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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칠(나의 事業이야기 : 권동칠 성호實業 代表) [記事] : 무엇이든 재밌고 즐겁게 하자 나는 경북 예천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시절 모든 가정이 그랬겠지만 특히 우리 집은 끼니를 잇기 어려운 손꼽히는 빈농 중의 하나였다. 학교(대창중)에 수업료를 납부할 때면 모친이 온 동네를 돌며 돈을 꾸러 다니실 정도로 궁핍하고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굳이 빈농이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 성격에 관한 부분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가정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그늘지게 생활하지는 않았다. 끼니를 거르거나 학비를 늦게 내도 그렇게 기가 죽어지내지는 않았다. 모두들 가는 수학여행에 혼자 빠져도 우울해 하거나 기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 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힘든 시절에도 모든 것이 즐겁고 재미가 있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때문에 모든 것들에 항상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20리 길을 걸어 등교를 하다 보니 매번 지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각을 해서 벌을 받을 때도 그 나름으로 재미를 느낄 정도로 재미있는 유년을 보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나는 별로 특별한 학생이 아니었다. 특징이 있다면 전교생 중에서 지각을 가장 많이 하고, 공부는 중간에서 약간 밑을 맴도는 수준이었다. 특별하게 잘 하는 것도 없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특히 수학에는 젬병이어서 시간표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던 수학시간을 아주 어렵게 보냈었다. 매 번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아야 했 는데 나중에는 너무 맞아서 종아리에 고름이 생길 지경이었다. 매번 맞으면서 배웠지만 맞을수록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수학 과목에 대한 싫증만 늘어갔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성적이 향상되지 않았던 것은 내 고집이 너무 세거나 수학 선생님의 교육 방법이 틀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세상에 대한 겁이 별로 없었다. 중3 때 친구 두 명과 무작정 상경한 적이 있었다. 부유한 편이었던 친구의 라디오를 팔아 상경 여비를 마련했지만 말 그대로 `계획없는 상경'이었기에 서울 생활은 엉망이었다. 좋게 말한다면 그 시절부터 세상 살이에 대해 자신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시공 중이던 제3한강교의 일용 잡부로 일했는데 재밌는 시간을 보냈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먹기 어려웠던 빵으로 끼니를 떼우고, 매일 받는 일당으로 한강의 모터 보트를 타곤 했다. 밤이면 백사장에서 잠을 자다 추워지면 공사장 주변의 굴뚝에 들어가 추위를 피해 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잡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매일 반성문 쓰는 생활이 이어졌다. 매일 2만 자의 반성문을 써야 했는데 모두 다른 내용으로 쓰자니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차라리 맞는 것이 휠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대창고)에 진학해서도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보통의 학생으로 성적은 중위권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예비고사가 있었다. 대입 본고사에 응시하기 위한 관문이었다. 주위에서는 모두들 내가 예비고사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암기 과목을 중심으로 겨우 턱걸이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비고사 합격 후 2년이 지나서야 동아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겪었던 수학 때문에 수학과는 전혀 무관한 과라고 믿고 입학했던 경제학과에서 나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달리 경제학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수학과 관련된 과목이 없다는 생각으로 진학한 학과였는데 경제수학 통계학 등이 떡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업보다는 학생회 일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학생회장을 하며 입대 전까지 놀기에도 바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제 와서 회고해 보면 그 시절을 통해서 리더쉽을 길렀던 것 같다. 