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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경표를 따라서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율
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30.57km (8시간 04분.솔뫼성지포함 ).
14코스 백제부흥군길: 예산역-예산대교(14코스시작점)--무한천 무한철교(45국도)-종경교(신암면)-용산 화암사-추사고택.
15코스 백제부흥군길 : 추사고택-삽교천 제방길-구양교-신택교-석우천제방길-합덕제-합덕수리민속박물관.
16코스 백제부흥군길 : 합덕제-성동교앞-합덕시장-합덕버스터미널-솔뫼성지왕복
◈ 일시 : 2018. 1. 28(일).
◈ 날씨 ; 연일 영하 16.7도 강추위더니 오늘은 좀 풀렸다.
◈ 지도.
백제부흥군길 14코스 안내도.
백제부흥군길 15코스 안내도.
백제부흥군길 16코스 안내도.
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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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지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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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지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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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지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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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 5. 백제부흥군길 14,15코스 (예산역- 추사고택-합덕).지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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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
◈ 일정정리.
07 ; 35. 천안에서 익산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예산역으로 감 (경로 1800원).
08 ; 11/23. 예산역에 도착하여 채비하고 우측의 시내버스정류장앞을 지나 도로따라 쭈욱간다.
08 ; 32.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지하통로로 철길을 건너 신호를 받아 무한교차로를 건너간다.
08 ; 38. 무한천을 건너는 예산대교를 건너가며 무한천체육공원과 무한산성을 바라본다.
08 ; 45. 예산대교 건너 우측으로 무한천 제방길을 따라 간다. 화장실과 내포문화숲길 14코스 시작점 안내판.
08 : 55. 무한산성 해설판 뒤로 무한산성을 바라본다.
09 ; 08. 618번도로 신원교를 건너간다.좌측 45번국도밑에 신원 1리 버스정류장.
우측으로 신레원뒤로 도고산.덕봉산.관모산줄기가 보인다.신암면 3.54km.
09 : 20 45번국도 무한철교밑을 지나 쉼터.좌측 비닐하우스 단지 뒤로 가야산과 잠시후에 지나길 용산이 보인다.
09 ; 35. 탄중배수장.농지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라는 전광판이 돌아간다.가끔 쉼터가 나온다.
09 : 53. 새로 건설된 종경교.무한천과 작별하고 좌로 꺽어 농경2배수장앞을 지난다. 우측 다리 건너는 신례원이다.
10 ; 00. 신암면으로 들어가는 2차선도로. 종경교를 건너 좌측 제방길을 조금가서 우측 농로를 간다.무한산성4.56km화암사 2.51km.
10 : 14. 우측 신암면에서 오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조금간 오산1리 버스정류장.우측 오산1리 마을길로 간다.
10 ; 16. 오산1리 마을회관, 경로당과 정자를 지난다.
10 ; 20. 어느집 문중 사당인 공후제를 지난 언덕길을 오른다.
10 ; 23. 2차선도로.오산1리 → 표지판. 좌측으로 도로따라 가며 오석산이 보인다. 봉수지맥 마루금이다.
10 ; 27. 2차선도로에서 우측 산길로 든다.화암사 표지판과 빛바랜 등산안내판.
10 ; 32. 김정희선생필적 소봉래암각문(충남기념물 151호)
10 ; 36. 큰바위와 썩은 의자가 가 있는 정점.봉수지맥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화암사는 직진한다.
10 ; 41. 화암사뒤 안부.추사고택 1.29km.신암면 2.51km. 우측 화암사를 들려간다.
10 ; 45. 화암사.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가 되어 별사전으로 분급된 전토에 포함된 개인 사찰로
추사가 이곳에서 불교에 정심하였고 추사의 친필인 무량수각,시경편액이 있고
절 뒤 암벽엔 추사의 친필 각자한 시경,천축고선생댁,소봉래등의 유적이 있다.
