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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58년 7월 이땅에 태어났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뭐, 역사적 중요인물> 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전혀 그렇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하무튼 나는 서울
장충동에서<지금의 장충단 공원이 있는곳> 에서 내가 알기로 4대째 서울에서 살아온
별볼일 없는 집안의 5대손으로 - (그 이전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전혀
알지 못함) 태어나서 아직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중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별볼일 없는
이야기는 시작되려고 합니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장충동에서 살았다 나는 5남매의 막내여서 사진을 보면 3살 정도때
누나와 형들과 나란히 서서 장춘단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겨울사진이다. 하지만 내 기억은
겨울도 아니요 여름도 아닌 봄에 하얀 꽃씨가 날리는 것이 마치 온세상을 하얗게 덥어 버릴듯 내리는
눈이라 생각이 들었으니 꽃씨가 얼마나 많이 날렸는지를 내 기억이 나에게 말하여준다 그때 그곳에서는
자전거에서 솜사탕을 열심히 뽑아내고 있는 아저씨도 있었고 목에다 엿판을 들고다니며 "엿사~려!" 를
호기롭게 외치는 엿장수 아저씨의 목청이 굉장했다는 생각이든다! 지금 가보면 동국대학교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고 입구에 파출소, 그리고 중앙에 분수대, 손바닥만한 운동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예전의
내기억속에 있는 장춘단공원은 엄청나게 넓고 나무가 많이 우거져서 여름에는 매미울음소리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 배호의 안개낀 장춘단공원이란 노래가 있는데
비가오고 난다음에 자욱하게 안개가 끼면 정말 5 미터 앞도 잘 안보일 정도였고, 멀리서 바라보면
몽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도 새롭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장충동에서 보낸후 우리는 체부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체부동집은 내가 이제까지
살아본 유일한 한옥이였고, 기둥마다 붙어있던 한자글들이 지금도 눈에 선한대, 무슨뜻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하여간 나무판에 쓰여있는 4 자의 한자들이 생각나는데 입춘대길 같은 것이 아닌
계절에 상관없던 글들이었다고 생각이 난다! 아마도 한 10 여판은 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덕수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5 학년까지 다녔는데 아무튼 그 시절이 나의 놀이문화의 전성기
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입학하기 전까지가) 동네친구들과 어울려서 중앙청 잔디밭에서
놀다가 경비아저씨가 (우리는 수위아저씨라고 불렀음) "이노~옴~ 들!" 하고 저 멀리서 쫓아오면
벌어져 있는 담의 돌사이로 머리부터 빠져나가서 도망을 쳤다가 다시 들어와서 뛰돌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시절은 밥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빠쁜시절이었다. 특히 저녁에는 엄마가 밥먹으라고
찾을때면 조금 더 놀아볼 욕심에 쓰레기통옆에 숨어있다가 친구 누나가 일러바쳐서 엄마한테 귀를 잡
혀서는 끌려가던 기억이 나는 것이 정말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면 요즘아이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니까!
