으로 말하면 기소를 당했으니까 피고인 입장입니다. 피고인 입장인데 언론이 ‘가족사기단’이라는 표현을 일부에서 쓰고 있는 것은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사기단’이라 하면 김경준씨의 어머니, 아버지, 딸까지 포함되죠. 그럼 딸도 ‘가족사기단’의 일원이냐?
 
  선거판에 들어가면 한국 사람들이 조금 흥분을 해요. 언론도 흥분을 하고, 친구끼리도 막 싸우죠. ‘나는 A란 사람을 지지하는데 너는 왜 지지하지 않느냐’는 거죠.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을 친구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현상 중의 하나예요. 자기의 개인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반대한다든지 하면 싸웁니다.
 
  옛날에 유럽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럽 교민들이 런던에서 만나서 교민 회의를 했습니다. 아침에 식당에 가서 빵을 먹다가 독일에서 온 사람과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 말다툼이 생겼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독일빵이 제일 맛있다고 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소리냐, 프랑스빵이 제일 맛있다고 티격태격하다가 싸웠어요. 그 사람들이 빵장수 대변자도 아닌데 코피가 터지도록 싸웠어요. 한국 사람들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죠. 독일빵이 맛있다는 데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죽이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싸우는 것이죠.
 
  1970년대에 부리사란 차가 나오고, 포니란 차가 나왔을 때 가끔 이런 뉴스가 있어요. 부리사 모는 운전사와 포니 모는 운전사가 점심 잘 먹고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부리사가 세다, 아니다 포니가 세다’ 이렇게 말다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럼 한 번 부딪혀보자’ 해서 운동장에 나가 서로 부딪혀서 어느 차가 많이 망가졌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이 흥분하고 싸우는 것을 가만 들여다보면 자기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반대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싸우는 성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주체성의 부족이죠. 아무리 그래도 독일빵 때문에 동포의 코뼈를 부러뜨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지금 선거판이 되니까 잘 지내던 사람도 이회창 지지자냐, 이명박 지지자냐, 멱살 잡으면서 싸웁니다. 조금 생각을 바꿔서 누구를 지지한다는 차원을 떠나 제일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진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의 문제로 돌아와서 따지면 되는데, ‘가족사기단’이란 말을 주간지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언론에서 아직 재판에 넘어가지도 않은 사람을 보고 더구나 몽땅 다 합쳐서 ‘가족사기단’이라고 공공연하게 쓴다는 것은 아직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덜 성숙되었고 한국의 언론이 너무 흥분해서 언론의 정도를 벗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많은 민주주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1970년 8월에 닉슨 대통령이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기자 모임에 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을 하는 중에 문제발언을 하나 했어요.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니까 신문이 거의 매일 찰스 맨슨 사건을 1면으로 다루고 있다. 찰스 맨슨이 누구냐? 8건의 살인을 저지른 자인데 어떻게 신문이 매일 다룰 수 있느냐?’ 찰스 맨슨 이야기를 하면서 길티(guilty:유죄)라는 표현을 해 ‘죄인이다, 어떻게 살인범을 매일 신문에서 볼 수 있느냐’고 연설에서 불평했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었어요. 찰스 맨슨이라는 살인범이 그때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재판을 받는 중이었으니까 아직 유․무죄가 결정이 안 되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죄인이란 말을 쓰면 배심원들한테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우리 재판과 달리 영국과 미국의 재판은 판사가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배심원들이 앉아서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간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마지막에 투표를 통해 유․무죄 여부를 결정합니다. 배심원 제도죠. 그러니까 그 배심원들은 편견이 있어서는 안 되고, 재판에 참여하는 기간 동안 신문을 봐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배심원에게 영향을 준다, 이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들고 일어났어요.
 
  바로 다음날 닉슨 대통령이 대변인을 시켜서 그 말을 취소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거기에 한 마디가 빠졌다. ‘allegedly’ 라고 ‘~에 따르면 ~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찰스 맨슨은 살인범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으면 되는데 ‘찰슨 맨슨은 죄인이다’라고 단정을 지으니까 ‘당신이 무슨 재판장이라도 되느냐’고 해서 대통령이 사과를 했습니다.
 
  이 맨슨이라는 사람은 범인이 틀림없었죠. 로스앤젤레스에 영화배우가 많이 사는데, 샤론 테이트라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있었습니다. 그 배우의 집에 들어가서 5명을 잡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칼로 찔러 죽인 살인마입니다. 샤론 테이트란 배우의 남편이 로만 폴란스키라는 유명한 영화감독이에요. 그래서 이 사건이 미국 언론에 굉장히 크게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공인은 확정판결이 나기 전에는 유죄인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피고인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 미국에서의 말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법률적 용어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재판에 의해서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라도 무죄인으로 추정된다는 겁니다. 그 무죄인이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누려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웬만한 사건, 살인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구속되어서 재판을 받지 않고 보석금을 내고 돌아다니면서 자기 나름대로 자료 수집을 해서 검찰에 대응을 합니다.
 
  미국의 사법제도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드러나느냐? 재판관이 딱 때려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검찰이 구형을 해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와(그러니까 피고인이죠), 피고인과 검찰이 법정이라는 경기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증거를 제시하는 게임의 과정을 통해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을 묶어놓으면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증거 수집이 안 된다는 겁니다. 손을 묶어놓고 권투하라는 것과 같은 거니까 일단 자유롭게 보석금을 5만 달러에서 몇 백만 달러 내고(그러면 미국사람들은 달아나지 않는가 봐요) 공정한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 사법제도의 원칙이죠.
 
