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돈가스의 탄생을 읽고)
돈가스의 탄생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지은이 오카다 데쓰 / 옮긴이 정순분
2006 도서출판 뿌리와이파리
80년대 초,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앞치마를 입은 채 쪼르르 대문으로 달려 나갔다. 우유아주머니나 전복껍데기를 사러온 아주머니는 주인이 없느냐며 시선으로 나를 밀어냈다.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며 ‘날으는 돈가스’의 몸매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 수수깡처럼 깡마른 며느리를 어머님은 못마땅해 하시며 ‘대문이 부끄럽다’고 하셨는데, 지금 나는 몸을 잘 관리한 강남언니처럼 대접을 받고 있다.
7세기 후반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식생활이 보잘것없었다. 덴무 천황이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1,200년여년 동안 육식을 먹지 못했는데, 메이지유신을 맞이해 빠르게 ‘서구를 따라잡아 서구를 뛰어넘자’는 구호로 스물한 살의 메이지 천황은 하루아침에 “육식은 양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외국인과 교제하기 위해 먹는다.”며 해금을 한다. 양식의 왕자 돈가스의 탄생은, 서양 여러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和魂洋才’ 즉, 일본의 전통적인 정신을 잃지 않고 서양문화를 배워서 조화시키고자 하는 정신이 만들어낸 ‘요리유신’이다.
거리에 처음 들어선 육식 음식점은 기괴한 것을 먹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만 모이는 분위기여서, 일반 서민들은 고기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막고 눈을 가린 채 가게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서양음식을 목으로 넘기지 못해, 드디어는 굶어죽기 직전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그들이 한 숨 돌리고 겨우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바닷물로 끓인 죽 덕분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거부반응이 이었지만, 육식은 정부 지식인으로부터 아래 서민으로, 양식의 개발은 아래서부터 위로 진행된다.
유난히 밥에 집착을 보이는 일본인들. 고급스러운 서양요리와는 쉽게 친숙해지지 못했지만, 대신 밥에 잘 어울리는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낸다. 일양절충형으로 카레라이스, 고르케, 돈가스 같은 양식을 개발하여 일양절충형의 요리법으로 일본인의 식탁은 더욱 풍부해진다. 지금 일본은 밥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다채로운 요리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문명개화를 위해 일본인들은 빵을 구워 중국식 팥소를 넣어 소금에 절인 벚꽃 꽃잎을 빵에 박아 단팥빵을 만들고 영국식 미국식 프랑스식 빵으로 서민들의 식탁에도 매일 같이 국적 없는 빵이 오르고 지금은 세계의 ‘빵왕국’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였든가. 시어머님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한국에 오셨다는데 생활방식이나 식탁이 한일 절충형이었다. 결혼 초에 나는 빵과 우유는 아이들의 간식수준으로만 알았다. 밥이 보약이며 밥 힘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시댁 어른들은 아침을 빵으로 드셨다. 밥이면 있는 반찬에 국 하나 더 끓이면 될 것을. 빵을 굽고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들고 매일 바뀌는 샐러드 종류에 두 세 시간을 꼬박서서 시중을 들어야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나는 혼자 앉아 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먹었다. “우리 서울 며느리 촌스러워서 우짜노” 나를 가엾다고 하셨다. 그러다 거제도 섬으로 분가를 했을 때, 아들을 위해 배편으로 1주일마다 단골 제과점 빵을 보내 주셨다. 물론 분가해서는 우리끼리 몰래 국과 밥을 먹었다. 지금은 아침 설거지가 귀찮아 빵과 계란후라이 과일 몇조각과 차한잔으로 간편 식사를 한다.
일본에서는 싸구려 월급쟁이도 월급날이면 먹는다는 돈가스. 어머님은 고기 살돈은 언감생심 가난하던 시절, 싼 고등어나 꽁치 등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어 나이프와 포크 쓰는 법을 익히게 했다는데, 그 당시 남편친구들은 밥을 먹었다고 안하고 누구 집에 가면 요리를 먹었다고 말한다.
