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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주수양회 후기(1)
25일(화)
언제나 그렇듯이 1년 중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면 수양회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출발 전날에 짐을 다 싸두었기 때문에 출발 당일 아침에 간편하게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나오면 불안한 생각이 엄습한다. ‘어? 가만히 있자... 내가 거실 창문을 다 닫았나? 가스 렌지는? 아, 그렇지... 요리를 안 했으니 가스는 괜찮겠고... 그럼 혹시 전등을 켜두고 나온 건 아닌가?’... 하여간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확인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서 나올 때는 두 번, 세 번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어느 사람은 이게 나이 들은 증거이며 심하게는 ‘치매 전조현상’이라고까지 하는데... 오, 주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는 차를 운정역에 세워두고 전철을 이용해 김포공항에 갔다. 전철 안에는 우리같은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특히 젊은 여행객들의 특징은 말이 많다는 점이다. 옆에서 들어보면, 별 것도 아닌 데도 서로들 배꼽이 빠질 듯이 깔깔대며 웃는다. 아마 기분이 up되어서 그럴 것이다. 아침부터 서두른 탓에 11시 반(?)이 조금 넘어 김포공항에 도착한 나는 잠시 옛날 생각에 젖었다.
인천공항이 없었던 옛날 고리짝 시절, ‘김포공항’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선택된(?) 사람들과 그 가족이나 친척들 혹은 그들을 아는 지인들만 올 수 있는 성역(!)과 같은 곳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김포공항이 어떤 곳인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리고 아무 때나 공항을 들락거리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 여권으로 갈 수 없는 나라가 거의 없다. 불과 6, 70년 전만 해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과 거의 비슷하게 전 세계 144개 나라를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다고 하니 진정 복 받은 나라가 아닌가! 대한민국 만만세!
사실 나는 독일 유학길에 올랐던 이후 김포공항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수양회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와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공항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증축공사와 더불어 내부 단장 때문에 복잡한데다가 휴가철에 비행기를 이용하려는 여행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 청사는 북새통도 이런 북새통이 없었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갈라지는 곳에서 보니 국제선에 엄청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국내선도 그에 못지않았다. 국내선 이용객도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때가 마침 점심시간이라 뭐 좀 먹어야겠다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1층에는 여러 식당이 있었지만, 식당마다 거의 만원이라 줄을 서야 했다. 혹시 2층에는 식당이 없을까? 해서 올라갔더니 마침 한쪽 구석에 BIZ Snack라는 식당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1층에만 몰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2층 식당은 아래층에 비해서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비빔밥과 생선 까스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서 시계를 보니 여전히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소화도 시킬 겸, 약속 장소인 ‘빚은 떡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겸 겸사겸사해서 식당에서 나와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할 바로 그 무렵, 내 맞은편에 상당히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남명관 집사님이었다.
백: “할렐루야! 어디 가세요?” 남: “어? 목사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지금 어디 가세요?” 백: “‘빚은 떡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는 중이었어요.” 남: “예? 빚은 떡집이 바로 이 근처에 있는데요?” 백: “아, 그래요? 난 못 봤는데?” 남: “바로 저기... 어? 없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디 갔지?” 백: “뭐가요?” 남: “‘빚은 떡집’이요. 바로 여기였는데...”
원래는 BIZ Snack 바로 옆에 ‘빚은 떡집’이 있었는데 청사의 내부수리 공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였다.
남: “어, 이런! 이거 큰일 났다.” 백: “그럼 빨리 카톡으로 연락해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헤매게 생겼어요.” 남: “예. 그래야겠네요.”
남 집사님이 단체 카톡에 약속장소에 대한 공지를 다시 하고 나서 조금 기다리니 대원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원들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빚은 떡집’이 원래 어디 있었던 거예요? 저기? 저기야? 근데 왜 하필이면 우리가 모이려고 하는데 사라진 거야? 어이구 참...”
