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쓸 새도 없이 바빴다면? 베를린에서의 사흘이 휙 지나갔다.
월요일 오전에는 한국에 일이 있어 왔지만 두 번 약속하고도 못 만난 김탄테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 병이 날 정도로 일이 너무 일이 많았던 김탄테는 독일에 와서도 힘든 눈치였다. 함께 사는 이탄테도 함께 한국에서의 일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 했다. 독일에서는 별일이 아닌 일들이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들을 보면서 독일과 한국문화의 차이가 현저함과, 이전과 변화가 별로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점심으로 콩국수를 해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큰 딸이 퇴근하고 돌아와 사우나를 가잔다. 계속 날씨가 궂고 추웠기에 좋다고 따라갔다. 베를린 중앙역 근처 주택가에 있는 사우나는 태국풍의 사우나라고 하는데 시설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태국에 가본적은 없지만 분위기가 그럴사하다고 여겨졌다. 피곤이 풀리고, 딸과 오랫동안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다. 4시간이 후딱 지나 12시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잤다.
화요일은 변장로님을 보러 갔다. 3월 한국 방문 시 도착하는 날 잠깐 보았고, 그 분도 병이 나서 출국을 일주일이나 미룰 정도였었는데 그 후 소식을 듣지 못해서 궁금했다. 내가 먼저 한국에 돌아와 일하는 동안 우리 딸들을 정성껏 돌보아 주신 분인데 격조했다. 림권사님도 편찮으시다고 했는데... 집에 들어서니 림 권사님이 반갑게 맞아 주시고, 오래 인사를 나누었다. 변장로님은 많이 수척해지셨고, 갑자기 나이를 더 잡순 것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보니 한국에서 병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쇠한 어머니를 모시는 일과 형제 사이의 다툼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것 같았다. 다녀와 거의 한달을 앓고 이제야 괜찮아졌다고 하는 변 장로님의 얼굴에 외국에 사는 큰 누나로서의 시름이 스친다.
베를린에 온 엄마가 심심해 할까봐 즐거운 일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딸이 정한 오늘 저녁 프로그램은 영화.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영화관에 가잔다.
“The Biggist Little Farm” 미국영화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농장 일이라고는 모르는 부부가 7년간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농사를 배우며 죽은 땅을 살려내는 과정을 그린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천적과 흐름을 이용하여 상생하는 땅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힘은 들지만 생명을 살려내는 기쁨 속에 사는 삶이 아름다웠다.
오늘도 한밤중에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부엌에 불이 환하다. 그리고 자야씨와 미야씨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엇하냐고 물었더니 “내일이 엄마 만 70세 생일이라 생일상 차려 드리려고 준비 중”이란다. 이처럼 과분한 일이 있을까! 큰 딸과 함께 사는 딸들에게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자 이제 그만 잡시다.” 딸들을 모두 방으로 쫒아내고 나도 꿈나라로...
드디어 생일날 아침. 다른 날 보다 일찍 일어난 딸들이 깻잎전도 만들고, 동그랑땡도 만들고, 호박전도 준비해 놓으니 미야씨의 남자친구 홍이가 전을 부친다. 노릇노릇하게 타지도 않게 잘 부치는 걸 보니 재미있다. 남의 아들까지 동원된 생일상. 지난해 만났던 홍이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마침 그날이 홍이 엄마도 생일이란다. 자기 엄마는 한국에 있는데 여기서 남의 엄마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알면 마음이 어쩔까 잠시 생각한다. 작년에 본 홍이씨 엄마는 화통하고 활달한 분이었으니 아들에게 잘했다고 할거야!!
미역국에 갈비찜, 각종 전에 김치... 이 좋은 상을 나만 받기엔 미안해서 가까이 사는 김탄테와 이탄테를 불러 함께 즐겼다. 딸과 함께한 젊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큰 딸은 조카들의 선물을 사서 나를 통해 보낼 생각을 하고 쇼핑을 가진다. 퇴근하고 득달같이 달려와 알렉산더 광장으로 나가 선물을 고르고, 한국 사위에게 전할 선물도 하나 샀다. 매번 여행에 늘 환송과 환영을 담당하는 사위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아 그런데 핸드캐리지 하나 밖에 못가져 가는데 짐을 어쩔까 걱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