  우리는 대륙법(大陸法)을 따릅니다. 대륙법은 독일, 일본, 한국에서 적용되는데, 여기서는 판사와 검사의 권한을 아주 중시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확립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핵심은 ‘영장 없이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왕의 명령으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판사가 발부하는 영장을 가지고 와야 사람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이라는 원칙이 민주주의 원칙에서 제2조, 3조쯤 됩니다. 그런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도 받고 하니까 자꾸 오판이 생깁니다. 1심에서는 유죄로 나왔다가 2심에서는 무죄로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1967년에 이수근(李穗根)이라는 노동당 중앙통신사 부사장이 귀순했다며 환영회를 하더니 2년 뒤에는 느닷없이 ‘귀순이 아니고, 위장귀순을 해서 간첩질을 하려다가 감시를 당하는데 불안을 느껴서 홍콩으로 달아난 것을 우리가 잡아왔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더니 항소도 안하고 1심에서 사형판결을 받자마자 다음날 바로 사형집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누구 말이 맞느냐? 검찰, 정보국 말을 믿다가는 귀순자가 하루아침에 간첩도 되고 헷갈리게 되는 거죠. 특히 정치적 사건에 있어서 검찰을 믿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수근 사건은, 간첩이 아니었고 순순하게 귀순한 것인데 정보부에서 너무 괴롭히다 보니까 제3국에서 살기위해 도망가다가 잡힌 거죠. 정보부에서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그것을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이라고 모함을 해서 억울하게 사형집행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죽었지만 조카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재심을 청구해서 지금 재심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제가 쓴 기사가 하나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수근은 간첩이 아닙니다. 정부가 조작한 간첩이에요.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주로 사회부 기자를 했습니다. 사건, 억울한 사람, 재판, 고문 이런 것을 한때 많이 취재했습니다. 그걸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이번 BBK 수사에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이렇게 깊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의 업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검찰 권력을 민주화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검찰은 어떤 대통령이 되든지 그 대통령의 하수기관이 되어서 대통령 한 사람만 안 건드리고 다른 사람들은 편의적으로 조사를 합니다. 지금 삼성 비자금 문제가 주로 검찰 수뇌부 쪽으로 튀게 생겼죠. 우리나라 검사와 일본 검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일본 검사들은 수도승 같습니다. 교제를 안 합니다. 판사도 마찬가지고요. 법정과 집만 오락가락하는, 꼭 중처럼 성직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권력은 강하죠. 일본 검찰청에 파견 갔다 온 우리나라 검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가니까 구내식당에서 공짜로 밥 사주는 게 환영회더라.” 한국 검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검사들은 발이 넓습니다. 가면 아는 사람도 많아요. ‘저렇게 아는 사람이 많으면 과연 수사가 제대로 될까? 왜 저렇게 아는 사람이 많을까?’ 젊은 검사를 향해서 나이 많은 총장이나 기업인들이 공손하게 절을 하는 게 왜 그렇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몇 개 기관이 있습니다. 검찰, 국세청, 정보부, 경찰, 감사원. 여기는 견제가 잘 안 되는 기관입니다. 이 기관에서의 부패를 막지 못하면 이번에 설사 보수정권이 되더라도 반드시 5년 내에 극악무도한 좌파들에게 보수 세력이 다시 권력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검찰에 대한 불만, 경찰에 대한 불만, 재판소에 대한 불만, 국세청에 대한 불만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 불만을 선동하니까 좌파 지지로 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고위 공직자의 부정문제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도입하든지 해서 반드시 정리를 해야 합니다. 이것까지 보수 세력이 끌어안고 가다가는 한국이 一流국가도 되지 못하고 다음에 반드시 정권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정권을 가져오는 것은 테러가 없는 한 99%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을 이제 고민해야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보수의 자정운동(自淨運動), 보수의 자기반성입니다. 이것 없이는 김종필(金鍾泌) 총재 식으로 도덕성보다는 유능하니까 누구를 지지한다는, 이런 말로는 이제는 안 먹힐 것입니다. 우리끼리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런 말을 가지고 과연 20대, 30대를 설득하면서 우리가 一流국가로 간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사실 공무원들이 월급을 가지고 살기가 힘들었죠. 그때의 다소간의 부정은 생계형 부정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공무원이 월급 받고 못삽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정은 반드시 가혹하게 단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언제까지 이건희 CEO의 비자금 문제, 이건희 CEO의 상속문제, 그리고 무슨 큰 교회 목사의 아들에 대한 상속문제 같은 것까지 우리 보수 세력이 보호해줘야 합니까?
 