조금 늦은 시기에 군대에 입대했지만 군생활에 굉장히 적응을 잘 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덕택에 군생활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단체기합을 받거나 힘든 훈련 속에서도 나는 즐겁고 재미있게 생활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식의 무료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군생활에 임했던 것이다. 비록 지나간 시간이고 성격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재미있고 즐겁게 임하는 방법을 알기에 오늘의 나는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 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약력] : △55년 경북 예천 생 △82년 동아대 경제학과 졸업 △82년 세원 입사 △88년 동호실업 창립 △91년~현재 성호실업 대표이사 △96년 자랑스런 신한국인 표창 △97년 트렉스타 설립 △97년 5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99년 7000만달러 수출탑 수상(每日經濟 2000-01-03)
권동칠(트렉스타 '神話 創造의 秘密' 프로그램에 放映, 8月 13日(金) KBS 1TV 午後 7時 30分) [記事] : 등산화 1위 브랜드인 트렉스타(회장 권동칠․용문면 출생)가 기업 성공을 다룬 프로그램 ꡐ신화 창조의 비밀ꡑ에 소개된다. 또 중소기업청이 추진하고 있는 성공 중소기업 홍보 정책인 ꡐ신 3D'에도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KBS는 2004년 8월 초부터 부산 사상구 삼락동 트렉스타 본사와 녹산물류센터, 중국 현지 공장, 일본 판매 현장 등을 취재해 트렉스타 브랜드의 급성장 비결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 번 촬영에서 KBS는 특히 1997년 트렉스타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은 이후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한 브랜드 관리 비결과 경영 성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방송 내용에는 회사의 국내와 해외 시장 개척, 지방에 본사를 둔 기업이 브랜드 파워 국내 1위를 차지하기까지의 노력과 애환 등을 다뤄 감동을 줄 전망이다. 특히 권동칠 회장의 시장을 읽는 안목과 경영 능력, 자기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또 현재 기술이사를 맡고 있는 세계적인 산악인 엄흥길 대장과 함께 한 과정도 소개돼 스타마케팅의 기업 성공 사례로도 감동을 줄 전망이다. 스타마케팅은 지역 기업들이 취약한 부분이어서 남다른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290g의 초경량 등산화를 개발한 기술력, 20개 국에 이르는 해외 수출 전략 등도 회사의 자랑거리로 다뤄졌다. 회사측은 이 번 방송이 회사의 또 한 번의 도약에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9년 MBC 성공시대 프로그램에 권동칠 회장이 소개된 후 회사의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져 브랜드파워 1위의 급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번 KBS 방송은 전국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어서 수도권 소비자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회사측은 기대하고 있다. 방송은 2004년 8월 13일(금) 저녁 7시 30분 KBS 1TV를 통해 55분 간 방영된다. 한편 트렉스타는 중소기업청이 역동적으로 꿈을 이뤄낸 중소기업 사장들의 성공기를 소재로 드라마 제작을 추진하고 있는 `신3D'(다큐멘터리 제작 대상 기업)에 선정됐다.(醴泉新聞 2004-08-12 14:09:04)
