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쥬신제국사35-가우리 고구려 세움 3>
☯ 가우리 독립 발판, 부여 멸망 북만주 통일
젊은 주몽[추모(鄒牟)]왕은 자신이 진두지휘하여 그 유명한 가우리의 보기군단(步騎軍團)을 만들고, 매일같이 비류호에 풀어 맹훈련을 감행하니, 이를 본 주위의 소국들이 미리 겁을 먹고 새 나라 가우리 아래로 스스로 굴복해 들어왔다.
그 중에도 비류호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던 비류국의 왕 송양(松讓)이 그의 어여쁜 과부 딸 소서노(召西奴)를 데리고 주몽왕을 찾아오니, 이것은 주몽의 가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말풍선)
“가우리의 독립을 축하하옵니다. 사실 고무서 천황이 허약하여 주위의 오랑캐들이 늘 쥬신[조선(朝鮮)]의 영토를 침략하여 근심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주몽왕처럼 젊고 씩씩한 분이 가우리[고구려(高句麗)]를 열었으니,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옵니다.” (비류국 송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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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몸으로 일부러 찾아와 축하해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졸본(卒本)대왕(大王)의 염려를 받아들여 반드시 이 땅의 한구를 몰아내고 흉노를 축출하여 쥬신제국의 영광을 다물(多勿)하겠나이다.” (주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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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왕(老王)이 주몽왕께 한 가지 소청이 있나이다. 사실 제 아들은 없고, 소서노라는 딸이 하나 있는데, 이웃의 소왕국 우이[우태(于台)]에게 시집을 보냈으나, 구이[구태(仇台): 크치]라는 아들을 하나 둔 채 우이왕이 죽는 바람에 가엽게도 과부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약 왕께서 과거를 개의치 않고 소서노를 받아 처(妻)로 삼아 주신다면, 소서노가 전남편에게 상속받은 나라는 물론이려니와 나의 비류국도 주몽왕께 바치겠나이다.” (송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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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松讓)왕의 깊으신 배려에 감격하옵니다. 아직 뿌리도 깊지 않은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옵니다. 그래, 소서노는 어디 있습니까? 대왕의 비류국의 사위가 되는 일이니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 되면 내 있는 힘을 다하여 대왕의 노후 안녕을 보장하겠습니다. 하하하!” (주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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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이옵니다. 거두어 주시면 대왕의 다물토(多勿土: 옛 쥬신의 영토를 회복하는 일) 목표에 있는 힘을 다하여 돕겠나이다. 이 아이가 크치왕자[구태왕자(仇台王子)]이옵니다. 비류국의 백성들은 모두 비류왕자(沸流王子)라고 부르옵니다.” (이하 소서노)
“대왕의 친자식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만약 그리하시면 모든 비류국 백성들이 대왕을 받들고 하나같이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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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마시오, 크치[구태(仇台)]를 나의 친자식으로 삼아 비류국 백성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오. 물론 소서노도 왕비로 삼아 계속 그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할 것이오.” (주몽)
이리하여 주몽은 비류국을 흡수함과 동시에 졸본(卒本)의 새 주인으로 등장, 대가우리로 발전하는 튼튼한 근거를 마련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비류국 북쪽의 동족 가우리국도 스스로 나라를 바쳐왔다.
그러나 주몽은 동부여(東扶餘)의 가시라에 남겨놓고 온 어머니 유화 부인과 예씨 부인, 그리고 그녀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누리 왕자 등,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있었다. 그러한 주몽왕의 입장에서 과연 강국 건설의 꿈만으로 정략적으로 이루어진 소서노(召西奴)왕녀와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소서노 왕녀는 젊은 남편 주몽왕을 위하여 그녀의 전 재산을 바쳐 가우리 군의 군사 장비를 마련하는데 전력을 다했고, 비류국 백성들도 어린 비류왕자(沸流王子) 크치[구태(仇台)]의 성장을 기다리며 가우리의 세력 확장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가우리를 독립 왕국으로 선포한 지 5개월도 채 안 된 서기전 58년 10월. 젊은 주몽왕에게 또 하나의 결정적인 행운이 찾아들었으니, 졸본부여(卒本扶餘)의 수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의 고무서(高無胥) 단군천황이 성도(聖都) 영고탑(寧古塔)에 가서 신수두를 모시다가 돌연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침 고무서 단군천황에겐 후사가 없었으므로 이제 고두마루 천황의 서손 고주무의 앞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말풍선)
“드디어 천제께서 이 주몽에게 천하를 주시는구나! 내 손에 부황(父皇)의 천황검(天皇劍)이 있으니, 이로써 전부여 통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장들은 전군을 정비하여 즉시 아사달로 출발한다. 자, 가자!” (주몽왕)
고두막루 천황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천황검을 높이 든 주몽은 선제(先帝)의 측근이었던 중실무골과 소실묵거 장군들을 앞세우고 부분노, 부위압, 오이, 극재사, 마리, 협보 등이 그 동안 갈고 닦은 가우리의 보기군단을 이끌며 주인 잃은 아사달을 향하여 질풍같이 진격해 갔다.
