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다.
영국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중학교 3년에 고등학교 3년, 내리 6년을 주당 몇 시간씩 영어에 투자한 한국적 교육현실 때
문에 영국에서 만난 영어는 그나마 생판 낯설지는 않았다. 읽기와 쓰기에 투자한 시간은
또 좀 많은가? 그 덕분에 길거리 영어간판도, 안내책자의 꼬부랑 글씨도 대충은 감 잡았어!
얼렁뚱땅 해석도 가능했고. 1주일 넘게 영국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다 보니 열차며 지하
철, 버스도 왠만큼 익숙해 촌놈 서울간 정도의 흉내도 낼 수 있었는데.
파리 중앙역에 딱 두 발 디디고 서니 갑자기 갈 곳이 없다. 귓가에 들리는 프랑스말
연방 오숑숑 오숑숑 떠들어대는데. 뭐라 하는지 도무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만 들
리고.
파리에 오기 전에 가을만 되면, "똥블라∼네제∼" 눈 반쯤 풀고, 혀 꼬아 가면서 불러제끼
던 프랑스 샹송의 감미로움이 이젠 숫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일단 저녁 잠자리는 잡아놓아야 오늘도 열씨미 싸돌아 다닐터인데 싶어서 용감히 뚜벅뚜벅
공중 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 영국에서 1주일 넘게 잘도 써먹은
"헬로우"를 외쳤다. 어머 왠일이니! 저편에서도 반갑게 "헬로우"하는게 아닌가? (나중에 알
고보니 헬로우가 아닌 프랑스말로 영어의 헬로우에 해당하는 알로였다.)
난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다. 오늘 방이 필요하다며 빠다 잔뜩 바른 발음 혀 깨물려가며 설
명했는데 대뜸 저쪽에서 속사포처럼 뭐씨라뭐씨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을 프랑스어다.
난 다시 천천히 말좀 해달라고 영어로 얘기하고, 저쪽에서는 계속 오숑숑 오숑숑 프랑스어
를 쏟아붓는다. '아. 이러다 오늘 파리 첫날밤을 길거리에서 지새는 것은 아닌가? 퐁네프의
연인들 보니 다리 밑에 거지들도 많던데. 그 속에 나도 합류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얼른 준비해간 프랑스어 한마디 책을 들고 천천히 읽었다. (한국말로 토를
달아 놓은 것.) 상대는 내 말을 못알아 듣는 것 같았다. 하긴 프랑스어라고는 출발하기전 포
겟 북에 씌여진 프랑스에 밑에 한국말로 토 달린 '빠르동' '메르씨' '메르씨보꾸'를 큰소리로
읽으면서 "메르치보꾸. 어머. 왠 멸치볶음. 오호호" 호들갑 떨던게 다 였다. 이럴 줄 알았으
면 EBS 프랑스어 강좌 한 번이라도 들어둘걸.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그래도 역시 선진국답게 상대 수준도 선진국민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어머머' 내지는 '아임
쏘리 아이캔 스피쿠 프렌치' 어쩌구 하거나 '전화 잘못 걸었어욧' 하면서 꽝 끊었을 텐데, 끝
까지 내 오리지널 한국식 프랑스어를 들어주고 설명해 준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는 격으로 알아들은 말 몇 마디로 겨우 숙박지를 찾아갔다.
영국 도버해협을 건널 때 탄 열차는 그 이름도 유명한 떼. 제. 베!
코리아 경남 창원시 명서동에 술집 이름도 떼제베인데. 프랑스 놈들이 알까 몰라.
열차가 고급스럽다. 배낭을 짐칸에 들어올리고 앉아있으니 옆자리에 노란 병아리색 반팔 털
쉐타에 흰 면 바지를 입은 날씬한 금발의 프랑스 여자가 뭐씨라 하면서 앉는다.
오호. 프랑스인과 말할 절호의 기회를 나가 놓칠수 있냐.
먼저 나 소개부터 한다. "난 한국에서 온 B.J.R (배째라)정신으로 똘똘 뭉친 막가파 아줌마
다. 프랑스어는 못한다."