절앞엔 228년(1982년). 23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2그루가 있다.
11 : 00. 오석산(95.8m. 예산 21삼각점).
11 ; 16. 정자와 추사고택 안내판. 세멘길안부를 건너 살짝 올라서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11 ; 21. 추사묘.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원래 과천에 있었는데 1937년이곳으로 이장했다.
우측 아래엔 추사기념관.좌측엔 추사고택이 있다.
11 ; 25/37. 추사고택.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란곳이다.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부마가 되면서 서울과 예산에 저택을 하사받았는데
에산의 집은 53칸 규모로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비용을 분담하여 지엇단다.
ㄱ자형 사랑채와 ㅁ자형 안채와 뒤에 추사 초상화을 모신 영당이 있다.
11 ; 40. 솟대들이 있는 김한신묘입구. 내포숲길 인증쎈터가 있는 것이 여기가 14코스종점인가보다.
도장은 보관함 밖에 나와있고 잉크가 말라 안 찍힌다.
코스 안내도엔 14코스끝이 추사고택인데 고택앞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안내판은 안보인다.
11 ; 42.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묘.
11 ; 44. 화순옹주 홍문.화순옹주는 김한신이 39세로 요절하자 14일을 굶어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조선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다.
11 ; 45/12 ; 15.화순옹주 홍문옆에 있는 백송공원을 둘러보고 공원에서 점심먹고 출발
화순옹주홍문 0.022km, 백송 0.36km.도로따라 언덕을 넘어가며 15코스를 이어간다.
12 ; 20. 예산용궁리백송.천연기념물 106호.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을 다녀오며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김흥경묘앞에 심은것인데 3가지중 2가지는 말라죽고 한가지만 남았다.
12 ; 31. 도로따라 가다 예림리마을에서 우측 마을길로간다. 삽교천 0.777km.
12 ; 35. 포장도로에서 우측 세멘트 농로로 철탑을 보며 간다.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이제부터 우측으로 세멘트 제방길을 3km에 40분을 간다.
12 ; 44. 쉼터. 추사고택뒤 용산, 오석산과 뒤로 예산의 산들이 보이고 가야산은 가물가물.
12 ; 53. 예림배수장.잠시후 쉼터.
13 ; 01. 32국도 예당대교 아래 통과.대교옆엔 쉼터
13 ; 12. 쉼터. 멀리 영인산이 보인다.
13 ; 19.둑방길이 끝나고 쉼터에서 우측 세멘길로 산모랭이를 돌아 오른다.구양교가 보인다.
삽교천 3km, 구양교 1.4km.
13 : 29. 언덕위 송내촌마을. 대형물탱크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간다.
13 : 33. 2차선도로. 좌측에 구양교.내려온쪽엔 화강정 매운탕집. 도로따라 가지않고
직진해 내려가 바로앞의 세멘농로따라 좌측 구양교로 간다.
13 ; 38. 세멘농로. 우측 여사울성지에서 온 22코스를 만나 좌측으로 같이간다.15코스 안내판.
여사울성지 1.88km. 구양교 0.38km. 삽교천과 무한천이 만나는 합수점쪽이 건너다 보인다.
13 : 46. 구양교(九陽橋)건너. 에산땅에서 당진시로 넘어왔다. 앞엔 구양도버스정류장. 영인산이 보인다.
좌측으로 다리공사장을 돌아 삽교천둑방길을 가며 도고산부터 관모산, 안락산으로 이어지는 예산의 산들을 본다
14 ; 05. 신택교 건너. 22코스는 좌측으로 삽교천둑길을 따라가고
15코스는 우측으로 꺽어 석우천 둑길을 간다.
여기서부터 4.8km에 약 1시간 5분을 석우천둑길을 가다 합덕터미널로 나갔다.
삽교성당 20km. 합덕성당 2.7km.추사고택 8.1km.여사울성지 3.8km.
14 ; 12. 중동교.2차선도로를 건너간다.