‘햇볕냄새가 배이도록 햇볕에 잘 말린 황금색 빵가루를 입혀 튀긴 바삭한 돈가스를 한입 가득 먹고 양배추를 아삭아삭 씹어 입 안의 기름기를 씻어낸다. 씹히는 느낌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도 서로 아주 비슷한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혀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 없이 고기와 같이 부서지는 일체감. 서양 사람들에게는 상식 밖의 일이 일본인에게는 온도 감각보다 돈가스를 한입 먹은 후에 입안에 남는 느끼함을 없애주는 산뜻한 느낌이 더 맞았다’고 한다. 왜 그렇게 어머님이 양배추의 고운 채에 마음을 두셨는지 이 책을 읽고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양배추 채를 가늘게 써는 일에는 달인이다. 양배추 잎을 포를 뜨듯 발라내어 잎만 포개어 채를 치는데, 몇 년을 한결같이 중국집 주방장처럼 익숙하게 칼질을 해도 간혹 줄기가 섞일 때가 있다. 그런 날 어머님은 이불 꿰매는 돗바늘을 가져오라하시고는 양배추를 무명실처럼 바늘귀에 꿰라하시던 생각이 난다.
한조각의 돈가스에는 수많은 일본인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서민의 힘으로 요리를 창조해가는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의 벚꽃축제의 행렬과도 같이 삽시간의 꽃구름인 것처럼 보이나 점차적으로 밀고 올라가는 저력은 일본답다. 예를 들어 ‘17茶’가 몸에 좋다 하면, 누구나 17차 병을 액세서리처럼 들고 다니는 획일적인 나라. 퓨전으로 전통을 재창조하고 지켜나가는 일본문화다.
돈가스를 먹어서 일까.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영양의 균형으로 체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학교 급식으로 인해 점보코너가 생길만큼 체력은 웃자랐으며 그 영향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물질의 풍요와 과잉섭취로 인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류를 살찌우는 '돈가스시대'는 거부당하고, 대신 거친 밥과 나물국의 웰빙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먹는 것에 관한한 나는 별로 말할 자격이 없다. 많이 먹어내지도 못하며, 즐겨먹지도 않는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위해서 먹느냐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살기위해서 먹는 편이다. 맛보다는 빈속을 때우는 ‘끼니’ 수순이다. 한 끼만 안 먹어도 허리가 접어지는 끈기가 부족한 부실한 몸이라 끼를 거르지 못하지만, 매 끼마다 밥그릇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세 덩이 두덩이로 나눠놓고 이제 세 숟가락만 먹으면... 두 숟가락만 더 먹으면 ‘다 먹는다’ 숙제처럼 먹는다.
옛날 어른들이 밥 먹는 모습에 복이 들었다고 말하던데, 그렇게 본다면 나는 참 복이 없어 보인다. 사실 누군가 나에게 만원짜리 이상의 음식을 사주면 집에 와서 반드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기름진 것이 살로 가지 못하고 부담으로 배설을 하니. 그러나 5천 원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보골보골 된장찌개나 칼국수의 따뜻함이 온정으로 두터워진다. 내 삶이 반들반들 윤택하지 못하듯, 세속말로 값싼 여자다. 결코 엥겔지수가 비싸게 치지 않으니 경제적으로 보면 남편만 횡재를 한 셈이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꾸벅...........글맛이 좋습니다.
책을 읽는 법을 잘 몰라 재미있으면 좋은 책이라 여기고 수준보다 넘치면 근접을 못하고, 말이 되든 안되든 정리해보려 애를 쓰는 중입니다. 숙제하는 초등생이라 여기시고 지도 부탁드립니다.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글로써 화양연화님과 더 친숙해 지고 있습니다...ㅎㅎ
조금 주책이지요. 세월이 묵었다는 건 참 편하군요. 누구든 거리없이 친숙해지고 싶지요. '벗이여 차나 한 잔 드시게' 의미를 일깨워주시는군요.
화양연화님의 기품이 글 속에도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글 속에 간간이 비치는 살아오신 날들이 지금의 모습과 참 잘 어울리신다는 느낌입니다.^^
어울린다는 표현 '자연스럽다' 와 비슷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어긋나게 돌출되지 말아야하는데... 감사!
전 당연히 먹기 위해 사는 편이지유. 엥겔계수가 엄청 높아 고민이지만... 무지 좋아하는 돈가스, 단팥빵... 감칠맛 나는 정리에 감사...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하듯, 살기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위해 사는 사람들 모여 또 밥 먹고 싶군요.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