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왜 왔어?
3년 만에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 정은 에게 아버지가 내뱉은 첫 마디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언제 나갈꺼야?> 라며 3년 만에 본 딸을 집에서 나가기를 종용하기까지 한다.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가 아니다.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다.
영화 <가족> 은 가족 같지도 않은 이 가족이 <진정한 가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데 일조를 한 술 주정뱅이 이자, 경찰에서도 쫓겨나서 기껏 생선장사나 하고 있는 애꾸눈 아버지와 딸의 갈등의 골은 너무도 깊다. 이 둘을 사이의 관계는 정은이의 집 화장실로 형상화 된다. 문을 열어 서로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그 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다. 생선가게나 집의 다른 문은 미닫이로 되어있는데 유독 화장실문 만은 여닫이다.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을 열려고 해도 열 수가 없다 문고리가 고장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 정환이가 아무리 열려고 노력해도 화장실문과 그들 사이에 문을 열 수가 없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은이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서서히 풀려가면서 이들의 갈등도 해소되기 시작한다. 결국 정은은 아버지가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아닌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고 있던 느티나무 같은 존재임을 알게되고, 고장난 문을 고치게 된다. 그래서 <누나가 화장실 문 고친 날> 은 이들 가족이 진정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기념된다.
하지만 이처럼 기쁘고 축복해야할 <누나가 화장실 문 고친 날> 은 영화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 된다. 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자신이 죽으면 정환 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상주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어느 누구라도 가르쳐줄 수 있다. 정작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다. 술을 마시던 정환 이가 “어른들은 이렇게 쓴 술을 왜 마시는 거애요?” 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장차 아버지가 될 아들에게 바로 이 대답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네가 장차 아버지가 되면 마음의 유리에 먹칠을 해야한다는 것.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눈물이 반 쯤섞인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술은 쓰다는 것.
아버지 이주석 역할을 맡은 주현은 누구보다 멋지게 이 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야이 따샤”를 연발하는 코믹적 이미지의 연기자가 아니다.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삭발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을 뿐만이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지어야하는 그래서 더욱 표현하기 힘든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느 연기자보다도 눈부시게 연기하고 있다.
영화 <가족> 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는 영화다. 관객은 아버지가 먹는 약이 소화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눈을 부릅뜨며 티격하던 이 부녀도 결국엔 서로 화해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상한 영화적 문법을 차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리하게 현실을 가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공되지 않은 현실의 슬픔은 관객들의 혈연에서 느껴지는 애정이라는 보편적인 심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가 싱거워진 면도 존재한다. 본디 양념이란 것이 너무 과도하게 쓰면 음식의 맛을 버리는 것이지만, 양념의 본래 목적의 음식을 더욱 맛갈스럽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영화를 주는 교훈을 오늘 밤 다시금 떠올려봐야겠다.
오늘밤 친구들과 나누는 달콤한(?) 술 잔 나눔을 조금만 줄여보자. 그리고 한 시간이라도 집에 일찍 들어가야겠다. 오늘도 아버지는 아늘놈이 밤늦게 들어올 적에 어머니처럼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는 대신, 열 번 현관을 바라 보실테니까..
<The End>
덧글 하나 <1>
영화 속. 비열하기 비열한 조폭 우두머리 창원 역을 맡은 <박희순> 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다. 어설은 악연은 가라. 본래 악역이라 한다면 이처럼 관객들이 그를 향해 소리 지르고, 찢어 죽이고 싶은 정도의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박희순 2004년 최고의 악역을 해냈다. 그는 일반 대중들에겐 결코 친숙하지 않은 배우지만, 연극계에서는 <그리스>, <록키호러쇼> 등에 비중있게 출연한 바있는, 연극계에선 탁월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배우다.
덧글 둘 <2>
조직의 제 2인자 동수 역을 맡은 엄태웅 이다. 가수 겸 영화배우로 유명한 엄정화의 남동생으로 더 유명한 그는 2005년 KBS 드라마 <쾌걸 춘향>에서 변학도 역을 맡아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속에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가족 외에도 <실미도>, <공공의 적2> 조연으로 열연하였다.
첫댓글 이 작품 설날 연휴에 비디오로 보았죠. 극장에서 보았으면 눈물께나 쏙 빼놓았을 작품이죠.
어머?? 그분이 엄태웅씨였네요?? 그땐 몰랐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