  오히려 이건희씨에게 질문할 게 있어요. 왜 아들 상속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무리를 해서 민폐를 끼치느냐, 보수 세력한테 왜 이렇게 폐를 끼치느냐, 당신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좌파가 얼마나 많이 생기느냐는 말입니다. 왜 세금을 제대로 내고 상속하면 안 되느냐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보수 자정운동은 좌파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하면서 슬기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위태롭게 된다든지 하면 안 되죠. 도끼로 자르듯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메스를 가지고 그 부분만 도려내는 슬기로운 행동을 해야 할 시절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李明博)씨 지지를 선언한 사람 중에서 세 사람이 눈에 띕니다. 김종필(金鍾泌), 김영삼(金泳三), 정몽준(鄭夢準). 김영삼씨는 대통령이 된 뒤 좌파숙주(左派宿主) 역할을 해서 보수를 배신한 사람이죠. 보수 배신자입니다. 지난 10년은 사실 좌파 10년이 아니라 좌파 15년 입니다. 1993년 김영삼 시절부터 한국의 좌경화(左傾化)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한 행동을 리스트로 뽑아왔기 때문에 나중에 한 번 읽어드리겠지만, 좌파가 박수칠 일만 골라서 한 것 아닙니까? 우파를 분열시키고, 金大中을 누가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까? 김영삼이 만든 거죠. 그랬던 사람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합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것도 없죠. 정몽준씨는 기업체 회장입니다. 이 사람은 재벌 2세로 자본주의의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자기 실력으로 현대중공업을 받은 것이 아니고,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왕국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죠. 그러면서 좌파 노무현과 손을 잡고 단일화를 해서 지난 5년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한 것도 못 들었고, 지난 5년 동안 애국단체를 지원했다든지, 애국투쟁 현장에 나와 몸으로 때워서 그동안 잘못했다는 것을 보여준 바도 없습니다. 다시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자기가 참 잘난 사람인 것처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또 누구는 ‘차기 대선 후보다’라는 만화 같은 기사를 쓴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보수 세력이 지금 거명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믿고 따라가는 1990년대 초의 보수 세력으로 환원이 되어버리면, 앞으로의 5년은 찬스가 아니라 위기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위기냐, 기회냐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2002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씨가 지는 것을 보고 제가 기사 제목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역사가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앞으로 5년의 시간을 주었다’ 입니다. ‘5년의 시간동안 한국의 보수 세력이 지금처럼 살찐 돼지 역할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이젠 끝이다, 그러니 이 5년 동안의 한국의 보수 세력이 광화문으로 나가고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야윈 늑대처럼 용감해지고, 사나워지면 5년 뒤에는 찬스가 올 것이다’ 이렇게 썼어요.
 
  다행히 지난 5년 동안 여기 계신 분들 거의 다 참여하셨던 대로 아스팔트에서 열심히 싸운 결과 ‘아스팔트 우파(右派)’라는 말도 만들어졌어요. 최초로 ‘보수 세력이 스스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투쟁 대열에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이런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 세 사람이 누리고 있는 혜택은 사실은 우리 보수 세력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거기에 무임승차 했다고 보면,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니까 조금 잔인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런 면이 있죠.
 
  그렇게 해서 만든 차기 보수정권이 또 다시 김영삼 식으로 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는 것을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되풀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사람들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나고 40년도 안되어서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그 수모를 당하더니 결국 식민지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겪지 않았습니까.
 
  보수 세력이 김영삼 정부가 등장했던 1993년에 했던 실수를 다시 안하려면, 즉 김영삼에게 배신당했던 것처럼 이명박한테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보수 세력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사실은 배신당한 사람이 속이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원래 정치란 것은 속이는 것을 업으로 하니까, 속아 넘어가는 유권자가 더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한 번 김영삼에게 크게 속았으니까, 이제는 이명박에게 어떻게 안 속을 것이냐? 거기에 무슨 장치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2년 12월18일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약 200만 표 차이로 이겼습니다. 충격을 받은 김대중씨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두 달 있다가 런던으로 가버렸습니다. 당시에 민자당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 민자당의 뿌리는 공화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노태우의 민정당 세 개가 합쳐진 보수 대연합(保守 大聯合)구도이기 때문에 굉장히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김영삼씨가 도취되었다고 봅니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고, 국회의 절대다수였고, 또 여론이 최초의 문민(文民) 대통령이 등장했다고 해서 절대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여기에 개혁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서 개혁을 들고 나오니까 박수가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초창기에 지지율이 80%가 넘지 않았습니까?
 
  그때 당시 김영삼(金泳三) 주변에 있었던 사람을 만나보니까, 이제 김영삼이 우리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 대통령이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최고 대통령이 될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보다는 못할 것 같은데…’ 라고 하니까 아니라고 그러더군요. 박 대통령을 능가하는 최고의 대통령이 된대요. 완전히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뭘 했느냐? 취임사에 ‘민족은 이념보다도, 동맹보다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걸 듣고 김일성(金日成)이 좋아했죠.
 
  소위 ‘우리민족끼리’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 아닙니까?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우리민족끼리’라는 것은 ‘남북한이 연방제(聯邦制)로 통일하는 것은 무슨 이념을 가지고 체제를 가지는 것보다도 중요하고, 한미(韓美)동맹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때는 中蘇(중소)동맹 이런 게 다 날아가 버렸으니까 동맹이라는 것은 韓美동맹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장기수 이인모(李仁模)를 북한에 보냈습니다. 국군포로를 데려올 수 있을 줄 알고.
 
  그러면서 좌파 참모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완상(韓完相), 김정남(金正男) 두 사람. 그래서 뭘 했느냐? 한완상 같은 反대한민국적이고, 좌경적 역사관을 가진 참모들을 요직에 썼습니다. 건국 후의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정통성 없는 부끄러운 역사라고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임시정부에서 바로 문민정부로 이어집니다”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건국, 근대화, 민주화를 다 부정했어요. 그래서 소위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한다면서 역대 대통령이 쓰던 청와대 집무실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쓰는 새로 지은 좋은 집무실 말고,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부터 노태우까지 근무를 했던, 마룻바닥이 시끄럽게 삐거덕거리는 옛날 총독부 관저로 썼던 집무실을 파괴했어요.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일본사람이 지었다면서 때려 부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수지 말고 두시면 보존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김영삼(金泳三)이 한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친일파가 있으니까 벽돌 한 장까지도 다 깨부숴야한다”고 했답니다. 어떻게 역대 대통령들이 6․25와 10․26을 겪은 피와 눈물, 땀이 고여 있는 집무실을 일제시절에 만들었다고 해서 부수고, 이전 보존도 하지 못하게 벽돌 한 장까지 다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까.
 
