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산 건너편의 지뢰지대는 넓은 초지를 키 큰 포플러와 아까시나무가 둘러싼 모습이 독특하다. 해방 때 2,600여 명의 졸업생을 냈던 철원공립보통학교 터이다. 운동장은 초원이 됐고 귀퉁이는 고랭이, 부들 등이 자라는 습지가 됐다.
온대지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간섭이 중단된 채 생태계의 천이와 복원이 이뤄진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러나 이곳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소규모 지뢰지대여서 인접한 도로와 군부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의 유물인 지뢰밭이 지킨 숲의 가치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김명진 국립환경과학원 자연평가연구팀장은 “최근 민통선 지역인 백암산에서 희귀한 사향노루 서식지가 발견된 것처럼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민통선 인근 지역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생태적 가치가 발견될 잠재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중단된 비무장지대 생태조사
분단 뒤 첫 생태조사로 기대를 모았던 환경부의 비무장지대 생태조사는 지난해 천안함 침몰 이후 중단된 상태이다. 동해부터 서해까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약 2㎞ 지역을 가리키는 비무장지대(DMZ)는 군사활동과 산불로 인한 교란이 계속되기는 했어도 반세기 이상 사람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곳이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이제까지 철책선 밖에서 망원경 등으로 관찰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2008년 11월 환경부와 각 분야 전문가 20여명은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 비무장지대 안에서의 생태조사를 처음 시작했다. 2008년 11~12월엔 경기도 파주, 연천 등 비무장지대 서부지역의 조사가 이뤄져 독특한 습지생태계를 발견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듬해 11~12월엔 강원도 철원 지역의 조사를 마쳤다. 그러나 스라소니, 표범 등 대형 포유류의 서식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강원도 화천, 양구, 고성 등 동부지역 조사는 천안함 사태 이후 악화한 남북관계로 이뤄지지 못했다.
생태조사뿐 아니라 6·25 60돌을 맞아 15개 언론사가 국방부의 협조로 추진하던 비무장지대 취재계획도 북한이 비무장지대를 대북 심리전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인명피해’를 위협하는 바람에 취소됐다. 유제철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여건만 풀리면 비무장지대 언제든지 생태조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까시나무는 쇠퇴하는가
한여름에 아까시나무의 잎이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지는 현상이 2000년대 중반에 전국에 나타났다. 이 ‘아까시나무 쇠퇴현상’의 주요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아까시나무 조림이 중단되면서 나타난 노화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했다. 그러나 요즘 이런 황화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아까시나무의 쇠퇴는 멈춘 걸까.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는 “황화가 심하지 않다 뿐이지 쇠퇴가 중단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큰 아까시나무의 꼭대기 부분이 말라죽는 현상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 증거다. 신 박사는 “아까시나무는 토양이 황폐한 곳에 먼저 들어오는 선구 수종이어서 다른 나무와 경쟁을 하거나 그늘진 환경에서는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전후 황폐했던 국토를 녹화하는데 아까시나무는 큰 구실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원산인 아까시나무는 19세기 말 들여와 1970년대까지 심은 대표적 조림 수종이다. 특히 어릴 때 베어내면 이듬해 또 그만큼 자랄 만큼 생장력이 왕성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연료림과 사방림으로 널리 심었다. 절정기는 1970년대로 전국의 아까시나무 면적은 지금보다 5배 이상 많은 32만㏊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꿀 공급 식물이자 산림녹화에 기여했지만, 아까시나무는 생활력이 너무 강해 퇴치가 곤란한 나무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까시나무는 뿌리가 얕고 목재의 비중이 커 바람 피해를 잘 받아 대개 50년을 넘기지 못한다. 무엇보다 산림이 건강해지면서 아까시나무의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