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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아프다
성병조
(대구가 걱정이다) 대프리카란 별명을 가진 대구가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코로나 19가 대구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이름도 낯선 대구 신천지교회 신도의 행적이 불투명하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감염자가 적어 위안을 가져 왔는데 대구서 확산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타지서 걱정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중국 우한이 완전 고립되듯이 대구도 정신적으로 고립된 도시처럼 여겨진다. 다중이 몰리는 곳은 모두가 피한다. 학교, 도서관은 물론 백화점, 영화관도 파리를 날린다. 운동하러 나가봐도 사람 만나기가 힘들다. 가족 칩거의 나날, 코로나가 옛 코로나 택시처럼 멀리 달아나기만 빈다.
(청와대의 박장대소) 어제 신문을 보고 놀랐다. 마이크를 잡고 환히 웃는 대통령 양 옆으로 박장대소하는 봉준호 감독, 고개를 의자 뒤로 완전히 젖히고 파안대소하는 김정숙 여사. 20일 청와대에서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 제작진과 가진 오찬장 모습이다. 예정된 행사라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아무리 세계적인 상이라 해도 때가 있는 법이다. 영화의 우수성과 공들인 자들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가 대구서 폭증하고 청도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날이다. 전례 없는 비상시국이다. 행사를 미루거나 청와대서 좀 더 절제된 사진을 제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동안거에 들다) 요즘 생활이 마치 스님들의 동안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안거(冬安居)는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 승려들이 외출을 금하고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불교 용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대구와 청도의 감염 속도가 빨라 다들 외출을 꺼린다. 모든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백화점, 극장, 재래시장 등은 파리를 날린다. 도서관, 학교도 문을 굳게 닫고 있다. 사람 모이는 곳이라면 모두가 기피한다. 객지에 사는 자녀들도 걱정하는 전화만 걸어온다. 누구도 원치 않는 지루한 동안거, 해제일이 빨리 오기를 두손 모아 기원한다.
(동안거 활용법?) 코로나의 기습으로 생활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출근할 곳이 없으니 맘만 먹으면 온통 내 시간이다. 스님들의 동안거 같은 이때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외출 못해 안달이 나지만 잘만 활용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먼저 참선하는 스님처럼 기도를 열심히 한다. 기도 제목은 코로나 종식이다. 더 이상 확진 않고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다음에는 밀린 독서를 열심히 한다. 항상 부족한 게 독서이다. 요즘처럼 책읽기 좋은 때가 언제 있었던가.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글쓰기에 열중한다. 부부 행복 증진에도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모든 게 코로나가 억지로 안겨준 기회라고 생각하면 맘은 조금 가벼워진다.
(신문도 어렵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영향 미치지 않는 곳이 있을까. 서문시장도, 대형 백화점도 며칠씩 휴업을 한다. 대구공항은 물론 지하철도, 시내 외 버스도 손님이 없다. TV를 켜도 온통 우울한 코로나 소식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척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언론인들이다. 종군 기자처럼 코로나 현장을 누비지 않을 수 없다. 대구시청에서, 청도 대남병원 앞에서 마이크 잡는 기자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신문도 많이 얇아졌다. 코로나와 관련된 내용 말고는 기사가 거의 없다. 문화 사회 행사가 있나, 운동 경기가 있나? 보도할 게 없으니 이럴 수밖에 없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우리 곁을 떠나기만 비는 요즘이다.
(입경 거절당하다) 코로나가 생활을 바꾸더니만 이제는 인심까지 바꾸고 있다. 하긴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일인데 누가 맞서랴. 친구 부부는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서울에 간다. 딸 부부가 모두 의사인데다 쌍둥이를 낳았으니 친가와 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양가 조부모들이 번갈아 돌보아 왔다. 한번 가면 한 달 정도 지내는데 그저께 갔다가 거절당했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되돌아오게 된 사연이다. 어린이 집에서 대구 사람인 걸 알고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아마 허용했더라면 다른 학부모들이 반발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합리적인 의심이라 했던가. 좋은 게 좋다고 친구 부부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손이 닳도록?) 손을 심하게 사용하면 손이 닳는다. 손금을 찾기 힘든 사람, 손이 무척 거친 사람도 본다. 특히 여성과 악수할 때 손이 억세면 그의 삶을 돌아보며 감동한다. 지금 여러분의 손은 어떤가. 요즘 들어 손 씻는 일이 습관화 되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두문불출 하면서 손 씻기가 주된 일이다. 가급적이면 외출을 줄이고, 마스크 쓰고,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바깥에서만 마스크를 착용할 게 아니라 실내에서도 쓰는 게 좋단다. 이쯤이야 별 어려움이 없다. 시키는 대로 적극 이행하는 것이 자신과 이웃을 위하는 길이다. 비누로 하도 자주 손을 문질렀더니 이제는 손이 조금 닳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아픔을 같이한다?) 이만큼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도 드물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수사이다. 