  그 다음에 중앙청을 철거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건물, 가장 역사적인 건물인 중앙청을 없애버렸습니다. 중앙청을 허물었다고 해서 민족정기가 회복되었습니까?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 외인 아파트를 폭파했습니다. 그것도 일요일 저녁에 TV 중계를 통해서 남산 위에 있는 아파트를 폭파시켰습니다. 그걸 보면서 박수를 쳤어요. 제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요. “저거 보고 박수치는 인간들, 우리 국민들이 언젠가는 죄 값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IMF를 겪게 된 것 아닙니까?
 
  6․25는 내전(內戰)이니까 기념할 필요 없다. 따라서 전쟁기념관을 다른 것과 통폐합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예비군들이 들고 일어나서 막았습니다. 내전이므로 기념할 필요가 없다? 이건 완전히 좌파적인 생각이죠. 김영삼도 反자본주의적 언행을 골라서 했습니다. “재산 많은 사람이 고통 받도록 하겠다.” 공직자 재산 등록을 하라고 해놓고는 각 부서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공직자는 무조건 쫓아내버렸어요. 여기 걸렸던 사람이 지금 법무장관입니다. 정성진(鄭城鎭)씨. 당시 검찰의 검사장級인데, 이 사람은 자기 부인이 서민호(徐珉濠)씨 딸이기 때문에 유산이 많아요. 그런데 한 번도 그 땅을 매매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신고해 보니까 제일 재산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표를 냈습니다.
 
  또 박정희 시절에 국회에서 통과시킨 ‘국민교육헌장’을 없애버렸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은 지금 읽어봐도 명문이고, 쓰여 있는 그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걸 다만 박정희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없애버렸어요. 그 다음에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꿨습니다. 왜냐? 국민학교란 말을 일본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대통령이란 말은 일본사람이 만든 말 아닙니까? 민주주의란 말도 일본사람이 만든 것 아닙니까? 자본주의도 일본사람이 만든 말입니다. 그럼 자본주의도 없애버리고, 대통령이란 말도 없애버려야지요.
 
  나중에 보니까 국민학교 명칭 변경운동을 주도한 자가 북한 간첩이었어요. 이것은 언어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북한 공작이 관계되었다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은 왜 국민이나 국가를 부정하느냐? 그 용어가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이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대한민국과 관련된 명칭 중에서 나라 국(國)자를 빼버려서 ‘너희는 집단이고, 미국의 식민지인데 무슨 나라냐’ 라는, 우리가 북한을 상대하는 것하고 똑같은 거죠. ‘김정일 학살 집단이지, 너희가 무슨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냐’하는 식으로. 국민학교 명칭을 없애는 걸로 우리 청소년들의 머릿속에서 국민(國民)이라는 국가 의식(國家 意識)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때 북핵 위기가 터졌습니다. 사실은 클린턴 행정부가 강경책을 쓰려고 했어요. UN 안보리를 동원해서 북한을 경제봉쇄하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삼 정부가 거기에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면 북한을 자극한다고 해서 그것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할 수 없지, 너희들은 비켜라. 내가 북한하고 직접 협상하겠다’ 그래서 1994년에 제네바에서 미국-북한 합의가 나오고, ‘대신 경수로를 지어줘야 되니까 비용의 70%는 너희가 부담해라’ 해서 몽땅 뒤집어씌운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쳤죠.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 남북관계에서의 한국 주도권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노태우 정부시절까지는 항상 ‘남북관계에 미국은 간섭하지마라,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지원만 해 달라’고 해서 미국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까지 ‘남북관계는 남한이 결정하고, 미국은 우리를 뒤에서 지원만 해 달라, 우리를 제치고 미국과 북한이 직접 협상하는 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는 방침이었습니다.
 
  1990년에 가네마루(金丸信)라는 일본의 실력자가 김일성(金日成)과 만나서 日北수교 회담에 합의하고 오니까,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화가 나서 가네마루가 한국에 왔을 때 굉장히 따졌습니다. 그렇게 하면 가만 안 있겠다고. 그래서 취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던 형편에서 김영삼(金泳三)은 미국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트집을 잡다가 결국은 주도권을 놓쳐, 제네바 협상에서 우리가 구경꾼으로 전락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때부터 대북관계에서 종속적인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전교조는 노태우 정권 때 불법화했습니다. 그래서 1000여 명의 교사들을 쫓아냈습니다. 이 전교조의 해직 교사들을 김영삼이 다 복직시켰어요. 김대중 시절에 와서는 드디어 전교조를 합법화 했습니다. 김영삼 본인은 군대도 안 갔지만, 군사문화 매도에 앞장섰습니다. 문민정부라는 아주 못된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문민정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 군인은 정부에 참여를 안 합니까? 무슨 사건․사고만 나면 전부 다 군사문화의 영향이라고 했어요. 서해에서 배가 뒤집혀서 290여명이 죽으니까 내무장관이라는 자가 나와서 ‘군사문화의 획일적인 영향 때문에 이런 사고가 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은 보수 대연합 구도인 민자당을 해체하고 김종필을 추방하고 TK세력을 배제해서 보수를 세 갈래로 나눠버렸습니다. 이것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했느냐? 김영삼씨의 어머니는 북한 간첩에 사살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아버지는 어장을 해서 부자입니다. 일찍부터 한민당에 몸을 담았어요. 한국 보수 세력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공산당과 싸워서 우리나라를 구국(救國)한 장택상(張澤相)씨의 비서를 한 분입니다. 모든 환경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이 사람이 보수 대통령일 수밖에 없는데, 단 하나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어요. 공부가 없었지요. 공산주의를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머리에 좌파의 영향력이 먼저 들어왔어요. 그것은 바로 역사관을 타고 들어옵니다. ‘한국의 지나간 역사는 엉터리다, 독재자들이 만든 것이다’ 이렇게 부정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역사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명박씨가 과연 제2의 김영삼이 될 가능성이 없느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지금까지 이승만 대통령 묘소에 가서 한 번도 참배한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많이 권했습니다. 8월15일에 가서 한번 연설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절대로 안갑니다. 절대로 가야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의 보수 후보는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결정을 하면 우리 한국 보수세력의 아버지의 이승만․박정희 두 사람에게 신고를 해야죠. 이왕 국립현충원에 갈 바에는 100m만 더 걸어 올라가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 그것은 ‘나는 이승만․박정희 노선과 거리를 두겠다’는 거죠. 그 생각 속으로 좌파가 들어오는 겁니다.
 