14 ; 20. 국가지점번호판.번호 부여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4 ; 32. 합덕하수처리장앞. 공사중이다.
14 ; 35. 연지교앞 2차선도로를 건너가면 정자가 있고 우측 석우천을 건너는 연지교를 건너간다.
14 ; 37. 당진합덕제 안내판.버그내순례길 이정표.우측 합덕성당 0.5km 쪽으로 간다.
14 ; 45. 합덕제(합덕방죽)안내판. 제16코스 백제부흥길 안내판. 내포숲길 인증대.
중근봉 6.62km 이정표.눈발이 날린다.
14 ; 49. 합덕수리민숙박물관. 겉만보고 되돌아 나와 합덕제를 가로질러 건너편 석우천둑길로 갔다.
14 : 56. 건너편 석우천 둑길의 정자.버그내순례길, 백제부흥군길 이정표. 다시 둑길을 따라간다.
15 : 10.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둑길에서 우측 합덕읍으로 가는 세민길로 간다.. 버그내순레길 솔뫼성지 3.07km.
15 ; 18. 도로건너 우측에 있는 2차선도로를 따라간다.
15 ; 25. 합덕전통시장. 계속 도로따라 언덕을 넘어간다.좀전에 솔뫼성지 1km 이정표를 지났다.
15 ; 34. 합덕버스터미널. 천안행은 16 ; 25분에 있어 50분의 여유가 있다.
저앞 이정표에서 솔뫼성지가 500m 된다기에 다녀오기로 한다.
15 : 45. 우강면사무소와 보건지소.
15 ; 47. 솔뫼성지 492m.얼마를 왔는데 아직도 492m여?
15 ; 50. 70번국지도를 건너는 솔뫼교차로를 건너간다.
15 : 56/16 ; 12. 솔뫼성지.김대건신부 탄생지로 증조할아버지,작은 할아버지,아버지등 4대에 길친 순교자가 살았던곳.
16 ; 28. 합덕버스터미널.부지런히 다녀왔는데 54분 걸렸다. 왕복3.5km는 되나보다.3분 늦어 4시 25분차는 꽁무니만 봤다.
17 : 40. 천안행 버스타고 신례원, 아산거쳐 천안도착 18: 55분.5700원.날씨가 디시 추워진다.
다녀와서 케페 한줄 메모장에 남긴글이다.
1.28(일) 내포문화숲길 14.15코스(예산역-추사고택-
합덕)다녀왔습니다.
연일 영하 16,7도의 강추위로 몇일 꼼짝을 않타가
잠깐 날이 좀 누그러진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순서대로 가자면
5코스로 남원묘에서 원효봉을 넘어 수덕사로 가야하고
이후 코스도
계속산길인데 아직 눈이 있어 이쪽은 잠시 미뤄두고
평지 하천길인 14코스
예산대교부터 시작해서 봉수지맥의 추억이 있는 추사고택가서 점심먹고
15코스를 이어가 15코스끝인 합덕제에 가니 눈발이 날리고
16코스를 잠시가다 합덕터미널에 가니 3시반경.
천안가는 버스는 4시 25분인데 김대건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가 700m 거리라기에
후딱 다녀온다고 갔더니 으메 왕복
3.5km.
4시 25분차는 포기하고 카메라, 핸드폰 바테리 갈고 둘러보고 나니
4시 11분. 서두르면 혹시 탈수있지않을까싶어 뛰다시피 갔더니
저만치서 버스가 나간다.
5시
40분 버스타고 천안에 7시 도착.
gpx기로 29.83km에 8시간
4분.
봉수지맥 화암사뒤능선 빼고는 종일 쎄멘길이라 발바닥이
아프다.
우리집대장 말씀이 권고 5시간, 최대 6시간을 넘지말라는 충고인데
오늘은 좀 무리했나싶다.
