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의 추억
세상일은 나와 상관없었고 계절이 변하는 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며 비가 내리는 것과 석양이 지는 것을 창을 통해 알 만큼 세상과 단절된 생활이었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듣는 것으로 아침을 열고 석양이 아름다운 시간까지 동무 하며 지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쉼 없이 살아온 날의 갈증 같은 것이었다.
수건 속옷을 애벌빨래를 한 다음 삶아내어 맑은 물에 헹구어 햇살 반짝이는 베란다에 널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햇살이 앞치마 자락을 비집고 들어와 속살까지 파고드는 그런 날. 나의 영역을 침범한 햇살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깊숙하게 들어와 앉아 날 멍하게 만들어 버렸다. 순간, 귓전에 낯설지 않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어디서……. 햇살이 들어와 함께 놀자고 보채던 날 들었던 음악이 며칠을 무의식중에도 맴돌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기에 이리 깊은 곳에 숨어 나오질 않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첫 소절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나라 언어였을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했다면 방송국 프로그램 선곡 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날이 지나고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어릴 때 우리나라 가곡인양 부르며 놀았던 ‘메기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원곡은 우리가 불렀던 가사보다 훨씬 길다는 것도 알았다. 그날 동네 음반가게를 나가 찾아보았지만 그런 가수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쓸쓸하게 걸음을 옮겨야 했다. 며칠 후, 크게 마음먹고 명동의 25時음악사엘 나갔다. 그곳에서 음반을 구할 수 있었고, 집에 돌아와 CD 플레어에 음반을 걸어 놓고 오랫동안 반복청취를 했다. 세상에 음악과 나만 살아 있는 것처럼.
『장 레드빠쓰(jean redpath)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구전 문화를 보급하는데 계속 노력하는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음유 시인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로버트 번스의 음악을 발굴하고 보급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는 그녀의 역사적인 업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공로상을 수여 받는데 그중에는 스털링 대학과 세인트 앤드루 대학, 두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1977년 영국 왕실 축제 연회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비틀스와 함께 초청된 유일한 4명의 아티스트중 하나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장 레드파쓰는 가수인 동시에 민속학자이기도 하다. 클레식을 전공한 성악가조차 부러워할 만한 아름답고 풍부한 메조소프라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절제된 감정을 지니면서 스코틀랜드 고유의 전통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메기의 추억은 스코틀랜드의 민속 음악이었던 것이다.』
『‘메기 클락’은 1841년 7월에 캐나다 온타리오 해밀턴 근처 글렌 부룩 타운쉽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지 존슨’이라는 청년으로부터 구애를 받는데 그는 21세로 시인이었으며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곧 그들은 약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핵에 걸리게 되고 그때 ‘조지’가 이 곡을 작사한 시기가 바로 그녀가 병마와 싸우던 동안이었다. 1864년 10월 그들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듬해 그녀는 ‘조지’를 남겨두고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다. ‘조지’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j.c 버터필드’라는 친구에게 이 아름답고도 슬픈 시에 알맞은 멜로디 작곡을 부탁하는데, 이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노래가 탄생하게 된다.』
하얗게 눈 내리는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 지금도 장 레드빠쓰의 ‘메기의 추억’을 걸어놓고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한다. 더 많은 날이 흐른 다음에도, ‘메기의 추억’을 듣게 될 것이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억하는 일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살아 있음이리라.
첫댓글 음악이 너무 좋아서 사진과 함께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이런 음악에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서 일까요. 한참을 듣고 있자니 슬퍼져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도 노래가 좋아, 아니 노래를 부른 장 레드빠스의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씨디 설명서를 읽으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