권동칠(-世界人의 발에 우리 신발을 신겨라- 土種 登山靴의 大挑戰, 放送日時 : 2004년 8월 13일 (금) 저녁 7시 30분 ~ 8시 25분, KBS 1TV PD: 김인호 /작가: 조정화) [記事] : 불과 십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신개념 초경량 등산화 트렉스타. 우리 토종 브랜드 트렉스타는 세계 일류 상품이라는 신화를 만들고 한국 등산화의 대명사로서 해외 시장을 제패했다. 잃어버린 신발 수출국의 자존심을 되찾고 무명 중소기업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최고의 기술력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가 시장을 바꾼다 : 1993년 5월 미국의 인라인 스케이트 제작사인 K2에서 신제품을 공동 개발하자며 찾아왔다. K2는 당시 성호실업에게 막대한 물량의 오더를 의뢰한 살로몬의 경쟁사였다. 권동칠(용문면 출신, 용문초등, 대창중, 대창고 졸업) 사장은 과감히 K2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인라인 스케이트는 발 보호를 위해 스키부츠처럼 딱딱한 부츠를 쓰고 있었다. 개발팀은 기존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가볍고 편안한 소프트 부츠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의 인라인 스케이트 전시회까지 남은 기간은 75일. 신기술 연구와 동시에 시간과의 싸움도 해야만 했다. 개발팀은 등산화를 개발했던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수 차례의 실험을 통해 마침내 부드러운 인라인 스케이트 개발에 성공한다. 부드러운 인라인 스케이트는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의 판세를 뒤집어 놓았다. 시장 점유율이 매년 곱절로 성장하면서 1998년에는 독보적인 존재였던 롤러 블레이드를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K2에 소유권이 있어 성호는 고생 끝에 개발한 신기술에 대한 권리를 전혀 행사할 수 없었다. 내 브랜드를 붙이지 못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 OEM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자가브랜드와 신개념 등산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 성호실업은 우리 이름으로 세계를 공략하기 위해 자가 브랜드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신생 중소기업의 환경에서 개발팀을 꾸려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권동칠 사장은 K2 본사를 찾아가 자가브랜드 개발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한 뒤 1994년 정식 상표 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등산화는 무겁고 투박한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탈피하여 가볍고 편한 신 개념 등산화라는 컨셉으로 경등산화 개발에 착수한다. 주중에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서 테스트를 거치며 수 천 수 만 번의 시행 착오가 반복됐다. 중소기업에게는 부담이 될만한 표준 신골 개발에도 20억 원이나 과감히 투자하며 한국인에게 맞는 표준 신골 개발을 완성한다. 1997년 드디어 트렉스타의 본격적인 런칭. 첫 번째 모델 '가이드'는 목표로 했던 290g에는 못 미치쳤만 당시 800g에 달하던 다른 등산화에 비하면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기존 시장의 장벽은 너무 높았고, 회사는 존폐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트렉스타는 현장으로 나가 발로 뛰면서 등산화 홍보에 나섰다. 편하고 가벼운 등산화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트렉스타의 판매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세계 최초의 초경량 등산화 'WING'을 완성, 290g의 초경량 등산화라는 신화를 이뤄낸다.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돌파하라 : 국내 시장 제패를 발판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한 트렉스타. 일본 최대의 아웃도어 유통업체인 에버뉴와 손을 잡고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 트렉스타 테스트를 위해 등산에 나선 일본 유통업체 담당자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다친 것이다. 이로 인해 미끄럼 방지에 이상이 제기된다.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조건인 미끄러짐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 착수 1년인 2001년에는 미끄러짐 방지 창 개발과 동시에 하이퍼그립이라는 신발창 자가브랜드도 출시하게 된다. 미끄러짐 문제가 개선되면서 일본 시장의 반응도 좋아져 2003년에는 점유율 2위로 수 많은 외국 브랜드를 제치고 일본 시장에서도 인정받게 된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라 : 이제 트랙스타는 아시아를 넘어서 더 넓은 시장 개척의 꿈을 키운다. 그 꿈을 위해 세계의 지붕을 넘나들면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기술 자문으로 영입한다. 