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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州李氏 上代 先系圖
(기미보 및 복암선고의 금고정보도 의거, 대수는 개인 의견)
남원 세적과 성보에 전래 되는 각 시조 둔촌공, 십운공, 율정고으 석암탄 공,
이상의 우리 광이 4대 명휘 할아버님의 선계先系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아래에 게시된 원 비조님 諱 자성 할아버님으로 부터의 世數는
개인 연구 의견이며.대종중과 종회는 廣陵 3익 할배님부터 世數로 칩니다
*자성족및 자선李족의 태동...기원전 2세기경 신라 서라벌 지역
할배님 자성/자성족의 족장으로 전래 되신 분
부족의 이름과 족장의 이름은 같다는
(國名과始祖名.부족 명과 부족 장 이름은 같다) 자선족의 장.
내내 전래된 이름 래도來途 북방 기마계.철기 족 초기 서라벌과 아라가야 역域과 칠토 지방에 세거
이후 신라 서남부에 세거, 자성족을 이룸, 기원 1세기경 이자성 李自成 이사금(옛날에는 부족장의 칭호를
니사금이라 왈.니사 금.님금=님=임금=이사군. 주로 씨족의 장을 일컬은 우리말,계승의 님. 초기 부족長의 칭호.
(1) 始祖 李自成 할아버지 자성시대, 초기신라의 부족의 수장으로 내사령,
신라 내물왕 이전부터 군집 주거해온 셔블 서남부일대 호족의 후예 이며
초기 신라시대 내령=내사령에 벼슬에 이르신 분으로
(신라 셔블 諸족에 의해 내물왕조 내령= 이사금으로 추대됨.신라는 김알지 계로 王通을 잇게 되는데
자성 할아버님과 자선 족의 도움으로 쇠족(김)系가 王으로 내내 血統을 잇게 되고
기여하게 되어 신라왕으로부터 족장 지위의 내사령과 서라벌과 그 지역 일대를 통치하는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원래 내물왕은 장군 自成 족의 지원을 받아서
내물의 直系인 눌지를 내물 王 다움으로 왕위로 옹립 하려다가.
구야系의 실성 王軍과 일대 왕위 쟁탈전이 있게 되는데 눌지王軍의
시조자성할아버님은 구야 系인 실성王 군에게 시조님이 전사하였으며,
실성王이 재위 얼마후에 죽게되자 다시 내물왕 직계인 눌지가 왕위를 계승함으로서
자성 할아버지와 자성 후손들이 눌지왕으로부터 대대로 내사령의 벼슬을 받고,
신라 서남부 일대를 하사 받아 통치하면서
내내 중앙 관직과 성주를 승계하게 됩니다 (成立성립=성을 추대說=내물설),이후 대대로
후손은 신라 중앙의 관직과 성주를 세습함)
(2)군린..제2세조.어원은 족장= 님금.
(3)용수..제3세조.어원은 족장=님금
(4)자성.....
(5)자성......
(6)자성........시대,실성이금
(7)자성........시대.눌지매금(417---458)
(8)자성........시대,자비마립간(배부사흔의여,458 - 479)
(9)자성........시대,소지선공부인의여.479-500
(10)諱군린시대
(伯)이君麟而 이사금,신라22대,
지증왕대(재위500 -514),
(11)군린?....
(12)군린?....
(13)군린?....
(14)군린?....
(15)군린?....
(16)군린?....
(17)諱용수시대
(伯) 이龍首而 이사금,신라29대,
태종무열왕대(재위654--)의 인물(기원7세기)
(18)용수?.
(19)용수?
(20)용수?
(21)용수?
(22)용수?
(23)용수?
(24)諱동이 시대
(漆原伯) 同而 이사금,부령,당 유학하여 과거에 등과,
당의의 벼슬,귀국하여 부령을 지내고.
족장에 이르다,
(25)동이
(26)동이
(27)동이-
(1)諱한희 漢希 시대,
신라 경애왕- 경순왕조에 칠원백,
10세기경 910-970.경기도 회안으로 이주함 戶長
(28)고려시대 漢希?.........
(27)고려시대 漢希?.........
(30)고려시대 漢希?......
(31고려시대 )漢希?.....
(32)고려시대 漢希?.....
(33)고려시대 방린 향임 방임 존임 당임 시대
(34)고려시대
(35)고려시대
(36)고려시대 방린 향임 방임 존임 당임 시대
(37)고려시대
(38)고려시대
(39)고려시대
(40)고려시대
(41)고려시대 (1) 始祖 諱 漢希 公은 세 아들을 두었다.