그리고 장춘단 공원에 이어지는 사직공원이 나의 주 놀이장이었다 거의 매일 비오는 날만 빼고는
사직공원에 놀려가서는 점심때까지 놀았는데 그시절 그곳에서는 굿도 많이 하였고 지금 생각이 나는
것은 어떤 젊은 아가씨 인지 아줌마인지는 모르겠는데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여자를 큰 나무에 새끼줄
로 묶어 놓고는 음식을 차려놓고 무당이 칼을 휘두르며(엄청나게 무서웠음) 굿을 하는데 굉징히 나이가
많아보이는데도 펄펄 날듯이 뛰는 것이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내게 다가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뒤로 도망나왔던 생각이 난다. 굿이 막바지에 이르러 무당이 묶여있던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뿌리면서
호통을 쳤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던 여자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며 날뛰는데
그만 묶여있는 줄이 끊어지면서 풀려난 여자가 앞을 가로막는 남자들을 거의 집어던지다 시피 하면서
달아나는데 아무도 감히 그 여자의 앞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지금 기억을 되살려보면 많아야 20 대
중반 정도의 여자 였던것 같은데, 아무튼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여자는 뛰쳐나갔고 여러사람들이 잡으로
쫓아갔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굿은 중간에 막을 내렸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도 그
여자가 잡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직공원에서 놀던 시절에는 송충이가 굉장히 많았다. 사직단의 벽위로 송충이들이 꿈틀대며
기어 오르고 나무들에도 온통 송충이 천지여서 나무에 기댈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무젖가락 - (그 당시는 소독저라 불렀다) 과 봉투를 나누어주고는 이른바 곤충채집이 아니라 송충이
채집을 하도록 시켰는데, 어디서 시킨건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아가씨들이 멋모르고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머리위로 떨어져 꿈틀거리는 송충이를 무심코 만졌다가는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울고 불고 하는것을 재미있게 구경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시절이 빠르게 지나가고 (물론 지나갈
때는 몰랐지만) 어느듯 덕수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입학할 당시 큰형은 5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작은형은 매동초등학교(그당시는 국민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매동초등학교는 사직공원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덕수초등학교는 아직도 덕수궁 뒷편에 있는걸로 알고있다 입학식에는 엄마가
함께 가주셨고 그후에는 약 한달동안 우리집의 가정부 언니가 나를 등,하교를 시켜주었는데 그 언니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나를 보살펴준 보모같은 존재였다. 나보다 한 10년에서 12년정도 연상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사진을 보면 3살정도 되는 나늘 안고 있는 모습인데 그당시 그언니가 대략 15~6살 정도
되어 보이니까 아마 거의 정확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언니의 이름은 김( ) 옥 이었는데 그냥 옥이
언니라고 불러서 가운데 이름자는 지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언니의 고향이 어디였는지는 잊어
버렸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되었을때 시집을 가게되서 우리집을 떠나게 되었고 떠나는 날 나를 안고
는 한참을 울던 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진다. 옥이언니는 신랑을 따라서 강원도 어딘가
로 갔고 그후 몇년이 지났을때 신랑과 아기를 업고 3식구가 우리집에 와서 한 보름정도를 묶고 간적이
있었고 그후 내가 군대에 있을때 우리집에 잠깐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은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
지금은 63~5세 정도 되었을 겄인데 어찌살고 있는지 아~ 딸만 둘을 나았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살아있느지 어쩐지는 오래전에 소식이 끊어져서 모르겠고 지금도 이마가 좀 많이 튀어나온
언니의 얼굴이 떠올라 진다.
그런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의 덕수초등학교 시절은 별다른 기억은 없고 단지 매우 바빳다는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그 당시는 토요일만 빼고는 매일 과목별로 시험을 봤기 때문에 항상 성적을 의식
하지 않을수가 없었고, 그저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만 대우를 받는 상황이어서 인성교육 같은 것은
생각도 안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는 그저 성적만 우수하면 모범생이라는 공식이
지배했던 시절이라 별로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4학년때 내 짝이된 노경미라는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애는 성격이 대범하고 또 달리기를 잘 하였고 우리 선생님이 남학생하고
달리기를 시킬정도였으니까! 공멀리 던지기도 그 당시에 체력측정을 하였는데 상당히 멀리 던져서
모두가 깜짝놀랐던 기억이난다. 또 팔힘도 대단히 센편이어서 나와 팔씨름을 하면 내가 간신히 이길
