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 시간에는 2004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최미선 여성이 북한에서 겪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미선 여성은 북한에서의 생활은 먹지 못해 굶어가던 그 기억밖에 없다고 하면서 하늘처럼 의지하고 살던 남편이 굶어서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건만 국가에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수방관했던 당시의 실태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최미선 여성은 무산으로 시집을 와서 무산광산선전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나마 당에 충실한 사회의 한 사람으로 소위 고난의 행군에서 앞장에 서서 일하는 참 모습을 보였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은 아무리 김정일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충실하여도 한줌의 쌀이나 한 알의 옥수수도 손에 쥐어주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배를 그러쥐고 하루 종일 나라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장군님만 믿고 이 난관을 이겨내자고 소리소리 질렀건만 결국은 자기가 지른 그 노래 소리에 사랑하는 남편이 굶어서 죽는 참상이 최미선 여성에게 닥쳤습니다.
숨이 막히고 죽을 것만 같은 그 세월에 남편 없이 아이 셋을 데리고 산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더는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괴로움이 최미선 여성의 마음속에 스며들었었다고 최미선 여성은 말했습니다.
최미선 여성은 당시 맏딸은 무산에서 인물 좋고 재간이 좋아서 뽑혀서 평양에 있는 평양 음악무용대학을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평양에서 여름방학을 내려왔던 큰 딸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합니다.
최미선 여성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평상시부터 공부를 하자면 돈이 엄청 많이 들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맏딸이 북한 땅에서는 갈 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평양에서나 지방에서나 대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합숙생활을 하면서 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죽아닌 옥수수 대로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특히 평양시내 같은 데서는 더 심했습니다. 그래도 지방은 학교주변들에 그나마 옥수수나 아무 곡식이라도 심은 밭이 있어 도둑질이라도 해 먹을 수 있지만 평양시내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내주변에 가서야 곡식을 볼 수가 있는데 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같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던 최미선 여성의 맏딸역시 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을 이겨내기가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가정살림이 괜찮은 집의 아이들은 집에서 돈도 부쳐오고 음식도 인편에 보내오고 또 건식도 보내오지만 한 끼 먹을 걱정이 태산인 최미선 여성의 가정에서는 그럴 형편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하기에 최미선 여성의 딸은 항상 이악하게 자기 혼자서 대학공부를 해야 했고 남들보다 인물도 삐어지고 모든 면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그 경제적인 곤란으로 해서 더는 학교생활을 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최미선 여성은 딸을 찾아서 가 볼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최미선 여성은 대뜸 큰 딸이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최미선 여성은 그동안 딸이 하던 말과 또 평상시에 입버릇처럼 외우던 중국이 북한보다 잘 살고 또 중국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다더라고 하면서 자기 주변의 친구들이랑 하던 말을 최미선 여성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최미선 여성은 딸이 중국으로 갔다는 것을 짐작으로가 아니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미선 여성은 자신의 맏딸은 정말 같은 여성들이라고 할지라도 길을 가다가도 한 번 보면 다시 뒤 돌아다 볼 정도의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딸을 잃어버린 엄마로서의 심정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맞붙어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당시의 자신의 심정에 대해서 최미선 여성은 말했습니다.
급기야 경황이 없어진 최미선 여성은 딸을 찾아서 중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미선 여성은 집에 작은 딸과 아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사랑하는 자식들을 그 숨 막히는 북한 땅에 두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최미선 여성으로서는 이왕이면 더는 미련이 없는 이 땅을 모두 함께 떠나리라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온 가족이 함께 움직여 두만강을 건너자고 하니 국경경비대가 무섭고 또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잡힐까 두려워 이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을 통해서 자기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최미선 여성은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으로 낙착을 짓고 결국 그 사람의 알선으로 어느 날 한 밤중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조용히 북한 땅을 떠나서 허둥지둥 중국으로 넘어온 최미선 여성은 뜻밖의 현실에 아연 질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찾아서 중국 땅으로 들어온 최미선 여성을 기다리는 것은 북한 여성들을 기다리는 인신매매 군들이었다고 합니다.
최미선 여성은 처음 중국에 들어갔을 때 먼저 들어가 집에서 너무나 잘해주고 또 자식들과 함께 푸짐한 밥상까지 대접받고 보니 정말 이 집이 너무 좋은 집인 줄 알고 그 집에 자식들을 맡기고 가서 일해서 돈을 벌어 와도 되겠다고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그럼 우리 최미선 여성의 녹음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녹음-
네, 참 마음이 아파도 너무 아픕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중국으로 들어갔건만 이렇게 인신매매 군들한테 잡힐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