속속 도착한 대원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빈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데 마침 옥수수를 갖고 온 대원이 있었다. 미처 점심을 먹지 못한 대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였으리라. 조금전 내가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저 옥수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각자 공항으로 오는 대원들은 큰 불편함 없이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교회에서 출발하는 팀에 문제가 생겼다. 그날따라 서울 시내에 곳곳마다 정체현상이 생겨 교회 버스는 정체구간을 벗어나기 위해 서울 시내를 뺑뺑 돌아야 했단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다가오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교회 버스팀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카톡으로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며 조바심으로 기다리는 동안, 교회 버스는 서울의 교통지옥을 뚫고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선발대인 이돈영 집사님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돈영 집사님은 갑작스런 일 때문에 각본에도 없는 후발대가 되어 늦은 비행기로 출발하게 되었다.
여행객들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니 지금 빨리 서둘러 짐을 부치고 탑승구로 이동하라는 남 집사님의 명령에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부치고 나서 탑승수속을 하려는데 갑자기 남 집사님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K 집사님을 찾는 게 아닌가! K 집사님 짐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거였다. 이유인즉슨, 기내로 반입해야 하는 휴대폰 충전기를 짐 가방에 넣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하여간, 짐도 다 잘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우리는 제주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11번 탑승구로 갔다. 거기에는 200명이 탈 수 있는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대한항공과 모종(?)의 관계에 있는 남명관 집사님은 출발 전에 아시아나를 취소하고 대한항공을 이용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우리와 비슷하게 제주도로 출발했고...
출발시간인 3시 15분에 비행기에 오르니 기분이 묘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 이 정도라면 집에서 버스타고 교회로 가는 시간과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시간이 거의 비슷한 거다. 자리를 잡고 조금 기다리니 그동안 얌전하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주로에 도착한 비행기는 관제탑의 허락을 받았는지 갑자기 ‘우와아아앙’ 하며 엔진에 출력을 높이면서 활주로를 내달렸는데 비행기의 엄청난 가속력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이 등받이에 바짝 들러붙으면서 바퀴에서 동체에 전달되는 활주로의 느낌이 고스란이 온 몸에 전달되었다. 한동안 우렁찬 엔진 소리와 우들두들,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이내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짝 현기증이 났다. 비행기가 중력을 이기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거였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자, 기내에서는 승무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승객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해주었다. 시원한 쥬스 한 잔 마시고 나서 제주도에서의 할 일을 생각하려는데 바로 그때 기내 방송이 나왔다. 이제 곧 제주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니 등받이를 세우고 벨트를 매란다. 헐!
‘이제 비행의 기분 좀 느껴보려는데 벌써 내릴 준비를 하라고? 이왕 비행기를 탔으면 최소한 대 여섯 시간은 공중에 떠 있어야 비행기를 탔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 뭐 타자마자 내리라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몹시 섭섭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나 혼자 고집부리며 비행기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는 법. 아쉽지만 내릴 준비를 해야했다. 최고 시속 700km로 날아간 비행기는 속도를 점차 늦추면서 제주 공항에 부드럽게 착륙을 했다. 그리고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역추진 엔진을 걸자, 이번에는 이륙 때와는 반대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하여간 비행기는 언제 타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는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날씨를 보았었다. 요즘 우리나라에 비가 많이 와서 날씨 걱정이 많은데다가 제주도는 흐린 날도 많고, 또한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어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에 내리니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끼어있었지만, 비나 태풍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날씨 때문에 불편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니 미리 도착한 선발대와 털털하게(나중에는 별로 안 털털한...) 생긴 전세 버스기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듯이 버스에 오른 우리는 베이스캠프인 백주년기념교회(이하 교회)로 가기 전에 저녁부터 해결하기 위해 동성수산을 향해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외국의 어느 여행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어서 가로 지르는 길이 없고 모든 길이 한라산을 중심으로 돌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제주 출신의 어느 학생 말로는 제주도에서는 그냥 앞으로만 가면 출발했던 원위치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식당에 가는 길에 왼쪽으로 산방산이 보였다. 산방산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나온 마그마가 천천히 굳어지면서 종 모양이 된 '종상화산'이라는데 산 정상까지는 약 395m이며, 현재는 중턱에 위치한 산방굴사까지만 개방되어 있단다. 그리고 산방산에는 탄산온천이 유명하다는데 그걸 아는 여대원들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온천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산방산에 관해서는 그 둘레가 백록담의 둘레와 비슷하기에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진 게 산방산이라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리고 산방산 근처에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계절도 맞지 않은데다가 시간도 없고 계획에도 없어 그냥 달리는 버스에 앉아 산방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목적지인 동성수산에 내리니 김경모 집사님과 이대원 목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대원 목사님이 제주도에 계신 것은 알고 있었는데 김경모 집사님이 어인 일로 제주도에 계신지 몹시 궁금했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바람에 실려 온 이야기로는 김 집사님은 우리가 묵을 라마다 앙코르 호텔과 좀 끈끈한(!) 관계에 있단다. 더 이상은 나도 잘 모름! 내게 묻지 마소!
