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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조동화 2020/3/15 청하 자전거 기행
자유인 인생 나그네 조동화는 자전거로 송학사거리를 출발, 만경강 자전거길을 따라 새챙이다리를 거쳐 김제 청하를 일주하였다.
만경강변 자전거 하이킹하는 중 바람이 맞바람 서동풍이 세차게 불어 달릴수가 없어 기어가다시피 입석다리까지 온후 강가에서 낚시하는 광경을 30여분 구경하였다.
청하면은 농경지구로 특별한 구경거리는 없으나 청하산 청운사 절이 있을뿐이다.
청운사에는 3만여평의 연꽃단지가 있어 여름철 축제기간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청운사 주지 유상영은 나의 중학교 동창생으로 잠시 들리여 인사하였다.
오늘은 바쁠 것 없이 집에서 아침 아홉시에 나와 오후 늦게 집에 올 요량으로 도시락과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자전거로 만경강변 새챙이다리를 지나 청하면의 끝 백산면과 인접한 월현리 석한부락까지 하이킹하며, 느바기처럼 세월을 낚다.
느바기가 뭐여.
느바기는 합성어로서 ‘느바기’는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느바기(느리게-바르게-기쁘게의 합성어로서 느바기를 나타내는 것은 달팽이이다.)
자유인 인생나그네 오늘의 자전거 하이킹은 월현리 석한마을에 도착후 나의 친구 정대택 고향 석한마을을 둘러보고 뒷산의 묘지를 탐사하였는데 보성오씨 봉분이 많이 보였고 김제조씨 묘도 보였다.
보성오씨는 나의 상할머님 성씨이시고 김제조씨는 나의 같은 성씨이다.
마을 모정 바로옆에 친구 정대택 증조부님 묘가 상석과 비문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증손명단에 대택이 나와 있었다.
정대택 증조부님 묘역 탐사중 점심시간이 되어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과 오미자술 음식을 꺼내여 묘역 부근에서 먹었다.
석한마을은 동래정씨 집성촌으로 부촌으로 보였으며, 마을 입구에는 동래정씨 세효각이 있고 바로 옆에는 석한마을회관 건립되여 있으며 요즈음을 코로나로 페쇄되여 있었다.
석한마을에는 조선시대 부호의 고가 주택이 한 채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았다.
물은 얻어 먹고자 정진도선생 집에 들러 노크를 하니 할머니가 나오시여 깡통으로 된 음료를 주시기에 얻어 마시고 정대택아시냐고 물어보니 집안간이라 잘 아신다고 하면서 시방 86세이다 라고 하였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운 나그네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심정으로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세월의 여정속에 망중한을 즐기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귀로길에 오르다.
두눈이 있어 자연을 감상할수 있어 감사하고,
두발이 쓸만해 자전거하이킹을 할수 있어 감사하고, 집에 까지 무사히 귀로 할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하루가 흘러가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월을 낚으니 행복하였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hiking시간 및 거리 : 9:00-17:00(8시간) 15.0km
왕복 30km
☛hiking코스 : 익산서부역송학사거리-목천포-만경강변-옴석감서정낚시터-새챙이다리-청하면사무소-청하초등학교-대청마을회관-청운사-청하중학교-관상마을회관-느티나무-월현리-석한부락—만경강변귀로
<만경강변에는 산수유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만경강변에도 봄소식을 알리듯 봄의 전령사 산수유꽃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었다.>
<석한마을 유래 : 고려시대 정석홍씨가 처음 터를 닦았고, 동래정씨의 집성촌이며 마을이름을 돌챙이라고도 부른다.
바닥을 파보면 전지역이 돌바닥으로 구성되여 마을지명이 유래되였다.
마을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동래정씨 효자각이 있다.>
<석한마을의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터를 친구 정대택이 기증하여 지었다 한다.
마을사람들의 놀이터로 사용하며 언제나 정대택을 기억할것이요. 보람있는 좋은일을 한 정대택은 하시는 일이 잘될것이요.
무궁한 행운이 깃들고 건강을 기원합니다.>
<대문에 “정진도” 문패가 붙은 1층 양옥집에 들러 들어가니 할머니가 나오시여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아 익산에서 왔다고 응대하니 먼길 오시었다고 하시며 인정 많은 할머니는 음료깡통을 주어 얻어 마시고 정대택아시냐고 물어보니 집안간이라 잘 아신다고 하면서 시방 86세이다 라고 하였다.>
<이묘역은 정대택의 증조부모가 합장된 묘역이다. 정대택은 정여립의 후예로 동래정씨이다. 상석과 비석이 있었으며 말끔히 단장되여 있었다. 비석에 정대택의 이름도 선명히 세겨져 있었으며, 묘역을 참배후 점심시간이 되어 이곳에서 가지고 온 오미자술과 계란으로 입맛을 돋우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였다. 자유인 인생나그네는 이렇게 도시락을 집에서 준비하여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이다.
