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 21이 박근혜에게 당을 이끌어 달라고 했더군.
박근혜 당대표의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에 이 요구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
우선 민본 21의 정체부터 알아야지.
민본 21은 한나라당내 14명의 초선으로 이루어진 소장파 그룹이야.
이름을 다 알 필요는 없고 유감이가 형님으로 모신다는 권택기가 있고 정태근이 있어.
대충 어떤 성향인지 감이 잡힐거야.
원조 소장파인 남원정이 3선 이상의 중진(?)이 되다 보니 말 그대로 신입생들이 소장파의 맥을 이어가는 거지.
소장파란 이름표를 달면 3선까진 공짜로 올라가는 모양이지?
소장파란 이름은 역시 벼슬인 모양이야.
민본 21에 가입하는 것도 힘든 모양이니.
그런데 그런 민본 21이 뜬금없이 박근혜에게 당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어 주십사 하는거야.
게다가 이재오는 당대표에 나오지도 말라면서.
이거 뭔가 좀 요상한 것 같아.
민본 21이 당대표 나오세요 하면 박근혜가 나올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정중하게 요청해도 어차피 안 나올 거니까 한번 구색을 갖춰 본걸까?
그들의 본심을 알려면 지금의 정국 상황과 한나라당의 상태를 먼저 알아야지.
정국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지.
조문 정국의 불씨가 언제 터지느냐는 것만 남았어.
정국 혼란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대통령이야.
그런데 이명박은 마이웨이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지.
책임 지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아예 책임이 뭔지 조차 모르는 것 같아.
그런 와중에 형님은 거의 은퇴에 가까운 2선 후퇴를 선언했어.
정치 현안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거야.
정부나 한나라당 내에서 형님의 힘이나 위상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힘의 공백이 생겼어.
형님의 후퇴로 한나라당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데 이 힘의 공백을 누군가는 메워야 하지.
일단 민본 21은 이 힘의 공백을 박근혜에게 메워 달라고 요청한거야.
만일 이들이 정말로 박근혜가 당대표를 맡을거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무엇을 노렸을까?
우선 박근혜가 당대표를 맡는 순간 이명박의 모든 잘못은 그대로 묻혀 지면서 면죄부가 발부되는 거야.
이명박의 잘못은 모두 박근혜의 한나라당으로 이관되는 거지.
결국 박근혜가 십자가 지는거고.
당 쇄신이니 조기 전당대회니 하는 말들은 모두 당의 변화를 모색하는 듯 하지만 실은 당의 잘못을 부각시킴으로 해서 이명박에게 쏟아지는 화살에 어느 정도 물타기를 하고 있는 거야.
박근혜가 당대표를 맡아 주기만 한다면 일거에 모든 시선은 박근혜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다른 잘못은 다 묻혀 버리는 거고.
게다가 앞으로의 선거에서 엄청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거지.
설마 박근혜가 당대표 하면서 선거를 나 몰라라 하겠어?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의원들 입장에선 꿩먹고 알먹는 방법이지.
그랬다고 물론 당을 통째로 박근혜에게 바친다는 건 아니야.
박근혜는 당대표일 뿐 당직과 하부조직을 친이가 모두 장악하면 박근혜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쪽수로야 이미 증명됐듯이 아직은 친이라는 거니까.
역시나 또다시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써먹겠다는 거지.
그렇다면 박근혜가 당대표를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왜 그런 제안을 했을까?
형님이 물러나고 박근혜까지 침묵을 지키면 한나라당의 힘의 공백을 메울 사람은 자연 이재오밖에 안 남지.
이재오를 먼저 거론하지나 속이 들여다보이고 명분도 안서는 일이기 때문에 우선 박근혜에게 정중하게 제안을 하는 거야.
물론 안 받는다는 확신이 있었을 거고.
안 받으면 박근혜가 안 받은 거니까 명분이 서는 일이지.
더구나 이번엔 당대표야.
박근혜가 거부하면 힘의 공백을 자연히, 또 아무 저항 없이 이재오가 밀고 들어온다는 거지.
친박계에서 쇄신이니 전당대회니 하는 게 모두 이재오 복귀를 위한 꼼수라고 하는 게 그런 이유지.
