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새침때기로 보여~.’
뭐야? 또 똑같은 대답. 그럼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는 뜻이겠지······.
도대체가 이 새침때기 얼굴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얼굴은 늘 그렇다는 표시를 낸다.
그래서 더 발버둥 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전 절대 남들이 말도 못 붙일 정도로 톡톡 튀는 성격이 아니에요.
바보같이 일부러 웃기도 하고, 쓸데없이 남의 대화에 기웃거리며 떠들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수고한 보람도 헛되이 이내 나는 새침한 얼굴이다.
큐 사인만 나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조건에 맞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따뜻하고 여린 마음은 어디에다 숨어버리고······.
이런 나를 낳으신 우리 엄마, 생긴 모습과 더불어 가늘고 고운(?) 목소리도 닮았다.
우리 아이들은 나랑 내 동생이 빼다 닮았다고 난린데 그럼 우리 세 여자가 모두 새침한 얼굴로 닮아버렸다는······?
당연히 원조는 엄마다.
여린 가슴에 눈물 많고 많이 아파하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서툰 우리 세 여자.
이 새침때기 원조님께서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하신다.
왜요?
응, 입안이 헐었는데 몇 달 동안 낫지를 않네?
당연 이 시점에서 내가 화를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병원 간다고 하시고선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있다. 민간요법을 찾아 삼만 리를 헤맨다는 것이다.
그 동안 병원에 가서 꾸준하게 치료받지 않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니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같이 가요. 경대병원에 구강내과가 있는데 거기는 입안에 생긴 질병은 다 전문적으로 보니까 좀 나을 거예요. 갈 때까지 기다리세요.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전, 다래 입안에 생긴 점액낭종과 혀 밑에 있던 콩만한(?)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경대 구강내과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레이저로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구강내과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의기양양했고 벌써 치료가 다 된 것처럼 내 목에 힘이 들어가 있다.
더 이상 딸에게 혼나기 싫은 원조님은 집 앞까지 온다는 말에 일찍부터 도로가에 나와 조용히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를 모시고 경대병원 응급실을 통하여 들어가는데 불쑥 들릴 듯 말 듯 말씀하셨다.
“꼭 35년 만이다. 니 아부지 그렇게 보내고······.”
그랬다.
많은 세월동안 엄마는 이 병원을 한시도 잊지 않고 계셨다. 잊지 않았으나 말씀도 없었다.
머리 수술만큼은 경대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주위의 말도 묵묵부답으로 감당하고 계셨다.
“경대병원 의사들 다 바보야~.”
4남매의 우리들에게 언젠가 딱 한 번 그러시고는 그 원망과 분노를 또 속으로 잠재우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엄마 마음속에 그렇게 오랜 분노가 숨어 있는 줄 모르고 자랐다. 당신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이 되고 싶은 까닭에 혹시 알아도 아는 체를 못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죽어도 이 병원을 용서할 수 없어 당신 스스로 고립시키고 있었다. 속으로는 ‘경대병원 의사들 다 바보야~.’ 라면서······.
커오면서 자연스레 경대병원은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지 못했다.
혹시라도 이용하면 배신자라고 식구들이 욕을 퍼부을 것만 같아 문병이라도 가기 싫었다.
다행이 여기에 문병 올 일은 좀체 없었는데······.
우리 아들 다래가 아프니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저 지리적으로 이곳이 제일 가까웠고 세월이 흘렀음으로 의사들도 많이 똑똑해졌으리라 여겼다.
다래 데리고 이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나에게 아무 말씀도 없었다.
‘너는 니 아부지 보낸 그 병원에 가고 싶냐?’ 그렇게 원망하실 것 같은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나도 뭐 솔직히 별로 안 오고 싶은 마음을 엄마도 아실 것 같았다.
잘난 아들 덕에 나는 차차 이곳과 화해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지금은 아픈 기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하지만 35년간을 당신 마음에서 철저히 무시한 이곳을 딸과 함께 큰 병도 아닌 ‘편백태선’이란 입병 때문에 들락거리게 될 엄마는 나처럼 화해를 시작할 수 있을까?
가슴에 남아있는 원망과 회한이 너무 깊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
내가 내 아들 넘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이곳으로 왔듯이, 엄마도 잘난 딸년 때문에 못이기는 척하고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셨다.
만남에도 헤어짐에도 운명은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운명이었거니 그렇게 생각하시고 이제 그만 엄마도 마음의 짐을 풀고 용서하고 홀가분히 이곳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07년 1월 6일
멋진윤 서.
첫댓글 저도 단우님 처음 봤을 때 새침때긴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이데요.. , 단우님! 글 진짜 잘쓰십니다요!!!!! '우리집도 파랑새다 2' 는 안만케도 장단우님이 출판기념회 하시야 될 것 같네요~, 대장님은 파랑새1권, 장단우님은 파랑새2권, 다래는 파랑새3권, 바다는 파랑새4권, 그라마 아마 대박일깁니더, 방송 출연도 하고. 내 기획력 좋지요~~
그 아부에 홀라당 넘어가 책낸 사람은 한 사람으로 충분하지요^*^ 가산탕진입니다요..
낄낄. 맞아요. 글쓰기를 통하여 먼저 나자신과 화해를 하죠. 내 속에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끄집어 내서 밝은 햇살을 비추어줍니다. 그러면 상처는 꽃이 됩니다. 장윤자 화이팅!
히야~ 좋은글이다.내 속의 상처를 보고, 끄집어 내고, 햇살 비추고, 그래서 상처가 꽃이 되는 좋은 말. 이제 내 가슴에는 꽃으로 불타오르겠다.
이젠 참새 나오것다 요 ^^^
헤헤 단우님 와그리 웃겨요?~ 참새는 커녕 가짜새도 안됩니더.
나도 그병원 그다지 좋은기억 갖고 있지않지만 세월이 약이됍디다. 그라고 새침데기 절대아닌데....쪼~옥 바로 알면........
맞죠? 새침때기는 무신.. 지 성질대로 하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