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는 '엘로힘'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님이 이렇게 삼위일체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바른 이해에 있고자 해서 일 것입니다. 이에 참으로 기쁜 마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는 설명하기가 가장 쉽지 않은 것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님이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져왔으면서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님은 분명히 그동안의 신앙 생활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배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여전히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궁금해 하며 이를 알고자 하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등장한 것은 니케아 공의회(325.A.D.)와 니케아-콘스탄틴 공의회(381A.D)로 이어지는 교회 회의에 의해서인데,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교회가 갖는 신앙을 표방하는 것으로서입니다. 그리고 그후 작성(425.A.D)된 아타나시우스 신조에서는 삼위일체란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로마령 아프리카에 있던 도시 히포의 주교로 초기 서방교회의 지도자였던 어거스틴(Augustinus, 396-430)도 삼위일체란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면서부터 문서화되기 전까지에도 신자들에 의해서 고백되어져 온 신앙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사도신조)은 5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작성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믿는 자들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구속 사역을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실 영의 관계에서 증거한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삼위일체란 용어는 성경 자체에서는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용어는 없는 것을 교리화 시켜서 만듦에 따라 신학의 용어로 등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창세 전에 가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삼위일체론적인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으며, 성경 곳곳에서, 특히 예수님의 증거에서 두드러지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성령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은 결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삼위일체(trinity)란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사역을 계시하시고 있는 용어로서는 다른 단어를 가지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제대로, 그래서 온전히 설명하기란 인간의 언어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수(數)는 육(肉)에 관한 수가 아닌 영(靈)에 관한 수이며, 땅의 개념에서 사용되는 수가 아닌 하늘의 개념에서 사용되는 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수는 사람의 언어로서는 '신비롭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병수(합신, 신약학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기독교개혁신보, 2002.11.13) 그는 설명하기를, "수 속에는 무엇인가 신비가 있다. 그래서 수비학 (數秘學, numerology)이라는 것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가 보다. 수비학은 수의 비밀스런 법칙과 조직으로 인간의 운명을 계산해보려는 일종의 수학적 점술로서 밀의종교 (密儀宗敎, esotericism)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성경적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어떤 수비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수의 신비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른 바 신의 수비학으로서 삼위일체 진리이다. 한 하나님이 세 위격을 가지고 있다는 하나님의 단수적 복수 또는 복수적 단수가 바로 신의 수비학이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수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위일체에서는 위대한 동등성이 있기 때문에 그 신성에 있어서 성부가 성자보다 크지 않으며, 성부와 성자가 합하여도 성령보다 크지 않다. 또한 삼위일체에서는 어느 위격도 삼위일체보다 작지 않다.' 동그란 세모나 모난 동그라미를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고 차가운 불이나 뜨거운 얼음을 상상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삼위일체 신비는 성경진리의 가장 난해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진리이다. 삼위일체 진리는 배타하는 조화와 조화하는 배타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힘들고 내포하는 외연과 외연하는 내포를 파악하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는 하나가 셋보다 작지 않고 셋이 하나보다 크지 않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는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이다. 우리 인간에게 복수보다 작지 않은 단수와 단수보다 크지 않은 복수를 이해하는 것과 언제나 단수인 복수와 언제나 복수인 단수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인간의 수비학 가운데 이보다도 더 신기하고 오묘한 수의 법칙과 조직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 전진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한 후에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도 한 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언급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언급에 연결된다. 이 두 가지 언급 사이에는 아무런 분리가 없다. 두 이야기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한 분 하나님 곁에 그와 동격인 또 한 분이 있다. 무한자 곁에 그와 구분되는 동격의 무한자가 있는 것이며, 절대자 곁에 그와 다른 동격의 절대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존재의 방식은 양립적인 대결적 구도도 아니며 종속적인 흡수적 구도도 아니다. 이것은 상호간에 구분과 동등이 표현되는 관계적 구도이다. 한 무한자와 다른 무한자의 마찰적 충돌이 아니라 조화적 관계이다. 따라서 이것은 양자의 외적 대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조화를 뜻하는 것이다. 한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한 분이라고 설명하시며 동시에 세 인격으로 구분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Calvin, Inst. 1.13.2).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한 하나님에게 세 가지 본질이 중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triplex Deus), 한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분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tribus personis lacerari)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한 하나님이 삼중적 본질이나 삼분할적 인격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에 접근하는 우리는 작은 수를 자랑할 것만이 아니며 적은 수로 만족할 것만도 아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에 경악하는 우리는 큰 수를 꿈꾸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큰 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자들에게 결코 설득시켜서 받아들이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관계성으로 계시해 주시고 있으니 그 믿음에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회가 교리로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하나님에 대한 신관으로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것을 사람의 이해를 가지고서 말로 하여 제대로 표현하고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용어라든지, 또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교리를 가지고서만 설명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존재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풀어갈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는 철저히 하나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계시'와 '구속사역'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삼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실천으로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고 일해 나가시는 것으로서 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구별된 독립적인 인격성으로 그 존재성을 나타내시고 일하시는데, 그 본질은 하나이니 단일한 신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이것의 계시가 필요한 이 세상에서입니다. 옛하늘과 옛땅은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등장하여 이 세상은 온데 간데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만이 우뚝 선 세계에서는 구원사역을 위하여 필요했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그분을 영원히 경배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아울러, 개혁주의신앙 방의 112번에 전에 '삼위일체론'의 글을 써서 올려 놓은 것이 있으니 참고하여 보시면 이해를 갖는데 보다 좋을 듯합니다.
첫댓글 이천우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