  역사의 평가에 맡겼어야 할 12․12사건과 광주사태를, 그것도 공소시효가 다 끝난 사건을 소급입법(溯及立法)으로 재조사해서 관련자들을 다 감옥에 집어넣고,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고,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까지 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사람이 김영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 할 때 우리 선거 사상 가장 많은 돈을 썼습니다. 4000억 정도 썼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10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받았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에 민자당을 탈당했죠.
 
  1995년에 박계동(朴啓東) 의원이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니까 김영삼(金泳三)이 나와서 "나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오니까 금고가 하나 있었는데, 왜 금고가 있어야 되나 싶어서 다 부숴버렸다" 이렇게 자랑을 했습니다. 실상은 뭐냐?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할 때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으로부터 약 500억 원의 비자금을 인수받았습니다. 나갈 때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대충 그 액수의 비자금을 금고에 집어넣어 주고 나왔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수사로 구속되던 바로 1995년, 1996년에 김영삼은 뭘 했느냐? 간첩 잡으라고 쓰는 안기부의 돈에서 1000억 원을 빼내서 신한국당의 총선에 썼습니다. 이것이 ‘안기부 돈이 아니고 대선 잔금(殘金)이다’ 하는 설이 있으나, 안기부 돈이 맞을 거예요. 상상이 되십니까? 한 쪽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을 비자금으로 감옥에 집어넣고, 다른 쪽에서는 (이것은 기업 돈이 아닙니다, 국가 예산입니다) 안기부가 가지고 있는 국가 예산 1000억 원을 빼내어서 여당 총선 운동에 써먹었습니다. 김영삼이 퇴임 후에 구속 안 된 것은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피차간에 약점이 많으니까 안 된 거죠.
 
  일본을 향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IMF 때 긴급지원을 해달라는 김영삼 정부의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해서 한국이 IMF관리 체제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일본이 김영삼의 버르장머리를 조용하게 고쳐버렸죠. 더 한심한 것은 퇴임 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와세다 대학인가 어디로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할 게 뭐가 있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의 말솜씨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 갔다 온 재일교포들이 창피해서 못 있겠다고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지은 중앙청도 때려 부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한 사람이 왜 일본에 가서 몇 십 명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까? 이런 국가적인 창피가 어디 있어요?
 
  원래 자존심이 없는 인간이 위선적인 선동에 잘 넘어갑니다. 자존심이 뭐냐? 대통령의 자존심은 깡하고는 다른 거죠. 배짱하고는 다른 겁니다. 그 자존심은 이론적인 정리가 되어 있어야하고 민족주의적인 열정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정의감과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씨는 이인제씨가 경선에 불복하여 탈당하고 출마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1997년, 선거 직전에 김대중(金大中)씨 비자금 사건이 터졌습니다. 김대중이 비자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썼다는 것을 신한국당에서 폭로했습니다. 그것을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에게 김영삼(金泳三)씨가 수사하지 말라고 지시를 했어요. 말하자면 노무현(盧武鉉)이 BBK 사건을 수사하지 말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죠. 그래서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선거 전에 김대중씨가 비자금을 만들어서 친족끼리 어떻게 썼다는 것을 공개했으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겠습니까? 김대중을 만든 사람은 김영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실명제로 묶어 놓고는, 자기 아들은 실명제 위반을 하도록 방치하다가 결국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죠.
 
  요약하면 ‘부정적 역사관에 빠져서 보수 세력을 배신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선배들을 욕하고 돌아다니다보니까 결국은 보수를 분열시켜서 자신의 지지기반인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작살내면서 좌파들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자기가 쫓아낸 JP가 김대중 쪽으로 가서 좌파 10년을 열게 했다’ 이게 김영삼씨가 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1992년 12월에 김영삼이 200만 표 차이로 당선 되었을 때는 모두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드디어 민주투사 손에 정권이 넘어 갔다, 정의로운 일이다, 과거 군사문화시절의 권위주의적인 일이 이제는 없어질 것이다, 민주주의이 새 시대가 열렸다, 잘 하면 우리가 이제는 민주 국가로 갈 수 있겠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김영삼씨가 배신한 거죠.
 
  배신당한 우리가 잘못한 게 많죠. 지나고 보니까 ‘오히려 1992년에 김대중이 당선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대중이 당선되었으면 그때만 해도 보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뒤에 6․15 선언 같은 반역적인 행동도 못했을 것이고, 짧게 좌파 열병을 앓은 다음에 다시 보수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완전히 역사의 가상(假想)인데 배신을 당하니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보고 (가능성이 95% 이상이니까)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가는 길은 세 갈래입니다. 하나는 제2의 김영삼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2의 닉슨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제2의 레이건이 되는 거죠. 레이건이 되느냐, 닉슨이 되느냐, 제2의 김영삼이 되느냐.
 
