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일때마다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인사하시죠> 참으로라는 말을 포함시킨 것은 부활을 믿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부활주일을 맞아 미국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부활을 특별한 의미의 날이라고 대답한 그리스도인들은 20%가 겨우 되었습니다.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부활절을 일종의 기념일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생명에까지 접근한 현대인들에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부활은 과학적인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부활신앙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확신있게 부활을 전할 수 있을까요?
부활의 신앙은 제자들의 삶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으로 부활신앙을 확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잘 들으세요. 하늘을 나는 닭을 제가 보았습니다. 독수리처럼, 비둘기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닭을 제가 보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어떤 분들은 하도 세상이 이상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많은 분들은 목사님 그건 닭이 아니고 닭의 탈을 쓴 독수리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장합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닭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경찰서에서 저를 소환해서는 다시 한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벌금 1천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닭을 이야기할까요? 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벌금을 감수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일이 초대교회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에서 설교하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2절에, '예수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은 제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엄중하개 경고하기를 17절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의 핵심은 두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고, 하나님이 권능으로 그를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도, 신분을 빼앗기고, 집을 잃었으며,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지키느라고 모든 것을 다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런 삶은 부활신앙이 참된 신앙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부활의 신앙을 확신하며 목숨을 걸고 이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부활신앙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부활을 증명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을 믿는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먼저 고난을 이겨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고난은 단지 소망으로 들어가는 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난때문에 포기하지 마시고 고난에 부딪쳐 담대히 싸워 이기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아이모리현에 기적의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이 있습니다. 유명해진 것은 사과 반쪽을 냉장고위에 두고는 2년만에 발견했는데 썩지 않고 향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과는 농약을 일체쓰지 않고 자연그대로 키우면서 좋은 흙을 만들어주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병충해에도 상하지 않습니다. 이 사과나무의 뿌리를 캐보니 뿌리가 20미터나 깊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과정입니다.
골고다는 죽음의 언덕이지만 주님은 이 언덕을 새로운 소망의 언덕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우리들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기적의 열매가 맺어질 것을 믿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립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주님과 함께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주시고 피를 흘려주신 것은 우리가 온전한 복종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21일간의 기도회는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갈등과 의심과 회의가 우리의 마음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부어주신 부활의 소망은 이 모든 의심과 회의를 떨쳐내고 믿음안에서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새로운 삶으로 열매맺어야 합니다.
지난 30일 지구 저편 콜롬비아에서는 12년간 반군에 억류되었던 몬카요 하사가 석방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12년전 19살의 나이로 정글속의 반군에게 포로가 된 뒤 12년만에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2007년 6월29일 반군이 포로를 묶는 방식 그대로 쇠사슬로 양손을 묶고 목에 사슬을 두른 채 1000km를 행진하며 아들의 생환을 위해서 아버지는 무거운 쇠사슬을 묶은 채로 고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 열매가 있어서 아들은 12년만에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는 한시간이 마치 1천시간과도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를 신문에서 읽으면서 저는 눅 15장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아버지에게 몬카요는 잃었던 아들이요, 다시 살아온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그런 아들 딸들입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자녀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4월 한달동안 윌 보웬 목사가 제인한 불평없이 사는 21일의 삶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그 책의 서두에서 보웬 목사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그렇습니다. 우리안에 만연되어 있는 불평과 불만의 요소들과 의식들을 감사로 바꾸어 나가는 삶에 도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띠는 1천원/ 선물할 수 있습니다.
21일동안 불평없이 사신 분에게는 1천원을 돌려드립니다. 주일마다 감사헌물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주의 제자들이 변화되어 부활의 증인으로 산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이 부활절의 은총 가운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주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