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순도 전남 담양 종가집 며느리 음력 동짓달 말날 해콩을 쑤어 메주를 띄운다 정월에 장을 담고 음력 3월에 장을 갈라 8월이면 햇장이 익는다 열 달간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조선간장은 국·짠간장으로 여겨지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조미료로 음식맛을 낸다 밥상 한가운데 차지하던 장은 그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처럼 장은 기다림이고 인내다
“장(醬)을 담글 때는 항상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문상이나 궂은 일을 피하고 말날〈12간지 중 오(午)자로 끝나는 날〉에 장을 담고 갈라야 한다.” 시어머님께서 장을 담그실 때 항상 빼놓지 않고 제게 하시던 말씀입니다.
음력 동짓달(음력 11월) 말날로 날을 받아 해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어 잘 띄운 뒤, 음력 정월에 장을 담고 음력 3월 중에 간장과 된장을 가르면 음력 8월경에 장이 익어 햇장이 나옵니다. 산모가 열 달을 수태해 아이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 담그기에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기와 날을 반드시 지켜 장을 담그는 일이 우리 집안 일 년 대사 중 가장 큰일이지요.
이렇게 장을 담그며 고(高)씨 문중 종부(宗婦·종가 며느리)로 보낸 세월이 벌써 올해로 39년이 되었습니다. 갓 시집왔던 시절 “새 아가, 밥상에 간장이 빠졌구나! 어서 종지에 간장 담아 오너라”고 말씀하시던 시어머님의 꾸지람이 생각납니다.
저는 전남 곡성군 반송이라는 마을의 기(奇)씨 집안 1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행주 기씨인 유학자 고봉(高峯) 기대승 선생의 후손입니다. 24살에 아버지가 정해주신 대로 만난 남편은 장흥 고(高)씨 문중의 10대 종손이었습니다. 어머니도 고씨이셨으니 외가(外家)가 다시 시가(媤家)가 된 것이죠.
1970년대 초반인데도 시댁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혼수로 장만해간 TV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시골이었습니다. “종부는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이라는 일가 어르신네들의 말씀처럼 종부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고조부부터 4대조 제사, 설·보름·추석·동지 등 명절 네 번, 봄·가을 두 번 치르는 시제의 반상(메·밥, 찬·반찬), 매월 초사흘의 상차림, 가족 생일을 합쳐 크고 작은 상 차리기만 모두 31번이나 됐습니다. 더욱이 그 많은 제사가 겨울에 몰려 있어 제사상 준비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일꾼 밥은 혼자 해도 제사는 혼자 못 지낸다’는 옛말처럼.
추운 겨울날 마당에서 떡방아 찧으면서 시린 손을 호호 불던 날들, 12시 넘어 지내는 제사 때문에 어둑해진 밤에 무서움에 떨며 혼자 밥 짓던 일들, 땔나무가 많지 않아 볏짚을 때는 바람에 매캐한 연기로 눈물 흘리던 날들이 지금은 추억이 되어 남았습니다.
집안에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 손님상과 다과상을 차린 날이 헤아려 보니 한 해 61일, 두 달이나 될 정도였지요. 약과, 정과(과일 등을 설탕에 쟁이거나 조려서 만든 전통과자), 식혜, 조청은 언제나 준비해야 하는 다과이고 갱(羹·국), 찬(饌·반찬), 편(떡) 등의 음식도 언제나 끊이지 않도록 넉넉히 장만해야 했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 중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장 담그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고, 깊은 맛을 나게 하는 데 기본적으로 간장을 썼습니다. 간장 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채소와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간장이 없어서 소금으로 간해서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간장이 없는 집안은 가난한 집안을 일컫기도 했습니다.
간장도 세 가지 정도를 두어 5년 이상 묵은 것은 진장, 그해 만든 것은 청장, 그사이의 것은 중간장이라 했습니다. 진장은 단맛이 나고 색깔도 진하며, 청장은 깨끗한 색깔에 맛이 깔끔합니다. 음식에 맞게 간장을 달리 사용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집안의 내력과 품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을 담그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면 맛이 떨어지므로 모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장 항아리에 계란을 띄워 너무 많이 뜨면 짠 것이라며 시어머니로부터 물 맞추기를 배웠습니다. 메주를 많이 넣어야 진한 맛이 우려나온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선간장은 국간장, 짠간장으로만 여기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조미료로 음식 맛을 내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상차림 중 밥상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장은 그 자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김치도 간장으로 맛을 내던 것이 어느새 젓갈로 바뀌었습니다. 음식이 예전처럼 담백하고 정갈한 맛을 내기가 힘들어지게 된 것이죠. 쉽고, 빠르게 만들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요구 때문에 장을 중시하는 풍습도 사라져간 것입니다.
하지만 요사이 다시 우리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건강한 슬로푸드를 대표하는 장(醬)을 찾는 이가 늘어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마을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네 곳 중 한 곳입니다. 열 달의 기다림으로 장이 만들어지듯 기다림과 느긋한 여유로움을 지닌 곳이지만 우리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장맛이 소문나 장 담그기 체험을 원하는 방문자도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장을 맛나게 잘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정성과 인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메주의 발효 정도와 소금의 양, 메주와 소금물의 비율이 장 맛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주 쑤기부터 햇장을 만들기까지 열 달간의 정성이고 기다림입니다.
장을 담갔다고 그대로 묵히는 게 아니라 늘 맛보고 색깔이 변하는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색깔이 누르스름해지면 다시 달여야 한다. ‘장맛이 변하면 우환이 생긴다’란 말처럼 장은 가족들을 지키는 보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없듯이 장은 끊임없는 기다림이고, 인내입니다.
장은 조상의 지혜와 얼이 깃든 우리 맛의 근간을 이루며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전통 음식입니다.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문중의 종부로서, 전통 식품을 지키는 명인으로서, 잊혀 가는 우리의 장이 밥상 한가운데에 다시 놓이는 행복한 꿈을 꾸며 올해도 바삐 손을 놀려 장을 담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201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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