  두 사람은 차이점도 있고, 공통점도 있어요. 두 사람 다 독실한 기독교 장로입니다. 두 사람 다 큰 표 차로 당선될 것임에 틀림이 없죠. 그러나 오만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왕입니다. 역사․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다면 아르헨티나의 전통과 역사 속에서의 인물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적인 대통령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면 조선조,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권위주의적․유교적․가부장적인 대통령이 되는 길을 걸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대통령직에 오르기만 하면 주변이 아부族들로 둘러싸입니다. 한국 사람들 아부하는데 선수 아닙니까? 여기에 둘러싸이면 좋은 소리만 듣습니다. 하루 종일 있어도 ‘각하 잘못하셨습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안들을 거예요. 그런데 신문을 보면 비판이 많으니까 ‘나한테 보고는 근사하게 들어오는데, 신문기자들이 나쁜 놈들이구나’ 해서 신문을 안 보게 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신문을 안 봤어요. 밑에 사람들이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고 타자를 다시 쳐서 올리는 보고서를 보고 세상을 알았습니다.
 
  신문을 보는 것과 보고서를 보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신문에서 어떻게 다루느냐, 제목은 어떻게 나와 있느냐 이런 것을 봐야지요. 9시 뉴스를 많이 봤다고 해요. 9시 뉴스야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항상 대통령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좋은 이야기만 나오죠. 그러니까 사람 생각이 달라져 버립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의무적으로 비판만 하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잘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통령 잘못한다는 이야기만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이 한 사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둘 수 있는 대통령 같으면 절대 큰 실패를 하지 않죠.
 
  가톨릭에 이런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성인(聖人)을 지정할 때 그 성인의 나쁜 점만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전담으로 둡니다. 그것을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어떤 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즉 악마의 대변자를 하나씩 두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사실은 이렇게 사생활이 지저분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두고 그 의견까지 참고해서 성인으로 결정합니다. 그 역할을 데블스 애드버킷이라고 하지요.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런 간언, 나쁜 말,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남의 말을 잘 들었던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이 사람이 남의 싫은 소리도 의외로 잘 들었어요. 그러다가 말년에 가면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합니다. 특히 유신 이후에. 그 전에는 그 사람 앞에서 책상을 내리치고 대드는 사람도 있었어요. 의외로 박 대통령의 전반기는 상당히 민주적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이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었습니다. 부하가 하는 시원찮은 말도 끝까지 다 들어주는, 이런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도 말년에 가니까 결국은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면서 독재화되고, 10․26 쪽으로 갔습니다.
 
  이명박씨, 김영삼씨 둘 다 안보(安保)나 이념문제의 중대성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는 좌경적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가 있어요. 지금 거리에 붙어있는 이명박씨의 구호를 보니까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경제 대통령’ 이렇게 되어있어요. 경제란 말이 두 번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함정이 된다는 거죠. 대통령은 무조건 안보 제일주의여야지요. 경제를 할 것 같으면, 안보도 하나 끼워 넣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제도 중요하고 안보도 중요하게 생각하면 될 텐데,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여기에, 좌파 이념이 끼어들 소지가 있다는 거죠.
 
  차이점도 있습니다. 이명박씨는 큰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서울시장 시절에 행정능력을 평가받았어요. 김영삼씨는 그런 생산적 조직 운영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입니다. 또 이명박씨는 명분론(名分論)을 싫어하고 실용주의(實用主義)를 상당히 좋아해요. 김영삼씨는 거의 명분론의 포로가 되었죠. 또 이명박씨는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런 현대사 부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데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와 만나서는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지금 김영삼 대통령은 서민들, 민중, 이런 사람들 의견을 중시해서 나라를 끌어가려고 하는데, 자기가 회사 경영을 해보니까 말단 직원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면 망하더라. 간부 의견을 중시해야 그 회사가 잘 되는 것 아니냐?”
 
  제2의 닉슨은 뭐냐? 특검이나 과거의 거짓말이 재발해서 다음 총선에서 참패를 하는 길이 바로 제2의 닉슨이지요. 그리고 닉슨은 미국에서 보수 후보는 보수 후보인데,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보수층이 등을 돌려버렸어요. 닉슨은 지적으로 가장 뛰어난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거짓말 때문에 사임하게 되었죠. 공직자의 거짓말을 공직자의 부정부패보다 더 심하게 다루는 분위기에 희생된, 어떻게 보면 참 아까운 사람이죠.
 
  닉슨은 1974년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후에 말년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산주의를 무너뜨릴 것인가에 대한 책도 많이 썼고, 레이건 대통령이 이 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하죠. 닉슨은 물러난 후에 오히려 상당히 복권(復權)된 분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여기서 여러 번 설명했지만, 진정한 보수지도자였습니다. 진실되고, 정직하고, 유머감각이 있고, 신념이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보수 세력이 갈 수 있는 세 갈래 유형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정치나 혹은 그 무엇이든지,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을 너무 믿어버리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렵죠. 믿는다는 것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사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는 하지 않아야 할 입니다. 다만 그 사람의 정책을 찬성한다, 반대한다고 해야지요. ‘나는 이명박을 믿는다, 이회창을 믿는다, 노무현을 믿는다’고 되어버리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하는 거짓말까지도 믿게 됩니다. 그러니까 유권자는 정치인을 믿어서는 안돼요.
 