따라서 박근혜에게 당대표를 제안한 것은 양수 겹장이야.
받으면 책임론에서 벗어나는 거고 안 받으면 한나라당은 자연 이재오가 차지하게 되니까.
당대표를 제안한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박근혜 지지자들 일각에서 거세게 분출되는 분당론 때문이야.
이 분당론이야 말로 한나라당, 특히 친이계에게는 쥐약이야.
분당 하는 순간 친이는 다 죽는거니까.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아니라 친이 몰살 시나리오지.
요 며칠 분당론이 들끓자 한나라당 내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면서 위기감을 토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지.
들리는 말로는 쇄신위를 맡고 있는 의원 하나가 안면 있는 논객에게 세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서 분당론의 진의가 뭐냐? 박 대표의 의중이 들어 있는거냐?를 물었다더군.
박근혜의 의중이 들어 있을 리가 있겠어?
우리도 양수겹장의 제안인 셈이지.
분당하면 좋고 안 해도 분당론 자체만으로도 지금처럼 친이들 등골이 오싹해 질테니 이 더운 날 얼마나 좋은 보시냔 말야.
분당론은 친이들로서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지.
이곳을 건드리자마자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건 역시 아프기 때문이야.
다 죽었다 생각만 해도 환장할 노릇이지.
박근혜는 절대 분당 안한다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친이들은 경우의 수 계산으로 골이 빠개질테니까.
안 그래도 어려운데 분당까지 신경 쓰다 보면 당 장악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게 아마 당대표 추대론일거야.
어쨌든 박근혜가 다시 당대표를 맡는다면 이번에는 절대 분당은 없다고 마음 놔도 될테지.
설마 당 대표를 두 번씩이나 하면서 분당할 수 있겠냐는 배짱이 깔려 있는 거니까.
아, 물론 민본 21이 진정으로 박근혜가 아니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어렵겠다, 그래서 이명박은 당에서 손 떼고 이재오는 엎드려 있어라 했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권택기가 진심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면 유감이한테 술자리에서 싸대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군.
난감한 일이야.
그래서 그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봐주기가 어렵겠어.
어쨌든 당대표 제안은 한나라당내 그 어떤 그룹이 내놓은 제안보다 알맹이가 있었어.
그러나 그 전제를 빼면 안되지.
이명박은 당에서 완전히 손 떼고 모든 당직자들은 일괄 사퇴해서 당대표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는 거야.
그래도 박근혜가 당대표 맡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 시점에서 굳이 총대를 맬 필요가 있느냐는 거야.
안상수가 원내대표 출마하면서 뭐라고 그랬어.
주류가 책임지고 정국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자꾸 박근혜를 걸고 넘어 지지 말고 주류가 알아서 끌고가 봐.
힘 있는 주류가 뭐 때문에 망설여?
그냥 마음대로 이재오로 밀어부쳐.
당당하게 이재오를 당대표 만들고 이재오 지휘 하에 재보선도 치르고 지방선거도 치러.
그래서 이기면 박근혜를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
지면?
그땐 다 내놔야지.
그럴 배짱 없이 당을 장악하고 정국을 이끌어 가려고 했나?
당은 친이가 장악해서 알맹이 다 빼먹고 정국은 박근혜가 뒤치다꺼리 하면서 친이들에게 봉사 좀 해라?
그런 심뽀들이 괘씸하니까 분당론을 주장하는 거야.
박근혜에게 당대표 해 달라는 것보다 나가달라고 하는 게 더 진정성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이재오에게 맡겨.
그게 한나라당이 망하는 지름길이니까.
한나라당이 망해야 분당을 하든 당을 접수하든 빨리 결판을 내지.
성의는 갸륵한데 아마 박근혜는 당대표 같은 건 이미 마음에도 없을거야.
왜냐고?
당대표 되면 때때로 이명박과 마주 앉아야 할텐데 그게 좋은 일 같아?
나 같아도 싫을 것 같군.
그러니 아예 당대표 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 게 좋을거야.
지금 세상에 이명박과 마주 앉다니.
죽기로 작정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냥 알어서들 하셔.
우린 당대표 같은 거 관심 없으니까.
근혜 신당 창당이라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