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ㄴ)
교회는 오늘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두 협력자 티모테오 성인과 티토 성인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어제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낸 바로 다음 날인 오늘, 바오로 사도의 제자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의 협력자였던 두 성인을 기억하는 것은 교회 전례 안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며,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묵상 거리들을 제시해주는 듯합니다. 두 성인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면, 우선 티모테오 성인은 리카이니아의 리스트라 출신으로 바오로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설교를 듣고 바오로의 제자가 된 이후,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한 성인으로서 에페소 교회의 초대 주교를 지냅니다. 한편, 티토 성인은 바오로가 개종한 이후 그의 개인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함께 참석한 이로서, 바오로에 의해 크레타에 파견되어 그곳 초대 주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같은 바오로의 두 협조자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사도의 역할, 곧 하느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일흔 두 제자들을 뽑아 그들을 둘씩 짝지어 예수님이 갈 곳에 미리 보내시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다음의 말씀 속에서 다급한 예수님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2-3)
적지 않은 시간을 특수사목 중 하나인 성지 전담 사제로 살다 오랜만에 본당 주임신부의 삶을 살게 된 저에게 특별히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이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본당과는 달리 교적을 둔 소속된 신자가 하나도 없으며, 오로지 순수한 봉사자로만 운영해야 하는 성지를 떠나 본당으로 오게 되었을 때, 본당은 성지와 달리 소속 신자들을 바탕으로 봉사자들이 충분할 것이라 기대했었습니다. 너무 순진한 기대를 품었던 것인지, 막장 제가 마주하게된 본당의 현실은 소수의 봉사자들이 여러 봉사직분을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맡아오다 번아웃과 같이 소진될대로 소진되어 봉사직과 더불어 신앙마저도 저버리는 경우를 목도하게 될 때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봉사자를 찾기가 너무도 어려운 현실에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봉사자가 없어 걱정하는 저에게 하시는 특별한 말씀처럼 들려옵니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은 봉사자를 찾아 헤매는 저에게 제가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지침을 일러주는 말씀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봉사자가 부족하여 언제나 걱정거리 속에 살아가는 저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시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은 적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일을 도울 봉사자들을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서 예수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도울 협조자, 곧 사도들이 갖추어야 할 외적 자세를 일러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아라’ 예수님은 그 먼 여행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정말 말 그대로 빈 몸으로 그리고 고독하고 외롭게 아무하고 인사도 하지 말고 홀로 그 멀고도 험한 여행길을 떠나라고 명하십니다.
아무 것도 없이 홀로 떠나라. 제자들은 정말 아무 것도 없이 하느님 나라를 전하기 위한 길을 나섰을까요?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티모테오 2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자신을 위해 슬퍼하며 기도하는 티모테오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내는 내용 중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여야 하며, 그 과정 중에 생겨나는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고난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바오로의 이와 같은 권고는 자신의 실제 체험에서 비롯되는 살아있는 삶의 언어이며, 이 말로 자신의 처지에 슬퍼하는 티모테오를 위로하며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자세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를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이 같이 첨언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6-7)
하느님의 일을 함께 한다는 것, 그 분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응답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그 부르심을 거부하고 피하도록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꼭 하리라는 다짐으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거절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에는 언제나 그 일을 도울 일꾼들이 부족하고 부족합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당장의 시급한 인력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대책을 찾기보다 그 모든 것을 이루실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예수님의 이 말씀과 함께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이 저에게 깊이 와 닿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은 분명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 필요한 협조자, 협력자들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 그 분이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그 분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도, 하느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현실적 여러 이유들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에 망설이고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 힘과 용기를 얻으십시오.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 하느님만을 믿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해 주시며 여러분이 하는 일에 힘을 보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바오로의 선교 사명을 도왔던 두 협조자 티모테오와 티토의 모범을 따라 여러분의 삶에서 하느님의 일을 도울 협조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르 16,15; 마태 28,2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