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쪽빛으로 맑고 푸르던 가을날 아침, 소풍 가기 전날밤에 두 손 모아 비 안 내리게 해달라고 빌면서 잠들던 그 시절의 기다림 만큼이나 설레이며 기분이 들뜨던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행여나 지각할라, 전날밤 기차를 타고 와서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온 경주의 근형이,덕회,동선이, 역시나 늦을새라 새벽 5시에 일어나, 콩나물국까지 끓여놓고 한술 뜨고 가라시는 서방님 손길을 뿌리치고 부랴부랴 달려온 충주부인 양순, 그 시절 소풍가는 자식을 위해 모처럼 하~얀 쌀밥을 볶아서 참기름 바른 김에 말아 고소한 김밥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을 모아 서른 명의 친구들이 먹을 김밥을 만드느라 전날 진봉이 부친 상가에도 못 오고는 새벽같이 선배님과 안나를 대동하고 김밥과 계란 삶은 것을 가득 싣고 달려온 수산나, 졸지에 보물찾기 담당이 되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고심하며 역시 서른 명이 고루고루 기쁨을 가져 갈 수 있게 준비를 해온 혜영이, 그리운 친구들 보고싶어 체면도 버리고 신랑을 꼬드겨 새벽같이 달려온 인옥, 친구들이 목타면 먹으라고 손수 기른 오이를 한 트럭 싣고 온 태환이, 이번만은 빠질 수 없다고, 대구에서 그 큰 화물차를 직접 몰고 온 덕순이, 선배님이 못가게해서 겨우 빠져나온 인수,어제부터 미리와서 기다리던 부산의 남민,포천의 영상, 구리의 원응, 대전의 백응, 서울의 호정을 비롯해서, 천안의 창선, 순애, 명숙, 옥희, 병천의 해우, 태광, 인기,청주의 기민이,,,하나 둘 교정에 모여 들뜬 마음으로 소풍준비 하던 친구들….
꼭 33년 전, 코흘리개시절, 전교생이 줄을 이어 학교 모퉁이를 돌아 고개 넘어 섬말로 해서 그 길고 긴 소풍행렬이 이어졌던 그 길을 따라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그 오솔길 대신 잘 포장된 신작로를 따라 몇 무리로 나누어 출발했던 그 소풍 길엔 각자 먹을 김밥과 계란 한 개씩, 그리고 참석 못하는 친구들이 보내온 과일과 음료수를 나누어 담은 배낭을 메고 깔깔대며 호호거리며 모두가 그리운 추억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뒤늦게 김밥 먹을 때 마실 술이 없다 하여 가게 들러 소주를 사느라 뒤 처진 일행이 타고 온 장종순의 처가 모는 트럭 뒤에 모두가 올라 타고는 섬말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덜어주어 다리품은 좀 덜었고, 지금은 골목도 변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는 성수네 마을을 지나 드디어 산길로 들어서니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다.
마을 뒷편 무우 밭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니 갈대와 대나무 숲이 길을 덮어 천지가 분간 안되건만,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하늘높이 치솟은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상서롭다. 갈대 숲을 헤치며 일행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매, 중간에서 선두를 불러 세우니 그곳이 기민이 할아버지 산소라면서 기민이 우선 큰절 올리고서는 내력을 설명해준다.
자손이 번창하는 명당자리에 누우신 친구의 조부님께 또 큰절 올리는 창선과 함께 박장대소하며 땀을 식히고는 다시 출발을 하니, 이제는 길이 없다. 어렴풋이 그 시절을 되새겨 보며, 철쭉꽃 아름답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 돌고 돌아 올라가는데, 대단히 가파르고, 숨이 턱턱 차 오른다. 한없이 가파르게 오르기만 하다가, 왼쪽으로 작은 고개가 살짝 보이는데, 선두의 동선이,태환이,태광이는 곧바로 올라 만 간다…. 야들아, 그 쪽이 아닌개벼, 왼쪽으로 가야 하는거 야녀? 하며 바로 뒤 따르던 해우가 소리를 지르는데, 들은 척도 안하고 곧장 올라간다. 그래, 니들 고생길이 훤하다 하면서 왼쪽으로 틀어 물이 없는 계곡을 건너가니, 오솔길 흔적이 조금 남아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작은 고개 넘기 전의 그 철쭉길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짧은 길이지만, 등줄기 땀으로 흥건히 젖으며 지금은 산불흔적이 남아있고,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그 길을 따라가니 작은 고개가 나오고,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면 나올 은석사가 확연히 생각이 난다.
흐미, 우리가 그 시절, 이렇게 힘들게 소풍을 갔더란 말이냐 하며, 인수 선생님께 요즘도 이런 소풍 다니냐 물어보니 요즘은 버스타고 소풍 가는 코스로 간다고 한다. 그래, 요즘 아이들에게 이렇게 멀고 또 험한 길로 소풍을 간다 하면 아마도 기겁을 하겠다 하면서, 그 시절, 변변히 먹을 것도, 체계적인 운동시설도 없어도 시시때때로 이렇게 체력을 연마해준 우리의 고향이 오늘의 우리를 지탱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허리 돌아 내려간 그곳, 거기에는 웅장한 은석사가 아니라, 조금은 낡은 대가 집 본가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뎅그러니 남아 있었다. 열린 안방 문으로 보니, 얕으막한 천장 밑에 부처님이 왼쪽이 좀 낮게 기우뚱 앉아 계시는데, 오른쪽 처마가 기울었는지, 버팀쇠가 힘겹게 산사를 지탱하고 있었다. 바닥은 왼쪽으로 기울고, 지붕은 오른쪽으로 기우니, 머잖아 대대적은 손질이 필요하다 싶었다.