08 ; 11/23. 예산역에 도착하여 채비하고 우측의 시내버스정류장앞을 지나 도로따라 쭈욱간다.
예산역 우측의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시간표.
누르면 확대됩니다.
08 ; 32.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지하통로로 철길을 건너 신호를 받아 무한교차로를 건너간다.
08 ; 38. 무한천을 건너는 예산대교를 건너가며 무한천체육공원과 무한산성을 바라본다.
08 ; 45. 예산대교 건너.
우측으로 무한천 제방길을 따라 간다. 화장실과 내포문화숲길 14코스 시작점 안내판.
우측으로 무한천 제방길을 따라 간다.
예산대교.
08 : 55. 무한산성 해설판 뒤로 무한산성을 바라본다.
09 ; 08. 618번도로 신원교를 건너간다.좌측 45번국도밑에 신원 1리 버스정류장.
우측으로 신레원 뒤로 도고산.덕봉산.관모산줄기가 보인다.신암면 3.54km.
09 : 20 45번국도 무한철교밑을 지나 쉼터.좌측 비닐하우스 단지 뒤로 가야산과 잠시후에 지나길 용산이 보인다.
45번국도 무한철교밑에서 우측 도고산-덕봉산- 관모산
쉼터에서 좌측 비닐하우스 단지 뒤로 가야산.
쉼터에서 좌측 비닐하우스 단지 뒤로 화암사 뒷산인 오석산과 용산.
쉼터에서 우측 노고산-덕봉산-관모산.
09 ; 35. 탄중배수장.
농지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라는 전광판이 돌아간다.가끔 쉼터가 나온다.
09 : 53. 새로 건설된 종경교.
무한천과 작별하고 좌로 꺽어 농경2배수장앞을 지난다. 우측 다리 건너는 신례원이다.
09 : 53. 새로 건설된 종경교에서 뒤 돌아 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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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천과 작별하고 좌로 꺽어 농경2배수장앞을 지난다.
10 ; 00. 신암면으로 들어가는 2차선도로.
또다른 종경교를 건너 좌측 제방길을 조금가서 우측 농로를 간다.무한산성4.56km화암사 2.51km.
신암면소재지다.
종경교를 건너 좌측 제방길을 조금가서 우측 농로를 간다.무한산성4.56km화암사 2.51km.
10 : 14. 우측 신암면에서 오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조금간 오산1리 버스정류장.
우측 오산1리 마을길로 간다.
10 ; 16. 오산1리 마을회관, 경로당과 정자를 지난다.
10 ; 20. 어느집 문중 사당인 공후제를 지난 언덕길을 오른다.
10 ; 23. 2차선도로.오산1리 → 표지판. 좌측으로 도로따라 가며 오석산이 보인다. 봉수지맥 마루금이다.
10 ; 27. 2차선도로에서 우측 산길로 든다.화암사 표지판과 빛바랜 등산안내판.
10 ; 32. 김정희선생필적 소봉래암각문(충남기념물 151호)
10 ; 36. 큰바위와 썩은 의자가 가 있는 정점.
봉수지맥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화암사는 직진한다.
덕숭산-가야산-석문봉-옥양봉능선엔 눈이 허옇다.
10 ; 41. 화암사뒤 안부.추사고택 1.29km.신암면 2.51km. 우측 화암사를 들려간다.
10 ; 45. 화암사.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가 되어 별사전으로 분급된 전토에 포함된 개인 사찰로
추사가 이곳에서 불교에 정심하였고 추사의 친필인 무량수각,시경편액이 있고
절 뒤 암벽엔 추사의 친필 각자한 시경,천축고선생댁,소봉래등의 유적이 있다.
절앞엔 228년(1982년). 23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 2그루가 있다.
화암사와 뒷편의 암각문이 새겨진바위가 보인다.
화암사는 여느 절집과 모양이 좀 다르다.
화암사와 뒷편의 암각문이 새겨진바위.