오직 나만의 방식데로 햇빛이 내리쬐는 자연에서 자유인은 행복을 찾으며 지내고자 한다, 두눈으로 자연의 경치를 볼수 있어 행복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아 행복하였다.>
☛자유인 조동화 오늘의 행복이야기
인생의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
자유인의 신조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행복을 느끼자”입니다.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하며 사리라.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삶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 인생의 삶이란 생노병사의 주기를 반복하는 허무한 존재라고,,,,,,,,,,,,,,표현하면 틀린말은 아닐걸,,,,,,,,,한세상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자.
쉼없이 흘러가는 세월속에 지나온날들이 아쉬움만 가득하지만 흘러보낸 세월은 다시오지 않기에 지나간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무상한 삶의 여정을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기 위하여 나날이 최선을 다하자.
걷는것과 맛있는 음식과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자.
오늘하루의 소중함, 헛되이 지나간 시간들, 오늘을 아끼고 사랑하자. 어제에 집착하지 말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며, 오늘의 삶이 가장 소중하다는 진리를 믿으며 살자.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일까?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이라고 말하겠다. 무수히 많은 인생의 정답중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좋고 명쾌한 정답은 없다.
최선을 다하며 살자.
나의 초년인생 경험담
1970년 鐵道에 入門하여 40여년을 철도에 젊음을 불사르고, 무엇하나 만족스럽게 이룩 한 것 하나 없이 흘러간 歲月!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 초임발령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목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영국의 조지스티븐슨 1829년발명)의 운행에서 디젤전기기관차로 동력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목포-광주간을 운행하는 몇 개열차는 증기기관차사업이 있었으므로 신규발령된 기관조사에게는 증기기관차승무로 지정되어 기관사1인 본무기관조사1인 보조기관조사1인 3명이서 하는 근무형태로 기관사는 운전만담당하고 기관조사는 교대하여 석탄을 투척하여 증기를 가열시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므로 석탄을 투척하는 작업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힘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다.
칙칙폭폭, 철컹철컹 한밤의 정적을 깨며 기적소리를 직접울리면서 달렸던 추억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추억삼아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시골의 어른들은 기차소리에 깨어 많은 자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허구한 이야기는 아닐것이요, 그래도 인정있고 살기가 좋았던 시기는 그때 그옛날이 좋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순천철도국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의 사회초년생은 2년6개월의 반복되는 임무후 1972.8.29. 군에 입대, 전주 35사단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후방기 교육을 춘천에서 2주간의 훈련후 강원도 인제 현리 공병부대 의무실 위생병으로 자대 배치되었다.
군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35사단 훈련병때 모악산KBS송신소 건설 작업시 모악산아래에서 세멘 한포대씩 등에 메고 정상까지 오르던일이 가장 내인생에서 힘들었던 일이었답니다.
자유인 趙東和는 黃金萬能主義의 核家族 개인주의 세상에서 옛시절의 인정은 찾아볼수 없고 하루면 수도없는 갖가지 사건사고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속에 나자신도 예외가 될수 없듯 바쁜일상으로 어영부영 하루가 흘러간다.
자유인 조동화 그는 누구인가?
전쟁의 포성이 한창인 6.25 시대에 태어나, 인생의 삶이 무엇인가 고뢰하며 즐거운 인생을 꿈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자유인 조동화의 신조는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자유인 조동화는 인간의 삶을 영상을 통해 구현해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삶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왔으니 삶에 이유가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기 위하여 나날이 최선을 다하자.
사기와 억울한일로 얼룩진 세상만사를 영상을 통해 권력만행의 기록을 더듬어 보자.
건강관리 잘하시고 무궁한 행운을 기원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happiness)이란 무엇인가?
안병욱 교수는 행복이란
첫째는 낙천적 인생관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밝게 긍정적으로 보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활 태도다.
인생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가짐에 달렸다.
극락과 지옥은 내 마음 속에 있다.
감사와 기쁨의 눈으로 인생을 보면 모두 즐겁고 기쁘다.
둘째는 사랑이다.
사랑은 인생의 주성분이다.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으로 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견딜 수 없는 허무주의와 고독감과 절망감에 빠져 살아갈 수가 없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고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셋째는 보람있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요, 일 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 일을 하되,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아무 보람을 못 느낄 때, 인생은 참을 수 없는 고역으로 변한다.
건강, 돈, 명예, 성공, 신앙,지혜,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아니다.
부자의 대부분은 불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낙천적 인생관, 사랑, 보람있는 일.
3가지 행복관을 가지고 살면 행복하다.
중국속담에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가지다.
