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밀밭 풍경
말 발굽 보호용 목재 바닥재
교회 외부 풍경
후원의 풍요의 여인상
후원 최상단의 있는 로마식 개선문
입구에 있는 눈가림용 차력사
쒤부른 궁전 정면의 일행 3명의 마누라
빈회의 장 천정의 금박의 호사스럼
정복자의 동상 까불면 목을 짤라서 이렇게 들겠다 엉기지 마라 엉아에게!
후원의 분수대 조각상의 장관
분수대 조각상 2
분수대 조각상3 이곳을 본 사람은 21명중 2인 뿐일껄
빈 시내를 언덕에서 본 전경 건축 고도제한를 잘 한 예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유럽기행3일차
아침은 다행히 계란은 있었고 어제처럼 지하층도 아니고 1층에서 서양 사람과 같이 먹었다. 오늘은 오스트리아 수도까지 가서 ‘쒈부른’궁전을 보고 시내유적을 현지 가이드를 불러 들을 예정이다.
어제 본 ‘사운드어브 뮤직’의 촬영지를 보고난 후의 영화 보니 옛적에 본 기억이 있어도, 상영시간이 길어, 끈기가 요구되지만 그래도 눈길은 계속 간다. 달리 채택할 방법이 없으니…….
버스에서 내리니 중부 유럽의 내륙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덮친다. 합스부르크 황가의 수도인 ‘쒈부르’ 궁전은 현지어로는 “아름다운 샘”이란 뜻이며 합스부르크가의 궁전으로 우리 형제의 나라 “오스만 터키”에 붕괴된 뒤 다시 지은 것인데 프랑스 ‘베루사이유’ 궁전 견주어 못지않은 규모로 지으려는 노력 했다는데 결론은 그만 못한 모양이다.
궁전 앞에는 아랍인의 복장을 한 차력사가 인공부양을 빙자한 눈속임으로, 사람이 막대기에 손을 대고 떠 있는데, 과학적 사고로는 반듯이 손을 통해서 막대기에 사람의 하중을 전달될 것인데, 손 부위를 옷으로 감췄으니 웃을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마고가 같이 촬영을 한다고 하기에, 찍어주고 궁의 광장에 들어간다. 입장권을 사고 궁내부에 들어가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매우 이지적으로 생긴 아줌마 인데 날카로워 보인다. 목을 많이 쓰는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이 빠르며 단어가 단순 암기인 듯하다.
궁의 입장 시 안전관리는 엄격하여 배낭은 짊어지고 입장 할 수 없어 보관을 해야 한다. 카메라만 메고 오길 잘 했다.
궁전의 바닥은 마차에 탄 채 왕족이 들어오는 로비가 있는 곳이므로, 내부 바닥에 6각형의 목재를 사용하여, 모자이크처럼 타일을 깐 것 같아 보이나 목재의 쿠션으로, 말의 말굽을 보호하는 배려를 했고 궁전의 정면 계단의 대리석 가공은 섬세하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 천정은 ‘모르터’도 섬세하고, 정밀히 마감됐고 촛대와 황금색 천정화가 웅장하고 고급스러움이 압도한다.
이층 접견실은 여려 개 인데 그 중에 가장 큰 접견실부터 내부는 전체 촬영이 금지돼있으나, 천정을 촬영한 것이 있어 다행이다. 한 등에 십여 개의 초를 꽂는 초 등이 140개, 벽과 천정에서 조명을 하였을 것이니 상상을 해 보자 장엄하고 황제의 권의가 당당했을 터. 그러나 당시 역사적인 사건으로 1815년 빈회의를 연 장소로 회의란 “춤을 추는 것이란다. 즉 회의를 빙자하여 여러 나라의 황제나 왕 대공 귀족들이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싸고 자빠지고 한 곳이란 뜻이다. 백성은 굶거나 춥거나 동물처럼 학대를 당하거나 인권을 박탈당하거나 그들의 눈에는 없던 암울한 시절이어 쓸 테니…….
이곳의 여 황제 마리아테리자이가 1711년 즉위한 아버지 칼6세의 장녀로 남편 프란츠1세 권위보다 실권을 지고 11남 5녀를 낳은 궁전인데, 막내딸이 프랑스 로 시집가 프랑스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죽은 마리 앙투아네트란다.
이 합스부르크 왕조는 1273년-1923년 오스트리아 황제가 1차 대전으로 항복 서명을 할 때 까지 750여년 계속된 유럽의 큰집이다 오스트리아 황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하고 유럽의 역사는 복잡하여 왕통을 우리 조선처럼 가를 수 없으므로 그냥 가이드의 얘기를 적는다. 그리고 2차 대전 후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상이 이방에서 회의를 한 장소 이란다.