11 : 00. 오석산(95.8m. 예산 21삼각점).
봉수지맥 마루금에서는 좀 떨어져있다.
11 ; 16. 정자와 추사고택 안내판.
세멘길안부를 건너 살짝 올라서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11 ; 21. 추사묘.
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원래 과천에 있었는데 1937년이곳으로 이장했다.
우측 아래엔 추사기념관.좌측엔 추사고택이 있다.
추사 김정희선생 묘소(秋史 金正喜先生 墓所)
김정희 묘소는 추사고택에서 우측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조성되었다.
묘역의 석물은 추사 사후 82년인 1937년 후손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상석, 향로석, 망주석 한 쌍과 함께 천막을 칠 때 고정대 역할을 하는 차일석 한 쌍 등이 있다.
묘의 바로 오른쪽 앞에는 방부개석(方趺蓋石 장방형의 받침돌과 지붕모양의 덮개돌)형의 묘표가 세워져 있으며,
전면(前面)에는 "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라고 각자되어 있다.
비문은 추사의 후손인 김승렬(金承烈)이 짓고 썼다.
우측 아래의 추사기념관.
11 ; 25/37. 추사고택.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란곳이다.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부마가 되면서 서울과 예산에 저택을 하사받았는데
에산의 집은 53칸 규모로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비용을 분담하여 지엇단다.
ㄱ자형 사랑채와 ㅁ자형 안채와 뒤에 추사 초상화을 모신 영당이 있다
추사고택(秋史古宅).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옛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2동 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지은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
<석년> 글씨는 추사의 서자(庶子)인 김상우(金商佑 1817~1884)가 쓴 것이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안채 뒤편 언덕에는 추사 김정희의 영정을 모신 추사영실(秋史影室)이 있으며,
<추사영실> 현판은 김정희와 평생 막역한 사이였던 권돈인(權敦仁 1793~1859)의 작품이다.
고택의 오른쪽 담장에 달린 쪽문을 나서면 대대로 마셔온 석정(石井)이 있고,
거기서 100m쯤 가면 김정희묘(문화재자료 188)가 있다. 방마다 모사품이기는 하나 선생의 유묵이 걸려 있다.
후손이 세거(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하였다.
집 안에 있는 김정희의 영정과 도장, 염주, 붓과 벼루 등은 일괄 보물 제54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가 어려서 공부했던 절 화암사가 있다.
현재의 추사고택은 1977년 조선 양반집의 한 범본으로 서울의 대목수인 인간문화재 이광규 옹이 원래 53칸의 집을 반으로 줄여 복원한 것이다.
추사고택(秋史古宅) 사랑채.
각 기둥마다 주렴이 걸려있고 벽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사랑채 댓돌 앞에는 석년(石年)이라 각자된 석주가 있다.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
<석년> 글씨는 추사의 서자(庶子)인 김상우(金商佑 1817~1884)가 쓴 것이다.
추사는15세때 동갑인 한산 이씨(韓山李氏, 15세)와 혼인하였으나 5년후사별하고
3년후인 23세때에 예안 이씨(禮安李氏)를 재취(再娶)로 맞아들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제주도로 유배간 다음해인 56세때에 12촌되는 김태희의 아들 김상무(金商懋)를 양지로 들였고
다음해인 57세때 유배중에부인은 죽었다.김상우는 그의 서자다.
사랑채앞에 있는 石年.
사랑채에 걸려있는 竹爐之室(죽로지실).
차를 끊이는 죽로(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가 있는방.
사랑채에 걸려있는 新安舊家(신안구가). 완당제.
주자성리학의 시조인 주희가 신안인이므로 주자성리학의 전통을 가진 집 이라는 의미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有福量壽(유복양수).
많은복과 한없는 수명이란뜻.