(42)고려시대 (2) 廣陵 三益 時代
諱 益俊-益비(호장.大司諫 대사간 )-益康(영동정令同正) 三兄第 時代.廣李의 原祖
(廣陵三益,廣陵三賢,호장,동정)-고려 희종대
各各 호장 과 령동정을 지냄, 희종(1204 -1211)
제1子 諱 益俊의 後孫은 現在 失傳
제2子 諱 益庇의 후손(廣李 율정공파.廣李 둔촌공파. 廣李십운공파)
제2子 諱 益庇의 후손--문--[름. 울]
(3)諱 문이며 아들은 諱름. 諱울
(4)諱름. 諱 울
*諱름의 後孫은 諱신, 諱정
(5)諱름 제1자 諱신---諱사달--諱 직-諱 금동- 諱 주
諱 의동-
(5) 諱름 제2자 諱정---諱미장--諱탕--諱세 ---諱구---諱영
(5) 諱蔚 의 제1자 諱한(추사정공.樞司正公)---추사정공파
(5) 諱蔚 의 제2자 諱당 (국자감 생원)---------생원공파
*율정공파는 第1자 諱한(추사정공.樞司正公)--- 諱녹생 / 諱인생의 후손이다
(6) 諱한(추사정공.樞司正公)의 아들, 諱녹생--- 諱밀--- 諱지---諱관인-- 諱지
諱관의---諱점. 퇴. 지
(6) 諱한(추사정공.樞司正公)의 아들, 諱인생--- 諱돈--- 諱의---諱경빈---諱시생
*생원공파는 第2자 諱당(생원공)의 후손을 말하고 子는
諱인령.원령[집].희령.자령.천령이다
(6) 諱당 (국자감 생원)의 아들, (1)諱인령-諱조-諱동-慶先庫史派
(1)諱당 (국자감 생원)의 아들, 諱원령(集.둔촌공파)--諱지직-
諱지강-
諱지유-
---諱장손--克
諱인손--五克--派
諱예손-
諱맹손-
諱일원-
諱중원-
諱정원-
諱계원-
(1)諱당 (국자감 생원)의 아들, 諱희령---諱女 洪 순(남양군.개국공신). 남양인[子홍복기]
(1)諱당 (국자감 생원)의 아들, 諱자령(판서 건)---諱연동---諱영의정 봉로---諱판서 두신---십운과공파
(1)諱당 (국자감 생원)의 아들, 諱천령(성)
제3子 諱 익강益康(영동정)의 後孫
(3)諱성우(영동정.令同正)---諱잠
(4)諱잠--- 諱전사
(5)諱전사---諱방귀 (문과.부사 府事)
(6)諱방귀---(7)諱 석탄공 양중, 암탄공 양몽
*석탄공파 諱방귀 (문과.부사 府事)의 아들, (1)諱양중(석탄공 시조) ..諱우생.수생
諱우생-諱수철---
수철의 子-諱손.
諱소(개위 명)
-諱수언/순언/온언/성언/성윤조/권견/갑엄/諱창언,
諱우생-諱석철---諱 붕.난--諱사윤.諱사성
諱수생(춘여)----諱景哲(士賢)-諱蔭-諱乙富
*암탄공파 諱방귀 (문과.부사 府事)의 아들, (1)諱양몽(암탄공시조)--- 諱술생/적생/진손/영손형제
諱술생--- 諱원근--- 諱사방
諱숙침
諱사(俠)-
諱적생
諱振孫--- 諱 潤根--諱 枝綱.枝直 諱명仁
諱영손--- 諱난근.배근.석근-
..의子 諱신헌.
諱성헌-
--- 諱維成/維恒/金龜秀/維興
둔촌공.십운공 형제의 증손자/율정공의 증손자/ 석암탄공의 손자들은
같은 항렬로 조선 전기, 조선의 중앙 정부를 사실상 주도하고
이끈, 문무 관료 세력이며, 여타 諸宗으로부터 존경과 숭앙을 받은 선비들이다.
이분들을 모태로 贊成 오겸/判書 박계현/이산해 등이 讚한
[동방의 서업을 이룬 家]이자 韓판서가 말하기를[만극 화룡봉]이요[화주 崇閥 대동지家]이다 .
*영동정
동정, 원래는 正의 다음직
동정을 말한다.
고려초기에는 2,3품직으로 예:동지공거처럼 지공거의
다음직으로 同은 항상 원관직 다음의 官직으로사용됨,
이러한 관명의 연원淵源은 조선조까지 이어져 사용되는데
정,부정,첨정,동지라는관명으로 품계 사용됨,
후에 관계는 정5품직에서 7품직까지,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장의 직을
보좌하는 중간관료로 문반,무반,음관직으로 운용되었다.
