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 자싱에는 황폐해져 벽들만 남은 십자형의 성당이 있다. 원래는 우아했던 이 건물의 지붕은 오래 전에 없어졌다.
문화혁명(1966-76) 중에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이 각종 종교시설들을 때려부수고 약탈한 뒤로, 이 기적의 메달의 성모의 성당에는 거의 아무런 보수나 재건 작업이 없었다. 문화혁명 중에는 심지어 삼자 정책에 따라 교황청과 독립된 교회를 지지했던 사제들조차 노동수용소에 보내졌고 모든 종교활동은 정지당했다.
그러나 지난 달, 이 건물은 중국의 고급 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여러 구조물이 뚜렷이 남아 있다. 57미터 높이의 종탑 두 개는 한때는 자싱의 이정표 노릇을 했는데 지금도 상태가 좋다. 아치와 기둥머리 위에 새겨진 세련된 조각들도 뚜렷하다.
이 성당의 담임사제인 쑤구이건 신부(베드로)는 동부 지역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이 성당의 복구를 위해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폐허가 된 성당 근처의 작은 경당에서 주일이면 약 200명의 신자와 함께 미사를 드린다. “자싱 시는 원래 이 근처를 다 밀어서 공공 광장을 만들려고 했었다.”
마오쩌둥이 죽고 나서 4년 뒤인 1980년에, 공산당 지도부는 (봉건) 문화를 싹 쓸어버려서 새 사회를 건설하려던 정책을 바꿔 교회와 절이 다시 문을 열도록 했다. 몰수되어 공장이나 창고로 쓰이던 종교 시설들이 반환되거나 보상을 받았다. 그 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외세 종교”라거나 서양의 침략 도구라던 딱지붙이기도 조금씩 약해졌다.
비록 중국과 교황청의 외교관계는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지난달 새로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1943건의 건축물 가운데는 가톨릭도 17곳이나 포함되었다. 이는 정부가 이들 건축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국가 기념물을 1961년에 지정하기 시작한 뒤로, 이번이 가톨릭이 가장 많이 포함된 것이다. 국가 기념물로 지정된 성당들은 대개 1890-193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인데, 국가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제는 이 건물들을 허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수리를 하거나 새로 지을 경우에도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광저우 대학의 탕궈화 건축학과 교수는 앞으로 이들 건물은 문화유산보호법이 적용되므로 종교 기능을 확대하고 건물 수명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부 지방 허난성 카이펑에 있는 한 신학교는 그간 버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국가 기념물이 되었다. 카이펑교구의 차이유량 신부는 이 80년 된 신학교 건물은 고대 중국과 서양 건축술이 혼합된 중국 내 몇 안 되는 가톨릭 건물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전면 개수를 시작했는데 적합한 건축 재료를 사기가 어려웠다.”
재원이 부족한 문제는 카이펑교구 만의 문제가 아니다. 탕 교수는 보수 작업 중에 많은 장애가 생겨난다고 했다. “옛날의 설계도나 사진을 구하기가 대개는 어렵다.”
그는 125년 된 광저우 대성당의 보수 작업을 맡고 있다. 광저우 대성당은 1996년에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중국에는 전문가도 부족하고, 전통적인 건축 재료와 기술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문화유산 전문가와 관련 정부 부서, 성직자들 사이의 협력은 물론 해외 전문가와의 교류도 필요하다.”
“관련 법규에 대한 지식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건물을 복구하는 성직자들도 있는데, 현대 신자들의 요구에 맞게 하려다가 원형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기사 원문: A facelift for Mao& #39;s surviv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