다행히 그녀는 세련된 파리지엔느답게 영어도 잘 구사한다. 자기는 은행에서 근무하는데 2
년 전 일본에서 3년 가량 근무하다 파리로 왔다. 한국은 가보지 못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혹시 남편과 문제가 있어서 혼
자 여행하는 건지?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우리 부부 금실은 대한민국 창원시 상남동 대동아파
트 108동 1506호 안에서는 소문이 났는디.
눈이 똥그래져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물어보았더니 자기들 같으면 결혼한 부부가 혼자
한 달씩 여행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남편이 왜 혼자 보냈느냐? 일본에서도 그런 경우가
흔한 것 같지는 않더라. 동양은 여자가 남편에게 순종적이지 않느냐? 며 나를 바람난 여자
(?) 쯤으로 이상하게 바라본다.
한국에서 남자들이 한 달씩 회사 안 나가면 밥그릇차고 길거리 나앉아야한다. 지는 바빠서
못 오니, 나 혼자라도 많이 구경하고 돌아가서 입술 부르터게 얘기해주면 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친절하지 못해 걱정이 된다. 길 물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로 물어도 프랑스어로 대답해 주는 것은 영어를 잘 못해서이기도 하
다. (96년도 이야기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96년부터 프랑스
초등학교도 영어교육을 실시하였다.)
내릴 쯤 그녀는 내게 루부르 박물관도 좋지만, 오르세 미술관을 꼭 가보라고 얘기한다.
오르세는 프랑스인들이 정말 아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미술관이라며.
그녀의 추천을 받아들여 여행일정표를 수정하여 오르세를 가게 되었다.
유럽 여행 중 잊지 못할 곳 중의 한 곳 오르세 미술관. 혁명과 예술을 실어나르는 기차역
오르세를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든 프랑스인들의 미적 감각과 의식이 살아 숨쉬는 곳!
떼제베 열차 안에서 내가 본 풍경 하나.
베들레햄 싸이즈가 예술인 남편만 보다가 프랑스 남자들 보니 어쩜 그리도 날씬 쭉 인지.
(영국인들도 10대 20대 청춘을 제외하면 소세지를 많이 먹어서인지. 우리 신랑 배는 애교로
봐줄만 할 정도였다.) 옷차림도 아무거나 하나 걸쳤는데도 멋있게만 보인다. 일단 몸매가 받
쳐주니. 허리끈이 뱃살 아래에 걸쳐 있는 게 아니고 제자리에 단정히 자리잡고 있으니 어찌
옷맵시가 안나리요.
어찌되었던 그런 멋진 프랑스 남자 하나가 아이 둘을 한 팔에 안고, 다른 손은 잡고, 부인
과 함께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3살 가량 된 여자애가 강하게 뭔가를
주장하는 것 같았다. 아빠인 프랑스 남자는 아이 눈을 바라보며 뭐씨라 말을 하더니, 주머니
에서 동전을 꺼낸다. 공중으로 가볍게 동전을 튕겨 올린 뒤 손바닥으로 탁 덮는다. 아이에게
어느 쪽을 할 것인지 묻는 것 같았고, 손바닥을 펼쳐 보이더니 상황 끝. 아이는 시무룩해지
며 제자리에 가서 앉는다. 떼쓰고 뒹굴고도 없고, 윽박지르고, 두드려 패고도 없었다. 순간
나는 부러웠고, 부끄러웠다. 쪼게난게하며 윽박지르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돌아가면 나도
저래야지 하며 다짐했다. (돌아와서 써먹었는데 왠걸 통하지가 않았다. 하긴 내 주장대로만
아이를 휘둘러 댔는데, 아이도 저 고집에 생떼만 쓰려 들지, 갑자기 이성적으로 나오는 엄마
를 어찌 감당하리요. 요새는 아이들도 나이가 들었는지 제법 먹혀 들어간다. 엄마 혈압 올라
갈까봐 알아서 기는 건지는 몰라도. 고맙다. 내 새끼들.)
P.S. 날씨가 춥습니다. 모두들 몸 단속(감기 조심), 마음 단속(겨울철 활동 부족으로 인한 울
적한 마음)잘 하시고 연말 오로지 즐겁고 감사하게 보내십시오. 카페에 글 올려 주시는 분
들,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HaPPy 연말^)^
96년 유럽 배낭 여행기 중 하나를 끄집어 내 실어 봤습니다. 긴 겨울 밤 군것질 거리 삼으
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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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