그건 그렇고... 이번 수양회의 식사 장소와 관광지역에 관해서는 남명관 집사님의 수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남집사님은 제주 수양회를 대비해 미리 몇 차례 제주도를 방문하여 방송에 소개된 대부분의 식당뿐만 아니라, 방송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입소문을 탄 숨은 맛 집을 섭렵을 하여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곳으로 예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수양회 내내 우리가 한 식사는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일품 중의 일품이었다.
동성수산 식당을 가로 질러 뒤편으로 가자, 넓은 홀에 보였고 이미 우리를 위한 상차림이 마련되어 있었다. 상차림을 보니, 식탁 한 가운데에 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주위로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별의별 반찬이 총집합했는데 이걸 보니,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찬 가운데 신기한 것은 비빔냉면과 꿀에 찍어먹는 인삼이었다! 먹거리 왕국 제주도에서는 비빔냉면조차 반찬에 불과할 뿐, 주 메뉴가 되지 못했다. ㅋㅋㅋ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회를 보자, 슬슬 입맛이 돌기 시작했고, 반찬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나의 젓가락이 제일 먼저 어디부터 가야할지 작전을 짜는 와중에 김창선 장로님이 식기도를 하셨다. 머릿속에는 죽부터 시작하여 주메뉴인 회를 거쳐 튀김과 냉면 등으로 가는 비교적 상세한 각본을 짰지만, 실제로는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워낙 먹을 것도 많고, 모든 반찬이 다 맛이 있는데다가, 먹을수록 반찬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만 갔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얼큰한 매운탕이 나왔는데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아쉽지만 매운탕에 손을 댈 수 없었고 후식으로 나온 팥빙수도 마찬가지였다. 난 팥빙수를 무지 좋아하는데...
식사 후에 버스를 타고 교회로 가는 도중에 수양회 두 번째 날 아침 식사를 위해 임원 몇 명이 제법 큰 마트에 내려 물, 샌드위치 빵, 달걀 등을 구입했다. 그런데 밥도 맛있게 많이 먹은데다가 대형버스가 오랫동안 길가에 주차할 수 없어 서두른 나머지 교회에 와서야 달걀 두 판을 마트에 그냥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서 후발대로 도착한 이돈영 집사님과 성도교회에서 믿음 생활하다가 제주도에 정착한 황명회 집사님을 만났다. 황 집사님은 우리를 위해 감귤 한 박스를 갖고 오셨고... 내가 본 교회의 첫 인상은 마치 하와이에 있는 전원 교회 같았다. 새로 지어서인지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주변의 단장도 잘 되어 있어 참 아름다운 교회였다. 도착예배에 김옥자 권사님이 특송을 하시고 이대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 후에 숙소를 배정했다. 숙소는 세 곳으로 나주어져 교회의 게스트룸, 골프텔 그리고 라마다 앙코르 호텔 등이었다. 나는 호텔 팀에 속해서 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호텔 역시 거의 7성급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 하나 흠잡을 수 없는 깨끗한 최신식 호텔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이 호텔에서는 호텔에서 지급한 객실 카드가 있어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점이다. 객실 카드가 없으면 원하는 층을 아무리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