로마의 서로마제국 황제와 이스탄불의 동로마제국 황제에 비견되는 중부유럽의 합스부르크 오스리리아 황제의 권위와 힘을 느낄 수 있는 궁전이다 .
왕보다 큰 권력자 ‘마리아테리지아’가 외국 사신을 접견한 방의 실물 침대는 가로 세로 2미터의 크기인데 바닥의 ‘메트레스’에 황금200kg과 천정의 휘장 및 치장 제 가림용 커튼 천에 황금 300kg를 쓴 실제 침대가 있었다. 사신을 접견하는데 황제의 권위와 부를 뽐내고 내방자의 氣를 꺾기 위해 이런 호사한 침대에서 높이 안자서 고개를 까닥까닥한 모양이다.
오스트리아란 어원이 뭐냐? 물으니 “동쪽에 있다”는 어원으로 이곳 왕은 여러 나라의 왕을 겸하고 그곳의 대리 왕을 보내는 황제의 권능이 있단다. 여러 나라의 왕의 문장이 있었다.
한방에 는 중국과의 거래가 많았는지 중국제 자기로 만든 방이 있고 벽화가 걸린 곳의 그림에선, 남편보다 여황이 더 큰 의자에 앉자 더 크게 그려지고, 남편 옆에는 시집갈 공주가 女皇帝 옆에는 보위를 이을 황태자와 황자들이 서있고 꼬맹이 황자 황녀들은 뒤에 그룹으로 모여 있는데 의자 앞의 강아지도 왕의 강아지는 앞다리를 꿇고 여황의 강아지는 다리를 들어 왕의 강아지를 누리고 있는 그림이 웃음을 자아낸다.
망국이 되면 황제건 귀족이건 백성이건 거지건 다 같은 것인데 무슨 비교 우월성이나 차별성은 있으리오. 만. 우리 같은 동방의 끝에서 온 평범한 백두가 전혀 존경심 없이, 버릇없던 여편네 이었구나 하는 정도로 쳐다보는 세상인데.
결국은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 없이 내가 왕이니 여황이니 대주교니 사제니 나를 우러러 보라! 할 것 뭐가 잇나 내가 남을 위한 만큼 내가 높아 보이는 것이 이치 인 것을…….
오스트리아는 820만 국민에, 국토는 9만km2이니 우리나라 보다 조금 작은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잘 모르는 초대 이승만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호주분이 아니고, 이곳 오스트리아 분이다.
육이오 전쟁 시 호죽기라는 비행기가 호주에서 보낸 비행기인데, 대통령의 처갓집이라서 그 곳에서 우리나라 전쟁 때 보낸 것으로 우리 국민 머릿속에 각인 되어 그런 모양이다.
이곳은 음악의 도시답게 우리나라 음악도가 1200명 유학중이란다.
살기 좋은 도시 1위 2위를 경쟁하는 도시며 금융업과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데 연간 320만 명의 관광객이 모인단다.
오스트리아, 그리스는 우리70년대 학번세대가 30년 전에 리비아 중동 등의 열사 사막에서 품 팔아 먹으며 토끼 같은 아들딸과 마누라를 먹어 살리고 잠시 휴가차 귀국하려고, 유럽 경유해 임지로 오거나 짐 싸들고 집에 갈 때 휴양지에서 가끔 만나던 거리의 여인 중 가장 서양인답고(노랑머리 흰 피부) 가격이 저렴했던 여인들 나라라고 친구들이 말하던 나라인데, 간신히 서방에 끼어서 자기도 유럽국 이라고 대접해 달라! 외치던 나라 아닌가!
많이 켰구나 생각도 된다.
점심 집합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자유 관광시간을 줄여야 했다. 후원의 정원 보는 시간을 아끼려고 구보수준으로 마고와 같이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곳의 조형물과 정원 그리고 방죽이 있는 로마식 개선문 같은 조형물도 있었다. 부지런히 뒤돌아 와서 점심을 먹을 도시락 집에 간다. 그래도 도시락은 먹을 만하고 빠르다. 도시락 이정도면 잘해야 8000원짜리지만. 옥호는 부산 식당
오스트리아는 토목설계나 TAM 굴착 장비 등을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나라다.
성수대교 설계자도 이곳이었다.
자동차 공장은 없지만 수많은 자동차 부품중 상당수 주요 품이 이곳에서 생산돼서 벤츠 아우디 BMW등에 납품된다는 자부심을 가이드가 열성으로 선전한다.