할 일이 없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다는 것,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만큼 비참한 사실은 없을 것 같다. 죽을때까지 일을 놓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은 행복의 필수조건 중 하나다. 존 록펠러 3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단순한 원칙이 있다. 먼저, 당신이 관심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그 일을 찾았다면 당신이 가진 에너지, 야망, 능력 등 모든 영혼을 쏟아 부어라."
행복( happiness)은 어디에!
독일의 철학자 칸트(1724.4.22-1804.2.12)는
" 인간 행복의 3가지 조건으로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 세 가지를 충족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일생을 보낸 대철학자가 제시한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이 범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과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되고,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 세가지 조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노동뒤의 휴식은 순수한 기쁨 행복의 원천
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다.- 칸트
근로는 매일을 풍부하게 하며, 휴식은 피곤한 나날을 더욱 값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 뒤의 휴식은 높은 환희 속에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보들레르
휴식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기회가 바로 휴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휴식과 행복은 그대가 바라는 것,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근로의 결과에서 얻을 수 있다'- 토마스 A. 캠피스 -
건강글
소금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마음 안에 있는 3%의 좋은 생각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향기롭고 맛깔스러운
산해진미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르겠지만
건강에는 아주 해롭다.
● 남을 미워하지 마세요. 미움은 피에 독성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 웃으세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입니다.
◐ 다섯 가지가 즐거워야 삶이 즐겁다 ◑
첫째, 눈이 즐거워야 한다.
눈이 즐거우려면 좋은 경치와 아름다운 꽃을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을 자주 해야 아름다운 경치와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해외나 국내 여행을 자주 하여야 할 것 같다.
외국 사람들은 돈을 벌어 어디에 쓰느냐고 물으면 여행하기 위해 번다는 사람이 많다.
여행은 휴식도 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꼭 여행만이 눈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여행이 여의치 않는다면, 하루 시간 중 짬나는 대로 웃기는 글이나, 웃기는 사진을 보면서 맘껏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입이 즐거워야 한다.
입이 즐거우려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도락가는 아니더라도 미식가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식가는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지방에 따라 그 지방의 유명한 향토 음식이 있다.
특별한 향토 음식점을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셋째, 귀가 즐거워야 한다.
귀가 즐거우려면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계곡의 물소리도 좋고 이름 모를 새소리도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도 귀가 즐거운 것이다.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정서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치고 마음이 곱지 않은 사람이 없다.
넷째, 몸이 즐거워야 한다.
몸이 즐거우려면 자기 체력과 소질에 맞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
취미에 따라 적당한 운동을 하면 건강에도 좋고 몸도 즐거운 것이다.
다섯째,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마음이 즐거우려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아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베푸는 것이다.
남에게 베풀 때 정말 마음이 흐뭇한 것이다.
마음으로라도 베풀어야 한다.
남을 칭찬하는 것도 베푸는 것이다.
마음이 즐거워야 진정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좋은글 중에서-
정여립의 모반 사건 (1589)
정여립(1546∼1589)은 본관(本貫)은 동래(東來), 자(字)는 인백. 전주(全州) 출생이다.
1570년(선조 3년) 식년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이·성혼의 문인(門人)이 되었다.
1583년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으로 退官하였다. 본래 庶人이었으나 집권한 동인에 아부,죽은 스승 이이를 배반하고 박순·성혼 등을 비판하여 왕이 이를 불쾌히 여기자 다시 벼슬을 버리고 落鄕하였다.
고향에서 점차 이름이 알려지자 政權을 넘보기 위하여 진안 죽도에 서실을 지어놓고 대동계를 조직하여 신분에 제한 없이 불평객들을 모아 무술을 단련시켰다. 1587년 全州府尹 남언경의 요청으로,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뒤 대동계의 조직을 전국에 확대, 황해도 안악의 변숭복, 해주의 지함두,운봉의 승려 의연 등의 기인모사를 거느리고 정감록의 참설을 이용하는 한편 망이흥정설 을 퍼뜨려 민심을 선동하였다.
1589년 거사를 모의, 반군을 서울에 투입하고 일거에 병권을 잡을 것을 계획하였으나 이때 안악郡守 이축이 이 사실을 고변하여 관련자들이 차례로 잡히자 아들 옥남과 함께 죽도로 도망하였다가 관군에 포위되자 자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동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 기축옥사(己丑獄死)가 일어났으며,
이 때부터 전라도(全羅道)를 反逆鄕이라 하여 湖南人들의 登庸이 제한되었다.
☞기축옥사(己丑獄事)
조선 선조 22년(1589)에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옥사. 권력의 핵심에서 쫓겨난 정여립이 전주, 진안 등지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매월 활쏘기를 익혔는데, 이것이 역모로 고발되어, 기축옥사가 3년간 지속되는 동안 전라도 선비 1천여명이 체포‧처형된 사건으로, 이로써 동인(東人)이 몰락하고 서인(西人)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으며 호남(湖南) 출신의 관직 등용에 제한을 가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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