엄 대장의 지적으로 수 많은 테스트를 거쳐 단점을 보완한 끝에 신슐레이터라는 신소재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개발팀과 엄홍길 대장의 노력으로 중등산화 '어코드'가 탄생한다. 전세계 어느 산에서도 기술력으로 빛나는 트렉스타는 일본에 이어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등산화 부분 1위의 위상을 떨치며 현재 세계 22개 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트렉스타는 2003년 세계 유명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우리 토종 등산화 트랙스타의 세계를 향한 발걸음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박재석 醴泉郡廳 홈페이지 2004-8-13(22:43:0))
권동칠(휴먼獎學金 3億 원 造成 : 권동칠 트렉스타 代表) [記事] : 등산용품업체인 (주)트렉스타의 권동칠(용문면 출생ㆍ대창중고 졸업ㆍ부산) 대표는 히말라야 등반 중 숨진 동료의 시신을 1년만에 수습한 엄홍길 대장의 ‘휴먼원정대’ 정신을 기리기 위해 ‘휴먼장학금’ 3억 원을 조성했다“고 2005년 10월 17일 밝혔다. 이 장학금은 히말라야 등반 중 희생된 국내 산악인과 네팔 세르파 유족들에게 지급된다. 트렉스타는 우선 2004년 5월 히말라야에서 숨진 박무택 씨의 유족과 한국원정대를 돕다 희생된 네팔 현지 세르파 6명의 유족을 장학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했다. 장학금은 박씨 유족에게 1백만 원, 세르파 6명의 유족에게도 1백만 원 총 2백만 원이 매월 지급된다.(醴泉新聞 2005.10.27)
권동칠(권동칠 트렉스타 대표 CEO 포커스 출연) [記事] : 권동칠(용문면 출생) 트렉스타 대표가 2006년 12월 11일 저녁 11시 30분 KBS 1TV CEO 포커스에 출연, 세계적인 등산화 브랜드로 키운 과정과 미래 신발산업에 대한 전망 등을 들려줬다.(醴泉新聞 2006.12.14)
권동칠(권동칠 代表 京仁放送에 紹介된다 : '박명수가 만난 CEO' 프로그램...24일(月) 저녁 9時) [記事] : 경인방송(OBS) 신설 프로그램인 ꡐ박명수가 만난 CEO'에 (주)트랙스타의 권동칠(용문면 출생) 대표이사가 소개된다. 트랙스타 권동칠 대표이사 편은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저녁 9시에 방송된다.ꡐ박명수가 만난 CEOꡑ는 성공한 중소기업의 대표 CEO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화와 중간중간 재연을 통해 CEO의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차량 이동 중 CEO가 직접 퀴즈를 내는 ꡐ뛰뛰빵빵 퀴즈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트랙스타는 신발제조원으로 널리 알려진 성호실업의 제품브랜드로 시작, 1988년 현재의 유통법인으로 자리잡았다. 고기능 등산화, 인라인 스케이트, 안전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힘써 내수시장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한편 권동칠 대표이사는 지난 99년 MBC의 `성공시대'와 2004년 KBS의 `신화창조의 비밀'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다.(박동학 醴泉新聞 2008년 03월 20일 14:13:59)
권동칠(권동칠 代表理事 國軍放送 TV에 紹介) [記事] : 국군방송TV `성공하려면 군에 가라' 프로그램에 (주)트랙스타 권동칠(용문면 출생․부산) 대표이사 편이 방송됐다. 권동칠 대표이사 편은 `신토불이 등산화 개척자, 권동칠' 제목으로 오후 5시와 밤 10시 20분 두 차례 소개되었다. 국내 최초의 고유 브랜드 등산화 ꡐ트렉스타ꡑ의 권동칠 대표이사.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무원 생활을 했던 이색 경력과 육군11사단 9연대 인사행정 하사로 복무하며 행정 경험, 제대 후 곧장 신발 업계에 뛰어들어 30여 년만에 국내 최대의 등산화 회사를 일궈내 ꡐ신발왕ꡑ이란 별명을 얻기까지의 열정적인 삶이 방송되었다.(醴泉新聞 2008년 10월 23일 13:32:34)
권동칠 [記事] : 권동칠 (주)트랙스타 대표이사는 2009년 2월 5일 대구유통단지 전자관에서 열린 재구예천군민회(회장 조용래) 정기총회 및 신년교례회에서 300여 명의 회원에게 '지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을 선물했다.(每日新聞 2009-02-07)