시청광장은 버스로 쳐다보며 지나고, 폭격당한 후 제일 먼저 재건축했다는 오페라 하우스는 전차길 건너편에서 쳐다만 보고 우리는 걸어서
지하철역사 옆 하천 옆에 잇는 공원으로 간다.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동상 앞에서 젊은 한국학생들이 인증 쌋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벤치에서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쉬다, 목 살 잡힌 개처럼 다시 따라나선다.
이 나라는 2차 대전 후 독립된다. 1945-1955까지 신탁통치 되다 이후는 스위스와 영세 중립국이란 간판을 잽싸게 걸고, 좌우중립을 지키는데 이 말인 즉은 동구에 편입되어 소련과도 가까운 나라란 뜻도 되고, 서양 쪽에도 낀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우리는 면세점에 끌러 간다. 그곳에서 화장실이나 보고 나와서 자유 시간에 ‘슈테판’ 대성당에 자유 시간을 줘 들어 간다. 내부 구경에 빠진 원주1명과 청주1명이 지하묘지에 그냥 들어갔다 출구를 못 찾아, 모이는 시간을 못 지켜, 한참을 기다리다, 먼저 우리는 쇼핑코너로 간다. 가이드가 카드를 주면서 그 카드를 내면 00%를 할인해주다니, 그곳에 내가 들어 갈 사람도 아니고, 우리부부는 근처 맥주 집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한 사람 두 사람 우리 팀이 카페로 모이고 우리가 싱싱한 체리를 맛을 보고 사서 먹으니, 여러 팀들이 사서 먹는다. 유럽의 체리와 살구는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
여행은 잘 먹어야 하는 법, 먹는 것이 일 순위 아닌가.
6시가 되어 우리는 이곳의 비엔나 음악회에 가는 일정은 취소 됐다.
우리 예술의 전당(좌석 1000석)에서 100-120여명 이상이 연주하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주도 1년에 몇 번 못 가는데, 이곳의 수십 명이 연주하는 소규모 실내관현악의 왈츠 연주 등을 작은 홀(200석 미만)의 객석에서 80유로라는 큰돈이면 나의 눈길은 못 이끈다. 우리는 정중히 안 간다, 의사 표명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일행이 모두 안 가게 됐는가 보다.
저녁은 그해 첫 포도주로 만든 식사가 ‘호이리게(heurige)’식사라면서 좋은 식당으로 안내를 한다. 올 해의 포도주를 처음 꺼내서 먹는 것으로, 지금껏 간 식당 중에서 후원의 꽃이나 현지인이 잇는 좋은 식당이고, 각국의 명사들이 와 찍은 사진도 많이 걸린 집이다.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의 사진도 있다. 포도주를 테이블마다 주문하여 한잔 마시는데 원주팀원 중 한분이 오늘이 회갑이란다. 모두 생일축하를 해주고 악사3명이 나와서 여러 곡을 연주 한다 우리 테이블에도 와서 지폐로 5유로를 드린다.
밖에는 현지인 노부부들이 와 있다. 김 공 부부의 사진을 찍는데 자기들도 그런 포즈로 한다며 찍어 달란다. 주소를 받고 웃음바다가 되는 포즈다 아내가 웃는 남편의 머리위에 주먹을 쥐고 줘 박은 모양으로 웃는 모습이다 .자기들은 컴맹세대라서 E-MAIL은 없고,
주소는 TROTE MULLER RUDOLF
OBERE DONAVSTRASSE 97-993136
1020WIEN AUSTRIA라며 크게 적어주며 기다린다는 눈치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민간 오교관이니 약속을 지켜 주야 하겠지!
오늘도 오스트리아 공항 옆의 허름한 호텔 방이다, 이곳은 다행히 시원하여 잘만하다.
호텔의 라운지도 없다. 전주의 가게맥주(가겟방에서 맥주를 사먹으면 탁자와 의자 안주를 준다) 집보다 못하다. 야외 테이블 안자 있자니 씁쓸하다.
멀리 공항의 불빛이 쉬지 않고 커지고 커진다. 우리는 그것이 번개인지 알았으나 그 것은 불빛이다
밖에서 포도주를 따서 과일과 6명이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밤이 늦어지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궁 후원의 기하학적인 전경
분수대 조각상 4
분수대 전체 풍경
하천가 공원의 모짜르트 동상
어느 성당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묵은 숙소의 옥호는 EUROHOTEL VIENNA AIRPORT이었다.
20120713
노천 카페에서의 우리 일행
일행 김공 부부. 모처럼 좋은 표정 잘 잡았다 자평합니다
첫댓글 구경 잘 했네.. 카메라가 뭔고...? 사진이 좀 그렇구만.. 좋은 여행지 모습인데..
첫댓글 구경 잘 했네.. 카메라가 뭔고...? 사진이 좀 그렇구만.. 좋은 여행지 모습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