정도였다. 그 애와 1학기동안 짝이 되었었는데 도시락도 함께 먹었고 그애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많이
싸달라고 하여 옥이 언니가 "야! 너 소시지를 좋아하는구나! 그래 많이 싸줄께!"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당시에 근처에 살던 여자애들이 나보다는 한참 위지만, (옥이 언니) 라고 부르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서 나도 자연히 누나라고 하지 않고 (언니)라고 따라부르게 된것이 지금도 옥이언니
라고 말하게 된것이고 그런걸 보면 일단 습관이되면 참으로 고치기 힘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당시에 노경미한테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상당히 좋았었는데 정말
단지(경미한테 보이기 위해서) 그런것을 알리가 없던 우리 어머니는 성적표를 받아보고는 아주
기뻐하면서 용돈을 올려주었는데 지금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그후 5학년때 성북구 삼선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집근처의 삼선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가서 새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나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내 자리를 찾았고 내가 좋았던 기억은 삼선초등학교는 시험을 1주일에
한번만 보았기 때문에 시험준비에 시달리지 않아서 아주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삼선초등학교에서는 운동을 많이 하였다. 한달에 한번 학년별 체육대회를 하였는데 나는 달리기를 잘하여
각반에서 5명씩을 선발하여 이어달리기를 하였는데 (사다리를 이용한 허들경기) 전부 9~ 10 반정도가 되
었다고 생각이 되는데 우리반은 일등은 못하였고 2~3 등 정도를 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우리집은 후문옆에
있어서 나는정문으로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는 (운동장이 매우 넓어서 한참을 돌아가야 했으므로) 나는
후문의 담 넘어서 등,하교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분 좋은 때에는 정문을 가끔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성신여대와 한성대도 있었고 얼마전에 가보았더니 아직 그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 나포레옹제과점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약 40년전에도 있었으니 그 이전에 자리를 잡
았다는 얘기인데 세월이 많이 흘러 세상은 변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강산은 여러차례에 걸쳐서
변하여도 빵집은 건재하니, 40년전에 들어가서 빵을 먹었던 그 장소에 앉아있노라니 기분이 좀 이상한
것이 시간이 거꾸로 가는듯한 생각에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를 않아서인지 주문을 받던 아가씨가 이상하게
여기는 표정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를 않아서 전부 둘러볼수는 없었지만 성북
구청 건너편에 있었던 한성일 치과가 내 기억으로는 장소가 조금 옆으로 이전한것 같은데 하여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서 기억을 되살려보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갔던 치과인데 그곳에서 앞니의 뒷면
에 충치가 생겨서 봉을 한것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생각에 정말 한참을 웃었다 다른것은 다 새로 하였는데
그것 하나만은 아직도 건재하니, 빵집만 건재한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또다시 웃음이 나오니 지나가는 사람
이 나를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한성일 선생님은 대략
30대 초반 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지금은 70 이 훨씬 넘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지나칠수 밖에 없었다.
삼선초등학교의 5,6 학년은 나에게 본격적인 사춘기였다. 여자애들을 보면 똑바로 쳐다볼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마주치지를 못하였고, 나에게 말이라도 걸어오면 나는 어쩔줄을 몰라서 쩔쩔 매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여자애들과 같이 있고 싶고 얘기를 주고 받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당시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비춰졌고 남자애들한테서 경멸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어서 나도 다른얘들과 같이 여자애들은 함께 할
상대가 아니라는 듯이 (젼혀 관심이 없는 척 하는 행동) 으로 일관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이었겠는가?
공부도 여자애들이 업신여길까봐 열심히 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나는 항상 조초해 하고 (여자애들한테) 또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항상 신경을 썼으니, 약간 노이로제 증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것 같다.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옆반에 긴머리에 아주 몸집이 커다란 아이가 있었는데 복도에서 마주치면 항상
웃어주는 친구 였는데 나는 제대로 웃음을 짓지도 못하고는 황급히 지나쳐 버렸고 그애가 나를 보고 웃음을
지을때는 내 가슴은 무슨 나쁜짓을 하다 들킨것처럼 쿵쾅거리기 일수였다.
