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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은 '국수'라는 시를 지어 소박하고 반가운 국수를 함께 먹을 그 날을 기다렸다. 국수는 우리 선조들이 장수를 기원하며 혹은 경사를 축하하며 먹은 잔치음식이자,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든든한 한 끼 식사다. 특히 부산을 대표하는 구포국수와 밀면은 부산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서 찾아와 먹는 부산 대표 국수. 쫄깃쫄깃한 면발에 멸치육수를 부어 먹는 '구포국수'와 밀가루와 전분을 배합한 탱탱한 면발에 시원한 육수로 감칠맛을 낸 '밀면'을 파헤쳐보자. 아, 벌써 배고프다!
■ 구포국수 - 후루룩 들이마신다! 쫄깃한 면발에 깊은 맛 육수
점심시간 가게 앞은 대기표를 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구포국시 한 그릇 먹기 위해 기다림을 자청한 사람들이다. 유명한 국수집 메뉴판에 적힌 '구포국수 하나만을 고집합니다'라는 문구에서 벌써 국수에 대한 주인장의 자부심이 전해진다.
한창 때만 하더라도 국수 하면 바로 '구포국수'를 떠올릴 정도로 구포국수는 부산을 대표하고 국수를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구포국수는 부산의 지역적 특성과 맞닿아 발달한 음식. 바닷바람과 강바람으로 말린 구포국수 특유의 면발은 적당한 염분을 머금어 육지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쫄깃함'과 '짭쪼름한 맛'을 자랑한다.
구포국수는 국수계의 '전설' 같은 존재다. 부산은 조선시대 일본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인 지역으로, 소면을 들여오면서 낙동강 나루터 일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특식으로 국수가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개통과 함께 유통 중심지가 된 구포 일대로 밀이 들어오고 구포는 그야말로 '국수의 메카'가 된다. 한국전쟁 이후 저렴하고 먹기 편하고 맛까지 좋은 구포국수는 대표 서민음식으로 떠올라, 구포 장터 아지매들이 부산 시내 곳곳을 돌며 국수를 팔기도 했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구포 일대에는 20여 곳의 국수공장이, 구포장터에는 국숫집들이 빼곡했다고 하니 부산사람들의 대단했던 '국수 사랑' 알 만하다. 그러나 세월 따라 국수공장과 국숫집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장터에 남은 몇몇과 부산지역 곳곳 국숫집들이 지금까지 구포국수의 명맥을 잇고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한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물국수 한 그릇 받아드니 그 따뜻한 연기에 마음이 풀어진다. 멸치를 오랜 시간 고아내 깊고 깔끔한 맛의 진한 육수에서 바다 내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구포국수의 특징은 고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수에 호박, 달걀지단, 김 가루 등을 얹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정구지(부추)를 얹어 초록빛을 더한다. 여기에 알싸한 땡초나 단무지, 볶은 어묵을 얹어주는 집도 있다. 간장과 고춧가루 듬뿍 넣은 다대기를 육수에 휘휘 저으면 깊은 육수의 맛에 얼큰함이 더해져 한층 시원한 맛을 낸다.
국수를 먹을 때면 후루룩 소리를 내게 되는 이유가 문득 떠올랐다. 국수는 '먹는' 게 아니라 '마셔야' 한다. 그릇째 들고 쫄깃한 면발을 국물과 함께 마셔본다. 후루룩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세상만사가 평화롭다. 잔치국수라는 별칭처럼 국수는 이웃 가족과 함께 즐거움과 정을 나누며 먹는 음식이 아니던가. 맛과 정을 나누며 구포국수 한 그릇 후루룩 마셔보자!
■ 부산밀면 - 원조의 자존심, 탱탱한 면발과 담백한 육수
비빔이냐 물이냐! 먹는 순간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기로. 이 행복한 고민은 부산사람들이 밀면을 대하는 데 있어 풀기 힘든 숙제다. 냉면에겐 미안하지만 부산사람들의 여름 별식메뉴으로는 밀면이 압도적인 인기다.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고자, 겨울에는 '이랭치랭' 정신으로 밀면을 찾는 부산사람들의 밀면 사랑은 가히 손꼽힌다.
밀면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는 구포국수만큼이나 구구절절하다. 이북 지역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슴슴한' 냉면 맛을 떠올리며 구하기 힘든 메밀 대신 밀가루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특히 밀면의 시초로 유명한 남구 우암동의 '내호냉면'은 어느덧 4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족보 있는' 집으로 부산밀면의 서막을 올렸다. 함경도 내호 지방에서 내려온 모녀가 함경도식 냉면에 부산의 소면 문화를 접목시켜 '밀냉면'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부산 곳곳에 이른바 '경상도 냉면'을 파는 가게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1세대 유명 밀면집들은 하나같이 냉면이라는 상호를 달고 있다.
경상도 사람들의 입맛에는 밀면의 적당히 부드러운 면발과 알싸한 양념의 조화가 꽤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즈음 밀면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부산진구 '개금밀면'과 동의대 인근 '가야밀면'이 100% 밀가루 면을 선보이면서 밀면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 한약재 등을 우려낸 영양가 있는 육수에 손으로 치댄 반죽으로 뽑아낸 쫄깃한 면발은 바야흐로 '밀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밀면의 3대 요소는 면발, 육수, 양념.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면발, 소뼈 등을 푹 고아 감칠맛을 더하는 육수, 새콤달콤한 맛에 알싸한 매콤함을 더한 양념까지 3박자가 착 맞아 떨어질 때, 제대로 된 '밀면' 한 그릇이 나온다.
고구마나 옥수수 전분을 섞어 면발의 쫄깃함을 더하는 곳, 닭을 우려낸 맑은 육수를 내어주는 곳, 한방재를 넣어 깊은 맛을 자랑하는 곳 등 내로라하는 밀면집들이 부산 곳곳에 셀 수도 없다. 어디 그 뿐인가. 매콤한 양념장에 납작하고 설탕과 식초 등에 절인 얄팍한 무김치를 고명으로 살포시 얹어내니 새콤달콤한 맛까지 전해진다.
면을 뽑아 육수와 함께 바로 내어놓을 수 있는 데다 후다닥 먹기 좋은 밀면은 성미 급한 부산사람들에게 딱 맞는 별미다. 먼저 나온 따뜻한 육수로 속을 달랜 뒤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를 즐기는 물밀면이냐, 매콤한 양념장에 쫄깃한 면발 슥슥 비벼 한 입 넣으면 속까지 화끈해지는 비빔밀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빌려온 글-
~雪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