대부분의 중신들이 모두 영고탑 제전에 천황을 수행하여 떠나 백악산 아사달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돌연 고주무와 그의 맹호 같은 장군들이 기습적으로 달려들고, 그나마 수비병들도 고주무의 천황검(天皇劍) 앞에 기가 죽어 성문을 열고 고주무를 맞아들이니, 이로써 졸본부여는 불과 2대에서 끝나고,
북만주의 넓은 천지는 고주무의 가우리 천지가 되었다. 가시라를 탈출한 지 2년이 채 못되는 사이에 이룩한 장한 업적이다.
드디어 대망의 부여족 통일을 이룩한 고주무는 대가우리국을 건설하니, 오랜 세월 북만주의 주인 노릇을 하던 쥬신족[조선족(朝鮮族)]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가우리를 세운 고주무는 그 첫 번째 명령으로 명장(名將) 부분노(扶芬奴)를 파견, 졸본국(卒本國)을 실력으로 멸망시키고, 그 무고(武庫)를 털었다.
가우리의 속국으로 살아남고자 했던 송양왕은 부분노 손에 죽고, 이로 인하여 비류국민들과 소서노 왕녀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쳤다. 그러나 이때 소서노는 이미 아버지를 죽이고 그녀의 나라를 탈취한 배신자이자 남편인 주몽의 아들 온조(溫祖)를 배고 있었다.
《주몽군의 북만주 다물 작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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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힘든 지도의 설명문들 (좌→우, 상↓하)
부분노의 비류국 정벌
고주무 아사달로 진격
졸본부여 제2대 고무서 단군천황 죽음
중실무골, 소실묵거 등의 노장군들과 마리, 협보, 극재사를 총망라하여 서부 경계(境界)의 다물전(多勿戰)을 펼쳐 우리 땅 깊숙이 들어와 있던 훈족[흉노족(匈奴族)]을 몰아내었다.
중실무골과 소실묵거 장군의 훈족 축출 작전
마리, 극재사군의 대 흉노(匈奴)작전
협보 장군의 부여 잔군 소탕 작전
오이 장군 행인국 정벌
부위압 장군 동부여 정벌
계속하여 부위압(扶尉壓) 장군을 선봉으로 원한의 동부여를 공격하여 가우리에 신속(臣屬)시키고, 가시라의 북방을 모두 가우리의 영토로 다물했다.
이리하여 대제국 가우리는 북만주를 완전히 통일하고, 갑자기 다물(多勿)한 그 넓은 영지(領地)를 지배하기 위하여 급히 정치 제도를 정하니, 마치 옛날 쥬신 제국의 제도를 그대로 본뜬 듯하였다. 우선 천제(天帝) 밑에 신가(神加)라 하여 국상(國相)을 두니, 오늘날의 국무총리인 셈이고, 그 밑에 팔치[좌보(左輔)]와 발치[우보(右輔)]를 두어, 마리[두(頭)]라고 하니, 쥬신제국 당시의 삼왕(三王)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또 그 밑에 순라[동부(東部)], 불라[남부(南部)], 열라[서부(西部)], 줄라[북부(北部)], 가우리[중부(中部)]의 5부[오부(五部)]를 두고 , 그 장관(長官)을 라살[도사(道使)]이라 불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세습제로 하였으나, 신가, 팔치, 발치는 매 3년 마다 라살들 중에서 뽑는 임기제였다.
♬(말풍선)
“그 동안 짐을 도와 대가우리 건설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그 공에 따라 벼슬을 내릴 것인즉, 앞으로 더 나랏일에 충실하고 충성하도록 하라.”
“그럼 먼저 부분노에게 신가(국상(國相))의 벼슬을 주노라.” (주몽 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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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의 뜻에 따라 목숨을 바쳐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부분노)
[※ 이때 부여된 벼슬과 주인공들]
신가[국상(國相)]: 부분노(扶芬奴)
팔치[좌보(左輔)]: 오이(烏伊)
발치[우보(右輔)]: 마리(摩離)
순라라살[동부도사(東部道使)]: 부위압(扶尉壓)
불라라살[남부도사(南部道使)]: 협보(陜父)
열라라살[서부도사(西部道使)]: 극재사(克再思)
줄라라살[북부도사(北部道使)]: 중실무골(仲室武骨)
가우리라살[중부도사(中部道使): 소실묵거(小室黙居) §
2020.4.19 편집
一鼓 김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