그리고 그애가 다른애들과 피구를 할때면 안보는척 하면서 열심히 그애의 동작을 따라다느느라 눈이 굉장히
피로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풍만한 몸매의 여성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그당시에 그애를 너무나 좋아
했었던 까닭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날 하교길에 그애가 우리집 방향으로 가고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니, 쟤가 어째서 이쪽으로
가고 있지?") 그애의 집은 우리집과는 반대방향이어서 항상 교문을 나오자 마자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는데
오늘은 어디를 가는지 같은 방향이어서 그때 나도모르게 "어디가니?" 하고 물었다 이렇게 말을하니, 그애가
돌아보는 순간 나는 나자신이 무슨짓을 저질럿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냥 그자리에 얼러붙은듯이 서서 멍하니
그애를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까, "왜? 물렀으면 얘기를 해야지!" 하면서 나늘 물끄러니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어물어물 거리며 "응! 그냥 어디가나, 궁금해서 반대방향이라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
며 머뭇거니니까 "지금, 우리 이모집에 가는거야 너는 집이 이쪽이니?" 하며 살짝웃는데 나는 그만 감격
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나한테 이렇게 말을걸어주고 또 살짝 웃어주다니 얘는 정말 천사가 아닐까?)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갑자기 자신감있게 아니, 호기롭게 또한 호탕하게 "아~ 우리집은 저기야, 저기!"
하며 앞에 보이는 집을 가르키며 말하니, "야! 집이 가까이 있어서 좋겠다 우리집은 한시간을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같이 보조를 맞춰가며 걸어가면서 "이모집이 어딘데?" 하고 물으니 미아리지나
서 어디쯤이라고 해서 "그럼 버스를 타고가야겠네 그럼 내가 정류장까지 데려다 줄까?" 이렇게 말하고
슬쩍 눈치를 보니, 그애는 반색을 하며 "정말? 여기서 꽤 먼데?"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
보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이쁜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 정신을 일으켜세우면서 "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자~ 가자!" 나는 씩씩하게 앞장을 서며 그얘의 책가방을 받아들고는 "근데 내 이름은
길동인데 니 이름은 뭐지?" 이렇게 슬쩍 물어보니, "진경이야, 이진경!" 역시 살짝웃으면서 말하니, 나는
(아~ 이진경! 이진경! 이었구나!) 이렇게 혼자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지난학기에 전확을 왔는데 너는
여기서 계속해서 나녔니?" 하고 물으니 "아니야 나도 3학년때 전학왔어, 너 전학온건 알고 있었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놀라서 "아니, 내가 전학온걸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안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전학왔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너 달리기를 잘하더라!"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니,
다가온 행복에 계속해서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아 ~ 그정도야 뭐! 보통이지!"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저 앞에 나폴레옹 빵집이 눈에 보이길래 " 아! 갑자기 빵먹고 싶다, 우리 빵먹고 갈래 내가 살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니, "빵사줄거야? 좋아?" 따라들어오는 그얘의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발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쪽 구석 창가의 자리를 향하여 정말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가고 있었다.
밖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끗, 쳐다보고 가는데 그 사실이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그냥 우쭐하는 기분이랄까?) 하여간 그렇게 가까이 앉으니 자연스럽게
자세히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전에는 미쳐보지 못했던 눈밑과 코에 약간 붉은색이 감도는 주근깨가 있는
것이, 영화에서 보았는지, 동화속에서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프스의 소녀 같다는 느낌
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더니, "왜? 웃어, 뭐 재미있는거 있어?"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당황해서, "아니, 그냥 좋아서!" 하면서 또 히죽 웃었더니 "그냥 좋은게 어딨어? 왜 웃는지 말해
봐, 어서!" 이러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니, 나는 할수없이 "응, 너하고 이렇게 앉아있는것이 그냥 좋아서 그래!"
