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차갑다. 웅웅대며 귓가를 맴도는 바람이 꽃샘추위 바람만은 아니다. 봄이 10년마다 2.6일씩 앞당겨 온다는
기상청의 발표 속에는 산업화가 작동한 지구 생태계의 아픈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숨쉬기 불편한 황사 도시 한구석에서 만난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은 희망의 숨쉬기를 모색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브라질의 금광 세라 펠라다를 찍은 사진 이미지로부터 강렬한 감동을 받은 빔 벤더스는 사진작가인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인생 역정을 따라잡는다. 거대한 구덩이 세라 펠라다에는 금을 찾을 욕망에 모여든 5만여 인간들이 사다리를 탄다. 목숨을 내건 위험도 감수하면서 부자가 되고픈 욕망에 끌려 노예처럼 자신의 몸을 부리는 이들의 이미지는 인류의 욕심을 관통한다. 죽어버린 땅에 나무를, 메마른 땅에 도토리를 60년대 브라질 군사독재에 저항하다 도망치듯 프랑스로 이주해 경제학을 공부한 살가두는 국제커피협회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출장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경제개발 연구보다 아프리카 이미지에 매혹된다. 급격한 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쫓겨난 인간들이 겪는 처참한 모습에 대한 끌림이다. 카메라를 든 그는 ‘노동자들’, ‘이민자들’ 프로젝트로 수많은 사진상을 수상했지만, 인류는 생존할 필요도 없는 종족이란 절망감에 빠져 버린다.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 그를 살려낸 것은 지구 생태계의 발견이다. 그가 8년간 카메라를 들고 노마드로 떠돌며 찍어낸 이미지들, 그것은 인간이 산업화로 망쳐놓지 않은 오지, 아마존 열대우림, 북극 등지에서 잡아낸 원초적인 자연이다.
이 땅에서처럼 군사독재 아픔으로 시작된 그의 전복적 진화에는 노스탤지어 가치도 작동한다. 독재정권 해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악어들과 같이 수영하며 놀던 곳, 자급자족으로 살던 낙원 같은 곳은 사라졌다. 수십 년간 잘려져 나간 나무들, 그 결과물이 사라진 죽어버린 땅에서 그는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 나무를 심는다. 처음에는 많은 씨앗들이 죽어갔지만 10여년 세월이 흐르며 200여만 그루 숲이 조성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기적은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1987)을 떠올리게 한다. 황량한 삶에 지친 장 지오노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산악지대로 여행을 떠난다. 사흘을 걸어도 황폐한 벌판, 버려진 벌통처럼 폐허가 된 집들의 잔해를 보며 헤매던 그는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다. 개와 함께 양을 치며 사는 노인의 일상이 작품의 핵심이다. 간소한 살림 도구를 갖춘 작은 집에 사는 그는 도토리를 한 알씩 수차례 점검해 알찬 100개를 모아놓은 후 잠든다. 다음 날 그는 한참 산등성이로 걸어 올라가 메마른 땅에 쇠막대기로 구멍을 내고 도토리를 넣은 후 구멍을 덮는다. “여기가 당신 땅이냐?”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답한다. 메말라 보여도 깊은 곳에 습기만 있다면 나무가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 속에 도토리를 매일 심는 게 그의 인생길 가기이다.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도시로 돌아온 지오노는 다달이 월급을 걱정하며 살다가 다시 프로방스 산악지대를 찾는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다.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심은 나무가 이룬 숲, 거기엔 샘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정부 시찰단은 이곳을 천연의 숲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그 뒤에 홀로 매일 도토리를 심던 부피에를 기리며 장 지오노는 글을 남겼다. 그에 감흥을 얻은 프레데릭 벡은 실명을 무릅쓰며 작품을 만들어냈다. 지구 생태계와 함께 사는 열정을 나누고픈 예술의 힘이 작동한 것이리라.
이런 기적은 유럽이나 브라질 산골만의 일은 아니다. 분단 70년을 자연과 함께 기리는 일이 가능하다.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248km DMZ 비무장지대, 인간의 발길이 끊긴 그곳은 3천여종 생물이 살아남은 생태계 보고이다. 이곳을 ‘생태평화공원’으로 추진하는 계획이 지금도 살아있다. 윤동주가 절망 속에서도 노래한 〈봄〉의 한 구절처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살아가는 희망 속에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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