완당세한도 [阮堂歲寒圖] 국보 제180호.가로 108.3㎝, 세로 23.5㎝
〈세한도〉는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59세 때인 1844년 윤상도(尹尙道)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인
역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작은 글씨로 쓴 ‘우선시상(藕船是賞, 藕船은 이상적의 호)’이라는 관지가 이 그림이 이상적을 위해 그려진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림 끝에는 〈세한도〉를 그리게 된 연유를 담은 발문(跋文)이 붙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이고 받은 찬시들이 길게 곁들여 있다.
그리고 뒷날 이 그림을 본 추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贊)과 오세창·정인보·이시영 등의 시문(詩文) 등이 실려 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추운 겨울이 되면 다른 모든 식물들은 낙엽지는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상록수의 푸름을 잃지 않으니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는《논어》 자한(子罕)편의 한 구절을 빌어 '세한도(歲寒圖)'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가로로 긴 지면에 가로놓인 초가와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가 지향하는 문인화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갈필로 형태의 요점만을 간추린 듯 그려내어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까슬까슬한 선비의 정신이 필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그림에는 김정희 자신이 추사체로 쓴 발문이 적혀 있어 그림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소장하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대학 교수이며 추사 김정희의 연구자였던 후지즈카를 따라 도쿄로 건너가게 됐다.
당시 고서화 수장가인 손재형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본으로 건너가 매달린 끝에 결국 다시 찾아왔다.
(藤塚鄰.후지츠카 치카시.1879~1948.경성대학교수)가 수집한 많은추사와 관련된 많은자료들은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가 2006년 과천시에 기증하였다
추사고택(秋史古宅)안채.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김정희는 1856년 음력 10월10일에 세상을 떠났다.
6개월뒤인 1857년4월3일에 부친김노경과함게사면,복권되었다.
이에 돈독한벗인 권돈인은 1857년 초여름에 이한철로 하여금 관복을입은 모습의 초상화를 그리게하여
예산 김정희고택뒤편에세운 재각에 봉안하고 추사영실(秋史影室)을 손수썼다.
이초상화는 19세기초상화를 대표할만한 명품으로 봉(鳳)의 눈에 미간을 넓게표현해 후덕한 인품을 느끼게한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자는 원춘. 호는 완당, 추사 등 수백가지에 이른다.
조선 후기인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병조 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스물네살 되던 해에
청나라 연경(燕京)에 가서 당시 이름난 학자인 완원, 옹방강 등에게 금석학과 실학을 배우고 돌아왔다.
박제가의 제자이기도 한 그는 한때 규장각 시교·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병조참판에까지 이르렀으나,
말년에는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2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지에서 만난 선승들과의 교류를 통해 선불교에도 조예를 쌓았으며,특히 백파(白坡)와 초의(草衣)양 대사와의 관계가 깊었으며,
학문에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그는 함흥 황초령(黃草嶺)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巡狩碑)를 고석(考釋)하고,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흥왕 순수비이며, ‘진흥’이란 칭호도 왕의 생전에 사용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실사구시설》을 저술하여 근거 없는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학문을 하여서는 안 됨을 주장하였으며,
종교에 대한 관심도 많아 베이징[北京]으로부터의 귀국길에는 불경 400여 권과 불상 등을 가져와서 마곡사(麻谷寺)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70세에는 과천 관악산 기슭에 있는 선고묘(先考墓) 옆에 가옥을 지어 수도에 힘쓰고
이듬해에 광주(廣州) 봉은사(奉恩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다음 귀가하여 세상을 떴다.
문집에 《완당집(阮堂集)》, 저서에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 《완당척독(阮堂尺牘)》 등이 있고,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등이 있다.
문인화(文人畵.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사대부층 사람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 )는 당대 최고의 성취로 평가받아
그림 가운데 '세한도(歲寒圖)'는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빌어 '세한도(歲寒圖)'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11 ; 40. 솟대들이 있는 김한신묘입구. 내포숲길 인증쎈터가 있는 것이 여기가 14코스종점인가보다.