이렇게 고백을 하고나니 (아니,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얘기를 한거같은데, 얘가 나를 우습게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래? 그렇게 좋아? 근데 왜 내가 마주쳤을때 웃으면
그냥 홱 지나갔었어?" 나는 또 할말이 잃고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래, 전에 책에서 본것같은데 그저,
솔직한 것이 제일이랬지!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테니 책에 써있는데로 해야지!) 이렇게 마음을 굳힌 나는
"아~ 그때는 내가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말할수가 없었어 주위에 다른애들도 있어서 무슨말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말을 할수가 없었어, 미안~해!" 이렇게 말을 길게 끌다보니 숨이차서 약간 헐떡이며 말하였더니,
"와~ 하하~ 핫! 그랬었구나! 그래 대강 짐작은 해었어!" 갑자기 떠져나오는 우렁찬 웃음소리에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서 (아니, 얘 웃음소리가 왜, 이렇게 엄청나지?) 당황한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얼마안
되는 사람들은 흘끗 보았다가는 다시 자기들의 얘기들을 하는것이 우리들에게는 별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안심한 후에 멋적게 웃으며 바라보니, 빵을 가득 입에 넣고 먹으면서도 눈으로는 나를보며 웃고 있는것이
(아~ 정말! 어쩌면 먹는것도 저렇게 이쁠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또 멍하니 쳐다보고 있노라니
"빵, 안먹을거야? 응?" 하며 고개를 약간 앞으로 내밀며 바라보는데 그 눈길이 또 얼마나 예쁜지 나는 또
정신이 아득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아~ 언제가 읽은 기억이~~~ 여자란 특히 예쁜여자는 요물이니 조심해
야 한다는 경고가 생각나서 책은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맥없는 생각을 하다가는 그애의
눈길을 받고는 정신이 번쩍나서 "아~ 먹어야지, 먹을꺼야!" 하며 빵을 입안가득 넣고 씹는데 무슨빵인지
무슨맛인지도 모를정도로 급히 먹다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니, "천천히, 물마시면서 먹어야지!" 하며
내게 물컵을 내미는데, (아니,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행동을 하지, 응? 왜 이렇게 바보처럼 구냐구? 이
멍청한 놈~~~아!)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부우면서도 "아~ 고마워, 사래가 들었나봐, 고마워!"
나는 무슨 큰 은혜를 입은 것처럼 연신 우물거리며 먹고 마시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굴까? 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벌써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해서 실수를
만회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먹고 있자니, 무슨 빵인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뱃속에 우겨넣는 격이
되었고, 무슨말이든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아~ 나는 막내야! 5남매의 막내
너는 어떻게?" 갑자기 나온 밑도 끝도 없는 우리집안 얘기에 좀 쑥스러웠는데, "그래? 나는 동생하나,
여동생!" 빵을 열심히 먹으면서도 대답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 동생은 몇학년인데 어느 학?"
순간 나는 목이메어 말을 잇지 못하였고 그런 나를 보며 살짝 웃어가면서 "아니! 아직 학교안다녀!
이제 일곱살밖에 안됐어!" "아~ 어리구나! 근데 너를 닮았으면 예쁘겠네?" 내가 얼른 이렇게 말하자
"내가 예뻐? 난 뚱뚱한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니, 나는 황급히 "아니, 뭐가 뚱뚱해? 통통한
거지!" 나또한 눈을 크게 치켜뜨고 말하니까, "내가 예뻐? 얼마나?" 재차 묻는 것이 아닌가!
"아~ 그럼, 이건 우리끼리 얘기인데 나는 너보다 이쁜애는 정말 이때까지 보지 못했어!" 말하는중간에
그애의 웃는 표정을 보고는, "진짜야! 맹세할수 있어!" 이렇게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내는 내모습
이 우스웠던지 그애는 우렁차게 웃었다. ("정말, 우렁차게!") 나또한 덩달아서 바보처럼 실실거리며 웃고
있으니, 거기서 일하는 누나가 가소로운지 나를 쳐다보며 웃는 것이, 보여서 그후부터는 나는 한껏
무게를 잡느라고 목이 다 뻣뻣해지고 등이 다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자, 그럼 다먹었고 이제 가볼까?"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미아리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여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애를 태우고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는 그애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저멀리 버스가 사라질때까지
바라보다가 나는 쓸쓸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는데,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지금도 그당시의 느낌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내일이면 또
학교에서 만날수 있겠지만, 그당시의 느낌은 정말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너무 외로웠었고,
마치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홀로 상륙해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짓는, 그 어떤책에서 보았던 주인공의 심정을
알것 같았다!
첫댓글 고등학교 대학시절 다녔던 거리명칭이 나오니 반갑씁니다~~ 나폴레옹제과점 간 기억도~
기대할께요~~
소년의 풋풋한 사랑의 서막인가요? ^^
아연한 기억이 떠오르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