초등학교시절 소풍은 아마도 전교생이 같이 왔을터인데, 그 많은 식구들이 와서 점심 먹고 소풍을 즐기기에는 턱없이 비좁을 것 같은 은석사의 하늘은 어찌 그리 파랗고 맑던지, 빙 둘러 산으로 감싸고 있고, 그리고, 동그랗게 뚫려있는 하늘만 티없이 맑고 참으로 아름다웠다.
제일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온김에 박문수 어사묘까지 올라가자고 아우성이고, 한편에서는 돗자리 펴고 김밥 도시락 까먹기 시작하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오는 대로 약수로 입가심 하고는 삼삼오오 펼쳐놓고 김밥과 계란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하였다. 배가 차니 이어지는 것은 음주 가무라, 팩 소주 따서 물바가지에 쏟아 돌아가며 마시고, 풍선불어 배구하자는 이, 마주 안고 터트리자는 이 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한켠에서는 주거니 받거니 정신이 없다.
조용한 산사에 풍선 터트리는 소리로 요란하니 조용해 주십사 하는 스님의 요청도 있고, 마땅히 더 할 일도 없어서 그 시절 추억의 되새김으로 마감하고, 반대편으로 내려가다가 쉬어가던 넓적 바위를 2차 집결지로 하여 내려가니, 그 길은 발길도 상당히 많고, 서울 인근의 등산코스나 진배없이 잘 다듬어져 있고, 그 길로 올라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계곡도 아름답고, 공기도 맑고, 주변 산세도 수려하니 멀리 등산 간다고 힘 뺄 것도 없고, 소풍 가기 좋은 곳 찾느라 고심 할 것도 없이 주말에 간단히 왔다 가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그렇게 넓고 평평했던 넓적 바위는, 이제와 다시 보니 그렇게 넓지도 않고 평평하지 않았으며 그 시절의 추억 속 기억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모두 모여 포즈도 취해보고, 근형이의 지휘로 레크레이션 놀이도 하며(푸세식 청소놀이는 압권이었다), 혜영이가 숨겨놓은 보물찾기 놀이도 하며(그 시절 한번도 못 찾은 보물을 찾아 소원풀이 한 이가 대부분이었다), 덕순이의 장기자랑도 하며 다시 한번 동심으로 돌아갔었다.
하산하며, 박문수 어사 종가집을 돌아 큰길까지 걸어 나오며 즐거웠던 일들, 황금 빛 들녘의 가을 추수를 바라보며 흐믓했던 일들, 근 30여명이 시내버스 타고 오면서(완전히 전세 냈었다) 덕순의 입담으로 박장대소 했던 일, 3차 집결지인 유황 오리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험담으로 고성 지르던 기민이 달래던 일, 그리고, 3차 유황 오리집에서의 여흥, 보물찾기 번호로 선물 뽑기등으로 우리의 가을 소풍은 끝이 났다.
가을 소풍은 추억의 여행이었다. 단지 이름만으로도 설레이며 기다렸던 친구들 모두가 추억을 다시 만들어 가슴에 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고마워 하던 모습들이 정겹다. 가을 소풍이라는 이벤트를 생각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는 친구들의 그 해맑고 정겨운 눈 웃음으로 수고한 친구들의 노고가 풀리라 믿어본다. 가을 소풍을 위해 수고한 많은 친구들, 참석 못하는 대신 협찬해준 친구들, 그 중에서도 제일 감사한 이는 이쪽 저쪽 연락하고 초청하고 애태우며 준비하고, 그리고 30인분의 김밥과 계란을 쪄서 일일이 포장해온 수산나일 것이다. 모든 이를 대신에 수산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제는 봄소풍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가 많아졌다. 봄 소풍은 아예 경주 수학여행으로 하자는 이도 있다. 봄이 오기 전,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 다시 한번 추억의 소풍이나 여행을 추진해보자.
첫댓글 대장도 역시 수고많이하셨소 다각기 준비하고 애쓰는 칭구들이 있기에 늘즐거움이 있는것같소 항상 대장에 글을읽다보면 세심하니 헤야려주는 우정에배어있어 포근하게 않아주는 우리에 형님갇소 역시 우리에 영원한 대장이요!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수 있도록 주선해준 대장 넘넘 고마우이 회사업무에 밤낮없이 수고하고 칭구들까지 챙기느라 입술이 다부풀었더군 협조한 모든칭구들에게 고맙구 감사한마음 워찌다 전달할꼬 뒤늦게라도 참석한 석원이 정말 고마워
글을 읽다보니 지금 방금 산을 내려온 듯 하구만요. 초우도 울 사돈도 더욱 수산나 아직 꼬리 못단 질주도 우리 초우회에 빛나는 보석이구만요. 늘 고맙구랴~~ 은석사에서 바라본 너무도 이쁜 가을하늘보다 더 이쁘고 행복한 날들만 그대들에게 있으리라 꼭 믿네요...
벌써 수십년전에 보았던 은석산을 글로 보니 감회가 깊다 못갔어도 간듯한 글귀가 대장님 능력인듯싶다 즐겁게 보낸친구들도 수고한 수산나도 모두 수고했네 맘만 전할께....
역시 대장이구랴!누군가가 그날의 감동을 어찌다 글로 표현하랴 했더만 역시 대장이구랴.막 산에서 내려온 기분이구랴.준비하고 계획한 대장 덕분에 추억쌓기는 대 성공이구랴.또한 봄소풍을 기대하면서...
타이머신을 타고 어린어린시절로 가보았던 소풍,지금 대장 글을 읽고 나니 어쩜 그날에 기억을 그대로 잘 그려 놓았는지....우리 대장은 역시 제일이야.대장님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내년 봄소풍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