도장은 보관함 밖에 나와있고 잉크가 말라 안 찍힌다.
코스 안내도엔 14코스끝이 추사고택인데 고택앞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안내판은 안보인다.
11 ; 42.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부인 화순옹주의 묘.
.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화순옹주(和順翁主)의 합장묘이다.
김한신은 1720년(숙종 46) 영의정 김흥경(金興慶:1677∼1750)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보(幼輔), 호는 정미와(精美窩), 시호는 정효공(貞孝公)이다.
13세 때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그뒤 오위도총부 도총관, 제용감제조 등을 지냈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다.특히 팔분체(八分體)의 글씨와 전각(篆刻)에 뛰어났다.
김한신이 38세인1758년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영조(英祖)의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정절을 기려 정조(正祖)가 하사하였다.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金漢藎)은 1720년(숙종 46) 13세 때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지고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를 지냈으며, 1758년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 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고 후에 정조가 하사했다.
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있다.
11 ; 44.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는 김한신이 39세로 요절하자 14일을 굶어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조선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다.
11 ; 45/12 ; 15.화순옹주 홍문옆에 있는 백송공원을 둘러보고 공원에서 점심먹고 출발
화순옹주홍문 0.022km, 백송 0.36km.도로따라 언덕을 넘어가며 15코스를 이어간다.
백송공원.
12 ; 20. 예산용궁리백송.천연기념물 106호.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을 다녀오며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김흥경묘앞에 심은것인데 3가지중 2가지는 말라죽고 한가지만 남았다.
12 ; 31. 도로따라 가다 예림리마을에서 우측 마을길로간다. 삽교천 0.777km.
12 ; 35. 포장도로에서 우측 세멘트 농로로 철탑을 보며 간다.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에서 뒤 돌아 본옹산과 오석산.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에서 좌측으로 본 일월산-홍동산-덕숭산쪽.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에서 좌측으로 본 서원산-가야산-옥양봉-수정봉.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에서 삽교천 건너편 뒤로 몽산- 아미산.
12 ; 40. 철탑지나 삽교천 제방위.
이제부터 우측으로 세멘트 제방길을 3km에 40분을 간다.
12 ; 44. 쉼터에서 우측으로 본 추사고택뒤 용산, 오석산과 뒤로 예산의 산들이 보이고
가야산은 가물가물하고 예림배수장.
13 ; 01. 32국도 예당대교 아래 통과.대교옆엔 쉼터.
13 ; 12. 쉼터. 멀리 영인산이 보인다.
13 ; 19.둑방길이 끝나고 쉼터에서 우측 세멘길로 산모랭이를 돌아 오른다.구양교가 보인다.
삽교천 3km, 구양교 1.4km.
우측 세멘길로 산모랭이를 돌아 오른다.
13 : 29. 언덕위 송내촌마을. 대형물탱크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간다.
13 : 33. 2차선도로. 좌측에 구양교.내려온쪽엔 화강정 매운탕집. 도로따라 가지않고
직진해 내려가 바로앞의 세멘농로따라 좌측 구양교로 간다.
13 ; 38. 세멘농로. 우측 여사울성지에서 온 22코스를 만나 좌측으로 같이간다.15코스 안내판.
여사울성지 1.88km. 구양교 0.38km. 삽교천과 무한천이 만나는 합수점쪽이 건너다 보인다.
구양교(九陽橋)에서 본 삽교천과 영인산.
13 : 46. 구양교(九陽橋)건너. 예산땅에서 당진시로 넘어왔다. 앞엔 구양도버스정류장. 영인산이 보인다.
좌측으로 다리공사장을 돌아 둑방길을 가며 도고산부터 관모산, 안락산으로 이어지는 예산의 산들을 본다
좌측으로 다리공사장을 지나 삽교천 둑방길을 간다.
삽교천 둑방길에서 덕숭산-가야산-수정봉
삽교천 둑방길에서 도고산 - 관모산- 안락산.