  인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내 자신도 못 믿는데 남을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항상 좋은 일만 한다고 해서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판단하는 것이 항상 옳다고 믿을 수가 있습니까? 하물며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귀재들인 정치인을 어떻게 믿습니까? 절대 믿어서는 안돼요. 다만 그 사람의 정책을 시시비비(是是非非)로 판단해야 합니다. 노무현 같은 이상한 인간도 FTA를 할 수 있어요. 노무현이 나쁘다고 해서 FTA도 반대해야합니까? 그건 아니죠. 따라서 우리는 是是非非를 가리되 인간을 두고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 하나하나를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사항별)로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이야 상식으로 받아들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충분한 민주주의 교육과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을 먼저 믿어버립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먼저 결정해버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거기에 끼워 맞춥니다. 일단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면 그 사람이 나쁜 짓한 것은 무시해버리고, 좋은 일 한 것만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분석이 되지 않게 되죠. 그렇게 되면 정치인에게 딱 속아 넘어가기 좋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영삼한테 속았죠. 그래서 다시 속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람 보는 눈을 바꿔야 됩니다.
 
  ‘정치인이 잘 해주겠지, 우리가 뽑아주었으니까. 김영삼은 보수 세력의 지지로 당선이 되었으니까 설마 보수 세력을 배신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정치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거죠. 그렇게 되면 위험합니다. 인수봉을 오를 때 새끼줄 하나를 가지고 오르는데 중간이 썩어 있었다면 도중에 내려가지도 못하죠. 그러니까 줄을 두 개쯤 가지고 올라야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견제장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견제장치, 즉 이명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국회, 이명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좌파가 아닌 보수 야당이 있어야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견제(牽制)와 경쟁(競爭)의 구도죠.
 
  지금 한국의 보수층은 이회창씨 출마 후에 상당히 기분 좋은 점도 있을 거예요. 이제는 골라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생겼습니다. 상품이 하나면 이게 불량상품이라도 무조건 사야 되는데, 상품이 두 개가 되었습니다. 보수 일당보다는 보수 양당(保守兩黨)으로 가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이명박씨를 보면 이회창 등장 이후에 그래도 남북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정리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새 토론회에서 보면 남북관계에 대해서 과거보다는 훨씬 더 정리된 이야기를 합니다. 그건 이회창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의식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경쟁의 수확이죠. 인간이란 것은 경쟁자가 있어야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저도 기자생활을 하면서 경쟁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부 기자는 주로 특종을 많이 해야 하는데, 살인사건이 나면 그걸 먼저 보도하고 범인이 잡히면 먼저 보도해야 하죠. 어느 경찰서에 출입하는 기자가 10명인데 그 중에 2명 정도가 굉장히 열심히 하는 기자다, 그러면 ‘나는 더 열심히 해야지, 그 기자가 아침 6시에 나오면 나는 5시 반에 나와서 경찰서를 한 바퀴 돌고, 시간 있으면 파출소까지 간다’ 이렇게 생활을 해왔어요.
 
  제가 잡지기자를 할 때에는 신동아가 월간조선보다 앞서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월간조선을 신동아보다 많이 팔리는 잡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1990년대 초에 가니까 월간조선이 신동아보다 많이 팔리게 되었죠. 그러면 신동아는 가만히 있습니까? 그쪽도 또 열심히 하고. 월간조선 하나만 있었으면 아마 판매부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겁니다. 그러나 신동아라는 경쟁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양쪽이 다 잘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도 이렇게 두툼한 잡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월간조선과 신동아가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이 왜 저렇게 되었느냐? 경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을 견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렇게 망조(亡兆)로 가버렸죠. 따라서 이명박씨가 잘해주길 바라면서 기도할 게 아니라, 이명박씨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 견제할 수 있는 선명 보수당을 만들어야 됩니다. 경쟁만 붙여놓으면 그 다음에는 경쟁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견제와 경쟁의 구도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가 일일이 이명박 말하는 것을 밑줄 쳐가면서 욕 할 필요도 없이 그 역할을 야당이 대신해줍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이회창 야당총재의 구조로 이뤄진다면 이게 보수층으로서는 훨씬 더 좋은 거예요.
 
  지금 구도는 다행히 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모르죠, 또 이회창씨가 정계 은퇴한다고 할지도. 저는 이회창씨가 양심이 있으면 20% 정도를 받아서 2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정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보수 정당, 선명한 정당을 만들어서 누가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잘하느냐 하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경쟁을 하지 않으면, 그런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명박의 한나라당은 반드시 김영삼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저는 90% 이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한국의 보수 세력에 있어서는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는 거죠. 하나는 좌파정권 종식(終熄), 그 다음에 여력이 있으니까 지지율 20%를 떼어줘서 이회창씨가 2등이나 3등을 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선명 보수정당을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쪽으로 흐름이 전개가 되면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에 속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보는 저의 기본적인 생각인데, 다행히 그동안 애국 운동 세력의 노력에 의해서 한국 보수 시장이 놀랄 정도로 굉장히 커졌습니다.
 
