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의 아침 기온이 12도 정도로 선선한 것이 늦가을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하노이 시민들은 가죽점퍼에 털모자, 여자들은 목도리 한쪽을 길게 매고 마스크를 쓴 모습이 영락없는 한겨울이다. 더위에 적응이 된 만큼 추위에는 약한가 보다. 혼잡한 시내거리를 지나 하롱베이로 가는 길이다.
곧게 뻗은 도로 양 옆엔 광활한 농지가 지평선까지 이어지고 중간 중간에 2~30호 규모의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과 농지 사이엔 어김없이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가 보이는 모습이 계속 반복된다. 중화문명의 영향을 함께 받아 유교적 생활양식이 우리와 비슷한 면을 많이 본다.
쌀이 주식이고, 음력을 사용하여 설을 쇠는 풍습, 그리고 풍수지리를 따져 매장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장례풍속이 우리와 유사하다. 다만 매장 3년 후에 유골만 수습하여 작은 항아리에 담아 가족묘지로 옮기는 것만 다르다. 국민의 80%가 불교신자지만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부지역은 열대 몬순기후에 메콩강이 만들어낸 비옥한 토양은 벼농사가 적합하고 년 3모작도 가능하다고 한다.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들이 보이지만 농기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따금 쟁기를 끄는 소를 보며 우리의 60년대 농촌풍경을 보는 듯하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86년부터 추진된 도이머이 정책으로 농지의 자경을 허용하여 수확과 소득의 증대가 이루어지고 있고 젊고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으로 무한의 성장 잠재력을 안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얼굴 없는 전쟁, 신비스러운 전쟁으로 프랑스와 미국을 자력으로 패퇴시키며 20세기 후반을 장식했던 나라, 우리나라의 젊은이가 32만명이나 참전했으며, 그중 죽거나 다친 이가 무려 2만명에 이르는 아픈 기억의 나라, 소년의 귀를 솔깃하게 하던 월남 스키부대 용사의 무용담이 아직 살아있는 베트남의 중심도로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 묘하다.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고 있던 베트남을 일본이 빼앗았고 ‘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독립을 맞은 베트남을 프랑스가 다시 점령한다. 그러자 미국의 루스벨트가 베트남의 독립을 지원했고 ‘54년 지압장군이 이끄는 베트민(Viet Nam Doc Lap Dong Minh Hoi)군이 대포를 허리에 묶고 정글을 끌고 가는 상상 밖의 기습전으로 디엔비엔푸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공수부대 진지를 초토화시킨다.
이 전투의 승전으로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권을 독립시켜 디엠정권이 수립되었으나 부정과 족벌정치의 와중에서 디엠 대통령은 피살된다. 그러나 연이은 군사정권의 부패와 미국의 잘못된 간섭은 외세배격의 명분을 주었고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공산세력인 베트콩(Vietnamese+communists)을 키워 결국 1,500만명이 희생되는 남, 북베트남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노이에서 4시간을 달려 하롱베이에 당도했다. 대한항공의 cf로 더 유명해진 이곳은 기암과 기수로 뒤덮여 우뚝 솟아있는 수천의 섬들이 천하의 절경을 이룬다.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적군을 물리치고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월남전 당시 베트콩 사단병력이 은둔했다는 엄청난 크기의 석회동굴도 있다. 유람선을 타고 섬 사이를 누비며 선상에서 낚시를 하기도 하고 어민들이 잡은 고기를 사서 회로 요리하기도 한다.
마침 옅은 안개가 낀 날씨로 섬들이 구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선계에 취하고 40도 민속주 넵모이에 취해 본다. 뗏목에 집을 지은 이른바 수상가옥의 어창 고기를 낚싯대로 잡아 올리다가 주인에게 쫓기기도 하며 아름다운 이국의 밤을 맞는다.
이튿날은 하노이 시내를 둘러본다. 출근하는 오토바이, 자전거가 물결처럼 거리를 메운다. 일생동안 볼 오토바이를 여기서 잠깐 동안 모두 보고 간다는 가이드의 안내가 틀리지 않아 보인다. 교차로 신호는 정지와 직진 등만 켜진다. 좌회전은 언제나 비보호다 보니 그야말로 곡예운전이다. 거기에 예측하기 어려운 오토바이의 행로가 위험을 더한다. 한 가지 희한한 일은 신호 대기선 만큼은 기막히게 잘 지킨다.
그 이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지선을 어긴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공안들이 무차별 구타를 했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사연이 숨어있단다. 길거리에는 목욕탕의자에 앉아 쌀국수로 아침을 해결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는 모습이 즐비하다. 성장한 신사와 아가씨가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이채로워 보인다.
베트남 건물들은 도로쪽으로 접한 면이 좁으며 뒤로 길다. 이유를 물으니 도로에 접한 면적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접도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였기 때문이란다. 건물이 도시환경을 이루는 중대한 요소인데 건물 간 최소의 이격거리도 없고 멋도 없고 사용하기도 불편한 구조로 지어진다.
시내 중심가를 붉은 견장을 차고 ak소총을 든 군인들이 열을 지어 행군하는 모습에서 사회주의 국가임이 새삼 느껴진다. 이 나라의 가장 큰 권력집단이 군부이고 경찰로 이들의 부정, 부채가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애 요소란다.
성년이 된 이후부터는 오직 독립만을 생각하며 독신으로 생을 마친 청렴강직한 호치민 무덤을 둘러본다. 69년 타계한 호치민은 화장을 원했다는데 국민의 영웅을 그리 할 수 없어 냉동보존하고 있는 무덤이다. 보존의 기술적 어려움으로 매년 11월이면 러시아로 이송해 방부처리를 하고 다시 이송해 온다고 한다.
목민심서를 품고 임종했다는 청렴 강직한 지도자가 일으킨 대단한 업적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애정으로 변해 사후 40년이 되어가는 현재도 식을 줄 모르고 호아저씨라는 애칭으로 국민들 가슴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