14 ; 05. 신택교 건너. 22코스는 좌측으로 삽교천둑길을 따라가고
15코스는 우측으로 꺽어 석우천 둑길을 간다.
여기서부터 4.8km에 약 1시간 5분을 석우천둑길을 가다 합덕터미널로 나갔다.
삽교성당 20km. 합덕성당 2.7km.추사고택 8.1km.여사울성지 3.8km.
멀리 아미산이 보인다.
14 ; 12. 중동교.
2차선도로를 건너 계속 석우천 둑방길을 간다.
14 ; 20. 국가지점번호판.
번호 부여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미산이 좀더 가까워졌다.
14 ; 32. 합덕하수처리장앞. 공사중이다.
14 ; 35. 연지교앞 2차선도로를 건너가면 정자가 있고 우측 석우천을 건너는 연지교를 건너간다.
14 ; 37. 당진합덕제 안내판.버그내순례길 이정표.
우측 합덕성당 0.5km 쪽으로 간다.
당진합덕제
합덕성당이 보인다.
14 ; 45. 합덕제(합덕방죽)안내판. 제16코스 백제부흥길 안내판. 내포숲길 인증대.
중근봉 6.62km 이정표.눈발이 날린다.
14 ; 49. 합덕수리민숙박물관.
겉만보고 되돌아 나와 합덕제를 가로질러 건너편 석우천둑길로 갔다.
14 : 56. 건너편 석우천 둑길의 정자.버그내순례길, 백제부흥군길 이정표. 다시 둑길을 따라간다.
15 : 10.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둑길에서 우측 합덕읍으로 가는 세민길로 간다.
버그내순레길 솔뫼성지 3.07km.
우측 합덕읍으로 가는 세민길로 간다.
15 ; 25. 합덕전통시장. 계속 도로따라 언덕을 넘어간다.좀전에 솔뫼성지 1km 이정표를 지났다.
15 ; 34. 합덕버스터미널.
천안행은 16 ; 25분에 있어 50분의 여유가 있다.
저앞 이정표에서 솔뫼성지가 500m 된다기에 다녀오기로 한다.
합덕버스터미널
누르면 확대됩니다.
솔뫼성지 가는길.
이 집 문패는 개인집이다.
솔뫼성지가는 인도엔 버그내순례길 동판이 간간히 나온다.
15 : 45. 우강면사무소와 보건지소.
15 ; 47. 솔뫼성지 492m 이정표.얼마를 왔는데 아직도 492m여?
15 ; 50. 70번국지도를 건너는 솔뫼교차로를 건너간다.
15 : 56/16 ; 12. 솔뫼성지.
김대건신부 탄생지로 증조할아버지,작은 할아버지,아버지등 4대에 길친 순교자가 살았던곳.
솔뫼성지 입구.
솔뫼성지 입구.
솔뫼성지 입구.
솔뫼성지 입구.
김대건신부 생가지.
김대건신부 생가지.
김대건신부 생가지.
솔뫼성지 십자가.
16 ; 28. 합덕버스터미널.부지런히 다녀왔는데 54분 걸렸다. 왕복3.5km는 되나보다.3분 늦어 4시 25분차는 꽁무니만 봤다.
17 : 40. 천안행 버스타고 신례원, 아산거쳐 천안도착 18: 55분.5700원.날씨가 디시 추워진다.
출처: http://yul6629a.tistory.com/1179 [산경표를 따라서]
첫댓글 오늘 걸으신 30.57km, 8시간 04분.. 암튼 너무 무리하신건 아니신지요?
사모님의 권고시간도 훨씬 상회하셨네요. ㅎ
이번 구간에는 추사고택과 김대건신부 탄생지 등 명소를 만납니다.
봉수지맥이며 금북정맥 능선도 조망되고~
세심한 여정담은 후배산꾼에게 늘상 귀감이 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