  그래서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60%, 정동영 18%, 권영길까지 합쳐야 겨우 20%, 문국현이란 사람까지 합치면 28%. 단일화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단순하게 합쳐지지는 않죠. 현재 계산으로는 어떤 수학공식을 동원하더라도 이명박 후보가 떨어질 수 없는 구조가 되었고 앞으로 11일 사이에 이런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회창씨의 출마 이야기가 나온 10월 하순부터 지금까지 약 40일 동안 이 여론구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테러만 없으면 앞으로 10일 사이에 별로 바뀔게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안심하시고 지금 지지하는 사람을 그냥 지지하시면 큰 변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수 자정운동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요새 한국 애국세력들이 만들어낸 말이 하나 있어요. ‘아스팔트 우파(右派)’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투쟁하는 우파가 생겼습니다. 굉장히 소중한 거죠. ‘보수 세력도 이제 싸울 줄 아는구나’ 하는 인식이 생겼고, 그게 좌파들에게 전염이 되었죠. 좌파 매체에 있는 친구들이 가끔 저에게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좌파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우리를 굉장히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컨대 무슨 집회를 합니다. 좌파를 총동원한 집회를 한다고 하는데 많이 모여 봐야 1만 명쯤 모이고 지난 토요일에는 2000~3000명밖에 않았어요. 좌파세력의 대중 동원력이 이제 보수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원래 보수 세력은 거리에 나오는 세력이 아닌데, 거리에서까지도 좌파가 밀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용기를 가지시되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여유가 있을 때 개혁을 해야 합니다. 힘이 부칠 때 개혁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반드시 큰일이 납니다. 고르바초프가 왜 망했습니까? 소련이 망할 때 개혁을 했기 때문입니다. 망할 때는 절대 개혁을 하면 안 되고, 그냥 웅크리고 있어야 합니다. 망할 때 개혁을 하니까 날아가 버렸습니다. 김정일이 개혁을 못하는 이유도 그겁니다. 지금 망하고 있으니까, 개혁을 하면 더 빨리 망할 것 같거든요. 우리 보수 세력은 지금 압도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이게 기회입니다. 이 기회에 보수 세력이 정직해져야 합니다. 청렴해져야 되요. 다음으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용기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직하고 청렴하고 겸손하고 용감해지는 것. 이것을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한테 주어진 5년의 시한일 거예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 2002년 12월19일 밤에 50만 표 차이로 노무현이 당선되었다고 했을 때 좌파들이 얼마나 기고만장 했겠습니까? ‘이제 우리 세상이다, 친북(親北)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 사회도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겠다, 양극화 문제도 단칼에 해결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망한 것 아닙니까? 그런 오만 때문에 망한 거예요. 지금 한국 보수 세력이 경계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좌파는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좌파에게는 수법이 거짓말밖에 없어요. 거짓말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수 세력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보수 세력의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왜냐? 보수 세력은 주인이기 때문에. 아들, 딸은 소매치기도 할 수 있고, 거짓말도 할 수 있고,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까지 그렇게 하면 그 집안이 어떻게 되겠어요? 보수 세력은 대한민국의 주인이에요. 대한민국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은 머슴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과 같을 수 없죠. 거짓말은 좌파에게는 변명이 되지만 보수 세력한테는 용납이 안 됩니다. 하려면 들통이 안 나도록 좀 기술적으로 하든지.
 
  이렇게 잘 사는데 왜 뇌물을 받아야 됩니까? 이제는 권력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가난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국회의원들 거의 대부분이 택시타고 다닙니다. 운전하는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어요. 지하철타고, 택시타고 다닙니다. 지금 일본에서 방위청 차관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최근 몇 년 동안에 가장 큰 오직(汚職)사건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뇌물을 얼마나 받았냐? 골프접대를 받은 겁니다. 골프장에 나가서 자기 돈을 안 썼다는 거예요. 그걸 가장 큰 뇌물 사건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 부패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죽었다 깨어나도 一流국가가 못됩니다.
 
  아시아는 원래 부패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情이 강하기 때문에, 또 친구간의 의리 때문에, 문상 오면 돌아갈 때 차비라도 주는 이런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있기 때문에 이걸 두부 자르듯이 딱 자르기가 참 힘들어요. 그러나 해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부패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세 나라입니다. 일본, 싱가포르, 이스라엘. 대만은 해결하나 했더니 요새 민주화 되면서 또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일본은 무사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부정부패하다가는 목이 달아납니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엄벌주의로 나가죠. 또 이스라엘은 신앙적인, 기독교적인 기초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돈 버는 사람은 돈 벌이를 목표로 해야 해요. 그러나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가난할 각오가 없으면 권력을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1인당 GNP 랭킹은 세계에서 35등이고, 부패지수 랭킹을 대면 40등쯤 됩니다. 칠레라는 나라는 우리보다 1인당 GNP가 낮은데, 부패지수는 굉장히 높아요. 선진국입니다. 깨끗한 나라로 20등쯤 되요. 그래서 칠레가 남미에서는 일류국가 대접을 받고 있고, 칠레사람하면 그 생각이 머리에 박혀서 존경스럽게 보입니다. 반대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잘 살긴 잘 사는데 부패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우리보다도 뒤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은 과거 로마시대, 르네상스 시대 때 인류 문명의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부패문제를 해결 못하고 마피아가 활개를 치는 바람에 별로 존경심이 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찬스가 왔어요. 이것은 제도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저는 김영삼 정부가 이 찬스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부가 등장하자마자 나를 포함해서 우리 정치인들이 과거에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느냐? ‘나도 선거 때 이렇게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절대 안하겠다. 앞으로 하면 무조건 사형이다, 공무원 부정은 대만식으로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다’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대만이 그런 식으로 상당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장개석(蔣介石)이 모택동(毛澤東) 군대에게 쫓겨서 대만으로 와보니까 ‘우리가 모택동 군대에게 진 것은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뇌물을 받아서 걸리면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입니다. 자기 며느리가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자살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장개석도 하는데 왜 우리가 못합니까? 옛날에 이런 농담도 있지 않았습니까? ‘저거 장개석 군대 아니야?’ 하는 부정부패한 군대. 모택동 군대는 깨끗했기 때문에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보수 세력이 다시 되찾게 될 천하를 놓치지 않을 방법은 정직하고 청렴하게 하는 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이냐, 여기에 슬기를 모아야 됩니다.
 
  이걸로 결론을 내리고 오늘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7-12-13, 17:05 ] 조회수 :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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