우한 폐렴 발생 후 문 대통령은 시진핑에 전화하여 중국과 아픔을 함께 한다며 위로를 보냈다. 전 세계 어느 정상도 하지 않는 일을 우리 대통령이 자청한 것이다. 이어 영화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파안대소, 박장대소 판을 벌이는 모습을 자랑하듯 언론에 공개한다. 이젠 반대로 중국이 문 대통령을 비웃듯이 한국인의 입국 방지와 격리를 강행한다. 코로나 급증으로 중국에 돌아가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70개국을 넘었다. 우리는 짜파구리 정권의 기막힌 현실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무 관중 음악회) 관중 없는 무대를 상상하긴 힘들다. 청중 없이 강연한다 생각해도 끔찍하다. 공연이나 강연에 있어 자리가 꽉 차면 무척 힘이 난다. 코로나가 노래 무대도 바꾸어 버렸다. 일요일 저녁 KBS 열린 음악회를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국 노래자랑, 가요 무대와 더불어 전통의 인기 프로인 점을 모두가 다 안다. 3.1절 101주년 기념 무대에서 어색함을 발견한지 모르겠다. 가수의 노래가 끝나면 카메라는 방청석의 반응을 보여 주기 마련이다. 한 시간 동안 방청석을 전혀 비추지 않으니 어색함이 넘친다. 화면은 가수와 악단에만 집중된다. 코로나가 방청객까지 다 앗아가 버렸다. 텅 빈 방청석, 가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금호강의 잉어들) 코로나 때문에 두문불출하고 있다. 며칠을 이렇게 지내다 보니 몸이 뒤틀린다. 사람 접촉 않고 둘이서 다녀올 곳 없을까. 의기투합하여 나선 곳이 수성 훼미리파크이다. 이름이 너무 무겁다, 왜 이토록 어렵게 영어로 지은 것일까. 파크호텔 뒤 '비 내리는 고모령'을 지난다. 팔현 마을 강안에 넓게 펼쳐진 체육공원이다. 여기서 금호강을 건너면 강촌 아파트 단지에 이른다. 호기심에 다리까지 가 본다. 강이라고 하지만 흐르는 물은 시내에 가깝다. 그런 물 속에 잉어들이 유유히 놀고있다. 공원 속의 연못도 아닌데 이토록 많은 물고기들이 신기하다. 코로나 덕분(?)에 금호강에 노니는 물고기들을 실컷 만나고 돌아왔다.
(절묘한 위기 극복?) 코로나 앞에 두 가지가 생각난다. 부모님 생전에 고향 가까이 근무 위해 애쓴 적이 있다. 그러던 중 고향 인근 기업 임원 공채에서 높은 경쟁을 뚫고 총괄상무에 오른다. 업무 개선, 구조 조정에 박차를 가한다. 1년 만에 170 여명의 종업원 중 35명을 줄일 수 있었다. 누구도 등 떼밀어 보내지는 않았다. 치열한 노력에 따른 감소이다. 곧이어 IMF를 맞았지만 거뜬히 견딜 수 있었다. 지난 해 딸아이가 마스크를 한 박스 보내왔다. 유한킴벌리에 근무하는 친구가 주는 거란다. 이것들을 어디에 다 쓴담?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가 터졌다. 이웃에 나눠 주었지만 아직도 조금 남았다. 긴급한 분이 있으면 좀 더 나눌 수 있다.
(미필적 고의?) 코로나를 두고 신천지 교회가 연일 주목을 받고있다. 신자 명단 공개서 부터 어떻게 전염되었는지 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튀는 두 단체장이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 지사는 신천지 본부 강제 진입을, 박 시장은 이만희 총회장을 살인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이른다. 살인죄에는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가 있어야 한다. 즉,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 했을 때 성립한다. 그런 고의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행위가 밉더라도 이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공감을 사는 법이다.
(신천지 불똥이?)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름이 신천지교회이다. 그곳도 피해자임은 맞지만 워낙 사안이 위중하다 보니 원망의 눈길이 쏠린다. 급기야는 이만희 총회장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가진다. 신천지가 흥하면 이웃까지 후광을 받지만 이번에는 전혀 아닌 것 같다. 기존 신천지 이름을 가진 곳들이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다. 신천지(New world) 자체로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이름이다. 이곳저곳서 작명도 많이 하였다. 이젠 반대가 되었다. 아파트들이 먼저 들고 일어난다. 포항에서는 신천지 주민들이 아파트 개명에 나섰고, 대구서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코로나 때문에 신천지 불똥이 엉뚱한 곳까지 번지고 있다.
(대구엔 꽁초가 없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고통 속에 살지만 한번 웃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코로나가 어디 영향 미치지 않는 곳이 있으랴.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유독 바쁜 곳이 있다면 마스크 공장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런 곳에도 주 52시간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와중에 형편이 전혀 다른 직종을 만난다. 어딘지 알아 맞춘다면 상식에 능통하다. 새벽 운동길에 종종 보는 환경미화원이다. 쉬고 있는 그에게 물어 본다. "요즘은 좀 편하시지요?" 예상이 적중한다. "다니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휴지도, 꽁초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주 길턱에 앉아 쉬고 있었구나. 몹쓸 코로나가 만드는 별천지를 경험한다.
(그래도 운동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이때, 운동을 해야 하나 쉬어야 하나. 다들 문밖을 나가지 않아야 좋다고 해 많이 망설였다. 이참에 운동과 완전히 결별한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얼마나 오래 지켜온 전통인데. 여기서 중단했다가는 재기가 불투명하다. 오랜 버릇은 지속해야 유지 가능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학교 정문을 닫아두고 있어 주변 산책에 돌입한다. 사람 보기가 어렵다. 운동장에서 만나던 사람들은 다들 칩거한단 말인가. 마스크로 무장하고 나홀로 운동은 계속된다. 사람이 편해지려면 끝이 없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우리의 심사가 아니던가. 코로나 무섭다고 새벽 운동을 중단할 수는 없다.
첫댓글 2020. 2. 21- 3. 7 까지 코로나로 인한 아픔을 담아보았습니다.
일상이 그려집니다.
사실적으로 온화하게 잘 쓰셨네요..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지요.
팔공산 쪽은 우리보다 공기가 훨씬 좋지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