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7.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눅 15:11~32(28)
*제목; 복음의정수(3) 충성했어도 죄가 될 수 있다!
1. 지난 시간 이야기
하나님 아버지의 남김없이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어디서나 어떤 상황이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의 죄로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깎여 나갔습니다.(“살림”)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로 못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 곁은 떠난 본적이 없지만,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적도, 믿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용서하시고 잔치를 베푸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보다도 큰 아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아들이 가장 잘 한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스스로”이고, “돌이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기쁨과 감사 그리고 자원함으로 할 때에만 주님이 받으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면 의로운 자가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주님께 돌아가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죄인으로 죽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직 진정한 회개가 없었어도(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돌아옴), 아버지는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을 믿음으로 여기셔서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아직도 주님께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랑의 잔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2. 충성했어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충성”은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진정한 충성은 모든 것(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는 것(faithful, 고전 4:2)입니다. 행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을 때, 온전한 행위는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충성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충성을 헌신이라는 의미에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주님께 충성하고 헌신했지만, 그 출발이 첫째 아들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고 감사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유산(구원과 하나님 나라)을 얻게 위해 ‘자기 의’로 충성했다면 이것은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자기의 힘으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 진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이 자기 계획(도시에서의 삶)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했다면, 큰 아들은 “도덕적 삶”을 가지고 행복(구원과 하나님 나라)을 추구한 것입니다.
두 사람 다 틀렸습니다.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려 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어떠한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려 했기 때문에 결국 죄의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게 큰 아들의 방법과 작은 아들의 방법을 병행하여 사용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러나 둘 다 죄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은혜와 감사로 하지 않으면 다 죄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결국 그 “은혜의 잔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아직도 그 잔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도덕적 순종”이 방탕보다 더 위험한 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아버지의 재산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를 구원과 하나님 나라(혹은 행복)이라고 보았을 때, 믿음이란 구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도덕적으로 철저한 삶이 더 위험한 이유는 이를 통해서 구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착각이 바로 죄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내가 “주인”의 자리에 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노력은 하나님의 은혜도 마음대로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것이 오히려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작은 아들들뿐만 아니라, 큰 아들들까지 “아버지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으로만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믿으십니까? 또한 그 사랑만이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의 근원이 됩니다. 또한 이를 믿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다시 한번 더 기억하십시오.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충성했어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첫댓글 도덕적으로 철저한 삶이 더 위험한 이유는 이를 통해서 구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착각이 바로 죄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내가 “주인”의 자리에 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노력은 하나님의 은혜도 마음대로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것이 오히려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