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2011년.
현실과 소설의 현실
김나영(문학평론가)
현실은 대개 단위시간 동안의 노동과 그 노동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체감된다. 반면 현실의 무수한 조건들을 반영하되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내는 이야기로서 글쓰기가 있다. 이것이 소설이다. 이때 소설의 장치들은 현실에 가상이라는 허울을 덧씌우는 일을 감행한다. 그러한 시도만이 소설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게 하며, 결과적으로 소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김이설(金異設)의 소설은 고단한 현실을 다루는 일에 집요하다. 현실의 일부를 가상으로 변형하는 대신 현실의 허울을 벗겨 날것 그대로 삶을 복원하는 그녀의 글쓰기는 현실과 소설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때 소설은 사실과 허구 중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양쪽 모두 개연성을 의심하게 하는 것, 애초에 그것이 소설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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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 소설 『환영』(자음과모음 2011)의 주인공 윤영은 가난한 가정에서 장녀로 나고 자란 여자이며, 고시원에서 만난 남편과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아 역시 가난한 가정을 이룬다. 지하방 전세금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윤영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끝내 윤영은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몸을 파는 일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노동이지만, 엄마와 아내로서의 윤리를 포기하는 일탈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일과 일탈 사이에서의 몸부림은 윤영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 위태로워 보이지만, 끝내 윤영은 “처음에는 큰일 나는 것처럼 펄쩍 뛰었지만 언제부턴가는 따따붙이면 못할 것도 없죠, 하고 웃”어 넘기며 자신의 변화에 태연해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태연함이 초래하는 낯선 기운이야말로, 가혹한 현실을 계절을 겪듯 초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야말로 누구나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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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려고?”라는 윤영의 질문에 중국에서 온 식당 동료 용선은 “사람대접 받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윤영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렸고, 용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려 한다. 이 대목에서 윤영은 문득 제 삶의 함정을 감지한다. 그것은 매일 윤영이 식당으로 가기 위해 통과하던 시.도 경계 표지판의 이면에 쓰여 있을 환영(歡迎)에의 느낌이다. (...)
김이설의 소설은 지독하리만큼 냉담한 눈으로 오염된 삶의 물줄기를 지켜보는 중이다. 그 시선은 문학적 행위가 사회적인 관점으로 발하고 사회적인 관심이 문학적 행위로 화할 때 생겨나는 다른 현실로의 소설을 주시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작가가 노렸을 법한 과도한 현실적 소설은 미만(彌滿)한 소설적 현실의 환영(幻影)들로 되돌아올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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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나는 지금 우리 현실을 신문으로 제법 꼼꼼하게 읽고 있지만, 개별 사건들을 금방 잊는다. 그 사건들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이 없고 생각을 나눌 벗도 주변에 없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옛 책을 펼치고 있다. 위 글은 201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154호)에서 고른 글이다. ‘현실적 소설’과 ‘미만한 소설적 현실의 환영들’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가브르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을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소설에 맨살로 드러나는 현실과 허구화 된 현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2025년 8월 12일 0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