권동칠(트렉스타, 大韓民國 代表 名品브랜드에 選定 : 삼성, 現代自動車 等 20個 企業 選拔, 國內 토탈 아웃도어 스포츠 分野 單獨 選定) [記事] : 용문면 태생의 기업인 권동칠 씨가 경영하는 (주)트렉스타가 국가브랜드 위원회와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2009 Advanced Technology & Design Korea 브랜드에서 명품브랜드로 공식인증을 받았다. 한국디자인 진흥원은 2009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브랜드로 현대자동차, 삼성, LG, 웅진코웨이 등 20개 기업을 선발하였으며 신발업계에서는 트렉스타가 유일하다. 트렉스타는 “주최 측에서 트렉스타가 보유한 다수의 국내외 특허와 다양한 실험장비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첨단기술 및 고품격 디자인이 반영된 제품을 생산하는 최우수 기업으로 국내외의 홍보를 통해 국가브랜드 가치와 기업 경쟁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트렉스타 권동칠 대표는 “첨단 기술력과 우수한 브랜드 경랭력을 바탕으로 이번 수상을 또 한번의 계기로 삼아 다가오는 2010년 보다 활발한 마케팅 활동과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브랜드 입지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선정소감을 밝혔다. 한편 선정된 기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임을 인증하는 Advanced Technology & Design Korea 로고를 사용할 자격을 부여 받으며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전 세계로 미디어 홍보와 유명전시회에 참여하는 등의 대폭적인 해외 홍보를 지속적으로 지원받게 된다. 선정기업의 대표상품은 인천공항에 상설 운영될 Advanced Technology & Design Korea 홍보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또한 선정된 20개의 명품 브랜드는 세계 최대 종합 전시회인 디자인 코리아(DESIGN KOREA) 2009에 ‘대한민국 명품 브랜드전’에 전시된다. 이 특별관에서 트렉스타의 주력제품인 IST등산화와 코브라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醴泉新聞 2009년 12월 17일 12:02:41)
권동칠(트랙스타 顧客 感謝廛, 올 겨울衣類 全製品 40% 引下) [記事] : (주)트렉스타(대표 권동칠·용문면 출생)에서는 대한민국 아웃도어 대표 브랜드로 선정된 것을 기념, 2009년 12월 29일부터 트렉스타 의류를 취급하는 전점을 대상으로 고객 감사전을 연다. 트렉스타 마케팅 담당자는 “트렉스타가 대한민국 아웃도어 대표브랜드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고객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객들의 성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이번 감사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번 고객 감사전은 2009년 올해 겨울의류 전제품(신발 및 용품 제외)에 대해 40% 인하하여 판매한다.(醴泉新聞 2009년 12월 31일 14:01:03)
권동칠(권동칠 代表理事 '釜山 디자인 經營人賞' 受賞) [記事] : 토탈 아웃도어 기업 ㈜트렉스타의 권동칠(용문면 출생) 대표가 2010년 11월 17일 부산 디자인 산업의 발달에 기여한 경영인에게 수여하는 ‘2010 부산디자인경영인상(부산상공회의소 회장상)’을 수상하였다. 부산디자인상은 부산광역시와 (재)부산디자인센터가 공동 주관하여 아시아 디자인 가치를 고취하고 부산디자인산업의 세계화를 위해 수상하는 상이다. ㈜트렉스타의 권동칠 대표는 독창적으로 차별화된 제품 개발과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영역을 구축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디자인경영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권동칠 대표이사는 ‘보다 기능적인 신발로 인류의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에 기여함으로써 세계 최고 기술력의 신발 회사 그 결과로 최고 수준의 복지 회사 건설을 목표로 한다’를 ㈜트렉스타의 경영이념으로 삼고 신발에 디자인 경영을 도입했다. 창업 초기부터 창의적인 디자인과 컨셉 개발을 통해 경등산화, 소프트부츠 인라인 스케이트화, 사이즈 조절 신발, 코브라 등 새로운 개념의 신발을 만들어 온 그는 올 해 인간에게 가장 최적화된 신발인 네스핏을 선보여 차별화된 기술과 디자인을 인정받아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등 아시아, 미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24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권동칠 대표이사는 “디자인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이제 필수적인 요소이다. 제품이 아무리 기능이 좋더라도 디자인이 좋아야 고객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Essential(본질)을 잃어버렸다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디자인이든 ‘사람을 위한다’는 본질을 바탕으로 디자인이 진보해야 된다”며 “앞으로도 독창적인 기술 개발과 디자인으로 부산 디자인 산업발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醴泉新聞 2010년 11월 17일 (수) 14: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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