즉 영동정은 영의동정,사재동정은 사재의 동정,
주부동정은 주부의 동정이고,영사동정이라고도 함,
영사동정은 고려문종시에 처음 설관 됨,
상서성과,상서육부와 상서도관,삼사,어사대,전중성,예빈성,비서성,중추원,제비주부,
동궁관에 있었으며,
대우는 998년목종1년 개정전시과16과와 1076년순종30년 경정전시과17과로
전지 23결,22결을 받았다,초기는 과시를 통해 임용 되었으나,
후에 음서직(공음)으로,고려중기의 문벌사회를 조성하는데 주로 음관직으로 운용되었다,
음서는 1039년에 5품이상의 관직을 지낸 자재에게 임용되고,
1134년인종12년에는 前代 재신의 내외손과 생질에, 영사동정의 관직을 주었다.
고려말에는 중앙관직을 지내고 퇴직한 자나 그 자제 에게 주기도 하였다,
대부분 고려말에 시조를 내세워 세계世系 하고있는
동국의 만성성씨들의 시조 관직이 대부분 영동정인데,
이는 중기 문벌사회 파생의 예이다,이 관직이 주로
세습직 이였다는것과 음관직을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 국자 생원이상 광릉삼익三益이상의 선계 또한
오래전 부터 출사出仕하여 현사顯仕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토대로 우리 선조가 회안의 향리로서 중앙관료로 출사 하지 못한 시기는
대략 태조왕건대(서기950년)부터 고려의종대(서기1150년)까지
200년간이라 추정된다,그러나 諱필행 할아버지가 쓰신 광이세적이나 기타사료,
문서를 고신하면 "4대명휘이전 다른 지파에서는 대대로 현재가 있었다 한다"라는 구절과,
"성주는 강계(降階=벼슬의품계를 낮추다)하여 광이의 위분 들을 호장으로 삼았다""는
등의 문구로 보면, 휘 필행 이 이야기한 다른 지파란
곧 " 다른 파와 석암탄공의 선대를 말하며
이는 광이의 삼익어르신들을 보면 고려시대
이미 중앙직 내지는 관료로서 진출이 있었다고 본다.
**고려. 섭사정 .추사정
고려말 조선초기의 관직,
원래는 상장군,장군,부장밑의 무관직,실무는 보지않고,녹봉만 받는 명예무관직,
주로 향리의 풍기와 관원의 기율을 감찰함,문반,무반,음관직, 조선초기까지도 섭사정의 무관직을 두었는데,
세조12년1446년에 이름을 부사정으로 개칭,이또한 고려부터 음관세습의 직으로 운용되었다고 보여짐,
안동권씨의 예가 그렇다.(안동권씨는 대대 안동의 향리와 영동정,
섭사정직을 세습하여 조선조에 창흥한 족인데,,,)
**고려. 부사[府使]
5품 이상으로 임명하고 정원은 1명이다.
도호부사(都護府使)의 줄임말이기도 하지만 도호부는 부와는 다른 행정구역이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사부(知事府)의 장관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도호부사는 부사로 약칭되기도 했는데 이것도 역시 도호부의 사(使)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사는 고려에만 존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의 부는 물산이 풍부하거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하였는데, 고려 전기에 의성부(義成府) ·
안동부 ·남원부 ·개성부 ·경산부 ·천안부 ·승천부 등 7개 지역,
고려 후기에는 강릉부 ·남양부 ·수원부 ·성안부(成安府) ·서녕부(瑞寧府) ·김해부(金海府) ·
경산부 ·순천부(順天府) ·화평부(化平府) 또는 무진부(茂珍府) ·회양부(淮陽府) ·
철원부 ·연안부(延安府) ·순흥부(順興府) ·남원부 ·화녕부(和寧府) ·강화부 ·
황려부(黃驪府) 등 17개 지역에 두었다. 다만 북계에 강계부와 이성부(泥城府)를 두었는데,
이곳은 지사부가 아니라 만호부(萬戶府)가 설치된 곳이었다. 부사는 이곳의 장관으로서
행정실무를 담당하였고, 문종 이후에는 아래에 부사(副使:6품 이상)와 판관(判官:7품)을 두었다.
*고려. 호장 [戶長]
향직(鄕職)의 우두머리.
고려 초에 신라 때부터 지방에 세력을 펴고 있던 성주(城主)나 호족(豪族)을 그대로 포섭하여
호장 부호장의 향직을 준 데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지방자치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983년(성종 2)에 고려 태조 때의 당대등(堂大等)을 호장,
장대등(長大等)을 부호장이라 고쳤으며
목종 때는 호장으로 70세가 넘으면 안일(安逸)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각 주(州)의 정원을 정하여 1,000정(丁) 이상의
주는 8명, 500정 이상은 7명, 300정 이상은 5명, 100정 이상은 4명으로 하였다.
이들은 지방의 토호적 존재로 상당한 세력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자 수령(守令) 밑에 있는 아전으로 격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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